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매달린 원숭이
헤르만 요세프 초헤 지음, 박병화 옮김 / 열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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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 시대의 7가지 죄악, 쾌락, 탐식, 무관심, 시기심, 분노, 자만심, 탐욕의 재조명!


현대인들에게 ’죄’는 어떤 의미일까? 죄인의 인권도 법으로 보호되어야 한다는 요즘 세상에는 인간의 선한 양심이 아니라 ’법’의 규정에 의해 죄를 구분하는 경계가 나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가 팽배할수록 전통적인 ’죄’의 경계가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왜 죄인가?’ 다시 묻고 의심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중세 기독교가 대죄라고 명명한 일곱 가지 죄악을 현시대의 의미에 따라 새롭게 조명해주고 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나에게는 여기 기록된 ’죄’의 정체가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지만, 현대인들에게 이 책의 주장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중세 기독교가 대죄라고 명명한 7가지 악덕(seven deadly sins)은 다소 추상적인 개념으로 비춰진다. "쾌락, 탐식, 무관심, 시기심, 분노, 자만심, 탐욕!" 저자인 초헤 신부는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이런 행동만으로 인간이 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충동에 아무런 저항도 없이 반복적으로 굴복하며 사악한 습관이 자라는 것에 맞서지 않고, 이것들이 영혼에 자리를 잡아 성격으로 굳어져 결국 사람을 이기고 지배할 때 비로소 죄가 성립되는 것이다"(p.9)라고 설명한다. 설명 역시 다소 추상적이면서 종교적이지만, 꼽씹을수록 ’죄’의 실체와 작동 원리에 대한 중요한 통찰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신학, 철학, 경제학, 사회학에 걸친 방대한 지식을 섭렵한 저자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날카롭게 쪼개어, 죄가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까지 발전하여 개인과 사회에 상호적인 영향을 끼치며 작동하는 원리를 정밀하게 포착해주고 있다. 현대인들이 숭배하고 추구하며 사는 ’성공’, ’자본’, ’이윤’이 어떻게 죄로 연결되며 사회에 어떤 병폐를 일으키고 있는지 보여주는 설명이 흥미롭다. 성공과 쾌락과 음란으로 연결되는 고리는 요즘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골프 천재 타이거 우즈가 자꾸 연상되어 씁쓸했다. 또한 여기 명명된 7가지 죄악이 어떻게 ’관계’를 파괴시키고, 결국 자신을 파괴시켜가는지를 보며, 우리의 삶이 마치 커다란 죄의 덫 안에 갇혀 있는 듯한 숨막힘이 느껴진다. 

초헤 신부는 7가지 죄악에 대항하는 7가지 미덕(겸양, 금욕, 부동심, 기쁨의 나눔, 열정, 순종, 양보)를 제시한다. 그러나 아무리 죄에 대한 각성이 깊고, 선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다진다 해도 우리의 본성을 거스려 죄의 지배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이다.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죄의 세력이 얼마나 강한지 깨닫게 될 뿐이고, 아무리 의지를 다져도 무기력하게 죄의 세력에 굴복하게 되고 마는 그 쓰라리고 처절한 심정을 내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이 제기하는 가장 심각한 ’죄’의 문제는 악습과 악덕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반복적으로 행하고 방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혼’이 흔해지고 있는 세태 때문에 교회에서도 ’이혼’에 대한 설교를 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흔한 일’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혼’이라는 사회적 행위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이 뭍히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죄의 실체가 아니라, 그것에 저항하지 않고, 맞서지 않고 ’반복’하는 것이다. 비록 끊임없이 실패할지라도, 다시 넘어질지라도, 적극적으로 선을 행함으로 죄의 세력에 대항해야 하는 것이 우리 삶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마땅히 싸워야 할 싸움이며, 신이 우리에게 원하는 최선이리라. 저자 초헤 신부는 "내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에 매달리는 것이 바로 그 싸움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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