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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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강의
이중텐 지음, 강주형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몇 년 전에 이문열 편역의 <삼국지>를 읽고 사족이 너무 많아 삼국지 속 인물들을 이해하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나관중의 삼국지가 아닌 이문열의 소설 삼국지를 읽는 듯했으니. 그러다 황석영의 <삼국지>는 월북작가 박태원의 <삼국지>와 모본(모륜, 모종강 부자가 나본을 바탕으로 쓴 것을 말함)이 아닌 나본(나관중의 삼국지통속연의를 말함)을 참고했다고 해서 이 책으로 다시 읽어 보기로 했다.
황석영의 <삼국지>를 구매하고 난 뒤 우연히 삼국지보다 한 시대 앞선 <초한지 강의>가 눈에 들어왔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각 시대의 영웅호걸들을 어떻게 표현했을까도 읽기를 재촉했다. 무엇보다 중국 내에서도 초한지에 대한 역사적 사료가 부족하고 국내에서는 소개된 책 역시 전무한 상태라 이 책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특히나 항우와 유방 그리고 한신과 소하 나아가 장량, 조참과 진평 등 한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이들을 자세히 알 수 있다는 생각에 책읽기를 앞당겼다.
그러나 <초한지 강의>를 읽어나가는 순간부터 이 책의 분야에 대해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인문 역사서로 알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교보문고에서 인문분야에 진열이 되어 있는 것을 보았음)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경제경영서와 처세 쪽 분야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번역자의 약력에 눈이 갔다. 이 책을 번역한 번역자는 중국어를 전공했고, 중어중문대학원에 재학중이었지만, 역시나 경제경영서를 주로 번역한 번역자였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방해가 되었던 번역자의 역사적 지식의 부족에서 오는 적절치 못한 단어 선택들과 거친 번역문, 그리고 협소한 어휘력과 격이 떨어지는 문장의 표현들이 '초한지'를 번역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읽는 내내 따라다녔다. 특히나 대화체의 번역은 아동물과 청소년물을 연상케 할 정도여서 혹시 청소년용은 아닌지 하는 의문을 품게도 했다.
"유방! 전란이 그치지 않는 건 다 우리 둘 때문이 아닌가? 이 전쟁은 우리끼리의 문제가 아니냔 말이다! 네가 정년 대장부라면 이리 나와라! 한번 맞붙어 보자고! 더 이상 애먼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말고 우리 둘이서 대결해 보자!"(108쪽)
"됐소, 됐어! 일어나시오. 죄 없는 승상을 하옥했으니 짐은 정말 나쁜 황제요. 짐이 승상을 투옥한 것도 다 '죄 없는 승상을 투옥한 나쁜 황제'임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서였소. 됐소, 됐어. 이 일은 여기서 마무리지읍시다."(127쪽)
같은 책이라 해도 그 책이 놓여 있는 분야에 맞춰 요구하는 어휘력이 다르다고 본다. 경제경영서와 역사서가 다르듯 문체 또한 달라야 하지 않을까. 이런 면에서 이 책을 어느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가로 혼란은 지속되었다.
<초한지 강의>의 띠지문안처럼 " '초한지' 논쟁에 마침표를 찍은 걸작을 만나다!" "영웅들의 수수께끼 같은 역사적 사건이 이 한 권의 책으로 통쾌하게 풀린다!"라는 문안을 진정 살리고 싶었다면 번역자를 중국역사 학자가 번역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큰 책이라 하겠다.
물론 진나라에서 한나라로 넘어가는 과정에 역사의 중심에 섰던 인물들의 면면을 엿볼 수 있어 좋은 면도 있었지만, 이 책의 저자 이중톈의 객관적 평가보다는 주관적 평가로 일관하고 있는 듯하여 과연 이 책에 서술되어 있는 인물들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을 지에 대한 혼란만 가중되었다.
예를 든다면 이중톈은 주요 인물들을 평할 때 시대적 상황과 배경이 중심이 되어 설명되어야 함에도 유교와 도교의 개인적 선호도에 치중해서(저자는 유교보다 도교를 높이 평가하는 것을 자주 언급함(182쪽~183쪽 참조 이외 다수)) 인물들을 평가하고 있어 설득력을 잃고 있다. 게다가 인물과 인물을 비교하는 대목에서 처세에 능한 사람은 옹호를 하고 그 반대인 사람은 비하하는 양상을 띠고 있어 인물들의 재조명이라는 말이 안타까웠다.(186쪽 참조 이외 다수)
저자의 이러한 경향은 이중톈의 약력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학자가 아닌 문학자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동녘출판사에서 출간된 비 역사학자인 조여항의 <광해군과 정인홍>도 이 책 <초한지 강의>에서 보여 주는 억측과 엉성한 구성을 담고 있듯이 인물을 평가함에 있어 역사에 근거한 사실에 입각한 논리적 기술보다는 스토리텔링 형식의 야사식 추측성 서술이 난무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깊이보다는 재미와 흥미 위주의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말이 엉킹다고 할까. 한 단락에서 벌어지는 동어반복되는 구절도 장해물을 제공해 주는 요인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면, 107쪽의 "~ 유방은 수레가 너무 느리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들을 수레 밖으로 밀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하후영은 말을 멈추고 수레에서 내려 아이들을 안고 수레에 탔습니다. 얼마쯤 가자 유방은 수레가 너무느리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밀어 버렸습니다.~" 116쪽에서는 "유방의 첫 번째 인재 활용법은 '사람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쓰는 것'입니다. 이것은 리더십을 거론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로, 평소에 흔히들 쓰지만 제대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쓰는 것'은 우선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선결된 후에 적재적소에 쓸 수 있습니다."가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이 책 <초한지 강의>는 초한지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도움을 주겠지만 야사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다른 책을 참고하여 객관성을 살려 이해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을 계기로 초한지에 대해 다른 책을 더 읽어 보고자 정비석의 <초한지>를 구매했고, 그 앞선 시대인 풍몽룡의 <열국지>도 함께 구매했다.
관련 도서 묶어 읽기를 주로 하는 나로서는 한 나라의 역사의 줄기를 세워 볼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준 책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