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억 백만 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
나스다 준 지음, 양윤옥 옮김 / 좋은생각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별닦기가 필요하신 분~! (사랑을 시작하는 그대를 위해)

도리스 데이의 <Que sera, sera, 케세라세라> 또는 <Somebody loves me, 누군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 아니면 코미디언 하모니스트(독일 그룹)의 <Liebeslieid, 사랑의 노래>를 담은 LP판을 레코드 위에 올려놓고 선율을 오래도록 음미하고 싶어진다. 사랑에 관한 두 가지 전설을 기억하며 말이다.

때로 어떤 사랑은 ’전설’이 된다. 동화처럼 예쁜 표지를 입은 <일억백만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는 사랑에 관한 두 가지 예쁜 전설을 들려준다. 

첫 번째 이야기는 ’사랑나무의 전설’이다. 발트 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그중 한 호수의 숲에 그 떡갈나무가 서 있다고 한다. 이 떡깔나무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사랑의 큐피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떡깔나무의 빈 구멍은 숲지기의 딸과 한 청년이 사랑의 서신을 교환하는 우편함이 되어 주었다. 숲지기의 반대로 서로 만날 수 없었던 숲지기의 딸과 청년은 떡깔나무의 빈 구멍을 통해 서신을 교환함으로써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이들의 사랑은 숲지기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숲 속 교회에서 결혼식을 알리는 종이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이 나무를 ’신랑 떡갈나무’라고 불렀고, 사랑의 성취를 바라는 젊은이들의 성지가 되었다. 나무 속 구멍에는 숲지기의 딸과 청년처럼 행복한 만남을 기원하는 수많은 편지들이 던져졌다. 그 숫자가 지나치게 많아지자 마을에서는 떡갈나무에 전용 주소를 만들고 우편함을 내걸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일억 백만 광년 너머에서 찾아온 토끼’의 전설이다. 이 토끼 이야기는 이 책의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이 사랑나무 전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방송극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바로 이 소설의 제목이면서, 저자가 들려주려는 사랑 이야기인 것이다.

’사랑나무 전설’에 등장하는 청년은 어느 날, 머나먼 우주 일억 백만 광년 너머에서 훌쩍 찾아와 벚나무 고목에서 살게 된 성스러운 토끼 신선과 만났다. 부츠에 작업복 반바지를 입고, 한 손에는 양동이를 들었고, 초록색 브러시를 어깨에 메고, 키는 겨우 15센티 정도밖에 안 되는 토끼는 밤하늘의 별을 닦는 일을 한다고 했다. 마음에 담아둔 사람이 있을 때, 밤하늘의 별을 하나 고르면 그 토끼가 별을 닦아 주는 것이다. 만약 토끼 신선이 별을 닦았을 때, 별이 반짝이기 시작하면 사랑은 이루어지는 거라고. 별이 반짝이면 상대도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청년은 밤하늘의 별을 하나 골라 그 토끼에게 닦아 달라 부탁했다. 그러나 그 별은 이미 닦아버린 별이었다. 바로 그 별닦이 토끼가 직접 골라 닦은 별이었다. 토끼의 별은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지만, 그녀가 자신을 싫어할 거라 생각한 토끼는 별닦이가 되어 일억 백만 광년 너머의 작은 혹성에서 이곳 지구에 와버리고 말았다. 별이 반짝인다는 건 그녀가 지금도 그를 기다린다는 뜻이지만, 별닦이 토끼가 자신의 별에 돌아갈 수 있는 건 자그마치 삼십만 광년 뒤이다. 그때까지는 "별닦이가 필요하신 분~!"을 찾아 별을 닦아 주어야 한다.


<일억백만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는 성장소설 같은 책이다. 십대들에게 들려주는 사랑이야기라고나 할까. 책 안에는 다양한 모양의 사랑이 등장한다. 보통 처음 시작되는 사랑은 ’풋풋하고 싱그러운 풋사과’에 많이 비유되는데, 나는 주인공 쇼타(중학교 3학년)와 케이의 사랑을 ’설 익은 단감’에 비유하고 싶어진다. 왜냐하면 이 책 속에는 아름답지만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홍시’처럼 아슬아슬한 사랑이 있고, 잘 익은 ’단감’처럼 단단하게 여문 사랑이 있고, ’곶감’처럼 세월의 깊이를 간직한 깊은 사랑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케이의 아버지 사스케는 ’기다리는 사랑’을, 사스케의 아내 구미는 ’사랑의 복수’를, 별을 닦았지만 반짝이지 않았던 요코는 ’위험한 사랑’을, 독일에서 일본인 아버지를 찾아온 마리는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여대를 정년퇴직한 노교수 아다치 선생은 ’용서하는 사랑’을, 그의 아들 도시히코는 ’실패한 사랑의 방황’을, 단팥죽집 콩 할머니는 아흔의 나이가 되어도 ’변치 않는 사랑’을, 커피전문점 암젤의 선대 마스터는 ’지켜주는 사랑’을 하고 있다. 여러 모양의 사랑이 그렇게 세월을 따라 흘러가고 있다.

주인공 쇼타는 이들을 통해 사랑을 알아가고, 조금씩 성장해간다. 이제 막 시작되는 쇼타의 사랑은 어떤 빛깔일까. 사랑을 할 때 우리는, "내가 저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실보다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도 나를 사랑해줄까?"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별닦이 토끼의 증언처럼, 유감스럽게도 설레는 마음으로 별을 닦지만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엇갈리는 사랑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사랑하게 되는 인연을 ’기적’이라 이름하지 않는가.

그러나 별을 닦을 때의 설레임은 짧다. 더 중요한 것은 계속 그 기적을 이어가는 것일게다. 별닦이는 자신의 반짝이는 별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사랑이란 변덕스러워 언제까지나 반짝일 거라는 보증이 없어. 저 별도 이따금 흐려지곤 해. 그럴 때마다 내가 급하게 닦아 두지. 그러면 다시 처음처럼 빛나기 때문에 그나마 마음이 놓이는 거야."(175)

우리는 한 번 사랑의 별이 빛나기 시작하면, 이따금 별을 닦아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 것 같다. 사랑을 하게 될 쇼타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별이 저절로 반짝이기를 바라지 말고 이따금 별을 닦듯이 사랑도 가꿔야 한다는 한마디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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