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의 가격 - 예술품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지적 미스터리 소설
가도이 요시노부 지음, 현정수 옮김 / 창해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초등학생 시절, 방과 후 곧장 도서관으로 나를 달려가게 만들었던 책이 있었다.
한 번 책을 붙잡으면 한시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던,
처음 책 읽는 즐거움을 내게 가르쳐주었던 그때 그 책과 그 인물, 
명탐정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
사실 그 셜록 홈즈와 왓슨에 필적할만한 두 인물을 다시 만났다고 몹시 호들갑을 떨고 싶었는데,
역자가 후기에서 "홈스와 왓슨 같은 느낌으로 가미나가와 사사키가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모습은 참으로 흥미진진하여"라고 선수를 치는 바람에 김이 좀 샜다.

순정만화를 연상시키는 표지에 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멋진 두 남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나는 이 중에 안경을 쓰고 앉아 있는 쪽을 천재적 재능을 타고난 ’가미나가’로
(책 속에서 가미나가는 금테 안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턱을 괴고 서 있는 쪽을 지적인 ’사사키’로 상상하며 책을 읽었다.
지적인 매력을 물씬 풍기는 샤프한 이미지의 두 남자 주인공은
"예술품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지적 미스터리 소설"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미술 컨설턴트로 일하는 ’가미나가’는 셜록 홈즈에 견줄만한 명석한 두뇌와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그림이 진짜인지 가까인지를 구분할 때, 혀를 사용한다.
"만약 가짜라면, 본 순간 쓴을 느낍니다. 잡초를 우려낸 것 같은 역겨운 쓴맛이죠.
진품이라면 단맛을 느낍니다."(p. 9)
단기대학 강사이며, 왓슨과 닮은 ’사사키’는 그림에 대한 교육을 잘 받은 우수한 인재이며,
이 사사키가 바로 사건의 중심에서 문제를 풀어나가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나’)이다.

그림의 소장과 거래를 둘러싼 소재가 흥미를 끄는 이유는,
첫째는 서민이 근접할 수 없는 그림이 가진 어마어마한 재산적 가치 때문이고,
둘째는 진품과 수많은 모조품을 구분해내야 하는 지적 긴장감 때문이고,
셋째는 앞의 두 가지 이유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거대한 음모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업의 사모님들이 주로 ’미술관’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설정은 드라마에서도 종종 등장하는데,
명화는 그것을 소장할 수 있는 재력뿐만 아니라
그 진가를 알아보고 감상할 수 있는 지적이며 귀족적인 품격까지 요구된다는 점에서
진정한 권력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별난 그림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그림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탐욕과 욕망을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책 속에서는 그림뿐 아니라 다른 예술품도 다뤄진다.)

이야기는 책의 제목과 같은 [천재들의 가격]을 시작으로,
[지도 위의 섬], [이른 아침의 열반], [논점은 베브메르], [유언의 빛깔]로 이어지는데,
이 다섯 편의 이야기는 각각 독립된 사건이다.
셜록 홈즈처럼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무궁무진한 시리즈가 나올 수 있는 구성이다.

사사키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고, 천재 가미나가가 조력자의 역할을 담당하는데,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 가미나가의 천재성이 이야기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지적 미스테리 소설’답게 이야기마다 수수께끼를 던져주고 
퍼즐을 맞추듯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나간다.
수수께끼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그림과 역사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필요로 하는데,
두 주인공의 풍부한 지식과 천재적 통찰력을 바탕으로 
조각 퍼즐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갈 때마다, 통쾌한 희열을 느끼며 읽었다.

내게는 셜록 홈즈’ 와 ’오션스 일레븐’을 섞어 놓은 듯한데,
이 둘을 능가하는 캐릭터와 명석한 두뇌 플레이를 펼치는 에피소드의 박진감,
게다가 순정만화 같은 느낌(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의 재미가 있다.
흥미진진하게, 재밌게, 단숨에 읽을 수 있을면서도,
명화를 감상하고 난 듯한 지적 욕구까지 채워줄 수 있는 일석이조의 품격 있는 책이다.
천재 가미나가식으로 표현하자면, 단맛이 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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