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통과한 용기 - 길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
러셀 무어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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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에게서 우리는 승리를 통한 용기가 아닌 십자가를 통한 용기를 볼 수 있어야 한다"(33).

<십자가를 통과한 용기>를 읽으며 '믿음의 다른 이름이 용기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왜 우리에게 익숙한 믿음이라는 개념 대신 용기라는 개념을 선택했을까?'라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음에 대해, 그리고 용기가 대해 많은 오해를 하고 있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강철처럼 그 두려움에 맞서 결국 승리를 쟁취해 내는 것을 용기 혹은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과한 용기>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과한 용기"는 두려움의 한복판에서 다시 일어서 길을 찾는 것인데, 그 용기는 우리를 승리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깨뜨려지고 무너지는 십자가를 통과하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러셀 무어 목사님은 우리가 알던 엘리야의 이야기를 새롭게 조명하여 이것을 탁월하게 설명해줍니다. 이 책의 표현대로 하면, 그 용기는 '하늘에서 불을 내린' 담대함하고 당당한 엘리야의 모습 속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광야에서 헤매던' 낙심과 비관과 수치심으로 가득 찬 엘리야의 모습 속에서 더 잘 설명되어집니다. "엘리야의 용기는 불의 힘으로 아합을 제합하는 상황보다 오히려 아합에게 쫓길 때 더 분명히 나타난다"(36).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사역의 현장에서 가장 갈망하는 사역자의 모습은 아마도 갈멜산에 선 엘리야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세상 한복판에서 거짓된 우상의 세력에 맞서며, 확실한 승리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낼 수 있는 그런 강함을 원했습니다. 그런 '선지자적' 모습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이 증명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과한 용기>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엘리야를 광야로 보내셔서 엘리야의 마음속에 있는 바알을 제거하실 필요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자기 이야기의 중심에서 끌어내고 계셨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당신과 나를 위해서도 해주시는 일이다"(281). 승리에 대한 우리의 바람 속에는 '하나님의 선지자적 힘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숨어 있었구나' 하는 것이 벼락처럼 깨달아졌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극도로 열심' 싸우는 것보다, 광야에서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더 큰 용기, 더 큰 믿음으로 보셨을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과한 용기>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다운 용기를 드러내야 할 순간은, 절대 다수인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하기 위해 갈멜산에 서야 할 때가 아니라, 외로움과 낙심과 피로가 극에 달해 몰락 직전까지 약해져서 자신의 소명과 사명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던 광야에서였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일어선다'는 것은 내면의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거나 반박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승리'로 적들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용기는 더 큰 힘과 지혜로 세상의 지혜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처럼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이끌려갈 때 찾아온다(요 21:18). 성경은 우리에게 일어설 용기를 어떻게 얻게 되는지 분명히 알려 준다. 일어설 용기는 곧 십자가에 달릴 용기에서 시작된다"(37).

"우리는 성경이 밝혀 주는 신비롭고 영광스러운 것은 따분해하고, 영원의 관점에서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에 열을 올린다. 왜일까? 세상이 인정해주는 종류의 힘에 열광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통해 오는 하나님의 능력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182).

우리는 보통 고난의 십자가가 있어야 부활의 영광도 있다고 설교해왔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과한 용기>는 고난의 십자가를 '통과한 후' 맛볼 빛나는 영광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러셀 무어 목사님은 십자가야말로 빛나는 영광 자체라고 선포합니다. 개인적으로 <십자가를 통과한 용기>를 통해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깊은 회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함께'하는 것이라는 신념(!) 때문에 사역자로서 저는 사역을 할 때마다 '팀'이 조직되기를 원했고, 한 성령 안에서 한 뜻을 품은 팀을 갈망해왔습니다. 그런데 러셀 무어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남은 자 칠천 명'의 무리 속에 엘리야를 두지 않으신 뜻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무리에 맞선 '외톨이'로 두신 것처럼, 저에게도 그것을 명하신다면 기꺼이 외로워질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깨달아졌을 때, 오랫동안 저를 괴롭혔던 갈망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것을 용기라고 착각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용기를 갈망하는 것은, 나를 보호하고자 하는 자기보호본능의 작동 가운데, 삶의 중심이 아직도 자신의 이야기에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십자가를 통과한 용기"는 모든 두려움과 의심과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며, 나의 이야기에서 빠져 나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임을 가르쳐줍니다. 그럴 때, 우리는 끝을 알지 못해도 기꺼이 광야 속으로 들어갈 용기, 일어설 용기, 무너질 용기를 가질 수 있다고 말입니다.

<십자가를 통과한 용기>는 다른 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용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교회에서 예배 드리고 세상 가운데로 흩어질 때매대, "한주간도 승리합시다"라는 인사를 많이 했었는데, <십자가를 통과한 용기>는 우리가 많은 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승리에 대해 오해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저에게 이 책은 쉽게 읽히지 않았습니다. 그 깊은 통찰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 번 읽고 치워두는 책이 아니라, 꼭 곱씹어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책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사순절을 보내며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비밀 가운데로 더 깊이 들어가기 원하는 '제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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