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서브 로사 1 - 로마인의 피 로마 서브 로사 1
스티븐 세일러 지음, 박웅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문학으로 배우는 로마 역사


요즘 소설을 통해 역사를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문적인 역사서보다 재밌게 읽으면서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게다가 작가의 시선을 통한 문제의식까지 겸하여 읽을 수 있어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도 키울 수 있다. 물론, 작가의 문제의식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으려면 그 시대 역사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이 일정 수준 담보되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서이다. 

<로마 서브 로사(Roma Sub Rosa)>는 가히 ’로마 전문가'라 할 만한 ’스티븐 세일러’의 지적 역사추리소설이다. 평생을 로마에 매료되어 살며 로마만 파고들었다는 그는 문학 작가로서도 세계적인 거장이라는 평판이 자자하다. <로마 서브 로사>는 총 10권으로 이루어진 시리즈물인데, 1991년부터 시작하여 2008년까지 장장 18년에 걸쳐 집필된 대작이다. 성공을 예상하지 못하고 단 2000부가 발행된 초판은 꼭 수집해야 할 희귀본이 되어 감정가가 800달러를 상회할 만큼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로마 서브 로사> 시리즈 중 1권인 <로마인의 피>는 격동의 시대로 알려진 BC 1세기 공화정 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할 만큼 전성기를 구가했던 로마의 팽창이 극에 달했던 시대이다. 이 시기를 격동의 시대라고 하는 것은 거대한 로마의 운영권을 두고 쟁쟁한 인물들이 각축을 벌였기 때문이다. 책은 시작에 앞서 ’로마사 연표’(BC 80년 술라 독재관 재임기 전후)를 참고로 수록해주고 있는데, 나와 같이 로마 역사에 자신이 없는 독자라면 당시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사건과 인물의 정보를 미리 알아보는 것도 책읽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변론가로 잘 알려진 ’키케로’와 공포정치를 편 독재관 ’술라’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먼저 알아본 뒤 책을 읽었다.

역사 소설과 미스테리 소설의 접목이 돋보이는 <로마 서브 로사>는 가공인물인 ’고르디아누스’를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어느 더운 봄날 아침에 '더듬이'라는 별명을 가진 탐정 ’고르디아누스’에게 젊은 청년 노예가 주인의 심부름으로 사건을 의뢰하러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노예를 보낸 주인은 후일 고대 로마를 이끌어갈 강력한 인물이지만, 지금은 그저 20대 햇병아리 변호사에 지나지 않는 키케로이다. 키케로는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피고인의 변호를 맡았다. 풋내기 변호사와 사설 탐정이라고 할 수 있는 ’더듬이’ 고르디아누스는 고대 로마에서도 최악의 범죄로 간주되었던 존속살해 사건에 뛰어들게 되는데, 진실에 다가갈수록 검은 권력의 그림자가 서서히 정체를 드러낸다.

작가에 의해 생명을 부여받은 가공의 인물 ’고르디아누스’를 따라 고대 로마를 여행하다 보면, 고대 로마의 노예제도, 빈민과 상류층의 일상생활, 예절, 사법제도, 가부장적인 사회질서, 장례문화에 이르기까지 저절로 학습이 된다. 작가는 ’로마’의 모든 것을 폭로하듯 밑바닥에서부터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훑어준다. 긴박하게 전개되는 이야기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작가의 설명이 기가 막히다. 이런 식이다. 

< "그들은 십중팔구 일반적인 방식으로 보복할 거야. ’피에는 피’지. 자기들 손으로 그 일을 처리하고 싶지 않다면 다들 쓰는 방법을 동원할 거야. 그걸 대신해줄 폭력배를 하나 고용하는 거지. (...) 그러면 새 희생자의 가족은 그 폭력배와 경쟁관계에 있는 폭력배를 고용하여 보복할 것이고, 계속 그렇게 가는 거지, 티로. 그게 로마의 정의야." 
(...)
"변호사를 살 능력이 없는 로마인들에게는 그게 정의라는 말이네. (...) 저 싸움을 중지시켜 달라고 자네가 청을 넣어볼 만한 데는 하나도 없어." 
(...)
로마에는 경찰이 없다. 성 안에서 질서를 유지할 공적인 무장 조직이 없는 것이다. 가끔 폭력에 짜증이 난 원로원 의원이 그런 부대를 창설하고자 제안한다. 그러면 즉시 사방에서 반응이 돌아온다. "그러면 누가 그 경찰을 소유하지?"(50-51). >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위대한 로마'를 조명한 한 단면이었다면(미화되었다는 의심도 살짝 드는), 스티븐 세일러의 <로마 서브 로사>는 로마의 악취까지 적나라한 실체를 조명한 전방위 투시라고 하고 싶다. 1권만 읽고서도 감히 그런 평가를 내리고 싶을 만큼 로마의 구석구석이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로마인 이야기>를 재밌게 읽은 독자라면 더더욱 읽어보기를 권한다. 

다만, 대화의 어투나 문체가 마치 사극에서처럼 고풍스러운 맛을 지녔다면 고대 로마로 여행하는 맛이 더 살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은 물론이고, 시대와 공간적인 장벽까지 지닌 독자가 그런 분위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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