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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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 한국이 싫어서!
헬조선이라는 말이 점점 일상어가 되어가고 있는 지금 한국의 문제를 청년들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책.
아니 사회문제를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 책. 한국이 싫어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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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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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문유석

 

문유석님의 <판사유감>은 말로만 들어 봤다.

실질적으로 만나는 것은 <개인주의자 선언>이 첫 책이다.

 

단순히 판사의 글 이라는 호기심도 있었다.

현시대에 "개인주의자"라고 당당히 선언한다니 어떤 의미일가 궁굼하기도 했다.

 

판사라는 직업.

막연함이 가장 앞서며, 보통 알고 있는 '판사'는 뉴스속에서 잠깐 보이는 모습,

드라마, 영화 같은 미디어 속에서 한쪽으로 치우처 굉장히 과장된 모습들만 봐왔기에 편견이 있는 직업이다.

실질적으로 판사는 만나볼 기회도 별로 없으며, 일상생활을 하면서 만나지 않을 수록 좋은 직업이 판사아닐까?

 

그런 판사가 쓴 글이라니. 더군다나 '선언'이라니!

어떤류의 선언이든 '선언'이라는 것이 가지는 의미는 정말 큰데.

판사로써 '선언'을 한다니. 아니 판사 전체가 아니라 개인적인 선언이긴 하지만.

'판사문유석' 이라는 말이 들어간 만큼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전체로 범위가 넓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개인주의자 선언>은 자기 고백에 가깝다.

문유석판사가 말하는 '개인주의자'는 한국에서 흔히 '개인주의'라고 말하는 '개인이기주의'가 아니다.

서양 역사속에서 발전되어 온 '개인주의'를 말하고 있다.

 

집단이 아닌 개인이 주체로서 당당히 기능을 하며,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살며, 개인을 위해 협상하는 개인주의자.

개인주의자는 '개인'이란 주체의 의미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

 

한동안 유행 했고, 지금도 베스트셀러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유명한 심리학책들에서 말하는 '자기 자신을 알기'

보다 더 명확하고 확장된 개념이 '개인주의'다.

 

내가 나로써 주체하기에 남역시 개인으로 주체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의 기준이 바로 '개인의 추체'에 있다는 것.

개인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대변하며, 이기주의와는 다르게 이익을 위한 양보와 협력이 가능한 것.

나만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의견역시 존중하여 들어주는 것.

서로의 이익을 위해 양보하기도 하며, 함께 하기도 하는 것.

개인의 가치를 실현하는 그런 '개인주의'를 말한다.

 

(쉽게 쓴것 같은데 다시 읽어 보니 어렵다... 그런데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모르겠다.ㅠㅠ

아직 개인주의에 대한 이해의 부족. 또는 머리로만 조금은 알것 같기때문일 거다. 문유석판사님은 책 한권분량을 다 쓰쎴으니...뭐.)

 

<개인주의자 선언>은 이런 개인으로써 바라본 세상에 대한 판사문유석님의 글이다.

경제발전, 세월호사건, 신해철, 고등학교시절, 자기계발, 세대격차, 직업, 문명, 장그래, 등등

최근 몇년 사이 굵직한 사건들 부터 판사로써 접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 들까지.

다양한 사건에 일관된 (개인주의)시선으로 세상을 읽어준다.

 

문유석판사가 바라본 세상은 내가 바라본 세상과 비슷해서 그런지 익숙하다.

난 스스로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책을 읽고 나니 어쩌면 나도 어느정도는 개인주의를 인식하고 살아 왔던것 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바라본 대한민국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함'이다.

"애매모호"란 단어도 있다. 그렇다고 명확한 중립도 아니다.

서양에서 발전된 자유민주주의사상. 대한민국에서 받아들여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 민주주의.

어쩌면 우리는 헌법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진짜민주주의를 한번이라도 실행했던 적은 없던것 같다.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집단 공동체에서 벗어나 '개인'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민주주의의 꽃을 투표라고 한다. 개인이 개인으로써 의사를 표명하는 절차 투표.

집단 공통체로 남아있으면 개인의 생각으로 착각하는 집단의 생각만이 있을 뿐이다.

 

광복이후 이념의 전쟁터로 변했고 그 이념들이 걷히고 나서도 이런 저런 문제들이 산재해 있는 대한민국.

광복이후 70년이란 역사속에서 경제는 눈부신 발전을 이뤘지만 단하나의 발전으로 인해, 너무 빠른 변화로 인해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버리고 달려왔다. 성장하지 못해서 쌓인 문제들.

국가? 사회?를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에릭슨이 말하는 발달단계중에서 중간 모든 것을 뛰어 넘어 버린것이고.

매슬로우가 말하는 욕구로 치자면 아직도 최하위 욕구에 머물러 있기에 문제들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걷기도 전에 뛰기부터 했다. 걸으면서 배워야 하는 것들을 배우지 못했다.

기는 것도 재대로 기어본적이 없다. 그렇기에 할 줄 아는 거라곤 뛰는 것 밖에 없다.

 

뛸줄만 알기에 점점 빨리 뛰게 되었고 결국은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한계에 다다랐다.

 

기는것 부터 다시 배우기엔 돌아갈 수도 없다. 그렇다면 지금 해야할 것은 무엇인가?

지나간 것을 돼돌아가 찾아 올 수 없는 상황. 지금부터 다시 시작할 수 조차 없다.

뜀을 멈추게 되는 순간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고, 심하면 죽거나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위험에 처해 있다. 결국 달리기는 계속 달려가야 한다. 문제는 달리면서 기는법 걷는법을 배워야 하는 어려움 이다.

 

어쩌면 바로 날개를 달고 날아야 할 지도 모른다.

시대는 끊임없이 바뀌고 있고, 우리는 이미 짧게 끝난 산업 혁명에서 정보혁명으로 접어 들었고,

정보혁명은 산업혁명보다 더 짧은 생명을 가지고 또 다른 혁명을 불러오게 될 거란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수많은 변화들, 공동과 집단으로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늦다.

우리가 스스로 개인임을 자각하고 개인으로써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개인으로써 협력하는 길은 결국 함께하는 것, 공동과 집단을 유지하는 '역설'이 된다.

공동과 집단이 우선시되면 개인은 있을 자리가 없지만, 개인이 있음으로 해서 집단이 유지될 수 있는 역설.

이렇게 쓰고 보니 사회체계이론이 생각난다. 여러 개체가 유기적으로 맏물려 돌아가는 체계.

그 개체속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작은 단위는 단연 '개인'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서양에서 발전된 시스템을 들여 왔지만 그 시스템이 가장 기본을 들여오지 못해서

자꾸만 오류가 나고 있는건 아닐까?  지난번 읽은 <선비처럼>에서도 우리에게 안맞는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생각한 바로 그것.!

 

호환이 잘 안되는 아이폰에 억지로 맞춰쓰고 있는 그 기분!

 

호환이 잘 된다는 것은 약속인 국제표준기준을 만들고 서로 그 기준에 맞춰 만들었다는 것.

호환이 안된다는 것은 표준과는 상관 없이 독자적으로 만들었다는 것.

 

단순 비교, 비유 할 수 없지만, 호환성이 좋다는 것은 '개인주의'를 말하고

호환성이 나쁘다는 것은 '이기주의'를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개인주의보다 '이기주의'를 '개인주의'로 잘못 들여 왔기에 호환이 안되서 문제가 생기고 있다.

 

호환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호환문제가 없는 국제표준으로 바꿔 만드는 방법뿐.

서구에서 발전된 민주주의를 정말 잘 이해하고 실행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차근 차근 들여다 보고,

개인의 역할과 인식의 변화를 바라보고 지금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진단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민주주의의 국제표준에 맞춘 개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사람은 이익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다.

이익없는 희생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다수의 사람들의 결정이라면...

 

문제 해결 방법은 하나더 있다.

내 기준을 국제 표준으로 만드는 것. 어느쪽이 더 유리할지 가늠할 수 없다.

 

분명한건 지금 우리는 잘 안맞는 것을 억지로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나를 맞출지. 나에 맞는걸 다시 만들지는 우리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70여년이란 시간동안 내가 맞추는 것은 실패한 것 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나에게 맞는 것을 다시 만들 수는 없을까? 

 

어떤 문제해결책이 되었든 단 한가지

개인이 개인으로 주체가 되는 것에는 동의한다.

어떤 해결책을 찾게 되더라도,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가 '개인'으로써 '우리'가 되어 협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개인으로 명확하게 살아가며, 개인의 이익을 위해 서로 협상하며 서로가 이기는 윈윈전략을 세우는 일.

내가 읽은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은 이를 위해서 당당하게 개인주의자라 선언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개인주의자"라고 선언 한다.

(분명 말하지만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오해하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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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처럼 나남신서 1834
김병일 지음 / 나남출판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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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처럼> - 김병일

 

지난 한 주 선비의 향기에 물들었다.

김병일 님의 <선비처럼>은 퇴계선생님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다.

 

선비란 '선비'외에 다른 말로 정의하기 어렵다.

그냥 살다가 누군가가 어떤 행동이나 삶의 자세에서 "저사람 선비같다."란 생각이 떠오를 뿐이다.

 

"선비같다"에는 참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선비같다는 것. 매우 단정하고 차분한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눈빛은 맑고, 의복은 언제나 단정하며, 말은 차분하다. 과묵하되 헛되이 말하는 법이 없다.

생각은 깊고, 자기관리에 그 누구보다 철저하다.

 

선비같다는 것.

존경스럽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배울게 너무 많고 닮고 싶어지는 사람. 지금의 말로는 '멘토'쯤 될까?

아니 멘토라는 말 보다는 리더가 더 어우릴리겠다. 더 나아가면 큰 사람 '대인'이고, '성인'이다.

 

선비같다는 것.

인의예지와 충,효를 행하는 것.

 

인! 어질다. 어진사람. 의예지신이 모두 인에 들어 있다.

어질다는 것은 의로우며, 예의있고, 지혜롭다는 것.

 

옳은 일을 하고, 예의를 지키며 , 지혜롭다.

국가에 충성하며, 부모에게 효를 다한다.

 

이중에서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된다.

의롭지만 예의가 없으면 안된다.

예의가 있지만 지혜롭지 못하면 안된다.

지혜로워도 의롭지 않으면 안된다.

 

세상에는 의로운 사람, 예의있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은 많다.

모든걸 다 가진 사람은 정말 드물다.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지금의 프란치스코 교황이나 법정스님같은 인물이 '선비'라고 불러볼 수 있을까

 

지혜롭게 의로운 일을 예의로써 행하는 것.

그렇게 스스로 어진사람이 되는 것.

사람다움을 알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사람.

자기관리는 철저하고, 타인에게는 배려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

그런 사람이 '선비같은'사람이다.

 

선비정신!

매,난,국,죽 사군자가 생각난다.

조선시대 선비하면 생각나는 것. 사군자.

선비들이 사군자에 빗대어 선비정신을 가다듭는다.

 

봄 꽃이 피기전 겨우내 내린 눈이 아직 녹기도 전 추운날 눈을 뚫고 꽃을 피어내는 매화.

여름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세상에 향을 은은히 퍼뜨리며 홀로 꼿꼿이 서있는 난초.

가을 꽃들이 추워지는 날씨에 꽃을 떨어뜨릴 때, 마지막까지 피어 가을을 맞이하는 국화.

겨울 꽃은 지고 낙옆은 떨어지고 찬 바람은 매서우며 눈이내려도 초록의 빛을 잃지 않는 굳건한 대나무.

 

사군자를 통해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선비 정신을 다잡는다.

 

선비처럼산다는 것.

강한 정신으로 인,의,예,지를 실천하며 충과 효를 다하는 것.

 

까만 갓

은은함이 물든 도포자락.

바람에 날리는 선비의 향기가 내게로와 물들인다.

 

선비가 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옛 선비들의 정신을 조금만 느껴 보자.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 지혜롭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

언제나 예를 다하며, 옳은 일을 하는 것.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배운것을 꼭 실천 하는 것.

 

작은 변화, 작은 행동이

자본에 물든 우리 사회에 바람이 되어

선비의 향기로 물들이기를 바란다.

 

저자는 책속에서 세월호 사건 부터 땅콩회항 사건, 무릎사건, 각종 갑질 사건들을 얘기하며

정신의 부재를 지적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예"의 부재를 말한다.

당연히 행해야 하는 것. "예"

 

서양의 귀족이나 기사들은 의무와 책임을 말한다.

그래서 "노블리스 오블리제"같은 말이나 "기사도 정신"이란 말이 있다.

귀족으로써의 의무와 책임, 기사로써의 의무와 책임.

 

우리의 '선비'는, '선비처럼'은 의무와 책임이 아니다.

그저 사람으로써 당연해야 하는 것. 사람이기에 사람답게가 당연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비의 사람대함은 계급을 뛰어 넘는다.

그랬기에 신분제 사회 조선이 500년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선비의 이름은 우리 DNA 속에 남아 있다.

 

사람답게, 사람다움을 회복하는 것.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행동하는 것.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선비처럼은 어려운게 아니다.

 

우리 몸속에, 가슴속에 남아 있는 그 마음.

선함을 느끼고, 인, 의, 예, 지 를 실천하는 것.

조금씩 조금씩 신비의 마음을 깨닭고

실천하다 보면 대한민국은 다시 한번 선비의 나라가 되어있을 거다.

 

동방예의지국, 선비의 나라, 찬란한 아침의 나라.

잊었던 이름들을 다시한번 불러 온다면

우리는 이미 선진국이 되어 있고, 김구선생님이 꿈꿨던 문화로 꽃피운 나라가 되어 있겠다.

 

시작은 어색하고 힘들더라도

지금 부터 하나 하나 실천해 보자.

작은 것 하나 함부로 하지 않음을.

 

대한민국 모두가 선비처럼 꿈꾸며 선비의 향기를 가득 담기를 바란다.

 

 

(지난 일주 책을 읽고 리뷰를 쓰지 못해 몇번이나 썼다 지우길 반복했다.

이 글 역시도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을 못한 것 같고,

뭔가 더 다듬어야 될 것 같고, 문장을 바꿔야 될 것 같은 기분.

그렇게 썼다 지웠다 반복하다 보니 이젠 겁이 났다. 글을 쓰지 못할까봐.

'선비'를 생각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단순의 사전의 정의처럼 한 줄로 끝낼 수 없는 것이 '선비'다.

지금에 와서는 주변에 '선비'다운 사람, 진정한 '선비'가 없는 것도 문제였으며,

살아오면서 한번도 만나 보지 못한 유형의 사람을 상상하기란 신을 상상해보는 것 만큼 어려웠다.

선비에 가까운 사람이라 하면 법정스님과 김수환 추기경님만 생각 날 뿐이다.

TV속에 비춰지는 수많은 사람들. 선비의 기준을 놓고 보니 부족함이 너무 많다.

물론 뉴스속의 인물들은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렇다 보니 선비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막연할 수 밖에 없고

그 막연함을 글로 남기는 것은 더 힘든 일이 되었다.

이 글 또한 지우고 싶지만 지금은 그냥 두기로 했다.

28살의 내가 생각해 본 선비는 조금 담겨 있기에.

나이가 어릿탓으로 돌리고 싶지만 곧 서른을 앞두고 있다는 생각에 어리다고 할 수도 없다.

저자가 강조한 선비다움은 결국 '사람'다움이였다.

자본주의에 빠져서 '자본'다워진 세상에서 '사람'다움을 회복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 될까?

대한민국 사회문제의 대부분은 정신적 가치의 부재라고도 했다.

그 정신은 무엇일까?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정신적 가치.  서양의 귀족과 기사들의 책임과 의무를 예로 비교하니 조금은 알것 같았다. 일제를 격은 이후 어쩌면 우리 무의식에는 피해의식이 아주 깊게 자리 잡았기에 '자본'에 매달렸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서 사람다움을 회복하는 것은 피해 의식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다시 읽고 또 생각해보니 그냥 지금부터 내가 느끼고 변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유행하는 아들러의 심리학이 아니더라도.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 실천을 통해서 알아가는 것 또한 옛 선비들의 교육방식인걸 알게 되니 생각이 변했다.

행동과 정신은 상호 보완적이겠다.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게 되기도 하고, 행동하는 대로 생각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

어떤 것을 우선시 하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

어렵지만 옳음을 생각하고 행동해보기로 한다.

작심삼일을 딱 33번을 하고 하루만 더하면 100일!

100일이면 의식하지 않아도 행동할 수 있을 만큼 바뀌기엔 충분한 시간같다.

 

너무 서양의 문물에 물들여 우리의 뿌리 마져 흔들렸던 것을 생각해 본다.

서양과 동양, 전혀 다른 문화를 간직하고 발전해 왔기에 같을 수가 없다.

지리적인 환경역시 다르기에 사람의 기질이 다르다.

좋은 것은 있겠지만 안맞는 옷을 억지로 입다 보니 탈이 났다.

우리는 우리에게 맞는 옷이 있었다.

모든 것을 버리지 않아도 멋만 내는 정도의 변화만 주어도 충분히 서양옷의 좋음을 담아 낼 수 있는 옷이

선비처럼은 그런 우리 옷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역사속에서 나쁜 면도 분명 있었겠지만 나쁘다고 좋은 것 까지 버려버린것은 우리의 실수 였다.

이제라도 좋음과 나쁨을 구별할 눈이 생겼고

좋음을 받아들여 변화할 수 있는 기술이 있음을 알고 있다.

남은 것은 실천하는 것! 처음 서양의 문물을 들여올때 만큼 어색하고 힘들겠지만.

우리 몸속에는 아직 남아 있어 쉽게 다시 찾아 적을 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져 본다.)

 

선비는 말로 꾸짖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준다.

말로 꾸짖으면 대들고, 행동으로 보여주면 따라온다.

하기 싫은 일은 남 주지 말며, 좋은 자리는 남 먼저 준다.

 

<선비처럼>을 통해 '선비의 향기가 내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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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상점 -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5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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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상점> 김선영

 

시간을 판다는 것. 너무나 자본주의적 색채가 강해 거부감이 들어 읽지 않았던 책이였다.

서가를 둘러 보다 어느날 부터인가 자주 눈에 들어와 한 번 읽어 보잔 맘으로 책장을 펼쳤는데 마지막 장을 넘길 때 까지 손에서 책을 놓치 못했다.

놓을 수 없었다. 청소년문학에 이런 흡입력이라니!. 김선영 작가. 처음 들어 봤는데. 이런 문장력이라니!

 

이 책 한권으로 인해 청소년 문학에 가지고 있던 편견을 깼다.

 

그저 그런 성장소설이나,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소설이겠구나 생각 했었는데.

 

시간을 파는 상점은, 한 사람의 인생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시간을 한번에 들여다 보면서 다양한 시점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그려낸다.

적당한 깊히감에 오히려 더 깊히 빠져들고 몰입하게 되는 묘한 소설.

 

생각해 보면 시간에 대한 고민은 어릴때나 지금이나 많이 하게 된다.

 

학생때는 시험과 대학이라는 거대한 산을 압두고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느냐, 공부와 게임 사이에서 갈팡 질팡하기도 하며,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시간에 대해 후회 하기도 하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들을 미리 부러워 하기도 했다.

이상하게 중 고등학교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오늘 하루도 벅차서 미래나 과거에 대한 생각 보다는 겨우 겨우 하루를 버텨냈단 생각이 먼저 든다.

 

짧은 책 한권에 청소년기의 생활 모습, 친구와 가족, 진로에 대한 고민들이 모두 담겨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지금의 나와 청소년기의 나 소설속의 주인공이 왔다 갔다하며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연결된 느낌이다.

 

백온조 소설속 주인공의 이름이다.

이름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 느낌표 !!! 세개가 떠올랐다.

청소년기의 이름이란 '나'를 표현하는 모든 것이면서 부정하고 싶은 무엇이 되어 버리는데.

온조라니. 아버지 이름은 백제라고 한다. 소설속에서도 어릴때 부터 많이 놀림을 받았지만 그런것엔 개념치 않는 모습을 그려주지만

실제로 이름으로 놀림을 받고 이름 그 자체가 별명이 되어 버리면 당시에는 많이 슬프다.

 

나 역시 이름 속에 '복'이라는 한글자로 인해 여러 별명들이 붙었었고, 그중에서 이상하게 '거북이'가 등장했는지...

어떤 연유로 등장한 별명인지는 이젠 기억 나지 않지만 정말 싫어 했던 별명이였고, 그로 인해 놀림의 별명으로 많이 불렸다.

지금에 와서야 거북이를 캐릭터로 사용할 정도로 친숙해지고 익숙해졌고 오히려 거북이란 녀석으로 인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귀염성 까지 발휘 할 수 있어서 좋아하는 별명으로 바뀌였지만, 당시에는 무의식중에 불르기라도 하면 돌면해서 싸움까지 일어 나곤 했다.

 

그리고 가정 환경.

온조의 아버지는 소방관으로 순직 했다. 화제 진압중이 아닌 도로에서 과속차량과 정면 충돌로 인한 순직.

소설속에서는 '속도'에 대한 이야기를 풀면서 아버지의 이야기가 등장 한다. 그렇게 아버지 없는 생활, 그리고 엄마와 단 둘만의 생활과 어쩌면 새 아빠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의 등장. 머릿 속으로는 이해 하면서 가슴속으로는 답답해 하는 온조의 심리를 너무 잘 그려내서 눈물이 흘렀다.

 

삶과 죽음, 그리고 새로움 이란 것.

드라마 속 대사가 아니라도 죽음으로 인한 이별에 너무 슬퍼하면, 주변에선 '산 사람은 살아야지'란 말로 위로를 한다.

보고 있기 안스러워 자신들도 모르게 내 뱉는 말이지만 그렇게 삶과 죽음을 단번에 갈라 버리는 말에 슬픔을 억지로 삼키게 되면 오랜 시간 치유하지 못하고 가슴속에 담아 뒀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터져 나오곤 한다. 삶과 죽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버리는데 필요한 시간은 얼마 쯤이면 적당 할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치유되지 못한 슬픔이 남아 있는데,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데 '새 아빠'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에 그 슬픔이 얼마나 커졌을까.

머리로는 예상했고 언젠간 이런 상황이 올거란 걸 알고 있었다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슬픔과 상실감, 어쩌면 배신감이 될지도 모르는 그 감정.

 

나쁜 일은 언제나 한번에 온다고 했던가.

안그래도 심란한데 '시간을 파는 상점'때문에 어떤 사람이 자살 할 지도 모른다니! 머릿속은 하얘지고, 심장박동은 마라톤 튄것 처럼 빨라지고, 호흡은 가쁘다.

어디서 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나. 순간 찾아온 패닉! 여러가지 상황이 겹친다. 그럼에도 끝까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 안간 힘을 쓴다.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는 '불곰'이 떠오르긴 했지만, 어떻게 해야될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당황 스러움. 혼란.

정신적 무질서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아찔함이 밀려온다. 이런 감정들을 친구 덕분에 겨우 가라앉히지만, 불안함은 끝까지 괴롭힌다.

 

무엇이든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선택해서 결과를 내고 당당하게 자랑하고 싶은 나이.

어른들의 우려는 기우일 뿐이라고, '우리'들도 할 수 있다고 외치고 싶은 나이.

세상은 어른들이 만들어 온 것만 있는게 아니라고, 다양한 세상이 있고 내 인생은 내가 살거라고 말하는 나이.

 

온조는 '시간을 파는 상점'을 운영하며, 성장해 간다.

어른들은 모르는 자신들 만의 세계, 학교 선생님들 조차 바라보는 눈이 달라 비밀이 된 또래만의 세상.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누구나 다 그런 세상을 살고 있는데

먼저 지나왔다고 지금 그 시간을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잘 짜여진 틀에 끼여 맞추려고 하는 것은 올챙이적을 생각 못하는 개구리의 폭력일 뿐이다.

청소년시기에 깊히 고민하고 삶과 자신에 대해서 끊임없는 답들을 찾아야 하는데, 어른들이 만들어 온 세상 속에서 성적을 만들어야 되고, 대학에 진학을 해야 하는 이유로 '나'를 찾는 시간은 유예된다.

 

그렇게 대학에 진학을 하면 두려움이 몰려온다.

아무런 고민 없이 하라는 데로 해왔는데, 그들이 말하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다.

그동안 살아왔던 세상과도 전혀 다르다. 한순간에 바뀐 세상, 한순간에 바뀔 수 없는 '나'

경험이 없어 어떻게 해야될지 도통 알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만 남는다.

 

대학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 시험에 치여 살다보면 고민의 시간은 더욱 뒤로 밀려난다.

고민 없이 지나온 청소년기. 때문에 청년에서야 고민을 시작한다. 앞선 세대를 살았던 어른들은 조금더 어릴때 하던 고민들을 뒤 늦게 시작하고,

도움을 요청하면 나이가 몇인게 그런 고민을 하냐고, 쓰잘대 없는 생각 말고 취업이나 하라고 말한다.

세상에. '취업'이 전부인 것 처럼 말하는 그들은 정말 '행복'을 알고, '인생'을 알고 이런 말들을 하는 걸까?

 

시간을 파는 상점은 고민을 파는 상점이다.

청소년기, 어리지만 마냥 어리기만 하진 않는 나이의 시간을 판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더 많이 혼란스러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시간'이란, '삶'이란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절대적 시간을 살아가는 크로노스, 주관적 상대적 시간을 살아가는 카이로스

시간이란 유한하면서 무한한 것, 시간은 생각하기 나름,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

 

지금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문득 궁굼해 졌다. 그들이 이 책을 읽으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 들어 보고 싶다.

 

10년을 먼저 살아가는 나도 이제서야 조금을 알것 같은 '시간'과 '삶'을 그들은 어떻게 이야기 할까?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우정과 사랑도.

 

'시간을 파는 상점'을 읽으면서 문학에는 청소년 문학과 일반 문학을 꼭 구분해야 할까? 란 생각이 들었다.

이정도의 소설이면 일반 문학으로 20대 30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멋진 소설로 다가갈 수 있는데 청소년 문학이란 이름으로 선을 그어 버린 것은 아닌지...

고전역시 청소년 문학이라고 따로 정하지 않아도 언제나 청소년 필독서에 이름이 올라오니 청소년 문학이란 타이틀을 빼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책을 읽어 봤으면 한다.

 

나도 겪었으면서 청소년은 이래야만 되! 라는 편견을 깰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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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의 요리 - 요리사 이연복의 내공 있는 인생 이야기
이연복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사부의 요리> - 이연복

 

비가 내리는 날엔 파전에 막걸리 한잔

입이 심심한 야식은 치킨에 맥주

길거리 음식은 역시 떡볶이, 튀김, 순대

 

이처럼 상황이나 때에 따라 생각나는 한국인의 음식들이 있다.

그중에서 짜장면은 이사, 졸업, 생일 같은 단어와 쿵짝이 잘 맞는다.

졸업식과 생일음식에서 짜장면은 차츰 자리를 잃어 가지만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에서 이사하고 나면 무의식적으로 짜장면을 떠올린다.

 

어른들 뿐만 아니라 지금 대학가 당구장에서도 가장 많이 찾는건 짜장면,

공강시간에 당구한겜할까? 그러다 밥시간때랑 겹치면 짜장면값 내기가 성사 되기도 한다.

 

지금의 20대 보다는 30대가

30대 보다는 40대가, 나이가 많을 수록 짜장면에 대한 추억들은 더 각별하다.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던 god의 노랫말속의 짜장면은 아들과 어머니 모두의 특별한 음식으로 남아있고,

그 노래는 경제성장기의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꼈던 그 감성을 불러 온다.

 

내 기억속에 남아 있는 짜장면의 추억

초코파이에 초 3개가 나이를 말해주는 그 사진속에 입안 가득 담고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양손에 짜장면을 꽉 쥐고 활짝 웃는 모습.

 

유치원 학예회때 최고의 특별 음식으로 나왔던 짜장면!

친구들과 둘러앉아 옷에 묻어도 마냥 즐겁게 웃고 있는 사진.

 

이사하고 나서 가족들과 함께 먹던 짜장면과 탕수육.

 

초등학교때 부터 고등학교 졸업식까지 졸업식이 끝나고 나면 너나 할거 없이 부모님들과 짜장면집으로 몰려갔던 기억,  학교 정문에서 작별인사를 하면 언제 다시 볼지 모를것 같던 친구들을 동네에 몇없는 짜장면집 덕분에 이별의 시간이 늦춰지기도 했던 기억.

 

이런 기억들이 추억으로 남아 있어 짜장면은 내게 있어서 특별한 음식이 되었다.

 

귀해서 특별했던 요리 짜장면. 

특별했기에 여러 마음이 담긴 짜장면.

짜장면과 함께한 이연복요리사의 인생이야기 <사부의 요리>

 

중국집? 중화요리 전문점? 중식당?

중식을 하는 곳에서는 셰프라는 단어가 아닌 '사부'라고 부른다고 한다.

'사부' 단순히 요리사의 개념이 아닌 스승이 되는 말.

'사부'는 기술 뿐만 아니라 음식에 담긴 마음, 삶의 철학까지도 가르친다.

사부의 요리에 담긴 철학을 제자들이 계승하고 발전 하는 것.

그것이 중식당 주방의 묘미랄까? 사부 이연복의 요리에는 "정직"이란 철학이 담긴다.

 

"정직"한 요리. 그것은 요리에 담긴 그의 마음이자 이연복 요리사의 삶이다.

 

화교집안에서 태어나서 유복한 생활은 꿈이였던 어린날의 이연복, 열세살 부터 중식당에서 일을 했고 40여년이 지난 지금은 자신만의 식당 "목련"에서 정직함이 듬뿍담긴 요리들로 행복을 선사한다.

 

<사부의 요리>에는 그동안 TV 프로그램들에서 말하던 이연복 요리사의 이야기들이 정리되어 있다.

어릴때 어려웠던 형편, 동생이 돈을 벌어 형학비에 보탰던 이야기, 의리때문에 싸움에 휘말리고, 그로 인해 여러번 일하던 식당을 옮겼던 이야기, 그의 생활 방식에 끊임없던 사람들, 대사관에서의 요리경험, 그리고 일본에서의 생활, 그가 살아온 삶들이 지금에 이르러 활짝 핀다.

 

최근 불기 시작한 요리사의 열기, 이탈리아, 프랑스식의 서양식 요리사들의 화려함 속에서, 동양 요리의 깊음을 보여주는 '사부 이연복'. 그가 처음 TV에 등장했을 때는 잠깐의 놀라움 이였지만, 그의 삶과 요리들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중식, 짜장면의 화려한 부활이 진행중이다.

 

동네의 흔한 짜장면에서 고급요리로의 변신, 그러면서 여전히 부담없는 서민들의 음식을 만들어 주는 '사부 이연복' 그가 있어 아련한 추억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사부의 요리>는 이연복요리사의 이야기.

중화요리와 함께한 이연복의 이야기는 기억속에 담긴 짜장면과 추억들을 불러온다.

마음이 담긴 짜장면 한그릇을 먹어본 이들에게 <사부의 요리>는 그들,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짜장면의 추억과 함께한 시간.

여러 추억들은 짜장면의 향을 불러오고, 2015년의 대한민국에서는 짜장면 하면 '사부 이연복'이 먼저 떠오른다.

시간이 흐르면 추억으로 간직 될 이름. 그의 담백한 짜장면을 한번 맛보고 싶다. 1시간이 흘러도 바삭한 탕수육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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