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 지음, 최인자 옮김, 제인 오스틴 / 해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좀비는 결혼(제도)을 상징한다?


결혼의 조건으로 '사랑'이 대두되기 시작한 역사가 굉장히 짧다는 것은 내게 충격이었다. 훨씬 오랫 동안 인간은 경제적인 목적으로 결혼이라는 제도를 이용해왔다는 학자들의 글을 읽고 적잖이 당황했다. 인간이 오래 전부터 '사랑'을 노래해 온 이유가 '사랑'만 가지고는 두 남녀가 결합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을까? 경제적인 목적으로 결혼을 하는 것은 비단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또한 결혼의 조건으로 '경제적인 것'을 따지는 것은 제3세계 여성들처럼 가난한 사람들만이 아니다. 어쩌면 '경제적인 조건'에 더욱 집착하는 쪽은 가진 것을 '과시'하기 좋아하는 가진 자들일지도 모른다. 특권의식을 견고하게 해주는 구별짓기와 과시 욕구가 생존의 욕구보다 힘이 쎈 경우를 여러 차례 보아왔다.

<오만과 편견>에서 세상은 둘로 나뉜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남자와 여자, 교양 있는 자와 천박한 자. 이 이분법적 세상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만나 충돌을 일으킨다. 부모가 자녀의 결혼에 간섭하는 것은 요즘 드라마에서도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부모-자녀의 갈등요소이다. 자녀의 결혼에 작동하는 부모의 권력은 역사가 아무리 오래 되어도 여전하며, 특히 가진 자들 사이에서 더 강력하게 발휘된다. <오만과 편견>은 그러한 이분법적 세상의 충돌 사이에서 작동하는 인간의 오만과 편견과 허영심과 이중성을 예리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오만과 편견>의 원작을 읽지 않은 나와 같은 독자는 원작에 새로 투입된 '좀비'의 존재를 염두에 두고 원작과 비교하며 읽을 수 있는 재미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세계적인 고전에 뜬금 없이 '좀비'를 투입시킨 저자의 대범함을 평가할 안목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러나 <오만과 편견>의 영화을 본 독자로서 감히 평가를 해보자면, 일단은 원작의 플롯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제목이나 표지로 봤을 때는 '좀비'가 이야기의 중심에 서서 원작의 어느 일면을 새롭게 재해석했을까 기대를 가지게 한다. 그러나 내가 봤을 때, '좀비'는 주요리의 사이드 메뉴처럼 곁들여져 있을 뿐이다. 원작의 주제의식이나 분위기를 생각했을 때, '좀비'의 등장은 좀처럼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저자의 의도와 좀비의 정체를 파악하는 해결점은, 좀비의 상징성일 것이다. 

책은 친절하게도 '독자분들을 위한 독서 가이드'를 실어주고 있다. 독서 가이드를 읽어 보면, 살아 있는 시체가 되어 인간을 공격하는 좀비의 투입에 대한 일부 비평가들의 주장은 이렇다. "끊임없이 당신의 생명력을 빨아먹으면서도 당장 죽지 않는 영원한 저주로서의" 좀비는 바로 '결혼'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꽤 그럴 듯한 해석이다. 그러나 한가지 의문은, 좀비의 존재가 그러한 결혼을 상징한다면, 그에 맞서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진정한 '정체성'을 보여주는가 하는 것이다. 여성성이 제거된 전사로 다시 태어났지만, 전투 기술만 익혔을 뿐, 그녀의 내면은 원작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좀비의 상징성과 투입의 의도까지는 기발했을지 모르지만, 좀비는 지나치게 이야기의 주변에 머물러 있다. 좀비의 활약과 그에 맞서는 인간 내면에 대한 날카롭고 집중적인 해부가 없다. '스펙터클', '생명을 담보로 한 흥미진진한 결투'라고 하기에는 뭔가 싱겁다. (오프라 윈프리가 조금 오버한 듯한 느낌!)

'성스럽게'(聖) 태어났으나 인간에 의해 타락해버린 결혼 제도에 대한 고찰! 이 책을 읽고 내가 얻은 유익이다. 영화를 봤을 때는 매력적인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의 로맨스에 온통 정신이 팔렸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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