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성경이 밝혀 주는 신비롭고 영광스러운 것은 따분해하고, 영원의 관점에서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에 열을 올린다. 왜일까? 세상이 인정해주는 종류의 힘에 열광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통해 오는 하나님의 능력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182).
우리는 보통 고난의 십자가가 있어야 부활의 영광도 있다고 설교해왔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과한 용기>는 고난의 십자가를 '통과한 후' 맛볼 빛나는 영광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러셀 무어 목사님은 십자가야말로 빛나는 영광 자체라고 선포합니다. 개인적으로 <십자가를 통과한 용기>를 통해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깊은 회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함께'하는 것이라는 신념(!) 때문에 사역자로서 저는 사역을 할 때마다 '팀'이 조직되기를 원했고, 한 성령 안에서 한 뜻을 품은 팀을 갈망해왔습니다. 그런데 러셀 무어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남은 자 칠천 명'의 무리 속에 엘리야를 두지 않으신 뜻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무리에 맞선 '외톨이'로 두신 것처럼, 저에게도 그것을 명하신다면 기꺼이 외로워질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깨달아졌을 때, 오랫동안 저를 괴롭혔던 갈망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것을 용기라고 착각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용기를 갈망하는 것은, 나를 보호하고자 하는 자기보호본능의 작동 가운데, 삶의 중심이 아직도 자신의 이야기에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십자가를 통과한 용기"는 모든 두려움과 의심과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며, 나의 이야기에서 빠져 나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임을 가르쳐줍니다. 그럴 때, 우리는 끝을 알지 못해도 기꺼이 광야 속으로 들어갈 용기, 일어설 용기, 무너질 용기를 가질 수 있다고 말입니다.
<십자가를 통과한 용기>는 다른 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용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교회에서 예배 드리고 세상 가운데로 흩어질 때매대, "한주간도 승리합시다"라는 인사를 많이 했었는데, <십자가를 통과한 용기>는 우리가 많은 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승리에 대해 오해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저에게 이 책은 쉽게 읽히지 않았습니다. 그 깊은 통찰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 번 읽고 치워두는 책이 아니라, 꼭 곱씹어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책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사순절을 보내며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비밀 가운데로 더 깊이 들어가기 원하는 '제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