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니
펄 벅 지음, 이지오 옮김 / 길산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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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정체성을 가진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


이야기는 중국 땅에 정착한 유대 이민자 가정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피오니'는 어렸을 때, 유대인 가정에 팔려온 중국인 하녀이다. <피오니>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성장한 중국 여인(피오니)과 유대인 남자(주인집 아들 데이빗)의 사랑 이야기이다. 이들은 한 집안에서 성장했지만, 타고난 인종, 신분, 신앙, 풍습까지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다.

<피오니>를 읽으며 첫 번째로 흥미롭게 다가온 것은, 유대인과 중국인의 만남이다. 신앙공동체인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차이나타운을 형성하여 사는 중국인들도 세계 어디에 살든지 자신의 색깔을 지켜가는 민족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세계 어느 곳으로 이주하든지 공동체를 형성하여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사는 대표적인 두 민족이 만난다면? <피오니>를 읽어보면, 중국인들은 낯선 유대인들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유대인들은 중국인들과 '어울려' 살면서도 동시에 신앙을 토대로 한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산다. <피오니>는 유대인의 대표적인 민족 절기인 '유월절' 절기 행사를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중국인 하녀들이 능숙하게 시중드는 모습에는 문화(풍습)와 종교에 대한 어떠한 거부감이나 갈등도 없다. 문화를 비롯한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모습이 문화상대주의를 논하는 현대인들보다 훨씬 성숙해보인다. 선교사였던 부모님을 따라 3살 때 중국으로 건너가 성인으로 성장하고, 중국인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펄 벅의 증언이니 역사적 진실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두 번째로 흥미로운 것은, 피오니의 사랑 방식이다. 피오니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처럼 자란 데이빗을 마음에 품어 왔지만, 성장할수록 신분의 벽을 절감한다. 게다가 중국 땅에 살지만 유대인으로서 민족의 정체성을 고수하고자 하는 데이빗의 어머니는 랍비의 딸 리아를 가족(며느리)으로 맞이들이고 싶어 하고, 데이빗은 아리따운 중국 여인 쿠에일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피오니는 이러한 모든 장벽 앞에 좌절하기보다, 현실을 인정하고 자기만의 사랑 방식을 채택한다.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기 위해, 가장 안전하게 그의 곁에 머물기 위해 계략을 실행하고, 또 스스로 비구니의 삶을 선택하는 피오니. 현실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순응적이라 할 수 있고, (나에게는 조금 황당한 방식이지만) 자기만의 사랑 방식을 채택한다는 점에서는 도전적이라고 할 수 있다. (피오니와 리아의 태도를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있는데, 리아는 이러한 피오니와 상당히 대조적인 캐릭터이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마치 펄 벅의 성격이 이러하리라 짐작하게 해주듯이, 차분하지만 느슨하지 않게, 세밀하지만 지루하게 않게 써내려간 <피오니>는 인간과 사회, 종교가 서로 얽히고 어우러져 한 시대를 엮어낸 세밀한 지점을 정밀하게 포착해 보여준다. '피오니'에게 연민을 느끼지만, 그녀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녀가 선택한 결코 쉽지 않고 가볍지 않은 사랑의 방식은 마음에 오래도록 깊은 울림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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