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
신진혜 지음 / 창해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선덕여왕]에 관한 책이 쏟아져나오고 있나보다. 
출판사도 저자도 여럿 검색된다.
내가 읽은 [선덕여왕]은 창해에서 단권으로 펴낸 신진혜 작가의 것이다.
선덕여왕에 관한 많은 신간 중에 내가 읽게 된 책의 저자가 
현재 대학교 한국사화과에 재학 중에 1985년생 작가라는 것을 알고 놀라기도 했지만,
솔직히 조금 실망했다.

그러나 이런 실망감은 금새 무색해졌다. 
나는 빠르게 신진혜 작가의 ’선덕여왕’에게 빠져들어갔다.
[선덕여왕]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즉, 선덕여왕이 직접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잊혀진’ 존재였던 ’덕만’공주에 초점이 맞춰진다.
딸이었고, 그것도 차녀였던 덕만공주는 
"만백성의 한숨과 어마마마의 눈물을 싸안고 세상에" 태어났다. 
차녀 덕만에게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그녀가 한반도 최초로 여왕이 되는 과정을 재밌게(!) 읽어가며 나는 작가에게 미안했다.
나이가 어린 작가라는 이유로 책을 읽기도 전에 ’초보’ 취급을 하고,
뭔가 미심쩍은 마음으로 책에 대한 권위를 의심한 나의 태도가,
한반도 최초로 여왕의 자리에 오른 ’선덕여왕’이 평생 맞서 싸워야 했던 
바로 그 편협함과 편견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역사에 대해 불만이 많은 사람이다.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대한민국의 영토가 지금보다 훨씬 넓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아쉬움만으로 당나라와 손을 잡고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행히 신진혜 작가의 [선덕여왕]은 역사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국제 정세와 정치적 음모와 같은 이야기보다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역사적 사실들, 여왕으로서의 고뇌, 
여자이기에 가질 수 있는 정치적 사상과 같은 것들에"(p.337)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인지 [선덕여왕]은 진중하고 무거운 대하(!) 역사소설이라기보다,
내게 [선덕여왕]은 잘 만들어진 ’트랜디 드라마’처럼 읽힌다.
실제 이름은 좀 촌스럽지만 선덕여왕의 남편으로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배려하는 사랑을 하는 ’용춘’은 나의 이상형에 가깝다.
(김춘수의 출생의 비밀이 드러날 때는 용춘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사랑했지만 이루어질 수 없었던 비향과 선덕여왕의 가혹한 운명 또한 아름답기만 하다.

모란꽃의 그림만 보고도 향기가 없는 것을 알아맞춘 유명한 일화를 읽는 즐거움도 있지만, 
그보다 내가 더 주목한 것은 선덕여왕의 난적으로 대립구조를 형성하는 
’미실궁주’라는 인물이다.
MBC 드라마에서 고현정 씨가 이 배역을 맡았다고 해서 더 눈이 가진 했지만,
선덕여왕만큼이나 흥미로운 인물이다.
선덕여왕이 통일신라의 기반을 놓은 여왕이라면,
미실궁주는 "신라에 여왕이라는 꽃이 피어날 수 있는 옥토"를 가꾼 패기만만한 여장부이다.
여왕의 터를 다졌던 미실궁주도 역사적으로 재조명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평범한 아녀자가 아닌, 제왕의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에 
여인으로서의 소소한 행복을 거두고 ’대의’를 위해서 살아야 했던 선덕여왕.
그녀에게 가장 부러운 점은 바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능력이다.
그녀는 사람을 얻는 데 탁월했다.
누구도 스스로 적으로 만들지 않았고, 스승 원광이 멀리해야 한다면 경계한 ’유신’조차
자신의 충신으로 만드는 비범함이 있었다.
위대한 지도자의 첫째 조건을 보는 듯 하다.
원수를 사랑으로 녹여 친구를 만들라고 했던 링컨처럼, 
선덕여왕은 진실로 사람을 사랑하고, 인재를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한 제왕이다.

삼국통일이라는 완성을 향한 대망과 탐욕으로 많은 것을 해치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완성보다는 시작에 의미를 두고 터를 닦는 과정에 집중할 줄 알았던
선덕여왕의 통찰력과 리더십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 
재밌게 읽은 [선덕여왕]의 또다른 수확이다.
그 시작에 초점을 맞추어준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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