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사랑도 왔다 가는 것이겠으나, 누구에게나 '간다'는 동사가 아니라 '온다'는 동사가 먼저 마음에 박히던 날이 있었을 것이다. 사랑이 올 때의 그 압도적인 설렘이, 사랑이 갈 때의 그 처연한 시간에 대한 예측을 가로막아 눈멀고 귀 막히게 하는. 하지만 이제는 안다. 눈멀고 귀 막힌 듯 막무가내로 시작된 감정도 언젠가는 서늘하게 등 돌리며 멀어져갈 수 있음을. 그리고 어느새 내가 '간다'라는 동사의, 그 어쩔 수 없는 체념의 어조를 담담히 수용하는 사람이 되었음을. 올 때의 선택이 나 자신의 것이었으니 도무지 무엇도 힐난할 수 없음을.

#2. 사랑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분명히 '거는' 쪽이 더 아프다 그렇지만 '걸'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사랑이다
젊음의 날들이 미숙하면서도 아름답고, 암울하면서도 풋풋한 것은 언젠간 반드시 터져버리고 말리라는 예민한 긴장감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구름 위에 달콤한 풍선들을 띄워 멀리멀리 날려 보내기 위해서는 후우, 후우, 풍선 부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못 견디게 두렵다면 눈을 꼭 감아도 좋다. 위태로워 더 황홀한 그 설렘의 힘으로 나는 오늘을 살겠다. 명랑한 청춘의 사랑아, 마음껏 풍선을 불자. 날리자. 날려버리자. 저기, 시력으로 가늠할 수 없는 세상의 끝에 살며시 닿도록.
 

#3. '잘 헤어질 수 있는 남자를 만나라.'어떤 사람을 만나거든 잘 살펴봐. 그가 헤어질 때 정말 좋게 헤어질 사람인지를 말이야. 헤어짐을 예의 바르고 아쉽게 만들고 영원히 좋은 사람으로 기억나며 그 사람을 알았던 것이 내 인생에 분명 하나의 행운이었다고 생각되어질 그런 사람. 설사 둘이 어찌어찌한 일에 연루되어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하든, 서로에게 권태로워져 이별을 하든, 마음이 바뀌어서 이별을 하든, 그럴 때 정말 잘 헤어져 줄 사람인지 말이야.

#4. 엄마는 사랑에 몹시 미숙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하는 행동이 아니라, 그가 하는 말을 믿었고, 그래서 가끔, 정말일까? 사랑한다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나무라곤 했었지. 진정한 자존심은 자신에게 진실한 거야. 신기하게도 진심을 다한 사람은 상처 받지 않아. 후회도 별로 없어. 더 줄 것이 없이 다 주어버렸기 때문이지. 후회는 언제나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을 속인 사람의 몫이란다. 믿는다고 했지만 기실 마음 한구석으로 끊임없이 짙어졌던 의심의 그림자가 훗날 깊은 상처를 남긴단다. 그 비싼 돈과 그 아까운 시간과 그 소중한 감정을 낭비할 뿐, 자신의 삶에 어떤 성장도 이루어내지 못하는 거지. 더 많이 사랑할까봐 두려워하지 말아라. 믿으려면 진심으로, 그러나 천천히 믿어라.
다만, 그를 사랑하는 일이, 너를 사랑하는 일이 되어야 하고, 너의 성장의 방향과 일치해야 하고, 너의 일의 윤활유가 되어야 한다. 만일 그를 사랑하는 일이 너를 사랑하는 일을 방해하고 너의 성장을 해치고 너의 일을 막는다면 그건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그의 노예로 들어가고 싶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니까 말이야

#5. 너에게는 열정이 있니? 진정 심장을 태워도 좋을 만한 그런 열정이 있다면 너는 젊다. 그러나 네가 이력서와, 사람들이 이미 그렇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을 아픔 없이 긍정하고 만다면 너는 이미 늙거나 영원히 젊을 수 없을 지도 몰라. 사랑하는 딸, 도전하거라. 안주하고 싶은 네 자신과 맞서 싸우거라. 그러기 위해 너는 오로지 네 자신이어야 하고 또 끊임없이 사색하고 네 생각과 말과 행동의 배후를 묻고 또 읽어야 한다. 쌓아올린 네 건물이 어느 날 흔적도 없이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해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생각보다 말이야, 생은 길어. 슬픔으로 얼굴이 창백해졌던 네 아름다운 친구에게도 전해주렴.
'우리의 동경이 현세에서 이루어지지 않아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우리가 바라는 대로 사랑하지 않아도,
우리를 배반하고 신의 없게 굴어도'
삶은 어느 날 그것이 그래야만 했던 이유를 가만히 들려주게 될 거라고, 그날 너는 길을 걷다가 문득 가벼이 발걸음을 멈추고, 아하, 하고 작은 미소를 지을 수도 있다고. 그러니 두려워 말고 새로이 맑은 오늘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이야. 

#6. 상처 받을까 하는 두려움은 잠시 미뤄두자. 예방주사도 자국이 남는데 하물며 진심을 다하는 사랑이야 어떻게 되겠니. 사랑은 서로가 완전히 합일하고 싶은 욕망, 그래서 두 살은 얽히고 서로의 살이 서로를 파고들어 자라는 과정일 수도 있단다. 그러니 그것이 분리될 때 그 고통은 얼마나 크겠니? 내 살과 네 살이 구별되지 않고 뜯겨져 나가며 찢어지겠지. 비명을 지르고 안지르고는 너의 선택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픈 게 당연한 거야. 운명에 대해 승리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말을 말이야. 거대한 파도에 휩쓸린 배가 파도를 넘어가는 유일한 방법은 파도 자체를 부정하며 판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파도를 넘어 휘청대면서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비유를 하면 좀 이해가 될까.

#7. 사람의 일생에도 이런 날이 있단다. 마음의 한 곳으로 한 방향으로 불어대던 바람의 결이 바뀌는 그런 날. 그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겠지. 갑자기 누군가의 얼굴이 커피잔에도 둥실 떠오르고, 그 사람이 길거리 여기저기를 걸어 다니고 있으며, 울리지도 않는 전화벨을 들여다보며 진동으로 해놓았나 확인하는 그런 날도 있겠지. 나를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이 실은 나를 하찮은 존재로 이용하고 있다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고, 혹은 그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 여기고 있는 걸 느껴버리고 소름이 돋도록 자신이 싫어지는 날도 있겠지. 싫다고 비명을 지르고 싶지만, 이별의 시작이 한줄기 바람결처럼 두 사람 사이로 스며드는 날들이 있을 거고 말이야.

#8. 명심해라 딸,
어디든, 너를 부르는 곳으로 자유로이 떠나기 위해서는 네가 출석해야 하고 대답해야 하는 그보다 많은 날들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야. 매일 내딛는 한 발자국이 진짜 삶이라는 것을.
한밤중에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안정된 것이라고는 마음 하나뿐인 당신 당신의 삶은 분명 괴롭고 험난해 보이지만, 행복해 보입니다.

#9. 언젠가 어두운 모퉁이를 돌며, 앞날이 캄캄하다고 느낄 때, 세상의 모든 문들이 네 앞에서만 셔터를 내리고 있다고 느껴질 때, 모두 지정된 좌석표를 들고 있는데 너 혼자 임시 대기자 줄에 서 있다고 느껴질 때, 언뜻 네가 보았던 모든 희망과 믿음이 실은 환영이 아니었나 의심될 때,
너의 어린 시절의 운동회 날을 생각해. 그때 목이 터져라 너를 부르고 있었던 엄마의 목소리를,
네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엄마가 아니라면, 신 혹은 우주 혹은 절대자라고 이름을 바꾸어 부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겠지.
당신이 수없이 상처입고 방황하고 실패한 저를 언제나 응원할 것을 알고 있어서 저는 별로 두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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