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목소리 - 그림이 들려주는 슬프고 에로틱한 이야기
사이드 지음, 이동준 옮김 / 아트북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그림을 소재로 한 또다른 문학작품, 사이드의 글은 그대로 시가 되고 수필이 된다.

가끔 명화라고 하는데 어째서 이 그림이 명화인지 납득하지 어려울 때가 많다.
<그림이 말하다>를 읽으면서 어떤 명화들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그림이 말하다>는 저자가 첫머리에 인용한 장 뤽 고다르의 명언처럼,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림에게 목소리가 있다면 아마도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까 상상하며 읽었다.

<그림이 말하다>의 저자 사이 사이드(Said)의 소개가 독특하다.
사이드는 ’시인’, ’인권운동가’라고 한다.
작품 활동을 하는 화가이거나,
미술사나 미술이론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미술 평론가가 아닐까 짐작했는데,
시인이라고 한다.
시인이라는 힌트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의 글은 제목도, 내용도 상당히 시적이다.
그래서 어떤 내용들은 그림보다 난해하게 읽히기도 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나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 그림과 글을 연결시키며
어떤 그림 이야기는 몇 번씩 반복해서 읽기도 했다.
(파울 클레의 <육교의 혁명>,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복잡한 예감> 등이 특히 더 어려웠다.)

<그림이 말하다>는 크게 2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그림이 말하다’,
2부는 ’화가가 말하다’이다.
1부 ’그림이 말하다’는 그림 자체의 의미에 중점을 두었다면,
2부 ’화가가 말하다’는 화가 입장에서 화가의 입을 빌려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읽어낸다.
글과 글 사이에 ’화가가 말해주지 않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그림과 화가에 얽힌 역사적인 사실을 설명해주어 그림에 관한 이해를 돕는다.

그러나 <그림이 말하다>는 그림을 해석하는 책이 아니다.
그림을 감상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도 아니다.
책은 이렇게 소개한다.
"미술 작품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연상되는 주관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작품 속 인물이나 풍경, 또는 색채들이 스스로 말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해주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앞표지 날개에서)

그렇다.
저자는 화가에 대한 정보, 시대 배경이나 화법 등 미술 작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즉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그것을 주관적으로 다시 해석해낸다.
그러므로 사이드의 글은 그림의 해석과 감상에서 머물지 않고
그 자체로 하나의 고유한 문학작품이 된다.
"사이드의 글은 미술과 문학이 새로운 지평에서 만남으로써 탄생한 
새로운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그 모자 때문에 우리가 더 쓸쓸해 보여"라는 제목으로 재탄생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두 남녀의 대화를 통해 다른 인물의 동작이 의미하는 바,
출입문이 보이지 않는 카페, 카페 안의 밝은 조명, 그리고 텅빈 거리가 의미하는 바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들려준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그의 상상력은
실제 대본을 읽고 있는 느낌을 준다.

때로는 시 같고, 때로는 난해나 연극 같고, 때로는 역사적 서술 같은 글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화가와 그림의 시대적 배경, 그리고 색체의 의미를 배울 수 있어 유익하다.
또 화가에 대한 정보나 색감에 관한 이론은 어디서나 배울 수 있지만,
다양한 작품을 한꺼번에 감상하며, 
그림에 담긴 에피소드나 그림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시대적인 배경을 
"이야기체"로 설명해주는 것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고 싶다.

어쩌면 나만이 그렇게 느낄 수도 있는데,
저자 사이드가 시인이자 인권운동가라는 점에서
저자가 고른 작품에는 대체로 암울한 사회적 배경을 가졌거나,
인권과 관련하여 관심의 대상이 되어온 등장인물과 그것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대상이 많다.
창녀, 매독에 걸리지 않으려고 오줌 싸는 군인, 쇠고랑에 매인 두 마리 원숭이,
떠돌이 유대인, 빛이 없는 도시, 저항하는 풍경 등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시인이자 인권운동가인 저자 사이드가 작품을 고른 기준은 무엇일까를 염두에 두고
그림의 목소리와 화가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본다면 
저자의 의도에 더 가까이 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왜냐하면 <그림의 목소리>는 단지 그림에 관한 지식과 감상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그림을 매개로 저자만의 독특한 목소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통해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덧입혀져 있다고 생각한다.

신선하고 재밌게 읽으며, 그림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시각 하나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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