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개오의 고백
E.K. 베일리 지음, 문지혁 옮김 / 가치창조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보고싶어 보고싶어 예수님 얼굴 / 그렇지만 키가 작아 보이지 않아 / 삭개오는 엉금엉금 올라갔어요 / 뽕나무 가지 위로 올라갔어요 / 잘보인다 잘보인다 예수님 얼굴 / 사랑많은 그 얼굴이 잘도 보인다 / 삭개오는 불이나케 내려왔어요 / 예수님을 제 집으로 모시었어요"

어릴 때 찬양으로 배운 ’삭개오’라는 성경 인물의 첫인상은 매우 밝고 경쾌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알게 된 ’삭개오’라는 이름의 세리는 역시 세리였던 ’마태’와 함께 깊고 깊은 고독과 어둠 속에서 신음했던 불행한 과거를 가진 남자였다.

예수님 당시 세리라는 직업은 로마 정부를 일하는 매국노 취급을 받는 매우 모욕적인 직업이었다고 한다. 일제 식민 치하에서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친일파와 비슷하다고 할까. 당시 세리들은 세금을 거둬들이면서 수수료를 마음대로 붙일 수 있었기 때문에 동포들을 희생시켜 부를 쌓는 부정한 사기꾼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유대 공동체에게 모멸의 대상이었던 '세리'의 사회적 신분의 자리는 '문둥병자'와 동등했다. 부정한 자 취급을 받아서 성전이나 회당의 출입이 금지되었고, 제물을 바치지지도 못했다. 사회적으로 심한 냉대를 당하며 증오의 대상이었던 세리는 아마도 그래서 더욱 재물에 집착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학자들은 재물은 많으나 멸시의 대상이었던 세리들은 죄인과 창기들과 어울리며 더욱 부패와 타락을 늪에 빠져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성경에서도 세리와 짝하는 친구들을 보면 그들의 삶의 자리를 추측해볼 수 있다. "많은 세리와 죄인들"(마 9:10)이 친구로 등장하며,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를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 18:17)고 가르치며, "세리들과 창기들"(마 21:31)을 동등하게 취급하고 있다.

<삭개오의 고백>은 이러한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기까기의 과정을 작가적인 상상력으로 재구성해낸 책이다. 작가는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기까지 겪었던 그의 내면을 탐구하며, 그의 이야기를 한편의 감동적이고 예쁜 동화로 만들어냈다.

이야기는 작가의 다음과 같은 물음에서 출발한다. "무엇이 삭개오로 하여금 뽕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게 했는지 궁금했다. 잘 차려 입고, 많이 배웠으며, 멀쩡히 잘 살고 있던 부자가 대낮에, 그것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무 위에 기어 올라갔다는 것은 정말로 이상해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른 채 가지들을 붙잡고 나무 사이를 기어서 말이다. 무엇이 삭개오에게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을 견디게 만든 것일까? 그리고 평소의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돌발행동을 하게 만든 것일까?"

세금 징수원이었던 삭개오는 세금을 걷기 위해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모든 소망이 끊어지고 살아갈 힘을 잃은 네 사람을 만나게 된다. 눈이 먼 거지,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 귀신 들려 무덤 사이에 기거하는 남편을 둔 아내, 아들이 죽어 장사 지내러 가는 과부.
그러나 한 달 후, 세금을 받기 위해 그들을 다시 찾아갔을 때, 삭개오는 너무도 극적이고 놀라운 변화를 목격한다.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삭개오에게 그들은 한 목소리로 이렇게 고백한다. "예수님을 만났지요!"

자신의 마을에 그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들은 삭개오는 내달렸다. 그의 마음속은 새로운 기대로 끓어올랐다. "예수님은 어쩌면 이런 텅 빈 내 영혼을 채워주실 수 있을지도 몰라."

<삭개오의 고백>은 예수님을 만나기까지 삭개오의 마음속에 일어났던 변화를 추적해내었다. 그리고 드디어 삭개오와 예수님이 만나는 그 극적인 순간을 포착해낸다. 삭개오에게 예수님이 건낸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삭개오야 어서(속히) 내려오너라!" 작가는 삭개오가 올라갔던 나무의 의미를 은유적으로 해석해준다. 삭개오에게 향했던 예수님의 음성은 곧 나를 향해 다시 다가오며, 측량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를 우리에게 선물한다.

짧지만 긴 감동이 있는 <삭개오의 고백>은 교회에서 연극으로 공연되어도 좋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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