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셔넬라 Passionella
줄스 파이퍼 글.그림, 구자명 옮김 / 이숲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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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라고 대접받는 표현과 소통의 방식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인지, 아니면 단순한 인구학적인 이유,
즉 인구가 많아지는 만큼 기호도 다양해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예술이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표현방식들이 새로운 지위를 획득하고 있다.

그중 '만화'도 '예술'로 인정받기 시작한 역사가 짧은 장르 중 하나이다.
만화는 '주변적인 장르' 에 머물며,
'지식인이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물건'이라는 편견을 받아왔다.
그런데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 초반 사이에 혁신적인 만화 스타일로
만화를 문학이나 영화, 연극과 동급의 예술장르로 인정받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전설적인 만화가가 바로 [패셔넬라]의 작가 '줄스 파이퍼'라고 한다.
게리 그로스(판타그래픽스 북스사 발행인 겸 주간)는 줄스 파이퍼의 [패셔넬라]가
"2,30년 전까지만 해도 저급한 장르로 취급받던 만화가 마침내 성숙한 예술로 자리잡는 데 
줄스 파이퍼의 기여가 결코 적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극찬한다.
만화사에 선 굵은 이름이니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줄스 파이퍼는 당시까지만 해도 만화가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사회, 정치, 문화, 섹스 등의 주제에 대해 정면 도전했다고 한다.
[패셔넬라]에 수록된 총 6편의 만화들도 모두 풍자적이면서, 시사적인 만화에 가깝다.

한 편, 한 편의 풍자와 메시지가 인상적이었지만 내가 재밌게 본 것은,
네 살의 꼬마가 군대에 입대하는 황당한 모험 이야기를 그린 [꼬마 병사 먼로 이야기]이다.
실제로 작가의 인생에서 '군대 경험'이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자신의 군대을 이렇게 고백한다.
 "그때까지 믿어왔던 모든 가치와 모든 수준에 대립하는 세계에 던져진 것은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무한 복종이 미덕인 군대에서 작가는 오히려 비판적인 성향과 
반항적인 기질을 배우고, 기존 질서에 역행하려는 충동을  담아온 것이다.
그의 작품 안에서 작가의 이런 성향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줄스 파이퍼가 '도시풍의 지적인 연재만화'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세태를 풍자하는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던져주는 강력한 메시지가 가진 
공감능력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압축된 만화 안에서 그는 참 많은 것을 보여주고, 지적해주고, 말해주고, 생각하게 해준다.

[패셔넬라]는 쉽고, 빠르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쉽게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책이다.
이미 오래전에 그린 만화인데도 연예산업, 군대 조직, 국가주의, 소통과 사랑과 관계의 
"속성"을 풍자적으로 짚어내 압축한 날카로운 그의 통찰과 기법은 시대를 관통한다.

압축의 묘미가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만화를 만나 가볍게 즐기면서도,
긴 여운이 남는 감동이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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