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색의 시간 - 빈센트 반 고흐 편
김충원 지음 / 진선아트북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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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잘 만든 책 한 권이 있다. 여기 지속적으로 진화해 가는 책 한 권이 있다. 미술의 기초를 다지는 실용서적으로 완전한 한 장르를 만들어낸 책이 여기 있다.

<채색의 시간-빈센트 반 고흐 편>은 색연필의 활용도를 한껏 높여주는 기법을 설명하고 있다. 얼마 전에 구입한 36색 독일제 색연필을 본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던 책이다. 색연필통 뚜껑을 열고 마음에 드는 색을 골라 집어들고는 이 책이 설명하고 있는 한 컷 한 컷들을 따라서 그려가고자 첫 마음은 그렇게 먹었다.

모든 것이 생각만큼 되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밑그림부터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책 중간부터 밑그림이 인쇄되어 있지만 나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아까운 마음이 더 컸다.) 스케치북에 새롭고 그리고자 했다. 이렇게 시도했던 것이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어차피 이 책이 설명하고 있는 것도 본격적인 채색의 설명이기에 나는 밑그림부터 해결해야 했다. 다행히 몇 권의 고흐 작품집을 가지고 있어서 트레싱지로 본뜨기로 했다. 다시 미술재료까지 완비하고 있는 대형 문구점을 찾았다. 그곳에서 트레싱지와 먹지를 샀다.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정말 멋지게 그려보고 싶었다. 사가지고 온 트레싱지를 고흐 작품 위에 올려놓고 열심히 본을 떴다. 이왕이면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동일 작품으로 떴다. 그리고 시간이 좀 걸렸지만 본을 뜬 트레싱지 밑에 먹지를 대고 다시 스케치북에 옮기는 과정을 한 번 더 거쳤다.

멋진 고흐 작품이 내 스케치북으로 옮겨왔다. 이 책대로 시작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던 것이다. 좀 진이 빠지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고흐의 작품과 흡사한 작품을 그려갈 거라는 기대가 흥분으로 다가왔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흥분은 때로 인내와 인고의 시간을 요하기 때문에 곧 진지함으로 돌려놓았다. 이렇게 해서 고흐의 작품이 천천히 그것도 아주 천천히 내 스케치북 안으로 들어왔다.

김충원 선생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렇게 채색을 하기 전에 필요한 기초를 다지 위한 실습용 책을 앞서 여러 권 접했다. 그렇다보니 이 책이 진화하고 있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목격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책 <채색의 시간>은 미술을 배우고 싶어하는 특히 색연필화를 배우고 싶은 독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나갈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을까를 오랜 시간 고민한 흔적을 이 책 본문 레이아웃에서 느낄 수가 있었다.

고흐의 작품 하나하나를 따라가며 그릴 수 있도록 부분별 설명이 정말 신경써서 잘 되어 있다. 김충원 선생의 미술 기초책 시리즈를 접할 때마다 늘 드는 생각이지만 나는 김충원 선생과 이 출판사가 참 고맙다. 모든 미술분야가 다 그렇듯 연필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데 이 책은 그것을 위해 충실하게 첫 걸음을 떼게 만들어주었고, 그 연필화 위에 옷을 입히는 단계에 이를 수 있도록 그 길을 하나하나 만들어주었다.

아이가 태어나 엄마아빠라는 말을 하기까지, 그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기까지, 아이가 배넷저고리를 벗고 자기의 생각을 담아 옷을 입기까지의 과정처럼 이 책이 그렇게 이끌어주고 있다.

내게로 온 독일제 색연필과 이 책이 가르쳐주고자 애쓰는 그 마음에 조금이라도 따라가고자 직접 산 트레싱지와 먹지. 이 책은 나를 이렇게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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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도서관 - 세계 오지에 3천 개의 도서관, 백만 권의 희망을 전한 한 사나이 이야기
존 우드 지음, 이명혜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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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함과 보장된 미래, 모든이가 부러워하는 자리를 정반대의 환경 아니 정반대도 못 되는 환경과 맞바꿔야 한다면? 더욱이 맞바꾼 자리가 문명과 거리가 멀다면 어떻겠는가? 많은 사람들은 바꿀 수 없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과감히 화려한 문명과 함께 풍족한 자리를 박차고 바꾼 사람이 있다. 오랜 고민도 하지 않은 사람, 바로 마이크로소프트 사 중국지사 임원이었던 존 우드다.

그는 보장된 현재와 미래를 뒤로 하고 책과 함께 네팔로 떠난다. 그가 네팔로 떠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큰 고민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화려함을 버리고 낙후함을 찾아 떠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우연한 만남에서 찾아왔다. 세계적인 기업 임원이라면 누구나 빡빡한 일상에 놓인다. 그러한 일상에서 모처럼 맞이한 휴가. 네팔에서 트레킹을 하며 보내게 된 휴가. 그는 그곳에서 여러 학교를 관리하는 파수파티를 만난다. 그와 함께 이틀이나 걸어서 간 학교는 여러가지 충격을 안겨 주었다.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과 선생님, 무엇보다 도서관에 책이 없음에 적이 놀란다. 책이 없어 공부를 못한다는 상황이 당연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몇 권 있는 책들은 여행자들이 버리고 간 아이들에게는 맞지도 않는 책들. 그마저도 자물쇠로 잠궈 놓은 캐비닛 안에 놓여 있는 것을 본 존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난감하다. 돌아오는 길에 책을 가지고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 길을 떠나지만 네팔 학교 선생님들은 과연 다시 돌아올지 의문을 갖는다. 그렇게 약속하고 다시 찾아온 외지사람들이 없었기에.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여겼을 법도 하지만 존은 그렇지 못했다. 갈수록 무거워지는 마음을 가눌길 없고, 눈앞에 놓여 있는 프로젝트,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최고 권력자인 회장 빌게이츠가 중국지사를 찾는다고 하는 상황에도 네팔 학교는 존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세계 문맹인구가 8만이 넘는다는 놀라운 자료를 접한 존은, 10명 중 7명이 문맹이라는 사실에 문맹의 심각성에 문제를 느낀다. 그리고 다시금 네팔 학교 아이들을 떠올린다. 아이들에게 넓은 세상을 알려줄 수만 있다면,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 많은 길들이 있음을 알려줄 수만 있다면, 등등의 생각들이 존을 문맹의 세계로 점점 끌어들인다.

세상의 많은 이야기를 접할 길 없는 아이들을 위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알길 없는 아이들을 위해, 세상의 비밀을 발견할 길 없는 아이들을 위해 존은 결심한다. 바로 주위 지인들에게 책보내기 운동에 앞장 서 줄 것을 권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그 길에 인생을 걸기로 마음먹는다.

존 자신도 놀라웠다고 표현한 것처럼, 네팔에서 돌아온 뒤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낸 것이 1년이 넘었음에도 처음 보냈던 메일이 지인들이 그들이 아는 다른 지인들에게, 다른 지인들은 자신들이 아는 또 다른 지인들에게 계속해서 보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메일이 이루어낸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은 책들과 많은 후원금이 존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존은 열의와 열정을 보여준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할 시간을 갖을 수 없을 정도로 임원직을 그만두고 새 인생에 첫 발을 내딛기에 이른다.

존은 그렇게 네팔 학교를 다시 찾는다. 물론 약속했던 많은 책과 함께. 존은 이것을 계기로 세계 문맹에, 아이들의 미래를 열어줄 일이 일시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펼칠 수 있는 시스템을 정비하기에 이른다. 영원한 동반자를 찾듯 든든한 파트너를 하나둘 만나기 시작하고, 그가 생각한 프로젝트들이 하나둘 가시화되어 때로는 학교가 때로는 책이 가득한 도서관이 되어 현실에 놓이기 시작한다.

모든 것은 시작이 힘들다. 하지만 비운 마음을 그 시작과 함께 채워나가기란 어렵지 않다. 그것을 존 우드가 보여주었다. 존은 자신이 시작한 일이 오지의 아이들을 위해서 중도에 멈춰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룸투리드(Room to Read)'가 생긴 배경인 것이다.

지금은 세계 굴지의 기업과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룸투리드'를 후원하고 있다. 그들의 도움은 존이 세계적인 기업에서 일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도와주어야만 하는 이유를 존이 행동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10년도 채 안 되서 보여준 존의 결과들은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존의 경험이다. 세계적인 기업에서 보여주었던 경험과 노하우가 그의 새로운 일에도 여과없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허술하지 않는 시스템 정비, 그리고 인적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 등등 많은 부분을 세계 오지의 어린이들을 위해 사용되어진 것이다.

가진 것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더군다나 명예와 돈과 권력을 포기하기란 더욱 어렵다. 세상이 살맛나고 아름다운 것은 존 우드와 같은 사람들이 아직 존재하기 때문이다. 살아야 할 이유와 가치를 이런 것에서 찾는다면 사회는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에 존 우드와 같은 사람이 나왔으면 한다. 이와 비슷한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론과 매체에 단골로 등장하는 사람이 이런 일을 한다면 사회에 끼치는 파급효과가 실로 어마어마 하기 때문에 이들이 나서 주기를 고대하는 것이다.

존이 말한 것처럼 세상의 어머니들이 배워야 아이들이 참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그 아이들은 다시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참된 교육의 의미와 의의를 전달해 줄 것이다. 그 교육이 왜 필요한지 단순히 문맹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과 도구가 아닌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야 할 사회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함께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사건 사고가 아닌 존 우드와 같은 소식이 우리의 말초신경을 자극해 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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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김앤장 - 신자유주의를 성공 사업으로 만든 변호사 집단의 이야기 우리시대의 논리 10
임종인.장화식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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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앤장의 불문종결(不問終結)을 막아라!

이 책은 소설책에 버금가는 책이다. 가독성 말이다. 또한 추리소설을 방불케 한다. 대형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인문서가 이럴 수 있을까, 르포와 고발서가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책은 여지없이 독자를 빨아들인다.

김앤장의 치부를 낱낱이(?, 빙산의 일각?) 드러내는 이 책을 접하다보니 2005년 박영선 의원, 심상정 의원, 김현미 의원이 삼성의 금산법 위반에 대해 직격탄을 날리며 조사하던 것이 생각이 났다. 결국 삼성의 협박과 회유책으로 또 다른 국회의원들의 방해로 박영선 의원마저 굴복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던 일이라 통탄 그 자체였다.

삼성과 김앤장. 이 두 기업(이 책에도 김앤장을 기업이라 했다) 가운데 어느 기업 더 깊숙하고 흉물스런 치부를 갖고 있을까? 이 두 기업 중 어느 기업이 국가의 근간(根幹)까지 뒤흔들 위력을 갖고 있을까? 심지어 이 나라의 정체성과 주체성, 그리고 역사성과 국민의 기본권조차 흔들어 놓을 기업이 누구일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이나 김앤장이나 다 거기서 거기다. 불법천국, 비자금, 조작 등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한 나라의 미래를 보았을 때, 또 한 나라 국민의 살 권리와 주권을 생각했을 때, 이 나라를 이끌어갈 주체를 생각했을 때 김앤장이 저지르고 있는 만행은 실로 심각 그 이상의 수준이라 할 것이다.

바로 김앤장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거나 국가 경제적으로 엄청난 악영향을 미친 대형 경제사범이나 기업 인수합병, 해외매각 사건, 구조조정 사건 처리를 도맡아 하고 있다.’(89쪽)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공공기관의 민영화 작업, 국세청과 기업 간의 소송, 공정위와 기업 간의 소송 사건 중심에 김앤장이 기업 편에 서서 변호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들은 기업 편에 서서 불법을 부추기고, 부도덕을 강요하고, 매국행위를 자본주의 혹은 자유국가라는 이름으로 스스럼없이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어떤 대가를 위해서 이렇게 혈안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일까? 쉽다. 바로 돈이다. 그냥 돈이 아닌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뭉칫돈이 그들 주머니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바로 이들 김앤장에게는 사람 위에 사람이 아닌 돈만이 있음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어디 이뿐이랴, 현행 <공직자윤리법> 제17조 ‘퇴직일로부터 2년간 재직중 업무와 관련이 있는 영리사기업체에 취업하지 못한다.’는 규정이 무색할 정도로 이들 고위공직자들은 공직을 퇴직한 그 순간 김앤장 고문으로 직행되고 있다. 실로 심각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갖고 있는 정부기관의 정보가 김앤장의 의뢰인인 기업의 변호를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 책의 저자들은 ‘로펌의 근무자가 다시 공직에 취업하고, 퇴직 후 다시 로펌에 복귀하는 ‘회전문 인사’도 인맥을 구축하고 사적 이익을 관철시키는 핵심 고리 중 하나다.’(63쪽)라고 지적해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려 하고 있다.

대표 사례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정위와 마이크로소프트 사와의 공방이다. 이 논란의 중심에 있던 공정거래위원회 서동원 상임위원(1급 상당)은 2006년 5월 31일 퇴직 후 2006년 9월 25일자로 김앤자 법률사무소의 상임고문으로 취업했다. 서 위원을 공정위 재임 중 마이크로소프트 사건의 주심을 맡아 2006년 2월 24일에 324억 9,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장본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 과징금을 부과한 의결일이 2006년 2월 24일이고, 퇴직한 날이 같은 해 5월 31일, 김앤장에 취업한 날이 9월 25일인 것이다. 이때는 공정위의 결정에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불복하여 소송을 제기한 시점이었고, 김앤장은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대리인이었던 것이다. 공정위 상임위원으로서 주심을 맡아 과징금을 부과하고는, 곧바로 퇴직해서 과징금 부과 불복 소송을 진행하던 김앤장에 들어간 것이다.’(107쪽)

뭉칫돈 벌이라면 가리지 않는 김앤장의 또 다른 사례이다. ‘민영화의 취지는 공기업의 독점을 방지하고 민간에 맡겨서 경쟁을 촉진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공기업 민영화는 독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민간 독점으로 귀결된다. 공기업이 민간 자본의 이익을 위한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김앤장이 정부의 민영화 프로젝트에 관여할 때 누구의 이익을 위해 논리를 만들겠는가. 당연히 재벌과 국제 투기자본이다. 이들의 이익을 위해 김앤장은 정부에 법률자문을 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돈을 버는 것이다.’(124쪽)

‘김앤장을 투기자본의 첨병이라고 하고, 국가 권력가 거대 사익을 매개하면서 가난한 노동자와 서민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대가로 천문학적 부를 축적한 부도덕한 법률가 집단이라 말한다.’(17쪽)라고 하는 말이 달리 나온 것이 아님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런 이들에게 우리의 국세청은 ‘납세자의 날’에 성실 납세자로 표창까지 했다고 한다. 왜 이들에게 성실 납세자 표창을 했을까? 회전문 인사가 만들어낸 걸작의 완결편인 이 대목을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납세자의 날’에 표창을 받은 법인 혹은 개인들에게는 수상일로부터 2년간 세무조사를 유예해 준다. 김앤장은 제도가 시행된 지난 8년간, 네 번의 성실납세자 표창을 받았다. 2년마다 세무조사가 유예되고 있으니 사실상 조사 면제라고 할 수 있다.’(117쪽) 어떤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타짜의 최고봉을 보여 주는 국세청과 김앤장의 끈끈한 관계를 이렇게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관계임에도 무엇이 구린지 김앤장 법률사무소에는 그 흔한 간판하나 없다는 것이 의문스러울 뿐이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앞에는 그 흔한 간판 하나 안내판조차 없다. 내부자가 아니면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구조다. 김앤장은 대단한 영향력과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실체가 잡히지 않는 존재로 지금 우리 앞에 서 있다.’(19쪽) 구멍가게조차 내거는 간판이 없다는 것을 보면 그들이 벌이는 모든 일들이 흉물스럽고 음탕한 거래이고 거대한 범죄적 수임들이 그 속에 쌓여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범죄자들이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애쓰는 심리처럼 말이다.

이들에게 주어진 면죄부의 사용기한은 과연 없는 것인가? 막강한 권력구조를 와해시키고 무능화시킬 방도는 없는 것인가? 법이 바로 설 수 있는 기회는 진정 오지 않는단 말인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말을 저자들이 이 책 끝에 거론한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돈으로 역사를 삼으려 하는 김앤장 설 자리를 더 이상 만들어 주면 안 될 것이다. 돈으로 역사를 삼으려 하는 자들에게 준엄한 단죄가 있어야 법이 바로 서고, 나라가 바로 서고, 국민이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김앤장은 임종인 의원, 장화식 위원장이 말한 ‘김앤장이 추구하는 ‘고객의 이익’은 과연 누구의 이익을 말하는 것일까? 능력과 수단을 겸비한 법률 기업이 강자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면 공동체의 질서는 대체 어떻게 될까? 과연 법률은 무엇이고, 변호사와 법률사무소는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68쪽)를 씹고 또 되씹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이 시대,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다가올 시대에 범죄자로 낙인찍히지 않을 것이다. 법적 정의가 살아있고, 사회 질서와 도덕이 살아있고, 한 나라의 든든한 뿌리가 살아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길이 왜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길 바란다.

인(忍)은 반드시 한계가 있다. 국민이 갖고 있는 인의 한계, 관리감독하는 시민단체의 인의 한계, 그리고 끊임없이 끄집어내려 하는 아웃사이더(중앙일간지 조중동이 찌라시라고 부르는) 매체들의 인의 한계가 힘 받을 날이 분명 있다. 그리고 온다. 그 인의 한계가 폭발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시대의 마지막 성역을 건드려 준 임종인 의원, 장화식 위원장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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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마니타스 2008-03-11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법률사무소 김앤장』 저자 간담회가 3월 15일(토요일) 오후 2시 서교동에서 있습니다. 관심 있으시면 블로그에 들려서 신청해주세요. 광고성 댓글을 남겨서 죄송합니다.

http://blog.naver.com/humanitas1/30028666122

야~책이다 2008-03-15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3월 15일이 길일인가 봅니다. 이날 행사가 참 많네요. 아쉽게도 전 선약한 행사에 참석해야 할 듯합니다. 정말 가고 싶은데 아쉽습니다.
 
나를 벗겨줘 - 빨간 미니스커트와 뱀피 부츠 그리고 노팬티 속에 숨은 당신의 욕망
까뜨린느 쥬베르 외 지음, 이승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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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젊은이들이 활보하는 거리를 가면 자신만의 개성을 매우 잘 살린 옷차림들을 보게 된다. 때로는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독특하고 특이하게 차려입은 학생들을 뚜러져라 바라본다. 경이로운 눈빛을 곁들여서 말이다. 회사원들의 삶터인 빌딩들이 널려 있는 곳은 어떨까. 광화문이나 삼성동, 또는 역삼동을 보면 젠틀맨과 커리어우먼들을 많이 본다. 포인트를 잘 살린 패션리더들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일과 옷차림, 취향과 옷차림, 성격과 옷차림 등의 구분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만큼 옷차림은 그 사람을 나타내는 상징이자, 대변가인 것이다.

하지만 옷차림 그 자체에 때로는 감탄도 하고 때로는 시기도 하고 때로는 부러워만 하면 되는 것일까? 변하지 않는 옷차림에도 단순히 취향이니까라고 단정해 버리면 되는 걸까? 이 책에 등장하는 사례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모든 사람들을 그런 의심의 눈초리로 볼 필요는 없겠지만, 삶이 고통스럽고 사람과의 관계가 어렵고 힘들 정도로 옷이 주는 억압과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몇몇 사람에게 숨어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

이 책에는 부모의 만족, 부모의 욕구, 부모의 욕망, 혹은 연인이었던 자의 취향, 등등의 이유로 그 틀에 맞춰 그들의 요구에 맞춰 옷을 입고 자란 많은 사람들에게는 옷이 삶의 고통이고, 감옥이고, 자신의 삶이 아닌 그들의 삶의 연장선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읽어가는 내내 떠오른 친구가 있었다. 유독 그 친구가 생각난 것은 그 친구의 옷입는 습관과 그 친구가 아이들에게 옷입히는 관경, 그리고 1박2일의 여행가방을 2박3일 동안 싸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나 늘 같은 색깔의 속옷과 런닝을 세트로 아이들에게 입혔던 친구, 아이들에게 같은 옷을 이틀을 입히지 않는 친구. 고작 1박2일의 여행일 뿐인데도 마치 보름을 머물다 올 것처럼 옷을 챙겼던 친구, 그리고 자신도 역시 집 앞 수퍼를 갈 때조차 옷을 갈아입고 나갈 정도의 친구. 작년 여름, 이 친구 집에 머무는 동안 마트로 장을 보러갔을 때 추리닝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나서려는 나를 보고 기겁을 하더니 옷을 안 갈아 입을 거면 신발이라도 다른 걸로 신으라고 으름장을 놓던 친구. 이 친구가 말이다. 

이 친구가 떠올랐던 사례가 있다. 바로 <빨간 미니스커트 아가씨-엄마의 환상에서 탈출하기>이다. 초등학교 친구라 어렸을 때부터 성장과정을 서로가 잘 안다. 그렇기에 이 사례가 더욱 와 닿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우리를 마치 주목받는 장식품처럼 진열했고,...."(26쪽), 딱 들어맞는 사례는 아니지만, 친구의 엄마는 딸의 생각보다는 엄마의 생각대로 옷을 입혀 학교를 보냈다. 고등학교까지 그렇게 잘 차려입은, 그리고 딱 떨어지는 옷만 입은 친구는 그렇게 옷을 입어야 하는 줄 알았다. 그그런 친구의 옷차림은 오히려 같은 반 아이들이 따라 입을 정도였다. 이 경우가 이 사례와 다른 것이다.

하지만 친구가 성인이 되고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 때, 친정 엄마에 대해 분노했다. 자신이 길러진 게 아니라 조련되어졌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미 익숙해져 버린 엄마의 독특한 환상에 충실할 것인가, 그룹 내에서 생존할 것인가 하는 고민 사이에서 아이는 심한 내적 갈등을 겪게 된다."(27쪽), 이 부분처럼 친구는 자신이 엄마한테 조련되어졌던 것처럼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 이런 사이에서 친구의 내적 갈등은 커져만 갔다. 자신이 벗어나고 싶어했던 것을 똑같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적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다른 이들의 눈에서 부모의 이미지를 보호하는 방법을 찾으려 애쓸 것이고, 이후부터는 학교와 가족이란 두 세계를 분리하려 들 것이다."(31쪽) 친구는 학창시절까지는 자신의 부모를 보호하려고 했다. 하지만 학부모가 된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삶에 충실해지기로 단단히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각오가 작용을 했는지 친구의 옷차림은 한결 가벼워졌다. 옷을 대하는 친구의 태도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대충대충이라는 단어가 어느 정도 통할 정도로 말이다.

이제는 속옷을 세트로 입으려고 고집을 부리는 아이들이 답답하단다. 물론 자신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말이다. 친구는 그렇게 변해갔다. 지금도 변화중에 있다. 좀더 자신은 자유롭게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옷은 멋진 삶과 즐거운 삶만을 주지 않는다. 이 책이 강조하는 내용이다. 엄마 혹은 아빠 혹은 애인의 끊임없는 요구의 결정체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 순간 과감하게 자신을 바꿔라. 그래야 프로이트가 말했다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의 병, 정신병을 주었던 옷. 늘 그렇지만 부정이 있다면 긍정도 있는 법. 바로 <슈미즈와 브래지어-사춘기 속옷의 탈피와 변화>의 사례가 잘 보여주고 있다. 자연스럽게 성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도 있고, <노팬티-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발견>의 사례를 보면 자신감을 회복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이 다 그런 것처럼 어떻게 마음 먹느냐에 따라 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것도 스스로의 만족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그런 내 모습으로 말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옷을 통해서 자신을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하겠다. 다만 이 책 내용에 있어 아쉬운 점은 사례의 당사자들의 증상에 대한 설명이 좀 부족하다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왜 그랬는가"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설명되어졌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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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심리학 - 생각의 오류를 파헤치는 심리학의 유쾌한 반란
리처드 와이즈먼 지음, 한창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발상의 전환을 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특히 권위를 앞세우고 사고가 유연하지 못한 학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역시 선입견에 불과하다는 듯 뒤집어 흔들어준 학자가 있으니, 바로 <괴짜심리학>의 저자인 리처드 와이즈먼이다. 그는 심리학 교수이자 프로 마술사다.

그의 독특한 이력 때문인지 심리학서로서는 보기 드물게 흥미로운 실험들을 선보이고 있다. 분명 인간 심리를 다루고 있으나 목차에서 알 수 있듯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어주는 실험이 대부분이다.

장제목을 보자. 1장은 '정말 사주팔자가 인생에 영향을 미칠까'로 심리학적 접근이라기보다는 처세적 접근에 가깝다. 이 장의 소제목을 보면 도대체 어떻게 썰~을 풀어가려고 하는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대표적으로 '네 살배기 주식투자가', '점쟁이의 말이 그럴듯한 까닭', '행운아는 여름에 태어난다' 등이다. 2장을 보면, '완벽한 거짓말은 없다'로 '거짓말을 알아내는 Q테스트', '가짜 웃음의 비밀' 등 호기심과 흥미를 자아내는 목차가 줄을 잇고 있다. 어디 이뿐이랴, 여섯 장 모두가 이러한 소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책 전반에 걸친 사례와 실험들이 마치 인기 방송 '스펀지'를 보는 듯한 인상을 안겨준다. 분명 눈으로 글을 읽고는 있지만, 머릿속으로는 방송용 멘트들이 흘러나오고 있고, 또 장면이 바뀌어 실험맨이 실험군들을 대상으로 실험에 임하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실험 하나하나가 스펀지의 방송용 소재들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바로 일반인들의 관심을 자극하는 것들로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가장 높은 관심과 재미를 선사한 주제들이 있다. 따뜻하고 움츠려들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여름에 태어난 아이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라는 1장의 '행운아는 여름에 태어난다'와 우리가 보고 있는 상대방의 웃음에 진실과 거짓이 숨겨져 있음을 밝힌 2장의 '가짜 웃음의 비밀'이다. 그리고 "여섯 명만 거치면 모두가 아는 사이"라는 대중적 신념을 탄생시킨 3장의 '작은 세상과 운 좋은 사람들의 특징', 신은 인간이 즐겁게 살기를 바라는데 종교는 경건하게 살기를 바란다는 점을 밝힌 5장의 '종교는 웃음을 죽인다'이다.

같은 심리학자이면서도 이렇듯 엉뚱한 소재를 과감하게 실험군으로 등장시킨 리처드 와이즈먼은 주류 심리학계에서 볼 때 어쩌면 이단아로 비춰졌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우리 한국 사회였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의 실험 주제들이 딱딱한 심리학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린 공로를 영국 학계 및 사회에서 인정을 받아 영국 심리학 대중화 교수직에 임명할 정도이다.

이렇듯 그는 생각하기 힘든 아니 생각할 수 없었던 소재들을 대중 속으로 결과물들을 쏟아냈다. '거짓말, 속임수, 미신, 행운, 웃음, 사랑'라는 실험 주제들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는 한스 아이젱크의 "측정될 수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의 말을 증명이라도 해보이듯 거침없이 실험에 임했고, 이러한 것도 측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자신있게 보여주었다.

시종일관 '어? 그래!'를 연발하게 만들어주었던 이 책은 후반부에 가서는 진지하고 무엇보다 인간의 무감각이 왜 발생하는지, 그리고 그곳은 어디가 제일 심한지에 밝히는 대목에서 우리 사회를 한번쯤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책에서는 "인구가 많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과중한 '감각 과부하'를 경험한다고 한다."고 한다. 이에 감각 과부하뿐 아니라 돈이 감각보다 우선순위에 놓여 있음도 여러 굵직한 사건들을 통해서 증명이 되고 있다. 책에서는 시골과 도시를 상대로 실험을 했지만, 우리 한국에서는 '숭례문 사건'만 봐도 돈이 감각을 우선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다.

즐거움만 주었던 것이 아니라 때로는 진지함도 안겨주었던 이 책은 내용보다 발상의 전환의 필요성에 경각심을 일으켜주었다는 것에 점수를 주고 싶다. 무엇보다 셰익스피어가 썼다는 "온갖 해로움을 막아주고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유쾌함과 명랑함에 그대의 정신을 맡겨라."라는 이 말은 이 책의 주제를 한 줄로 잘 요약해주고 있다. 의도적인 유쾌함이든 부자연스러운 명랑함이든 긍정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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