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본받아 (리커버 양장 에디션) - 라틴어 원전 완역판
토마스 아 켐피스 지음, 박문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완전한 설명서가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생활을 심화시켜 주는 일련의 명상들이라고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27).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신입 수도사들의 영성 훈련을 위해 쓴 책이라고 합니다. 책을 보니 자연스럽게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오스왈드 챔버스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과 비교가 되었습니다. <고백록>이 자신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며 영성을 훈련한 책이라면,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다른 사람을 이끌기 위한 가르침이고, 하루에 한 주제씩 묵상하기 좋게 재편집된 <주님의 나의 최고봉>처럼 <그리스도를 본받아>도 짧막한 교훈으로 단락이 나누어져 있어 빠른 속도로 통독해나가기 보다 한 단락 속에 오래 머물며 깊은 묵상을 하도록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영성"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습니다. 교회용어사전은 영성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거듭난 모든 자녀들에게 주어진 영적인 성품을 말한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은총을 경험하는 자에게서 나타나는 자연스럽고 경건한 성품이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 속에서 성령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영적인 사람의 속성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를 통해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온전한 사랑, 말씀에 기초한 도덕적 통찰과 능력, 그리고 하나님의 깊은 신비에 대한 신령한 지식과 지혜를 겸비하게 된다.」


"신속하게 지나가 버릴 일들에 대해서 연연해하면서, 영원한 기쁨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38).

예배도 분주하게, 기도도 분주하게 해치우는 현대인의 신앙양태를 보며 '영성을 잃어버린 세대'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어보니 성도들의 영성은 언제나 세속적인 도전을 받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성을 애써 훈련하지 않으면, 세상(탐욕과 욕망과 교만)이 영혼 안에 꽉 들어찬 상태로 헛되어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는 허울뿐인 종교인으로 전락하게 될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음을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영성의 시작은 예수님의 삶을 깊이 묵상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예수님의 삶을 생생하게 묵상할 수 있도록 인도합니다. "당신이 행하였던 신앙 고백을 기억하고, 당신의 눈 앞에 선명히 보이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의 모습을 그려 보십시오. 하나님의 길로 행한 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점점 더 닮아가기 위하여 애쓰지 않고 있다면, 예수님의 삶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서,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것이 마땅합니다"(112).


"그러므로 나는 어떤 것들에 대한 심오한 정의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내 심령 안에서 회개가 일어나 실제로 낮아져서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38).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지식을 더하는 책이 아닙니다. 삶을 변화시키는 생각의 힘을 키우는 책입니다. 예수님으로 우리의 생각을 가득 채우는 책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는 시간입니다. 기독교 고전 목록에서 그 이름이 빠지지 않는 책이라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낯익은 제목이기도 한데, 정작 이 책을 정독한 사람은 몇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CH북스에서 발간한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라틴어 원전 완역판이라는 데도 의의가 있지만, 무엇보다 책이 참 예쁩니다. 빠른 속도로 통독하지 않고 옆에 두고 오래 묵상해야 하는 책인데, 표지도 양장이라 튼튼합니다. 2018년은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천천히 묵상하며 영성훈련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검증되지 않은 영성훈련교재가 왜 그토록 위험한가 하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어준 문장을 아래에 인용해봅니다. 역으로 이것은 이 책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기 전에, 다음의 문장을 깊이 묵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오늘의 헌신이란 영적으로 유익하고 좋은 것이 아니라 단지 자연적으로 좋은 것에 대한 신앙, 즉 친절, 예의, 청결함 등등에 대한 신앙으로 변질될 수 있다. 즉 저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르치게 되며 이로 인해 기독교 신앙에 대한 혼란이 야기되는 것이다"(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