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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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를 때 적극적이고 능동적일 때가 대부분이지만 가끔 내 판단 기준으로 저 사람 책을 제대로 아는군 하는 이로부터 권해 받은 책을 수동적으로 넘겨 받을 때가 있다. 이번에 읽은 책 <남쪽으로 튀어!>는 주로 인문 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읽는 후배로부터 그리고 선배로부터 동시에 권유를 받았다. 

"이거 읽어 봐, 죽여 줘~"

얼마나 죽여 주길래 머뭇거림도 없이 거의 강권으로 책을 안기나. 나는 그저 즐거운 불쾌감으로 거만하게 읽어 주기로 했다. 만화책 읽을 때처럼 책장이 넘어갔다고나 할까. 한마디로 이 책 정말 죽여 주는 책이었다. 

읽는 내내 일본의 사회주의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상당히 엘리트적 냄새가 풍기고 있음을 느꼈다. 우리가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꿈꿨다면 정확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으나 일본은 위로부터의 혁명을 꿈꿔온 온 듯한 느낌이었다.

두 권에 적지 않은 분량에 자칫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이 책은 출퇴근과 주말 하루 총 나흘 동안 산뜻하게 다 읽어 주었다. 정말이지 가독성이 죽여 주게 뛰어난 책이었다. 그리고 이 가독성이 마지막 휘슬이 울리는 그 순간까지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에 대단한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바로 이 책의 참맛이 아닌가 싶다.

시종일관 가독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까? 

첫 번째 손가락을 꼽으면, 치고 빠지는 기술이다. 지로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건(나쁜 가쓰 녀석 따위가 대수겠냐!), 우에하라 이치로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건(내게도 이런 아비가 있었더라면), 우에하라 사쿠라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련의 애증적 일들(많이 부러웠던 대목, 특히 돈 많은 외가가 어느날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났다!)이 교묘하게 치고 빠지기를 엉킴 없이 그리고 쉼없이 사이좋게 발생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가독성 유지의 이유 두 번째 손가락을 꼽아 보자. 이 요주의 인물들이 마냥 문제만 일으키고 있지 않다는 것. 조용히 다음 단계를 아무런 고민 없이 뛰어넘는 나만의 해결사 역할들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즐겁고 고마운 것은 다음에 일어날 사건이 기다려지고 시종 어떻게 될까에 조급증을 발병시켜, 책장을 넘기는 손이 눈의 속도를 참지 못하고 다음 장을 어서 빨리 넘기려 매만짐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복적 행동에 작가는 한 페이지 끝 단락에 다음을  기다리는 독자에 대한 작가의 예의를 슬쩍 끼어 넣었다고나 할까. 그런 배려성 문장이 곳곳에 숨어 있음을 보았다. 이 역시 가독성이란 차에 더욱 잘 달릴 수 있도록 휘발유를 뿌려 준 셈이다.

세 번째 손가락을 꼽는다. 오쿠다는 분명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독자를 오타쿠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 인물이다. 서서히 오타쿠로 만들어 가니 어찌 그의 책에 빠지지 않을 수가 있을소냐. 헤어나오기 더욱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가독성의 윤활유격인 휘발유에 엄청난 화력의 불까지 덤으로 언저 주었다고나 할까.

이 책을 읽어 가면서 우에하라 이치로라는 인물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세컨드로 난 유독 무카이가 마음에 들었다. 어린 녀석이 하는 말이라고 하기엔 너무 세월의 냄새가 났다. 세월이 묻어나는 어휘과 세월이 감겨 있는 문장력, 세월과 함께 달린 사고가 음 뭐랄까 달관자가 쉬 내뱉는 말들이라고나 할까. 또 유머는 어떻고. 지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카이 이 녀석 정말 열한 살, 맞아?" 이다. 

당연히 날마다 가야 하는 학교를 "왜 날이면 날마다 사서 고생이냐?" "하루씩 걸러서 다녀도 괜찮아"라는 지로의 아버지이자 지난 시대의 영웅, 우에하라 이치로. 이 대목도 마음에 들었다. 사회 제도를 거부하고 교육을 거부하고, 아니 모든 것을 거부한다기 보다 개인의 선택권과 자유보장권이 우선시해야 한다는 지로 아버님의 말씀에 공감 삼천만 배다!

그렇다면 나도 아나키스트? 아~ 그건 아니지만 때로는 나도 나라를 거부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고, 벗어나고 싶고, 왜 이렇게 의무가 많냐를 외치면서 너희들한테 떨어진 책임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날려 버렸냐!를 외치고 싶은 그런 마음이랄까. 아무튼 몸통은 못 되어도 깃털 정도는 되어 불끈불끈 해 보고 싶은 욕구가 종종 때때로 어쩌다가 가끔 발동이 되길 바랄 뿐이다.

언제나 방바닥을 가까이 하고 사는 우에하라 이치로, 그런 그를 자식들은 달갑게 보지 않는다. 큰딸 요코, 아들 지로, 막내딸 모모코. 이들은 뒹굴기를 직업이자 취미로 여기는 하늘이 점지해 준 아버지라는 관계에 강한 부정을 던지고 싶어한다. "엄마, 왜 아버지랑 결혼했어!"라는 말로.

하지만 이 세 아이들은 자신들의 아버지가 과격파 운동권 출신임을 알기 전까지 그저 무능하고 마누라를 생활전선에 떠밀어 놓고 가끔 삥땅 뜯는 앵벌이 정도의 실업자 애비 정도로만 여긴다. 하지만 키 186에 건장한 체구와 지붕이 들썩들썩할 정도의 목소리를 가진 이치로에게도 취미이자 낙이 있었다. 바로 국가 공무원들, 즉 그가 그토록 부르짓는 소위 "국가의 개들"이 집으로 찾아오는 날 가차없이 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일이다. 

그러나 국가 공무원들은 우에하라 이치로에게 진정한 적수가 되지 못한다. 자로 잰 듯한 논리적 말들, 화수분 같은 풍부한 지식들, 신이 내린 풍채, 그리고 우러~엉 찬 목소리를 그 누가 이길소냐~~~ 그렇기 때문에 싱겁게도 언제나 늘 이치로의 KO승이다.

그런 이치로가 도쿄에 남겠다는 큰딸 요코만 남겨 두고 가족 모두를 데리고 이리오모테라는 남쪽에 있는 섬으로 간다. 그곳에서 지로는 전혀 다른 자신의 아버지를 보게 된다. 아버지가 일을 하는 것이다. 언제나 누워 있던 아버지에 익숙한 지로는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왠지 낯설지만 듬직하고 멋져 보인다. 그리고 남쪽으로 내려 오기 얼마 전에 아버지의 이력을 친구 무카이의 도움으로 알게 된 지로는 이곳 섬에서 확인을 하게 된다.

이 책은 단순하게 경쾌한 웃음만을 선사하는 책이 아니다. 분명한 초등학교 6학년의 성장소설이지만, 그 속에 현재 사회에 지배층과 중간 관리층이 되어 있는 운동권 출신들의 딜레마를 잘 대변해 주고 있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게다가 시민단체들의 권력지향적 운동에도 일침을 가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이치로가 말한 것처럼 조직이 커지면 그 안에서는 순수성보다 권력 다툼으로 얼룩이 진다는 그 말이 현재 우리 사회에 널려 있는 시민단체가 한번쯤 되새겨 봤으면 하는 바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고 보면 <남쪽으로 튀어!>는 여러모로 유익하지 않을 수 없다. 한번쯤 읽어 보길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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