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그리스도께서 내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을 단 일 인치의 영역도 존재하지 않는다"(25).
화란(네덜란드)의 수상이었고, 기독교 사상가였던 아브라함 카이퍼의 말입니다. <천로역정과 하나님 나라>는 먼저, 하나님 나라의 성경적 중요성을 살펴보며, 우리의 신앙의 초점이 왜 하나님 나라에 맞춰져야 하는지를 다시 일깨워줍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나의 구세주로 인정한다는 것은, 내 삶의 주권을 그리스도께 내어드림을 뜻합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이 땅에서 '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몰두하던 삶에서 돌이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통치에 순복하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 나라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바라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천로역정과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나라의 이러한 두 가지 속성, 즉 바로 지금 여기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궁극적인 미래,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이 균형 있게 강조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동안 교회는 죽어서 가는 천국에 몰두하는 성향이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지금 여기에 임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강조하다 보니 교회가 영원한 천국에 대한 강조를 잃어버리고 있음을 우려 합니다. 그런 점에서, <천로역정>은 다시금 저 천국을 향해 가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이루지도록 힘쓰는 순례자(크리스천)의 사명을 일깨우기 알맞은 책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소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어떤 일을 하면서, 어떤 사역을 하면서 주님 앞에 가는 그 길을 준비해야 할까요?"(44)
이 책은 <천로역정>에서 주인공 크리스천과 그의 가족, 그리고 그들과 함께햇던 순례자들이 저 천국을 향해 가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힘썼던 사역이 무엇이었는지를 찾아 13가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 13가지 사역들은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소망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하나님 나라와 13가지 사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말씀의 빛으로 십자가 앞에 나오게 하는 전도 사역, 순종의 벽돌로 세워지는 교회 사역, 같은 믿음, 같은 신앙의 가치관으로 세워가는 가정 사역, 전신갑주를 입고 말씀과 기도로 싸우는 영적 전쟁 사역, 믿음의 기도로 일어나는 치유 사역, 기쁨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손 대접 사역, 선한 사마리아인의 마음을 품은 사회 섬김 사역, 영의 양식으로 자녀의 믿음을 자라게 하는 어린이 사역, 사역하는 시니어에 초점을 맞춘 노인 사역, 약자를 향한 돌봄 장애인 사역, 순례 여정의 승리를 위한 중보기도 사역, 그리스도께 올바르게 인도하는 성경 해석 사역,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인도하는 호스피스 사역이 그 13가지 사역입니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모두가 힘들고 어렵다고 호소하는 이 때에, 교회를 개척하며 예배당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중에 이 책을 읽었습니다. <천로역정과 하나님 나라>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깊은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원하시는 교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다시 일깨워주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교훈은, 하나님 나라의 13가지 사역 중 영적 전쟁 사역이었습니다. 에베소서 6장에, '마귀'로 번역된 단어는 원어로 '디아볼로스'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dia(사이에: between)+bolos(던지다)의 합성어로 관계(사이)를 파괴한다(나눈다)는 뜻이며, '참소자'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마귀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93). 우리의 싸움은 "관계를 파괴하는 자"와의 싸움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세상은 교회를 천국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책은 하나님 나라의 13가지 사역에 대해 말하고 있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책에서 얻은 교훈은 우리의 교회가 '일' 중심, '사역' 중심이 아니라, '관계'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로역정>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졌던 독자라면 그에 대한 이 책의 답변을 들으며 새로운 눈으로 <천로역정>을 다시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천로역정과 하나님 나라>는 비대면 예배로 어쩔 수 없이 모든 사역을 내려놓고 있는 교회들이 우리 교회가 집중해야 할 사역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읽어도 좋을 책입니다. 신앙생활의 본질, 교회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고민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변화의 시작은 변하지 않아야 하는 본질은 무엇인가를 아는 데서 출발한다고 믿습니다. 영원한 저 천국을 소망하며 걸어가지만, 오늘 여기에 권능으로 임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순례자들에게 이 책을 지팡이 삼으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