초한지 1 - 짧은 제국의 황혼, 이문열의 史記 이야기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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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리던 이문열의 <초한지>(1권-짧은 제국의 황혼)을 읽었다. 정비석의 <초한지>를 읽고 적잖이 실망을 했던 터라 이문열의 <초한지>를 하루빨리 읽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정비석의 책과 비교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예정된 10권이 모두가 출간된 것이 아닌 권2까지만 출간이 된 것을 뒤늦게 알았다. 안타까웠다. 읽을 때 쭈욱~ 권10까지 읽어 나가야 사기(史記)의 맛을 제대로 음미할 텐데. 어쨌든 이번 이문열의 <초한지>는 오래 전에 한길사에서 조정래의 <태백산맥>(10권)이 한 권 한 권 나올 때처럼 오매불망 기다려가며 읽어나가야 할 것 같다. 

처음 온라인 서점을 통해 이문열의 <초한지>를 접한 뒤 오프라인 서점에서 직접 책을 보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표지의 제질이 너무도 화려했던 것이다. 은색 펄이 강한 종이 위에 깊이 홈이 패인 물결무늬 세로줄이 마치 항우와 유방의 넘치는 에너지를 표현하기라도 한 듯 물결쳤던 것이다. 

어쨌든 생각보다 화려한 표지를 접한 뒤 기다릴 틈도 없이 읽기에 들어갔다. 이문열 <초한지>(권1)은 시황제의 진나라 말기를 다루고 있는데 시황제의 이야기가 2권까지 연결될 것 같다. 1권에서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중간 중간에 유방, 항우, 장량, 한신, 항백, 번쾌의 등장을 알리는 인물 설명이 등장한다.

한 질의 권 수가 10권이 넘는 모든 역사 소설이 갖는 공통점은 1권이 참 안 읽힌다는 것이다. 사건의 전개가 아닌 등장인물 소개와 배경 소개가 중심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나 <초한지> 1권도 마찬가지였다.

정비석의 <초한지>처럼 시황제 전 장양왕(이인)의 이야기부터 등장할 줄 알았는데 예상밖으로 요순시대 이전부터 시작하고 있다. 즉, 1권의 4분의 1분량을 요순시대, 하은주시대, 춘추전국시대로 진시황제 이전의 시대를 모두 줄기만 세워 나열하는 식이어서 이해가 되기보다 오히려 더 복잡했고 그나마 서 있던 계보마저 흩어져 버리게 했다. 초한지 본론을 위한 준비작업이었다면 계보를 설명과 함께 도표식 그림도 준비되었으면 훨씬 이해가 빠르고 쉬웠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문열이 쓴 <삼국지>를 읽었기 때문에 <초한지>도 같은 형식으로 쓰여졌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아직 1권이라서 그런지 <삼국지>보다 더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0권을 채우기 위해 이야기를 너무 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현재와 과거, 다시 현재로 돌아와 다시 과거의 이야기를 하는 구조를 보이고 있는 1권은 <열국지>를 읽지 않았다면 좀 이해하기 어렵지 않나 싶다. 아마도 현재와 과거의 넘나드는 이런 식의 이야기 구조는 2권 혹은 3권까지 지속될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항우, 유방, 장량, 한신, 범증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길게 나왔지만, 소하, 번쾌, 항백, 하후영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조금 거론되기 때문에 2권에서는 시황제의 죽음으로 아들 호해가 이황제로 등극을 하고 환관 조고의 농락으로 급기야 진나라가 멸망하는 이야기와 1권에서 짧막하게 등장하는 인물들의 장구한 설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을까 한다.

이문열의 편역 <삼국지>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이야기 중간중간에 설명조의 글이 끼어들어 읽어가는 흐름을 끊어 놓는 역할을 했는데 <초한지>는 그 정도로 지나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1권에서 그런 조짐을 보이고 있기에 하는 우려다.

3권쯤 가서야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것 같은데, 장량과 한신, 그리고 범증이 펼쳐 보일 병법이 어떻게 표현되어 살아날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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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서평단 알림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 한국사 상식 44가지의 오류, 그 원인을 파헤친다!
박은봉 지음 / 책과함께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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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일컬어 강자의 역사라 한다. 강자에 의해 역사는 만들어지고 기술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자의 역사라 해도 그 강자들이 다음 세대를 잇지 못한다면 역사는 오랜 시간이 들지라도 하나둘 바로잡히게 된다.

이 책에 담고 있는 잘못된 한국사 역시 강자의 역사가 빚어낸 오류들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강자의 역사 때문에 한국사의 상식이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그 외의 여러 가지 이유들도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몇 년 전에는 광해군이 사회적 트랜드로 자리매김을 하더니 요즘은 정조, 세종대왕이 트랜드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조선시대의 사회상과 정치상, 그리고 문화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좋은 현상으로 봐도 되겠지만 조선시대로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는 한국사에서 소외의 현상이 빚어지고 있기도 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잘못된 상식은 고려와 조선 시대로 나눠볼 수가 있다. 내시가 그랬고, 백정이 그랬다. 조선시대의 내시를 고려시대의 내시와 동일시한 것은 왕조시대의 구성과 특징을 고려하지 않는 가운데 막무가내 식의 내려보기를 해서 생기는 오류라 한다. 백정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의 사회적 신분제도를 고려시대의 사회적 신분제도에 그대로 대입해서 생긴 역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 일제에 의한 의도된 역사 비하도 있다. 고려장과 바보 온달이 대표적이다. 고려장이 고려시대의 풍습이라는 것은 잘못된 거란다. 고려시대에는 화장문화가 중심이었다는 것이다. 일제가 한국사의 격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교과서에 실리게 한다는 것이다. 바보 온달 역시 평강공주를 만나 장군이 된 것이 아니라 본래 용맹스러운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라 일제에 의해 왜곡되고 비하된 역사가 다수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신화와 설화에 의해 실제 역사가 변천된 것도 지적하고 있다. 이것뿐이랴. 외압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역사를 수치스럽게 여겨 의도적으로 바꾼 한국사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론이 그랬고, 문익점의 목화씨가 그랬으며, 최익현의 죽음이 그랬다. 윤관의 동북9동 역시 예외는 아니라고 한다.

이렇듯 이 책은 한국사가 외압에 의해서, 우리 스스로의 의도에 의해서, 또 왕조시대마다의 이해부족에 의해서, 연구부족에 의해서 역사적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자칫 놓치기 쉬운 것들을 조목조목 왜 잘못되었는지를 지적하면서 바로잡고 있어 이 책이 무척 고맙다. 더불어 이 책에 거론되지 않은 역사의 오류들은 얼마나 많을까도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노고와 출판사의 에디터십이 잘 놓아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하기 쉽게 써 내려간 저자의 내공을 느낄 수가 있었고, 저자의 의도를 잘 살린 편집이라는 생각이다.

앞으로 이런 책들이 더 많이 나와주었으면 한다. 정치적 상황으로 사실을 고백하지 못했다면 지금은 그러함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보다 많은 역사적 오류들을 잡아내야 할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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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진화 - 자기정당화의 심리학
엘리엇 애런슨.캐럴 태브리스 지음, 박웅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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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생각했던 것과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을 보게 된다. 이 책 역시 그런 책이었다. <거짓말의 진화>라는 제목에 '자기정당화의 심리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오히려 '자기정당화의 진화'라는 제목으로 되었어야 맞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혹시라도 '왜 거짓말을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기대했다면 조금은 실망을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맞다', '틀리다'의 개념이 아니다. 뭔가를 확실하게 꼬집어서 정확하게 얘기해 주기보다는 두 저자가 사회심리학자인 것처럼 보편 타당한 관점에서 말해 주고 있다. 많이 아쉬웠던 것은 수많은 사례 중 정확하게 짚어가면서 속시원히 설명해 주는 대목이 없다는 것이다. 잘못하면 사례 열거에 치우쳐 본 책의 의도가 희석되어질 수 있는 약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다만, 사례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을 하거나 그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적잖이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다. 

거짓말, 자기정당화의 대표적인 부류를 뽑으라면 고민의 여지도 없이 정치인, 고위공직자, 대기업총수 등 사회고위층 인사와 연예인 등일 것이다. 그들을 통해서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일들에 이젠 무감각해질 정도다. 왠만한 일이 아니고선 촉수조차 꿈쩍도 하지 않는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늘 변함없이 아무일 아니라는 듯한 제스처와 언제나 약속이나 한 듯한, '모른다', '조작이다' '음해다' '오해다' 식의 성의없는 말들의 나열을 너무 오랜 세월 동안 들어왔기 때문이다. 언제나 결백하다고 억울하다고 하며 짓는 표정에는 더 이상의 연습도 필요없어 보인다. 더이상 쇼크랄 것도 없는 새로운 사건들에 변함없는 그들의 행동에 확인만 할 뿐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자기방어적 말들에 대중들이 무감각해졌다는 것은 그만큼 면역성이 커졌다는 말도 된다. 왠만한 일이 아니면 놀라지도 않는다. 어쩌면 진즉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을지도 모른다. 더욱 더 사건과 사고에도 무감각해지길 바라면서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렇게 정치인,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대중을 설득할 때는 자신이 위험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자신을 설득할 때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자기정당화가 공공연한 거짓말보다 강력하고 훨씬 더 위험하다. 자기정당화가 있음으로 자신의 일이 최선이었다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게 된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자기정당화는 사람들의 과오와 그른 결정을 과소평가하는 것만이 아니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즉, 실수를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자기정당화는 무조건적인 용서를 받아야 하는 걸까? 저자는 자기정당화에는 기억이 자리잡고 있고 이 기억으로부터 모든 사건은 재구성된다는 것이다. 즉, 기억은 재구성하는 성격이 있기 때문에 작화(作話)의 영향을 받기 쉽단다.  

기억에 의해 조종된다는 자기정당화는 어느덧 실제 있었던 일이 되고, 발생한 일이 되는데 자기를 정당화하려는 사람은 왜 이렇게 믿고자 하는 것일까? 혹은 믿을까? 첫째, 그때의 감정과 세세한 내용까지 담고 있는 생생한 기억이 명백히 틀리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참으로 난감한 일이라는 것이다. 둘째, 어떤 기억의 정확성을 절대적으로 확신한다 해도 실제로 그렇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 기억의 착오가 현재의 감정과 신념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읽다보면 자기정당화를 합리화시키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것같기도 하고, 사회의 순환적 역할을 위해서 모종의 눈감아 주시식 약속인 듯해 씁쓸하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라고 강요하는 것같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히 자기정당화나 거짓말이나 변명은 나쁘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모종의 애교성 용서가 가능한 것(물질적 정신적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들)들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이외의 것들이 일상화되는 것은 사회 순기능이 아니라 역기능을 초래할 뿐이다.

거짓말과 자기정당화를 관철시키려는 사회 분위기가 변해야 한다. 부끄러움을 알게 해야 하고, 잘못한 것은 분명 잘못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야 건강한 국가, 건강한 사회, 건강한 가정이 되는 것이다. 더이상 거짓말과 자기정당화를 위한 감언에 무감각해져서도 안 되고 면역성을 길러도 안 될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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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진보다
박민영 지음 / 포럼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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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지금까지 읽지 못한 책이 있다. 바로 공자의 논어다. 쉽게 손이 가지 않았던 탓인지 아직까지 책을 사지 않았음도 물론이다. 이런 와중에 논어를 뛰어넘는 논어 바로 알리기 취지의 <논어는 진보다>라는 책을 먼저 만났다.

그동안 논어를 읽지 못했던 이유가 여럿 있었지만 그 중 어렵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마음이 컸고,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책을 읽은 지금은 어떨까? 많이 달라졌다. 읽어봄직도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앞서는 것이다. 오히려 이 책에서 지적되어진 잘못된 해석들을 곱씹으면서 읽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이 책은 논어 바로 알리기에 상당히 적극적이다. 아니 필사적이라는 말이 어울리겠다. 그동안 잘못 해석되어지고 오역되어진 논어의 단편들을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근거자료를 제시해 가며 바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나도 모르게 저자의 노고를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에 읽은 다른 책들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저자의 고민과 흔적들,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많은 노력들, 그리고 그 노력들에 타당성을 부여하고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 준비한 자료들. 이러한 것들에서 반드시 밝히고 말겠다는 저자의 뚝심이 보였다. 일단 저자의 이러한 노력은 성공한 듯하다. 앞으로 읽어야 할 논어를 비틀어 읽을 수 있게 분위기를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시종일관 강한 어조로 논어의 바른 해석을 위해 열을 올렸을까? 그것도 450쪽에 달하는 분량도 부족해 보일 정도로 말이다. 그것은 공자의 철학적 사상과 배치되는 논어의 해석과 4대 성인聖人에 들어가는 공자가 처세가로 팔려다니는 현실 상황에서 공자가 잘못 알려지고 상당히 왜곡되어져 있기 때문이란다. 이것은 이 책 표지에서도 밝히고 있는 바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해를 돕고 많은 도움을 주었던 책이 있다. 바로 풍몽룡의 <열국지>(전12권)이다.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특히 공자가 태어난 노나라의 정치 상황과 주변 상황을 다루고 있기에, 이 책을 읽기 전에 가졌던 많은 부담을 상당히 덜어낼 수 있었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공자의 사상인 '인仁'을 놓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공자의 인 사상을 알아야, 논어가 올바르게 해석될 수 있고, 풀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논어가 잘못 해석되어진 여러 가지 이유들을 지적해간다. 한자의 다의성 문제와 공자의 말투, 유교가들의 정치적 목적 등등이라는 것이다. 특히 스님의 선문답처럼 머리 자르고 꼬리 자르고 몸통만 툭 내뱉는 공자의 말투 때문에 논어가 공자의 사상과 반대되는 해석이 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자를 직역하게 된 것이고,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는 것을 후대의 철학자들은 몰랐다는 것이다. 

그러면 공자는 왜 선문답 식의 말투를 고집했을까? 그것은 공자의 사상적 핵심이 인仁에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아는 제자들에게 굳이 인을 자주 언급하며 설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논어의 단편들을 읽을 때 더욱 주의를 기울여 직역이 아닌 한자가 갖는 속뜻을 이해해야 하고 그 속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자의 중심 사상인 인을 주체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중심 사상에서 파생되는 덕치, 예, 의, 지 등도 대입시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논어의 해석에 오류를 범하는 이유는 공자의 제자들의 개별적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공자의 제자 교육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도 비롯되었다고 한다. 바로 제자들과의 개별적 특성을 무시한 채 논어의 단편들을 읽으면 공자의 의도를 정확히 읽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가 단편 하나하나를 바르게 해석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많은 부분에 수긍이 간다. 그러다 문득 해석된 고서들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 관련 분야의 학자가 아닌 이상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흔하게 들어본 공자였지만 정작 그 속으로 들어가 보니 제대로 알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공자에 대해 알아가게 되었다는 것이 맞겠다. 공자가 죽기까지 백성을 생각했고, 그 백성들의 편안한 삶을 위해서 지배계층에게 끊임없이 인과 덕을 요구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것은 '곧은 것을 굽은 것 위에 놓으면 백성들이 따를 것이나 굽은 것을 들어 곧은 것 위에 놓으면 백성들이 따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공자의 말에 잘 나타나 있다. 저자는 백성들 편에 서서 지배 권력에 옳은 정치를 요구한 고대의 유일한 사상이라는 점에서 공자의 사상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쉽지 않았던 시대에 공자가 끊임없이 위로부터의 개혁을 강조하고 실천하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자가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한결같았던 것은, 영웅호걸들이 난무하는 춘추시대에 백성들의 삶을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전쟁에 노출된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백성들은 폭정에도 시달려야 했던 것 역시 보았을 것이다. 때문에 공자는 백성들이 가장 평화로운 삶을 살았던 요,순시대와 문,무왕시대 그리고 탕왕시대를 찬하였다고 한다. 

'천자라 하더라도 무도한 정치를 편다면 악하고, 대부라 하더라도 덕치를 편다면 선하다. 오직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정치는 선하고 백성을 괴롭히는 정치는 악하다.'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공자의 주문은 계속된다. 개인 안위의 차원에서 고민하지 말고 도덕의 차원에서 고민하라는 것이다. 즉 자신의 행동이 도덕적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고민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어떻게 보면 유교적 권위에서 벗어난 현재가 오히려 공자의 진심에 가까운 해석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그 시발점에 저자가 서 있음이 분명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에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한 강한 배신감을 느꼈던 부분이 있다. 그것은 군자삼락에 대한 내용이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에 따라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섭섭해하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닌가?" 

저자는 '논어의 가장 첫 장으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으며 소위 군자삼락君子三으로 불리는 이 장 학이편이 상식화 되어 있는 것에 많은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백과사전에도 올라 있는 이 문장을 새롭게 번역해야 한다는 것에 녹록치 않은 일'임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단호히 말한다. '군자삼락'이 아니라 '군자일락'이라고 강한 어조로 말한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에서 '학學'은 '배움'을 일컫지만 '습習'은 다른 의미로 쓰였다는 것이다. '습習'의 진짜 듯은 '예'를 익힌다'는 것이다. 예는 시간과 장소, 그리고 상대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란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고 때에 따라 익히니'가 아니라 '인을 배우고, 때에 알맞은 예를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가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인을 배우고 때에 맞게 예를 실천하는 기쁨'을 공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지 격이 떨어지는 '공부의 즐거움'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정의 즐거움'을 말한다는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亦乎' 는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까? 저자는 우정의 기쁨은 군자뿐 아니라 소인, 심지어 무뢰한에게도 우정의 기쁨은 있다면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보편적 정서라는 것이다. 군자에게만 해당하는 정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붕朋'은 친구가 아니라 같은 뜻을 가진 '동지同志'에 가까우며, 함께 인의 길을 가는 동지라는 것이다. 공자는 그 동지를 만나는 기쁨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겸손의 즐거움'을 일컫는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온'(넷상에 한자가 안 나오네요. 심방변(마음심)에 어질온이 결합된 한자입니다.)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을 배워서 때에 따라 예를 신천하는 것', '함께 인의 길을 가고자 하는 동지가 멀리서 찾아오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을 수 잇는 사람이라면 군자라 할 수 있다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기 때문에 '자신의 덕이 아직 부족한 것으로 생각할 뿐, 고독해하거나 섭섭해하지 말고 더욱 수양하라'고 제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란다.

즉 군자삼락이 아닌 군자일락은 아직 군자의 즐거움인 인의 즐거움에 도달하지 못한 제자들에게 공자가 전하는 말이지, 세상을 향해 군자의 즐거움을 세 가지를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군자삼락은 잘못된 해석이며, 세 가지 즐거움이 아니라 한 가지 즐거움, 즉 인의 길을 가는 즐거움을 말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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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엠엘이] dr.MLE 스키노베이터 안티에이징 세럼
(주)네오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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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미백과 주름 개선이 된다는 기능성 에센스 류들을 써 보았습니다.

그러나 미백도 주름 개선도 그 어떤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민감한 제 피부에 맞지 않은 탓도 있을 거라 봅니다.

하지만 이번에 사용하게 된 고운세상 안티에이징 액티베이터는

그동안 사용했던 기능성 화장품들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먼저 눈가의 깊은 주름과 잔주름이 많이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얼굴 피부가 차분하게 진정되고 안정되어 무엇보다 기쁩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눈가의 주름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게 된 것이

자고 일어나도 눈가가 촉촉한 것이 수분도 유지해 주고 있는 듯했습니다.

고운세상 액티베이터를 쓰기 전에 거친 피부와 뾰루지 짠 자국이 많아 고민했었는데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사라지고 피부는 부드러워습니다.

어제 집에 놀러온 언니들도 얼굴 피부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는 말까지 들었다는...

에센스가 거기서 거기겠지라는 생각으로 이 화장품을 처음 써 보았는데

이제는 앞으로 계속해서 써 볼 생각입니다.

복합성에 민감한 피부 그리고 눈가가 특히 건조해 주름이 생기는 여성분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저와 피부가 비슷한 친한 여동생한테 선물해 주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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