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진심 - 산상수훈을 통해 듣는
스카이 제서니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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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찬양하는 것과 그분께 실제로 순종하는 것,

이 둘 사이의 긴장이 현대 기독교가 도덕적 권위와 영적 신뢰성을

잃어버린 결정적인 이유다(15-16).

세상이 멸망하는 이유는 죄인이 많아서가 아니라, 의인 열 명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 실감되는 요즘입니다. 세상의 진짜 문제는 죄인들이 많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데에 있음을 아프게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벼이 여기거나, 오해하고 있거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 것, 그것이 진짜 문제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렇게 살 때, 이 세상은 소망을 잃는 것이지요.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소망을 잃어가는 이 세대를 일꺠우는 선지자적인 외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위대한 설교로 손꼽히는 '산상수훈'을 다시 풀이해 주는데, 단순한 강해에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것을 어떻게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를 꼬집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이름이 <예수님의 진심>입니다. 마치 비대면 사회에서 SNS 만으로 소통할 때, 표정이나 감정, 상황 등은 전달되지 않고 오직 '문자'로만 전달된 메시지를 종종 제 입장에서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제 입장에서 오해하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진심>에 다시 귀 기울여보자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초대합니다.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잘못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잘못 살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니, <예수님의 진심>에 다시 귀 기울이는 것은 실로 진지하고, 엄중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예수님의 진심>에 두 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스카이 제서니 목사님은 "팔복을 조건으로 바꾸지 말라"는 단호한 외침으로 이 책을 시작하는데, "종교적인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 위험해진다. 그들은 특별한 경우를 보편적인 경우로 해석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20)는 첫 문장에서부터 심각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성경을 해석하기 딱 좋은 설교자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하던 일을 내려놓고 '사람을 낚는 어부' 곧 제자가 되라고 부르신다. 종교에 빠진 자들은 이것을 베드로만의 특별한 소명으로 보지 않고 모든 크리스천들에 대한 보편적인 기대 사항으로 본다"(20).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경우,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다고 보편적인 적용을 해왔었던가요! 그렇게 적용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반론도 틀리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 즉 그 1차적인 메시지에 귀 기울이는 것이 '먼저'라는 관점에서 귀 담아들어야 할 지적이라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산상수훈'에서 가장 많이 오해하고 있을 <예수님의 진심>을 들려줍니다. "팔복을 조건으로 바꾸지 말라", "예수님은 복을 받는 방법을 규정하신 것이 아니라 단순히 복을 받은 사람들을 기술하신 것이다. 세상은 강하고 웃는 사람들이 잘 산다고 말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다르게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약하고 슬프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이 잘 산다는 말씀으로 우리의 기대를 뒤엎으셨다(22). … 다시 말하지만 산상수훈의 도입부는 해야 할 일의 목록이 아니라 좋은 소식들의 목록이다. 예수님은 그분의 나라가 옴으로써 가장 큰 혜택을 받는 사람들에 관해 기술하셨다.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규정하신 것이 아니다"(23).



"누군가를 향해 분노를 끓이는 것은 위험하지만 그를 경멸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경멸은 상대방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위다"(90).

<예수님의 진심>이 저에게 던져준 두 번째 충격이자, 가장 큰 충격은 '분노'와 '경멸'에 대한 통찰이었습니다. 우리는 '분노'가 위험한 무기라는 것, '분노'를 품어서는 안 된다는 것, '분노'가 얼마나 파괴적인 힘인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진심>은 분노보다 더 위험한 것은 '경멸'이라고 경고합니다. 분노하지 않고 "차분한 성격이 꼭 마음이 올바르다는 증거는 아니"(85)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종류, 더 독한 종류의 분노에 관해 말씀하셨다. 그것은 바로 경멸이다"(86).

이 통찰에 정신이 번쩍 든 이유는, 교회 공동체는 얼마나 많은 순간, 온유를 가장하여 '경멸'을 쏟아놓고 있는가 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노'는 나쁜 것이라고 정죄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경멸'이라는 함정에 더 쉽게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경멸은 단순한 분노와 다르다. 경멸은 상대방의 내적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분노할 가치조차 없는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행위다. 상대방에 대한 일말의 관심이나 배려나 존중조차 거두어들이는 것이다"(86).

스카이 제서니 목사님은 이러한 메시지들을 직접 그린 삽화와 함께 설명해줍니다. 간결한 삽화 한 장에 얼마나 묵직한 메시지가 녹아 있는지 보면서 여러 번 감탄했습니다. 쉽지만 가볍지 않고, 잘 읽히면서도 깊이가 있는 책입니다. 새신자부터 목회자까지 누가 읽어도 유익했다고 말할 만한 책입니다.

<예수님의 진심>은 갈림길 같은 책입니다. 진짜 크리스천과 가짜 크리스천을 구분하는 기준점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보았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고, 예배를 드리면서도, 삶의 변화가 없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없는가라는 질문 앞에, 이 책은 "당신이 진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반문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교회에 다니고 예배를 드리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고, 순종할 마음조차 없는 것은, 사실 우리가 진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라고 말입니다.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더 얻고 싶은 것이 있기 떄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들리지 않고, '아멘'은 하면서도 행할 마음이 없고, 예수님의 제자라도 하면서도 삶의 변화가 없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진심>을 올바로 이해하고 반응하는 교회들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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