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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 사랑의 여섯 가지 이름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순백색의 설탕이 온전히 달콤함을 간직하기 위해서는 거친 손길과 기억하기 싫은 공정 과정, 그리고 원치 않는 단장을 거쳐야 한다. 오롯이 원하는 그 맛, 달콤함을 남기기까지 고통은 물론 자존심과 수치심까지 내던져야 하는 것이다.
사랑,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도 로맨틱하지도 않다는 것을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안다. 그러다가도 세상을 바라보던 두 눈을 지긋이 감고 아무도 감지할 수 없는 내면의 세계로 들어서게 되면 그 누구보다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고 갈망한다. 어릴 때 한번쯤 기다려 봤을 백마탄 왕자님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분좋은 감상도 감았던 두 눈을 다시 뜨게 되면 꿈은 단지 꿈일 뿐이라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하루에 수도 없이 이성과 감성 사이를 오간다. 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통속적이고 신파적인 것이 함께 따라붙는 사랑. 눈에 보이지도 잡을 수도 없지만, 사랑은 그 무엇보다 강렬한 효과를 주는 환각제로 현실적 이성의 눈을 멀게 만든다. 그러다 그 사랑에 자신의 삶이 인생이 담보가 되고, 되돌릴 수 없는 길로 접어들게 되었을 때 사랑의 맛은 달지만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마치 덜 고통스러웠고 덜 수치스러웠던 그리고 단맛도 덜한 흑설탕보다 많은 고통과 수모를 당한 백설탕처럼 말이다.
사랑의 새로운 길을 열어 준 아지즈 네신, 그는 사랑에 대한 환상을 허용하지 않는다. 순수한 사랑 따윈 동화에서나 등장한다는 듯, 사랑을 선택한 이들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지독하게 가슴 시린 사랑, 가슴 쓰린 사랑, 죽어서도 아물지 않는 사랑, 깊은 상처로 패인 사랑. 네신은 무서운 냉정과 냉혹한 이성을 잃지 않으면서 지극히 부드러우면서 직설적인 말로 이야기한다.
마치 아버지가 잘못된 사랑에 눈이 먼 딸아이한테 말하듯이, "사랑하는 내 딸아, 사랑은 그리 달콤한 것만은 아니란다. 사랑에는 많은 상처와 아픔이 따른다는 걸 너는 알아야 한다."라며, "잊지 말아라, 내 딸아. 사랑도 현실이라는 것을"이라며 중저음의 근엄한 목소리로 우리 사랑을 갈망하는 독자들에게 들려 준다. 꽃 같고 솜사탕 같은 사랑일지라도 현실은 현실이고, 속일 수도 없고 온전한 사랑의 대가로 내 줘야 할 것이 많음을 때때로 혹은 자주 인식시킨다.
그리고 네신은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고통과 양보 그리고 찾을 수 없는 분실물들이 많음 또한 상기시켜 준다. 낭만적인 사랑은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오직 파라다이스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그러니 현실을 알라고.
네신은 사랑이 흑설탕 같기를 바란다. 흰백의 설탕보다 단맛은 덜하더라도 모양이 보기 좋지 않더라도 빛이 탁하더라도 흑설탕 같은 사랑을 하길 바란다.
<독수리와 물고기의 사랑의 춤>은 숭고한 사랑, 사랑빛 그 자체다. 하늘과 물속이라는 삶의 터전이 서로 달랐지만, 독수리는 자신의 공간을 박차고 드넓은 바다 위의 하늘을 선택한다. 사랑하는 그녀를 보기 위해서. 익투스도 자신의 몸이 지칠 때까지 하늘 위로 뛰어오른다. 사랑하는 그를 만나기 위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이들은 그 사랑의 영원을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의 생을 마감한다.
<참나무와 인형의 사랑의 고통>과 <담쟁이덩굴의 사랑의 열망>은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랑의 감정을 애절하게 그린다. 참나무와 인형의 사랑은 믿음의 부족이 불러온 사랑의 불행을, 담쟁이덩굴의 사랑은 희생이 부족한 사랑의 안타까움을 보여 준다.
<대리석 조각 남녀의 사랑의 외침>과 <나비, 시인, 그리고 여자>는 비록 몸을 섞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긴 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안다. 대리석 조각 남녀는 사랑하는 이와 헤어져야 할 운명임을 깨닫는다. 나비의 사랑과 여자의 사랑은 또 다른 생명의 탄생에 목적을 둔다. 이성과의 사랑보다 또 다른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목말라 한다.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은 사랑하는 여인 튤슈를 찾기 위해 한 남자가 일생을 보낸다. 그토록 찾아헤맨 튤슈와 우연한 만남을 가졌지만 곧 그녀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녀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여섯 가지 시선의 사랑을 보여 주고 있는 이 책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은 책을 포장하고 있는 동화적 감각을 훨씬 뛰어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로망스를 생각하고 이 책을 펼쳤다가 마음 무거움을 느끼기도 했고, 소름끼치도록 현실의 사랑을 절감하기도 했다. 어쩌면 현실은 이보다 더 냉혹할 수도 있겠다고. 그러면서 네신이 풀어가는 사랑 방식에 때때로 놀라움도 함께 했다. 책을 읽어 가면 갈수록 사랑에 대한 환상보다 냉혹한 생각을 갖게 해 주었으니.
왜 이렇게 아지즈는 사랑에 대해 매몰찼을까? 사랑은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젊은이들에게 들려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진정한 사랑을 알려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사랑은 혼자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닌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임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그의 문장은 설명조였고, 설득조였으며, 충분한 이해를 가미한 충고조였다. 결코 기분 나쁘지 않은.
사랑, 사랑을 많이 해 보길 권한다. 그래야 사랑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가 확립될 수 있으니. 어쩌면 이는 네신도 권하는 바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