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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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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린 일생의 3분의 1을 자면서 보내요.>

사람이 90년을 산다고 가정하면 30년을 자는 셈이다. 쓸모없다고 치부돼 잊히는 시간, 우리가 잃어버리는 시간이 장장 30년이다. 30년...... 지금의 내 나이보다 많은 시간.

<게다가 12분의 1은 꿈을 꾸면서 보내죠.>  

「잠 」1권 中 26p.

 

프랑스 작가임에도 프랑스인들보다 한국인에게 더 사랑받는 작가라 불리우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 '개미'를 시작해 '나무','신','웃음' 등으로 출판되는 책들마다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르면서 큰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 중 한사람이기도 하다. 특유의 상상력과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봤을 법한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세계관을 그려내는 독특한 판타지적인 요소들이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새롭게 다가와 더 인기가 있다고들 말하는데, 이러한 고차원적인 세계관이 왠지 나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늘 멀리해오던 작가 중 한사람이었다. 그래서 「잠」이 나의 베르나르 베르베르 입문서가 아닌가 싶다.

 

난 꼭 이루어야 할 일이 있어요. 그런데 여기선 할 수가 없어요. 이 섬은 꿈을 꾸는 사람, 시인, 음악가, 에술가의 뇌인 우뇌가 행복한 곳이에요. 하지만 우리 뇌에는 두 개의 반구가 있어요. 내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나머지 반구를 깨워야 해요. 과학자, 발명가, 기술자의 뇌, 논리의 뇌인 좌뇌를 말이에요. 물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다른 반쪽의 뇌를 말이죠. 자기 정신의 절반만 발전시키는 것은 절반만 존재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잠 」2권 中 148p.

 

제목그대로 잠에 관련된 이야기다. 아니 잠을 통해 만날 수 있는 "꿈"의 이야기라고 해야할까. 주인공 자크는 수면 연구로 유명한 신경 생리학자 카를린 클라인 교수의 카롤린은 자크가 어렸을 때부터 꿈을 통제하는 법을 가르쳤고 수면의 6단계를 연구하게 된다. 이후 자크가 어머니의 연구를 이어받아 수면의 세계를 제어하고, 꿈을 통해서 시간을 넘나드는 기술을 개발해 나가는 내용이다. 잠을 자면서 꿈을 꾸게 되게 그 꿈으로 현실의 트라우마라든지 문제들을 해결하고,  꿈을 통해 20년 뒤의 자신과 만나는 일 등 아직까지는 아무도 알지못하는 미지의 세계이지만 미래에는 있을법한 이야기들이기에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

 

붉은 모래섬에는 이제 JK48 혼자만 남아있다. JK2이 맨발로 걸어가면서 남긴 자국들만 해변에 찍혀 있다. 

「잠 」2권 中 287p.

 

솔직히 처음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들을 멀리했던 이유들이 고차원적인 상상력들에 약간의 거부감을 느꼈다고 해야할까? 하지만 이 책을 읽고는 왜 이제서야 그에게 입문했나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물론 1권에서 느꼈던 흡입력이 2편으로 넘어갈 수록 집중력도 떨어지고 재미도 약간은 사라지면서 뒷심이 좀 부족한가? 하는 의문이 든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한 권으로 그를 판단하기엔 엄청난 다작의 작가이기에 다른 책들도 꼭 읽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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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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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의사 전달이 가장 중요하며, 대필가는 서도가와 다르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츠바키 문구점」中 27p.

 
도쿄 근교에 위치한 가마쿠라. 그곳에는 츠바키 문구점이 있다. 이름 그대로 겉으로는 평범한 문구점 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곳은 아름다운 손편지로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을 대신해서 전해주는 '대필가'가 편지를 써주는 곳으로 편지 대필이라는 간판을 내걸지 않아도 알음알음 손님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주인공 포포는 어린 시절 부터 대필가인 선대(포포는 할머니라 부르지 않고 선대라고 부른다..)에게 혹독한 글쓰기 훈련을 받으면 자랐고, 그러면서 선대께 반항을 하고 갈등을 겪던 시기도 있었지만, 선대가 돌아가신 뒤 그의 뒤를 이어 다른 사람들의 차마 쓰지 못한 편지를 대신 전하게 된다.
 
대필이라고 해서 그냥 편지만 대신 써주고 전해주는게 아니다. 찾아오는 사람들 저마다의 사연을 충분히 듣고 그의 성격과 말투, 상대방의 기분 등 모든 요소를 세심하게 살핀 뒤, 편지를 쓰는 자세 부터 시작해서 어떤 필기구로 쓸 건지, 편지지의 종류와 봉투는 또 어떤 걸 선택할 건지, 우표 모양,  종이 재질, 먹의 색깔 등등 세심한 노력을 들인다. 어찌보면 단순한 일일 테고, 또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포포는 자신의 업에 대한 경의를 가지고 편지 한장 한장에 마음을 담는다.
 

그러나 간단한 일일 텐데 글씨가 마음대로 써지지 않았다. 생각한 대로 글씨가 매끄럽게 써질 때도 있고, 백 장을 써도 이백 장을 써도 도저히 감히 오지 않을 때가 있다. 요컨대 글씨를 쓰는 행위는 생리 현상과 같다. 자신의 의지로 아무리 예쁘게 쓰려고 해도, 흐트러질 때는 어떻게 해도 흐트러진다. 몸부림치고 뒹글며 아무리 칠전팔기를 해도 써지지 않을 때는 쓸 수 없다. 그것이 글씨라는 괴물이다.

그때, 문득 귓가에 선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글씨는 몸으로 쓰는 거야.

 

                   「츠바키 문구점」中 147~148p.

 

작가 오가와 이토의 전작들 <달팽이 식당> 이라던지  <따뜻함을 드립니다>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큰 사건이 등장하는 책은 아니다. 전작들이 음식으로 서로간의 마음을 치유하고 위로를 전하던 이야기였다면 이 책에서는 편지라는 요소로 바뀌었다라는 것 정도? 아무튼 평범한 사람들의 잔잔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다.

 

SNS로 손쉽게 서로 소통하는 시대인 요즘, 가끔씩 펜을 들때면 뭔가 어색한 기분이 들 정도로 손글씨를 쓰지 않았다. 더군다나 누군가에서 편지를 쓴다는 것도 정말 까마득하다. 지금은 잘 쓸일도 받을 일도 없지만, 어릴 적 한자한자 정성들여 편지를 쓰고 또 정성들여 마음이 담긴 편지를 받았을 때의 그 기쁜 마음을 잘 알기에 지금은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없다는게 조금은 아쉽다기도 하다. 깊어가는 가을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한권의 책이었고, 오랜만에 따뜻한 손편지 한장으로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

 

글씨는 그 사람과 함께 나이를 먹으며 늙어간다. 같은 사람이 쓴 글씨여도 초등학생 때 쓴 글씨와 고등학생 때 쓴 글씨가 당연히 다르고, 이십 대에 쓴 글씨와 사십 대에 쓴 글씨도 다르다. 칠십 대, 팔십 대가 되면 더욱 그렇다. 십 대 때는 동그란 글씨만 썼던 소녀도 할머니가 되면 자연히 그런 글씨를 쓰지 않게 된다. 글씨도 나이와 함께 변화한다. 

 

                   「츠바키 문구점」中 1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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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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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너 힘들었니?"

순간 김지영 씨의 두 볼에 사르르 홍조가 돌더니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눈빛은 따뜻해졌다. 정대현 씨는 불안했다. 하지만 화제를 돌리거나 아내를 끌어낼 틈도 없이 김지영 씨가 대답했다.

"아이고 사부인, 사실 우리 지영이 명절마다 몸살이에요." 잠시 아무도 숨을 쉬지 않았다. 거대한 빙하 위에 온 가족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정수현 씨가 길게 한숨을 쉬었는데 찬 입김이 나와 하얗게 흩어졌다.

 

「82년생 김지영」中 17p.

 

책을 덮고 난 뒤 가장 먼저 들었던 감상은 '독특했고, 공감된다'였다. 흔히 생각하는 소설의 문체와는 다르게, 르포나 보고서를 읽는 듯한 문체에 사회통계자료와 같은 주석들로 한 권의 소설을 읽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그만큼 가독성도 뛰어났다. 그리고  특별하고 뛰어난 삶을 살아온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닌 너무도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에 누구든 공감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고, 그러했기에 특히나 많은 여성들에게 지지를 받게 된 책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주인공 김지영씨라는 인물은 한 인격체로 태어나서 자신이 가진 고유의 개성대로 원하는 삶을 살아갔다 라기보다는 그냥 그 시대의 평균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들, 아니 남성을 제외한 이들의 표상이 된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하자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이름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이름은 잊은채 살아가고 있는 거의 모든 여성들을 대표하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가 아닐까.

 

김지영 씨가 회사를 그만둔 2014년, 대한민국 기혼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결혼, 임신, 출산, 어린 자녀의 육아와 교육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출산기 전후로 현저히 낮아지는데, 20~29세 여성의 63.8퍼센트가 경제활동에 참가하다가 30~39세에는 58퍼센트로 하락하고 40대부터 다시 66.7퍼센트로 증가한다.

 

「82년생 김지영」中 145~146p.

 

 사실 거창하게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많은 여성들의 표상이라고 칭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인공 김지영씨가 그만큼 특별한 인생을 살아온 건 아니다. 엄청난 재난과 고통을 겪고, 말 못할 슬픔과 기구한 사연을 가진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한국에서 여자라는 이름으로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겪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일 뿐이다. 딸이기에, 여성이기에 느꼈을 감정과 소외감을 느끼며, 남녀차별이 당연시 된 시대를 살아온 그저 그런 지극히 평범한 인물인 것이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렀다.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졌고, 여권 신장도 높아졌기 때문에 여성 대통령도 나오는 세상이 되지 않았냐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현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에겐 82년생 김지영씨의 삶이 공감 되지 않을 수도 있다.하지만 막상 사회라는 곳에 나가보면 알겠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지금도 '김치녀','된장녀','맘충'이라 불리며 여성혐오와 관려된 일들이나 범죄가 지금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김지영 그녀가 살았던 삶이나 지금의 내가 살아가는 삶이나.. 그래도 앞으로 살아가야 할 여성이라는 이름의 인격체들을 위해선 지금과는 더 달려져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이라는 구분이 없는 세상에서 살길 바란다면.. 그러기 위해선  이제는 공감만 할게 아니라 더 나아진 미래를 위해 먼저 행동을 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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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이가라시 다카히사 지음, 이선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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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드라마는 욕하면서도 본다라는 아이러니함이 있다. 이유~라고 한다면 뭔가 자꾸 끌리는 자극적인 요소들이 궁금증을 유발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진정한 소름끼치는 스토킹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줬던 <리카>의 10년 후 이야기 <리턴>. 전작을 읽으면서 머리털이 쭈뼛쭈뼛 서고 밤잠을 설치게 만들어서 두번 다시 공포 소설은 읽지 않으리라 생각했건만... 다시금 후속작을 집어든건 리카라는 기이한 여자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가 너무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무섭다무섭다 하면서도 끌리는 건 술술 넘어가는 페이지와 강한 흡입력으로 이야기를 끌어주는 작가의 힘도 큰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면서....다시금 책을 들게 된 것일 뿐. 전작을 읽지 않더라도 대충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다. 단지 리턴을 읽게 된 계기가 왜 리카라는 존재가 탄생했나~하는 궁금증도 있었는데.. 리턴에서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아직 출간되지 않은 3편 <리버스>에서는 그 이유가 나오지 않을까... 그러면 이 막장같은 책을 또 읽어야한다는 씁쓸함은 있지만 한편으로는 빨리 읽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리카가 두렵다.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기이한 무엇인가가. 감정이 없는, 또는 감정이 너무 많은 정체불명의 무엇인가가. 논리가 통하지 않는 무엇인가가. 한마디로 괴물이라고 하면 간단하지만, 리카는 그 단어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자기만의 독자적인 감정과 논리로 행동하는 리카. 어느 누구도 제지할 수 없는 여자. 리카가 얼마나 무서운 괴물인지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리턴」中 147p.

10년 전, 혼마 다카오라는 남자는 만남 사이트에서 호기심에 알게된 여자 리카에 의해 두 팔과 두 다리 그리고 눈,코, 혀까지 잘린채 납치되었던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탐정사무소를 운영하던 하라다는 혼마를 도우려다 리카에 의해 죽어버렸고 베테랑 형사 스기와라는 너무도 큰 충격으로 정신을 놓아버린채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다. 그 후 리카를 기억하는 이들이 점점 사라져갈 무렵 어느 날 등산을 하던 남성에게서 발견된 10년 전 사라졌던 혼마 다카오의 시신. 그리고 서서히 잊혀져갔던 리카가 다시 나타나게 된다. 전작에서는 리카의 기이한 스토킹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면 다시 돌아온 리턴에서는 스기와라의 곁을 지키며 콜드케이스 부서에서 여전히 리카의 뒤를 쫓던 나오미와 다른 형사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주로 리카의 뒤를 쫓는 형사들이 주된 이야기였고, 리카의 기이한 등장이 좀 적은 편이라 솔직히 전작에 비해 덜 소름끼치고 조금 덜 공포스러웠다. 또 혼자서는 리카를 절대 쫓을 수 없음을 다들 알고 있을텐데 단독으로 수사를 한다던지 하는 형사들이 답답했다. 전작이 너무 충격이었기에 이번 책도 너무 기대했던 탓인지 모르겠지만 약간의 실망감도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또다른 리카의 탄생을 암시하는 반전은 소름끼치긴 했다.

 

무더운 여름,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면 그 더위를 한방에 날려줄 공포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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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
이가라시 다카히사 지음, 이선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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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기분나쁜 소설이라니...여름엔 공포 스릴러 소설이 제격이라는 생각에 집어든 책 때문에 밤잠을 설치게 될 줄이야.

범죄의 유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어떤 범죄든 최악이니까 무슨 범죄가 최고로 나쁘다라고 할 수 없지만, 그중에서 찝찝하면서도 기분나쁜 범죄가 바로 스토킹이 아닐까 싶다. 가해자가 누군인지도 잘 모르면서 정신적인 고통과 함께 살인의 공포까지 온전히 느껴야하는 두려움까지. 국내에서 얼마전 영화로도 개봉했던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줬던 책 "아빠와 엄마와 딸의 10일간"의 저자 이가라시 다카히사의 데뷔작인 <리카>는 상상을 초월한 스토킹으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당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주인공 혼마 다카오는 아내와 딸이 있는 마흔이 넘은 중년의 회사원으로 컴퓨터에 능숙한 편은 아니었지만, 후배의 권유와 호기심으로 인해 우연히 당시 유행하던 만남 사이트에 접속하게 된다. 그는 그 사이트를 통해 모르는 여자들과 메일도 주고 받고 서로 만나기도 한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더 만나고 만남 사이트를 정리하려던 혼마는 자신을 간호사라고 소개한 리카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몇번의 메일을 통해 괜찮은 여자라는 호감이 생기게 되고 자신의 휴대폰번호까지 알려주게 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시작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순간부터 리카의 광기어린 스토킹이 시작된다. 시도때도 없이 걸려오는 리카의 전화, 잠깐 회의에 들어갔다 오면 수십통의 부재중 전화에 메세지까지. 왠지모를 두려움을 느끼게 된 혼마는 만남사이트도 정리하고  휴대폰 번호도 바꾸게 되지만 리카의 집착은 상상을 뛰어넘게 된다. 그 무서운 집착은 혼마 뿐 아니라 그의 가족에게까지 손을 뻗고, 그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 대학동기인 하라다와 베테랑 형사 스기와라도 혀를 내두른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어딘가에서 생긴 작은 틈이 시간이 지나면서 커지더니, 한계를 뛰어넘어 폭발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나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 듯했다. 단순한 악의(惡意)나 원한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에 있는 무엇인가에서 뿜어 나오는 것 같았다. 내가 두려운 건 리카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의미나 이유를 알면 웬만한 것은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무의식의 악의에는 대처할 도리가 없다. 내가 리카에게 느낀 건 그런 종류의 위협이었다.

 

「리카」中 119p.

 

사실 리카와 혼마는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데, 그녀의 집착은 이해되지 않을 만큼 엄청났다. 순간의 호기심으로 인해 혼마는 평범한 일상생활을 할 수도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냥 소설일 뿐이야~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도 소름끼칠정도로 무섭다. 거무틱틱한 피부에 표정도 없고 심한 악취까지 나는 바짝 마른 장신의 그녀. 사람이 아닌게 하는 의문까지 들게 만드는 리카가 어디선가 나타날것만 같은.. 처음에는 아내도 있고 딸도 있는 유부남이 다른 여자를 만나기 위해 만남 사이트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벌을 받은 것이다라고 생각했지만, 차츰 너무도 가혹한 벌을 받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스토킹이라는 무서운 범죄의 이야기이기에 더 소름끼쳤고 공포감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왜 리카가 광기어린 집착을 해야만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아서 더 찝찝함을 갖게 되었다. 어디선가 누간가를 지켜보고 있을 리카를 생각하니 머리털이 쭈뼛쭈뼛 서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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