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를 얻은 글재주 - 고대 중국 문인들의 선구자적 삶과 창작혼
류소천 지음, 박성희 옮김 / 북스넛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저자가 말하고픈 핵심 교훈이 '들어가는 글' 안에 농축되어 있다. <천하를 얻은 글재주>, 제목을 보며 참으로 탐나는 글재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가 아홉 명의 문인을 소개하며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그들의 글'만큼이나 빛나고 치열했던 '그들의 삶'이다. 

우선은 <천하를 얻은 글재주>를 가진 고대 문인들이 곧 정치가의 삶을 살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고대 문인들은 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들이 글을 읽고 썼던 목적은 벼슬에 나아가 자신의 이상을 정치적으로 실현하는 것이었다. 이는 서양의 문인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중국 문인들만의 특징이다. 그러므로 중국 문인의 지혜란 곧 정치하는 지혜였다." 역으로 말하면, 정치가들은 모두 인문적 소양을 갖추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한 이 책의 저자는 "문인은 철인(哲人)과 다르다"고 말한다(172).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이나 특수한 상황에 글쟁이들의 삶을 덮거나 누를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단다. <천하를 얻은 글재주>에서 정치가로서 그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있는 아홉 문인들은 자신의 공명을 위해 원칙을 버리는 변절이나 타협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저자는 초나라의 영도가 함락되자 멱라강에 몸을 던져 자살한 굴원의 죽음을 두고 중국사에서 가장 위대한 자살이였다고 평한다.

글재주 때문에 영달을 누릴 기회가 빈번히 있었지만, 도덕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기꺼이 그 자리를 거절할 수 있는 고결함, <천하를 얻은 글재주>에서 저자가 문인들의 삶을 재조명하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그 정점은 바로 그 고결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홉 명의 문인이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을 '군자의 도의'가 아니면 언제든지 천하를 미련없이 버릴 수 있었던 욕망을 초월한 도덕심에서 찾는다. <천하를 얻은 글재주>는 버림으로써 얻게 되는 역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당대에 천하를 움켜쥔 듯 무소불위의 권력을 시도 때도 없이 휘두르던 사람들이 역사에 이름자 하나 올리지 못한 것을 보면, 2천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대중의 사그라지지 않는 추앙을 받고 있는 고대 문인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천하를 얻은' 사람들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문인의 삶과 오늘날 개혁개방의 구호 아래 경제가 놀랄 만한 성장을 이루면서 부플대로 부픈 욕망을 대조시킨다. 굶주린 맹수처럼 돈을 향해 달려드는 중국인들의 허기는 무서울 정도이다. 세계적인 부호들 명단에 중국인들이 차이하는 비율이 무섭게 증가하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는 중국인들의 전화 사기 사건만 보더라도 국경을 넘어서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집어 삼키고자 하는 그들의 허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해볼 수 있다. 자국을 걱정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타국민인 나의 마음에 큰 울림을 전해주는 것은 우리의 삶도 그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리라.

"가치적 이성은 도구적 이성의 위협을 받은 지 이미 오래며, 이제는 비이성적 욕망만이 어지럽게 춤추고 있다. 돈이 생의 목적이 된 지금, 욕망으로 우리의 영성은 피폐해졌다. 욕망이 클수록 감사할 것은 줄어들고, 감사가 없으니 시흥도 저만치 달아나고 말았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더 이상 시적 감동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