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득 누군가의 정확한 모션에 의해 던져진 볼링공처럼 레일위로 쓸려내려가는 지구를 상상한다. 세계는 그처럼 레일을 비껴나거나 경로를 벗어나며, 흔들린 채로 미끄러져 들어왔을 것이다. 언제고 곧 쓰러질, 그리하여 오로지 쓰러질 일만 생의 목표로 하는 볼링핀처럼 나는 이제껏 척추를 세우고, 팔다리를 일자로 붙여 꼿꼿이 서 있기만 했던 것은 아닌지 새삼 부끄러워지는 마음 크다.
나는 이 세계에서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었고, 일 초 전에 숨쉬던 나는 일 초 후에 어디로 가는지 묻고 싶었다. 말하고 생각하는 내가 진짜 '나'인지 의심스러웠고, 나를 살게 하는 이 역시 정말 나란 주체가 맞는지 의아스러웠다. '숨'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내가 분명 여기 이렇게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해낼 수 있는지 나는 두려웠다.
나는 앞으로도 좀더 오랜 시간, 흔들릴 것임을 안다.
흔들리되, 내가 좀더 잘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게 만드는 이들이 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