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기,
내가 태어난 어두운 집 마루에 엄마가 앉아 있네.
엄마가 얼굴을 들고 나를 보네. 내가 이 집에서 태어날 때 할머니가 꿈을 꾸었다네. 누런 털이 빛나는 암소가 막 무릎을 펴고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네. 소가 힘을 쓰며 막 일어서려는 참에 태어난 아이이니 얼마나 기운이 넘치겠느냐며 이 아이 때문에 웃을 일이 많을 것이니 잘 거두라 했다네. 엄마가 파란 슬리퍼에 움푹 파인 내 발등을 들여다보네. 내 발등은 푹 파인 상처 속으로 뼈가 드러나 보이네. 엄마의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지네. 저 얼굴은 내가 죽은 아이를 낳았을 때 장롱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네. 내 새끼. 엄마가 양팔을 벌리네. 엄마가 방금 죽은 아이를 안듯이 나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네. 내 발에서 파란 슬리퍼를 벗기고 나의 두발을 엄마의 무릎으로 끌어올리네.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2. 이젠 당신을 놔줄 테요. 당신은 내 비밀이었네. 누구라도 나를 생각할 때 짐작조차 못할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네. 아무도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다고 알지 못해도 당신은 급물살 때마다 뗏목을 가져와 내가 그 물을 무사히 건너게 해주는 이였재. 나는 당신이 있어 좋았소. 행복할 때보다 불안할 때 당신을 찾아갈 수 있어서 나는 내 인생을 건너올 수 있었다는 그 말을 하려고 왔소. ……나는 이제 갈라요.

#3. 네가 울어대니 네 친할머니가 네 엄마보고 아기 운다고 빨리 젖을 물리라고 하더구나. 나오지도 않는 빈 젖을 물리는 니 에미를 보며 내가 신생아인 널 향해 눈을 흘겼어. 네 친할머니를 얼른 돌려보내고 네 에미 품에서 너를 뺏듯이 안아들고 네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리기까지 했재. 아기가 울면 친할머니는 아기 운다. 어서 젖 물려라, 하고, 외할머니는 저 애는 에미 힘들게 왜 저리 울어댄다냐……한다더니 나도 다를 게 없었단다.
배울 만큼 배우고 남이 부러워하는 능력도 가진 네가 왜 그리 꼬질꼬질 살고 있는지 보고 싶지가 않았고나. 착한 내 딸! 너는 닥친 상황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었는데 나는 네가 왜 그러고 사는지 때로 화가 날 때가 있었고나. 이제 걸음마를 뗀 막내까지 세 아이를 길러야 할 너를, 네 인생을. 그럴 때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김치를 담가 부쳐주는 거밖에 없다는 게 참 미련스럽게 느껴지곤 했다아. 네가 아이를 안고 시골집에 왔을 때, 신발을 벗으면서 어마, 내가 양말을 짝짝이로 신었네, 하고 웃을 적에 이 에민 가슴이 미어졌어야. 얼마나 정신없이 살면 그 깔끔하던 네가 양말도 제대로 짝 맞춰 신을 시간이 없나 싶어서.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말아라. 엄마는 네가 있어 기쁜 날이 많았으니
 

#4. 말이란 게 다 할 때가 있는 법인디……나는 평생 니 엄마한테 말을 안하거나 할 때를 놓치거나 알아주겄거니 하며 살었고나. 인자는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디 들을 사람이 없구나.

#5. 당신은 아내가 당신보다 더 오래 살기를 바라던 마음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나를 이제야 깨닫는다. 그 마음이 아내가 깊은 병에 걸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도. 바깥일을 보고 돌아오면 죽은 듯이 잠들어 있던 아내가 사실은 눈을 뜨기조차 힘들 만큼 머리가 아파 눈을 감고 있는 것이라는 걸 당신은 알고 있었다.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다. 언제부턴가 아내가 개밥을 주러 간다면서 개집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고 우물가로 향한다는 것을, 어딘가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가는 대문간에서 우두커니 서 있다 도로 방으로 돌아오기 일쑤라는 것을 당신은 알았다. 당신은 기진맥진한 듯 아내가 방으로 기다시피 들어와 겨우 베개를 찾아 베고 이마를 찡그린 채 드러눕는 것을 보기만 했다. 언제나 아픈 사람은 당신이었고 그런 당신을 보살피는 사람이 아내였다. 어쩌다가 아내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 당신은 나는 허리가 아프다고 한 사람이었다. 당신이 아프면 아내는 이마를 짚어보고 배를 쓸어보고 약국에서 약을 사오고 녹두죽을 끓이고 하였으나 당신은 약 지어다 먹으라고 하곤 그만이었다. 당신은 이제야 아내가 장에 탈이 나 며칠씩 입에 곡기를 끊을 때조차 따뜻한 물 한 대접 아내 앞에 가져다줘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6. 열일곱의 아내와 결혼한 이후로 오십년 동안 젊어서는 젊은 아내보다 늙어서는 늙은 아내보다 앞서 걸었던 당신이 그 빠른 걸음 때문에 일생이 어딘가로 굴러가 처박혀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일분도 걸리지 않았다. 젊은날부터 아내가 당신에게 했던 말들. 어딘가 함께 갈 때면 항상 걸음이 늦어 뒤처지곤 하던 아내는 늘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 채 당신을 뒤따르며 좀 천천히 가먼 좋겄네, 함께 가먼 좋겄네……무슨 급한 일 있소? 뒤에서 구시렁대었다. 마지못해 당신이 기다려주면 아내는 민망한지 웃으며 내 걸음이 너무 늦지라오? 했다.
미안한디……그래도 남들이 보믄 뭐라고 하겄소.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이 한 사람은 저만치 앞서서 가고 한 사람은 저 뒤에서 오믄 저이들은 옆에서 같이 걸어가고 싶지도 않을 만큼 서로 싫은 가비다 할 것 아니요. 남들한티 그리 보여서 좋을 거 뭐 있다요. 손잡고 가자고는 안할 것잉게 좀 천천히 가잖게요. 그러다가 나 잃어 버리믄 어짤라 그러시우.
당신은 아내가 마치 이리될 것을 알고나 한 소리처럼 여겨졌다. 스무살에 만나 오십년이 흘러 이 나이가 되는 동안 아내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게 좀 천천히 가자는 말이었다. 평생을 아내로부터 천천히 좀 가자는 말을 드으면서도 어째 그리 천천히 가주지 않았을까. 저 앞에 먼저 가서 기다려주는 일은 있었어도 아내가 원한 것, 서로 얘기를 나누며 나란히 걷는 것을 당신은 아내와 함께해본 적이 없었다.

당신은 아내를 잃고 나서 자신의 빠른 걸음걸이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터질 듯했다.

#7. 마당의 불을 켜고 얼른 헛간 평상 쪽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거기 누워 있었다. 마당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뛰어내려가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는 낮에 그랬던 것처럼 양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손을 이마에 얹고 잠들어 있었다. 
 맨발이었다. 추운지 열 발가락이 안으로 오므라들어 있었다.
소박한 밥상을 차려 저녁을 먹은 시간과 엄마와 함께 집을 사이에 두고 마당을 돌며 나눈 얘기들이 산산조각나는 느낌이었다. 11월의 새벽이었다. 이불을 가져와 엄마에게 덮어 주었다. 양말을 꺼내와 맨발에 신겨주었다. 그리고 엄마가 정신이 들 때까지 엄마 옆에 앉아 있었다.

#8. 니가 나한테 처음 해보게 한 것이 어디 이뿐이간? 너의 모든 게 나한티는 새세상인디. 너는 내게 뭐든 처음 해보게 했잖어. 배가 그리 부른 것도 처음이었구 젖도 처음 물려봤구. 너를 낳았을 때 내 나이가 꼭 지금 너였다. 눈도 안 뜨고 땀에 젖은 붉은 네 얼굴을 첨 봤을 적에……넘들은 첫애 낳구선 다들 놀랍구 기뻤다던디 난 슬펐던 것 같어. 이 갓난애를 내가 낳았나……이제 어째야 하나……왈칵 두렵기도 해서 첨엔 고물고물한 네 손가락을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했어야. 그렇게나 작은 손을 어찌나 꼭 쥐고 있던지. 하나하나 펴주면 방싯방싯 웃는 것이……하두 작아 자꾸 만지면 없어질 것두 같구. 내가 뭘 알았어야 말이지. 난중엔 나날이 니 손가락이 커지고 발가락이 커지는디 참 기뻤어야. 고단헐 때면 방으로 들어가서 누워 있는 니 작은 손가락을 펼쳐보군 했어. 발가락도 맨져보고. 그러구 나면 힘이 나곤 했어. 신발을 처음 신길 때 정말 신바람이 났었다. 니가 아장아장 걸어서 나한티 올 땐 어찌나 웃음이 터지는지 금은보화를 내 앞에 쏟아놔도 그같이 웃진 않았을 게다.

#9. 엄마는 상식적으로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까지도 다 해내며 살았던 것 같아. 그러느라 엄마는 텅텅 비어갔던 거야. 종내엔 자식들의 집 하나도 찾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된 거야.
 나는 엄마에게 좋은 딸이었나? 나는 내 아이들에게 엄마가 내게 해준 것처럼 할 수 있나. 한 가지는 알아. 나는 엄마같이 못해. 할 수도 없어. 나는 내 아이들 밥 먹이면서도 자주자주 귀찮아. 아이들이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거 같이 느껴져서 부담스러울 때도 있어.
이런 나를 깨달을 때마다 엄마는 어떻게 그리할 수 있었는지 엄마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가 우리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건 엄마 상황에서 그렇다고 쳐. 그런데 우리까지도 어떻게 엄마를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으로 여기며 지냈을까. 내가 엄마로 살면서도 이렇게 내 꿈이 많은데 내가 이렇게 나의 어린 시절을, 나의 소녀시절을, 나의 처녀시절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데 왜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을까. 엄마는 꿈을 펼쳐볼 기회도 없이 시대가 엄마 손에 쥐여준 가난하고 슬프고 혼자서 모든 것과 맞서고, 그리고 꼭 이겨나갈밖에 다른 길이 없는 아주 나쁜 패를 들고서도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서 몸과 마음을 바친 일생이었는데. 난 어떻게 엄마의 꿈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을까.
나는 엄마처럼 못 사는데 엄마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엄마가 옆에 있을 때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을까. 딸인 내가 이 지경이었는데 엄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고독했을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오로지 희생만 해야 했다니 그런 부당한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어.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가 아니라 단 몇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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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망설이는 진짜 이유가 뭘까? 평생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단번에 집어삼키고는 질려하고 싶지 않아서? 아니, 어쩌면, 넌 내게 끼니 같은 사람이 아니라, 외로울 때 꺼내서 야금야금 마시는 술이거나, 비 오는 날 창가에 서서 마시는 커피거나, 어린 시절이 그리울 때 먹는 아이스크림콘 같은 사람이었을지도 몰라. 그러나 술이나 커피, 아이스크림만 평생 먹으면서 살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런 걸 바로 중독이라고 하는 것일 테니까. 지금 내가 망설이는 건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2. 벌써 물리기 시작한 음식을, 나만 아직 좋다고 계속 같이 먹자고 우길 생각은 없다. 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같이 먹어줄 누군가를 내일 새로 만날 수도 있다. 가볍게 생각하고 싶다. 일생이 무너져내린다거나, 너 없으면 죽을 것 같다거나, 다시는 사랑 같은 것 못 할지도 모르겠다거나 하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 그건 거짓말이다. 이제 설거지를 해야 할 시간이다. 싫은 걸 나중으로 미룰 수는 있지만 안 할 수는 없다. 결국은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음악을 틀고, 팔을 걷고, 심호흡을 한번 하고, 쌓여 있는 그릇들을 씻기 시작했다.

#3. 습관이 되어버린다는 건 세상에서 제일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매일같이 반복되던 일이 어느 날 갑자기 멈추어질 때, 그것도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닌 일상적인 일들이 더이상 계속되지 않을 때의 공허감이 어떤 것인지를,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 지속된 연애가 끝난 후 비로소 알게 되었다.

#4. 사람들은 실연을 당하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한다. 혼자서 견뎌도 보고, 찾아가서 설득도 해보고, 자존심을 버려가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그러지 않는 경우는 그럴 가치가 없거나 그래도 소용없다는 걸 이미 알기 때문이다. 남은 일은 실연을 완료시키는 것밖에 없다.
이제 너는 나와 상관없고, 나는 혼자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5. 남자의 '사랑해'는 사랑의 시작이고 여자의 '사랑해'는 사랑의 완성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남자에게도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없다. 남자는 이 여자면 되겠다 싶은 어느 선만 넘으면 사랑한다고 말하고, 여자는 이 남자가 아니면 안 되는 어느 선에 도달하면 비로소 사랑한다고 말한다.
살아 있는 두 사람이 헤어지는 이유는 더이상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한 것은 사랑한 적조차 없다는 것을 깨닫거나, 도저히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경우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한 경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지지 않고 함께 가는 것이다.

#6. 사랑을, 이를테면 요리라고 생각한다면 처음부터 성급하게 요리할 필요는 없다. 있는 그대로 본래의 그 맛을 느끼고 아는 게 먼저다. 이건 무슨 맛일 거야, 라고 기대하고 그 방향으로 끌고 간다면 재료의 참맛을 충분히 살릴 수 없다. 요리에 신경을 써야 할 때는 본격적으로 연애가 시작되는 시점부터이다. 처음 데이트 약속을 정하는 순간부터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배려도 하면서 서로를 조절해나가야 한다. 거기까지는 아무 문제 없었다. 분명히 그랬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맛을 보고 간을 맞추는 그 시점에, 상만 차려서 내면 되는 바로 그때, 나는 다 된 요리를 망쳐버린 건 아니었을까. 혼자 끓어서 넘치도록 멍하니 있었거나, 다 끓지도 않았는데 속은 안 익고 겉만 익었는데 성급히 불에서 내려놓은 건 아니었을까. 결정적으로 요리솜씨를 발휘해야 하는 그 순간에 내가 멍하니 있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나는 너무 늦되다.

#7.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요리를 한다. 폼나게 푸짐하게 재깍재깍 신나게 요리하는 이도 있고, 별로 어렵지 않게 간단한 재료를 써서 손쉽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쓱싹 요리를 만들어내는 이도 있고, 차곡차곡 준비해서 라면 하나를 끓여도 그릇까지 제대로 세팅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도 있고, 요리하는 모습이 못 미덥고 완성된 요리도 그럴싸해 보이지는 않지만 먹어보면 의외로 참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이도 있고, 계란프라이도 겨우 하면서 영양을 꼼꼼히 따져 만드는 이유식에는 일가견이 있는 이도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과 그에 어울리는 인생이 있는 것처럼 요리도 그렇다. 무엇을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 같다.

#8. 사랑도 요리처럼 절대적이면 좋겠다. 요리는 잘하고 못하고 맛이 없고가 확연하다. 내 입맛에 딱 맞는, 그래서 평생을 먹어도 질리지 않고 먹을 때마다 행복해지는 그 하나, 똑같은 재료로 요리해도 날마다 새로운 그 하나를 나는 제대로 선택하고 온전히 가질 수 있을까. 이제 내 선택은 예전처럼 무작위도 광범위하지도 않다.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고르는 일이 한 가지를 가질 것인가 버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보다는 쉽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를 완전히 버릴 이유도 없다. 어떤 재료를 무슨 요리에 쓸 것인가를 결정하고 나면 다른 재료는 또다른 요리에 쓰면 된다. 익숙한 재료로, 늘 하던 대로 요리하는 건 재미없지 않은가. 어쩌면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택일 수도 있다. 재료의 선택, 방법의 선택, 순서의 선택, 시간의 선택...... 

#9. 요리는 갖가지 재료의 조화와 적절한 시간의 안배, 그리고 만만치 않은 정성이라는, 생각보다 까다롭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요리가 생각보다 까다로울 수도 있고, 너무너무 '있어 보이는' 요리도 사실 만들어보면 별게 아닐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어려운 요리가 나한테는 쉬울 수도 있고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해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욕심부리지 말고 차근차근 하다보면 어느새 내가 원하는 요리가 신기하리만치 맛있게 완성되어 있는 것처럼, 사랑 또한 언젠가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

#10. 연애도 사랑도 인생도 요리처럼 레시피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재료는 무엇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만약 재료 중에 없는 게 있으면 다른 것으로 대체하도 되지만 이것이 빠지면 요리가 안된다는 걸 명심하고, 처음에는 어떻게 해놓았다가 시간이 얼마쯤 지나면 어떻게 하고, 불 높이는 이렇게 조절하고, 재료는 이것부터 넣어야 하며, 뚜껑을 덮어둘 것인가 말 것인가, 혹은 조리시간은 어느 정도가 적당하며,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고, 어떤 그릇에 어떻게 담아서 내고, 먹을 때 이렇게 하면 더 맛있다,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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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사랑도 왔다 가는 것이겠으나, 누구에게나 '간다'는 동사가 아니라 '온다'는 동사가 먼저 마음에 박히던 날이 있었을 것이다. 사랑이 올 때의 그 압도적인 설렘이, 사랑이 갈 때의 그 처연한 시간에 대한 예측을 가로막아 눈멀고 귀 막히게 하는. 하지만 이제는 안다. 눈멀고 귀 막힌 듯 막무가내로 시작된 감정도 언젠가는 서늘하게 등 돌리며 멀어져갈 수 있음을. 그리고 어느새 내가 '간다'라는 동사의, 그 어쩔 수 없는 체념의 어조를 담담히 수용하는 사람이 되었음을. 올 때의 선택이 나 자신의 것이었으니 도무지 무엇도 힐난할 수 없음을.

#2. 사랑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분명히 '거는' 쪽이 더 아프다 그렇지만 '걸'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사랑이다
젊음의 날들이 미숙하면서도 아름답고, 암울하면서도 풋풋한 것은 언젠간 반드시 터져버리고 말리라는 예민한 긴장감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구름 위에 달콤한 풍선들을 띄워 멀리멀리 날려 보내기 위해서는 후우, 후우, 풍선 부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못 견디게 두렵다면 눈을 꼭 감아도 좋다. 위태로워 더 황홀한 그 설렘의 힘으로 나는 오늘을 살겠다. 명랑한 청춘의 사랑아, 마음껏 풍선을 불자. 날리자. 날려버리자. 저기, 시력으로 가늠할 수 없는 세상의 끝에 살며시 닿도록.
 

#3. '잘 헤어질 수 있는 남자를 만나라.'어떤 사람을 만나거든 잘 살펴봐. 그가 헤어질 때 정말 좋게 헤어질 사람인지를 말이야. 헤어짐을 예의 바르고 아쉽게 만들고 영원히 좋은 사람으로 기억나며 그 사람을 알았던 것이 내 인생에 분명 하나의 행운이었다고 생각되어질 그런 사람. 설사 둘이 어찌어찌한 일에 연루되어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하든, 서로에게 권태로워져 이별을 하든, 마음이 바뀌어서 이별을 하든, 그럴 때 정말 잘 헤어져 줄 사람인지 말이야.

#4. 엄마는 사랑에 몹시 미숙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하는 행동이 아니라, 그가 하는 말을 믿었고, 그래서 가끔, 정말일까? 사랑한다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나무라곤 했었지. 진정한 자존심은 자신에게 진실한 거야. 신기하게도 진심을 다한 사람은 상처 받지 않아. 후회도 별로 없어. 더 줄 것이 없이 다 주어버렸기 때문이지. 후회는 언제나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을 속인 사람의 몫이란다. 믿는다고 했지만 기실 마음 한구석으로 끊임없이 짙어졌던 의심의 그림자가 훗날 깊은 상처를 남긴단다. 그 비싼 돈과 그 아까운 시간과 그 소중한 감정을 낭비할 뿐, 자신의 삶에 어떤 성장도 이루어내지 못하는 거지. 더 많이 사랑할까봐 두려워하지 말아라. 믿으려면 진심으로, 그러나 천천히 믿어라.
다만, 그를 사랑하는 일이, 너를 사랑하는 일이 되어야 하고, 너의 성장의 방향과 일치해야 하고, 너의 일의 윤활유가 되어야 한다. 만일 그를 사랑하는 일이 너를 사랑하는 일을 방해하고 너의 성장을 해치고 너의 일을 막는다면 그건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그의 노예로 들어가고 싶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니까 말이야

#5. 너에게는 열정이 있니? 진정 심장을 태워도 좋을 만한 그런 열정이 있다면 너는 젊다. 그러나 네가 이력서와, 사람들이 이미 그렇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을 아픔 없이 긍정하고 만다면 너는 이미 늙거나 영원히 젊을 수 없을 지도 몰라. 사랑하는 딸, 도전하거라. 안주하고 싶은 네 자신과 맞서 싸우거라. 그러기 위해 너는 오로지 네 자신이어야 하고 또 끊임없이 사색하고 네 생각과 말과 행동의 배후를 묻고 또 읽어야 한다. 쌓아올린 네 건물이 어느 날 흔적도 없이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해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생각보다 말이야, 생은 길어. 슬픔으로 얼굴이 창백해졌던 네 아름다운 친구에게도 전해주렴.
'우리의 동경이 현세에서 이루어지지 않아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우리가 바라는 대로 사랑하지 않아도,
우리를 배반하고 신의 없게 굴어도'
삶은 어느 날 그것이 그래야만 했던 이유를 가만히 들려주게 될 거라고, 그날 너는 길을 걷다가 문득 가벼이 발걸음을 멈추고, 아하, 하고 작은 미소를 지을 수도 있다고. 그러니 두려워 말고 새로이 맑은 오늘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이야. 

#6. 상처 받을까 하는 두려움은 잠시 미뤄두자. 예방주사도 자국이 남는데 하물며 진심을 다하는 사랑이야 어떻게 되겠니. 사랑은 서로가 완전히 합일하고 싶은 욕망, 그래서 두 살은 얽히고 서로의 살이 서로를 파고들어 자라는 과정일 수도 있단다. 그러니 그것이 분리될 때 그 고통은 얼마나 크겠니? 내 살과 네 살이 구별되지 않고 뜯겨져 나가며 찢어지겠지. 비명을 지르고 안지르고는 너의 선택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픈 게 당연한 거야. 운명에 대해 승리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말을 말이야. 거대한 파도에 휩쓸린 배가 파도를 넘어가는 유일한 방법은 파도 자체를 부정하며 판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파도를 넘어 휘청대면서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비유를 하면 좀 이해가 될까.

#7. 사람의 일생에도 이런 날이 있단다. 마음의 한 곳으로 한 방향으로 불어대던 바람의 결이 바뀌는 그런 날. 그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겠지. 갑자기 누군가의 얼굴이 커피잔에도 둥실 떠오르고, 그 사람이 길거리 여기저기를 걸어 다니고 있으며, 울리지도 않는 전화벨을 들여다보며 진동으로 해놓았나 확인하는 그런 날도 있겠지. 나를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이 실은 나를 하찮은 존재로 이용하고 있다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고, 혹은 그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 여기고 있는 걸 느껴버리고 소름이 돋도록 자신이 싫어지는 날도 있겠지. 싫다고 비명을 지르고 싶지만, 이별의 시작이 한줄기 바람결처럼 두 사람 사이로 스며드는 날들이 있을 거고 말이야.

#8. 명심해라 딸,
어디든, 너를 부르는 곳으로 자유로이 떠나기 위해서는 네가 출석해야 하고 대답해야 하는 그보다 많은 날들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야. 매일 내딛는 한 발자국이 진짜 삶이라는 것을.
한밤중에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안정된 것이라고는 마음 하나뿐인 당신 당신의 삶은 분명 괴롭고 험난해 보이지만, 행복해 보입니다.

#9. 언젠가 어두운 모퉁이를 돌며, 앞날이 캄캄하다고 느낄 때, 세상의 모든 문들이 네 앞에서만 셔터를 내리고 있다고 느껴질 때, 모두 지정된 좌석표를 들고 있는데 너 혼자 임시 대기자 줄에 서 있다고 느껴질 때, 언뜻 네가 보았던 모든 희망과 믿음이 실은 환영이 아니었나 의심될 때,
너의 어린 시절의 운동회 날을 생각해. 그때 목이 터져라 너를 부르고 있었던 엄마의 목소리를,
네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엄마가 아니라면, 신 혹은 우주 혹은 절대자라고 이름을 바꾸어 부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겠지.
당신이 수없이 상처입고 방황하고 실패한 저를 언제나 응원할 것을 알고 있어서 저는 별로 두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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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진은 물끄러미 밥상을 내려다보았다. 하얀 사기 밥그릇에 소복하게 담긴 감자 섞인 밥에서 윤기가 흘렀다. 쌀뜨물에 된장을 풀고 냉이를 넣고 끓인 냉이토장국이 그 곁에 놓여 있다. 달래 속에 채 썬 무를 섞어 초간장으로 무친 달래무침과 고들빼기와 데친 푸른 두릅과 무생채와 묵은 김치 그리고 달걀옷을 입은 쑥전이 밥상 위에 놓여 있다. 대부분 봄이 온 땅에서 얻어진 것들이었다.
리진은 밥을 숟가락으로 퍼서 냉이토장국에 말았다. 여태 가만있더니 갑자기 밥을 서둘러 국에 퍽퍽 말고 있는 리진을 강연이 낯설게 바라보았다. 한 숟갈 떠서 먹어보던 리진이 밥이 목으로 다 넘어가기도 전에 또 한 숟가락을 떠먹었다. 서씨와 강연도 밥을 먹으려고 숟가락을 들다가 잠시 리진을 응시했다. 리진이 밥을 떠먹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천천히 먹어라그러다가 체하겠다, 라는 말을 뒤로 하고 서씨가 일어섰다. -한 그릇 더 떠오마입 안에 가득 냉이토장국과 밥이 들어 있어 리진이 말리지도 못한 사이 서씨는 벌써 방문을 열고 나갔다. 강연이 제 앞에 놓여 있던 국그릇을 리진 앞으로 옮겨놓았다. 그제야 리진은 입 안에 잔뜩 들어 있던 밥을 마저 삼키고 숟가락을 상에 내려놓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마음을 애잔하게 한다.

#2. 지금부터 나의 말을 잘 들으세요.
당신은 나에게 친절했습니다.
나에게 성실하였고 어쩌든 나를 놓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나에게 했던 약속들을 지키지 못했다 하여 괴로워도 말고 스스로 열정이 식었다 하여 자책도 마세요. 여태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없지만 그 옛날 당신은 이미 왕께서 허락한 나를 오래 기다려주었습니다. 내 몸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런 시간들이 필요 없었겠으나 당신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어요. 항상 그것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견디기 힘들어질 때면 나는 당신의 그 기다림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떠나는 당신에게 담담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신에게 애착이 없어서가 아니라 당신의 마음을 다 받았기 때문입니다. 갈 길이 다른 당신을 붙잡아 길을 막으면 우리는 여기에서 고인 물이 된다 여겼습니다.  
나는 당신의 나라에서 ‘소인’이 아니라 ‘나’로 살았으며 행복했습니다. 에펠탑을 잊어도 루브르 박물관을 잊어도 나는 파리 대로변의 활기차고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잊지 못할 겁니다. 뱅상이 꿈을 이뤄가는 모습을 보는 것, 수다스런 잔느가 사랑을 이루는 것을 보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플라사르 부인의 호의와 모파상 씨의 좌절과 냉소를 동시에 겪으며 나는 당신의 나라를 비로소 볼 수 있었습니다. 나의 힘으로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박애가 무엇인지, 나의 자유로 나의 삶을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고 깨달았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궁에서 지냈습니다. 나를 겹겹으로 에워싸고 있는 것들을 깨뜨리고 나를 느끼는 일은 설레지만 두렵고 심장이 뜨거워질 만큼 고통이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길린,나를 당신에게서 내려놓으세요. 사랑하는지 아닌지 이젠 알 수 없어졌다는 당신의 말을 나는 이해합니다. 오해하지 않습니다. 서운해하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나를 버릴 수는 없다, 고 했던 당신의 갈등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처음부터 그랬는걸요. 당신을 사랑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으면서도 당신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땐 내가 '소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떠나면서 내 머리를 빗겨주고 싶어했던 것을 거절한 것을 많이 후회했습니다. 당신이 내게 미련을 가질까봐 그랬지만 그 정도의 미련도 없다면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왜 그때는 그 생각을 못 했는지 어리석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신은 그리 많은 것을 내게 주었는데 나는 끝내 인색했습니다. 당신을 강자라 생각했고 나는 약자라 여겼습니다. 나도 모르게 당신은 프랑스이고 나는 조선이라 여기는 마음이 내 안에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이나 나나 우리는 남자와 여자였을 뿐이었는데.
길린,
나, 리진을 내려놓고 모쪼록 자유로우세요.
그래야 나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당신을 만나지 못해도 이따금 당신의 후두염이 염려되겠지요.
당신도 나를 만나지 못해도 이따금 내 머리를 빗기고 싶겠지요.
이것으로 우리는 충분하다 여깁니다.
1895년 6월 3일
조선에서 리진.

#3. 잠이 든 네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다니...... 꿈결 같다.
블랑 주교님을 따라 이 집에 처음 왔던 날이 생각난다.
궁의 나인 등에 업혀집에 돌아오다가 블랑 주교님과 나를 보고 커졌던 너의 눈.
잊었을까. 이 집에서 어머니가 물항아리에 더운 물을 붓고 목욕을 시켜주었지. 그 게 이 집에서의 첫 날이었어. 네가 있어서 다시 길을 떠나는 불랑 주교님을 따라가지 못했다.
네가 그랬지. 여기 살아......라고.
그때부터 여태 여기 살아......라고 말했던 너의 목소리를 품고 살았다. 
늘 무엇엔가 쫓겨다니듯 했던 아버지를 따라다니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마을의 연못에 아버지가 빠져 죽은 후 내겐 아버지가 남긴 피리만 들려 있었어. 그때는 날이 어두워지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날마다 찾아오는 밤을 어디서 보내야 하는지 몰랐어. 어느 집 짚더미가 쌓인 헛간이나 불기가 남아 있는 아궁이 옆에서 잘 수 있는 날은 그나마 좋은 날이었지.
그런 내게 너는 그랬어. 여기 살아......라고 
은방울,어젯밤으로 나는......되었다. 모든 것이 되었어. 곁에서 네 일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안타까울 뿐. 네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어도 네 곁에 있으려 했지만 바닷길을 따라 갈 수가 없었다. 뿐이냐, 다시 조선에 돌아온 너를 지켜줄 힘도 없었다. 그것이 사무칠 뿐,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고작 대금을 불어주는 일뿐이었다.
은방울, 이보다 더 힘들었던 날들을 견주어 생각해보며 살아갈 힘을 얻길 고대한다. 한 가지, 어떤 이야기가 들려도 나를 찾아나서려고 하지 마라. 나는 청국에 가는 것이니. 나를 위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마라. 어렵겠지만 꼭 그렇게 해주어. 그것이 나를 위한 길이니.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 들면 들수록 나는 나빠질 뿐이니.

#4. 혼자 있는 사람의 뒷모습엔 하지 못한 말이 씌어 있다.
희망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일이 희망을 갖는 일보다 더 힘겹다.
어떤 사람에게 사랑은 투쟁이다.
그리운 것은 눈을 감아야만 보인다.
변하지 않는 것은 마음을 애잔하게 한다.
너를 사랑하는 마음을 어디에다 견주려 하나 그래볼수록 이 세상이 좁아 마땅히 견줄 수 있는 것을 찾아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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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별한 여자가 아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참고 양보해야 할 뚜렷한 주관도 없고, 다수결의 원칙에도 잘 따른다. 나는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당찬 구석도 없고, 불행하지 않아도 불행하다고 불평할 만큼 욕심도 없다. 나는 이만하면 성격도 좋고,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게 살아질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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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위기가 닥쳐도 무조건 이겨내겠다는 말을 더 이상 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고, 내가 인내하고 감내할 수 있는 위기라면 얼마든지 의연하게 대처해나고 싶을 뿐. 나는 예전의 나보다 조금 더 강해지고 솔직해졌다. 그것이 나를 퍽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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