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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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완득이는 실재하고 똥주는 판타지인 세상을 살며!


’똥주’라고 불리는 선생이 있다. 그리고 "똥주 좀 죽여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완득이가 있다. 완득이의 기도는 "이번 주에 안 죽여주면 나 또 옵니다"라고 협박할 만큼 간절하다. 똥주는 완득이의 조폭 스승, 담임이다.

완득이의 아버지는 난쟁이라고 불릴 만큼 키가 작다. 사람들은 그를 장애인이라고 한다. 직업도 불안정하다. 아버지가 가난하니 완득이도 가난하다. 핏줄은 아니지만 같이 살고 있는 삼촌은 허우대는 멀쩡한데 정신이 좀 모자란다. 어머니는 기억에도 없다. 완득이가 살고 있는 옥탑방, 그 옆집 옥탑방에 거짓말처럼 똥주가 살고 있다. 

완득이는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 동네에서 산다. 그곳은 세상으로부터 숨어 있기에 딱 좋은 동네였다. 왜 숨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고, 사실은 너무 오래 숨어 있어서 두렵기 시작했는데, 그저 숨는 것밖에 몰라 계속 숨어 있었는데, 그런 완득이는 똥주가 찾아냈다. 어떤 때는 아직 숨지도 못했는데 "거기, 도완득!" 하고 외쳤다(233). 툭 하면 "야, 도완득!"을 부르는 똥주는 수급대상자인 완득에게 수급품을 챙겨주며 이런 가르침을 준다. "왜? 너도 쪽팔려? 새끼야, 가난한 게 쪽팔린 게 아니라, 굶어서 죽는 게 쪽팔린 거야."(11-12)

똥주는 매사에 이런 식이다. 몰라도 될 걸 알아버린 인간들이 얼마나 너저분하게 구는 세상인데, 남의 약점을 가지고 즐거워하는 싸가지 없는 놈들이 지천에 깔렸는데, 그렇게 태어나서 그런 모습일 수밖에 없는 아버지에게 사람들이 어떤 시선을 던지는지도 모르고, 발톱이 빠지고 인대가 늘어나면서까지 연습한 진정한 춤꾼을 꿈꾼 아버지를 변두리 카바레로 내몰고 웃음거리고 전락시키는 ’남’들에게 "사실이 그런 건 그냥 그렇다고 말해버리는 게 속 편하다"고 가르치는 진짜 속편한 선생이다. "한 번, 한 번이 쪽팔린 거야. 싸가지 없는 놈들이야 남의 약점 가지고 계속 놀려먹는다만, 그런 놈들은 상대 안 하면 돼. 니가 속에 숨겨놓으려니까, 너 대신 누가 그걸 들추면 상처가 되는 거야. 상처 되기 싫으면 그냥 그렇다고 니 입으로 먼저 말해버려." "니 나이 때는 그 뭐가 좇나게 쪽팔린데, 나중에 나이 먹으면 쪽팔려 한 게 더 쪽팔려져."(137)

똥주는 그렇게 싫어도 싫다는 말 못 하고, 아파도 아프다는 안 하고 그냥 다 속에 담아 두고 사는 완득이는 불러냈다. 누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하는 완득이는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 누구와 대화해본 적이 없어 혼자 떠들 수 있는 교회를 찾았는데, 하나님은 똥주를 죽여주는 대신 그에게 똥주를 보내주셨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숨어 일하는 똥주는 완득이에게 엄마까지 찾아준다. 가난한 나라의 사람이, 잘사는 나라의 가난한 사람과 결혼해 여전히 가난하게 살며, 똑같이 가난한 사람이면서 아버지 나라가 그분 나라보다 조금 더 잘산다는 이유로 큰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한국인으로 귀화했는데도 다른 한국인에게는 여전히 외국인 노동자 취급을 받는 그분, 그분이 바로 완득이의 어머니다.

똥주가 만들어내는 기적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똥주는 여태 세상 뒤에 숨어 있던 완득이가 자기가 하고 싶은 거, 제일 잘 할 수 있는 거, 운동을 하면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고, 눈치없는 완득이와 정윤하를 은근히 연결시키주고, 투자자를 자처하며 완득이 아버지에게 ’댄스 교습소’까지 차려준다.

높기만 한 지하철 손잡이를 마음 편하게 잡지도 못하는 가난한 난쟁이 아버지와 가난한 나라에서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팔려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버려진 듯 홀로 살아가는 완득이는 ’똥주’가 아니였다면, 어쩌면 그렇게 평생 ’탈출구 없는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떳떳한 요구조차 떳떳하게 하지 못하게 요구하도록 하는 이 사회에서 완득이에게 ’똥주’는 유일한 비상구이다. 

똥주의 관심은 서로 피해 안 주고 조용히 살다 죽는 게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완득이를 노력하게 만든다. "아버지와 내가 가지고 있던 열등감. 이 열등감이 아버지를 키웠을 테고 이제 나도 키울 것이다. 열등감 이 녀석, 은근히 사람 노력하게 만든다.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영 나쁜 것 같지도 않은 게 딱 똥주다"(204).

완득이는 자신의 가족을 ’사람’으로 대우해주는 똥주에게서 아마도 희망의 빛을 보았을게다. 그 빛은 완득이에게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만든다. "대단한 거 하나 없는 내 인생, 그렇게 대충 살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거창하고 대단하지 않아도 좋다. 작은 하루가 모여 큰 하루가 된다. 평범하지만 단단하고 꽉 찬 하루하루를 꿰어 훗날 근사한 인생 목걸이로 완성할 것이다"(233-234).

정신 없이 웃다가 소리없이 울면서 책을 덮었다. 2009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완득이>를 벼르고 벼르다 이제야 만났다. 날새는 줄 모르고 빨려 들어가듯 읽었다. 김려령 작가의 이름을 이제야 알아보는 것이 미안할 정도이다. 모처럼 후련하게 웃었는데, 이상하게 가슴에는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완득이’는 실제적인데,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캐릭터 우리의 "똥주" 선생님이 내겐 ’판타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똥주"가 실재한다면 남의 약점을 가지고 즐거워 하는 싸가지 없는 놈들이 지천에 널린 너저분한 세상이라도 열등감을 동력 삼아 열심히 살아볼 희망이 좀 생길 것도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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