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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
이가라시 다카히사 지음, 이선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12월
평점 :
이토록 기분나쁜 소설이라니...여름엔 공포 스릴러 소설이 제격이라는 생각에 집어든 책 때문에 밤잠을 설치게 될 줄이야.
범죄의 유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어떤 범죄든 최악이니까 무슨 범죄가 최고로 나쁘다라고 할 수 없지만, 그중에서 찝찝하면서도 기분나쁜 범죄가 바로 스토킹이 아닐까 싶다. 가해자가 누군인지도 잘 모르면서 정신적인 고통과 함께 살인의 공포까지 온전히 느껴야하는 두려움까지. 국내에서 얼마전 영화로도 개봉했던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줬던 책 "아빠와 엄마와 딸의 10일간"의 저자 이가라시 다카히사의 데뷔작인 <리카>는 상상을 초월한 스토킹으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당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주인공 혼마 다카오는 아내와 딸이 있는 마흔이 넘은 중년의 회사원으로 컴퓨터에 능숙한 편은 아니었지만, 후배의 권유와 호기심으로 인해 우연히 당시 유행하던 만남 사이트에 접속하게 된다. 그는 그 사이트를 통해 모르는 여자들과 메일도 주고 받고 서로 만나기도 한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더 만나고 만남 사이트를 정리하려던 혼마는 자신을 간호사라고 소개한 리카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몇번의 메일을 통해 괜찮은 여자라는 호감이 생기게 되고 자신의 휴대폰번호까지 알려주게 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시작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순간부터 리카의 광기어린 스토킹이 시작된다. 시도때도 없이 걸려오는 리카의 전화, 잠깐 회의에 들어갔다 오면 수십통의 부재중 전화에 메세지까지. 왠지모를 두려움을 느끼게 된 혼마는 만남사이트도 정리하고 휴대폰 번호도 바꾸게 되지만 리카의 집착은 상상을 뛰어넘게 된다. 그 무서운 집착은 혼마 뿐 아니라 그의 가족에게까지 손을 뻗고, 그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 대학동기인 하라다와 베테랑 형사 스기와라도 혀를 내두른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어딘가에서 생긴 작은 틈이 시간이 지나면서 커지더니, 한계를 뛰어넘어 폭발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나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 듯했다. 단순한 악의(惡意)나 원한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에 있는 무엇인가에서 뿜어 나오는 것 같았다. 내가 두려운 건 리카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의미나 이유를 알면 웬만한 것은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무의식의 악의에는 대처할 도리가 없다. 내가 리카에게 느낀 건 그런 종류의 위협이었다.
「리카」中 119p.
사실 리카와 혼마는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데, 그녀의 집착은 이해되지 않을 만큼 엄청났다. 순간의 호기심으로 인해 혼마는 평범한 일상생활을 할 수도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냥 소설일 뿐이야~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도 소름끼칠정도로 무섭다. 거무틱틱한 피부에 표정도 없고 심한 악취까지 나는 바짝 마른 장신의 그녀. 사람이 아닌게 하는 의문까지 들게 만드는 리카가 어디선가 나타날것만 같은.. 처음에는 아내도 있고 딸도 있는 유부남이 다른 여자를 만나기 위해 만남 사이트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벌을 받은 것이다라고 생각했지만, 차츰 너무도 가혹한 벌을 받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스토킹이라는 무서운 범죄의 이야기이기에 더 소름끼쳤고 공포감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왜 리카가 광기어린 집착을 해야만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아서 더 찝찝함을 갖게 되었다. 어디선가 누간가를 지켜보고 있을 리카를 생각하니 머리털이 쭈뼛쭈뼛 서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