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막이 내릴 때 (저자 사인 인쇄본)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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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 형사 시리즈, 그 마지막 이야기!

명실상부 일본 추리소설을 대표하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기도의 막이 내릴 때>를 통해 자신의 네임밸류를 다시 한 번 제대로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추리 소설을 읽는 재미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문학적 요소까지, 한마디로 작품성과 문학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내고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이번 작품이 '가가 형사 시리즈', 그 마지막 이야기라는 것이 못내 아쉬울 뿐입니다.

"윗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두 사건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느끼는 이유가 발생 일자와 사건 현장 간의 거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또 한 가지, '인상'이라는 중요한 요소가 있었다"(49).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명탐정의 규칙>에 보면, '밀실 살인'의 트릭은 누가 범인인가 보다 어떻게 죽였는가에, '폐쇄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살인은 누가 범인인가에, 일명 '알리바이 선언'은 완벽해 보이는 알리바이의 허점이 무엇인가에 추리의 초점을 두고 독자와 두뇌 게임을 벌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추리소설 작가로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유독 '밀실 살인'에 강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번 작품 <기도의 막이 내릴 때>도 '알리바이 허점 찾기' 패턴을 보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알리바이에 숨은 트릭이 훨씬 더 교묘해졌을 뿐 아니라, 스케일이 방대하기까지 합니다. 과거와 현재가 얽혀 있고, 사건과 사건이 얽혀 있고, 인연과 인연(인물과 인물)이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막이 내릴 때>는 가가 형사의 비극적 가정사와 두 살인 사건이 연결되어 있는데,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교묘한 트릭이요, 독자와 작가가 벌이는 두뇌 게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가 가출한 뒤, 그 어머니가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뒤에야 '가가' 형사는 어머니의 소식을 듣습니다. 그렇게 외아들인 그가 어머니의 유골을 수습한 뒤, 다시 10년의 세월이 흐르지요.

그리고 고스게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중년의 여인이 목 졸려 죽은 변사체로 발견됩니다. 여자의 시신은 오시타니 미치고라는 사실이 밝혀지지만, 집 주인의 행방은 묘연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가가 형사의 가까운 친척이기도 한 '마쓰미야' 형사는 이 사건이 어쩐지 하천 둔지에서 노숙자가 살해된 사건과 연관성이 있다고 느낍니다. (하천 둔치에 비닐로 지어진 오두막에 화재가 발생했고 그 안에서 불에 탄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살해 방법이 일치하고, 발행 일자가 비슷하며, 두 현장 사이의 거리도 약 5킬로 미터로 가깝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인데, 그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인상'입니다. 마쓰미야는 직감적으로 둘 사이의 연관성이 있음을 감지합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 그랬답니다. 저세상에서 자식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 그럴 수만 있다면 육체 따위는 없어져도 좋다고요. 부모란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존재를 소멸시켜도 좋은가 봅니다"(352).

<기도의 막이 내릴 때>에서 알리바이에 숨어 있는 트릭을 해체할 수 있는 키워드는 '살해 동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는 단서는 딱 한 가지, 여인이 죽은 아파트에서 발견된 달력인데, 거기에는 각 달마다 니혼바시 일대에 있는 열두 개의 다리 이름 중 하나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가 형사 어머니 유품에서 발견한 메모와 그 내용, 필적까지 같다는 것에 사건은 오히려 대 혼란을 일으킵니다.

"헛걸음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수사의 결과가 달라진다"(200)는 형사들의 불문율을 증명하듯, 그들은 무수한 헛걸음을 통해 진상에 이르는 길을 찾아갑니다. 진실이라는 성은 범인이 저지른 사소한 실수들을 하나하나 끌어모아 쌓는 것이니까요. 그 무수한 헛걸음이 있었기에 대담한 추리 전개가 가능해지고, 찾아 헤매던 답을 드디어 찾게 되는 것지만, 그렇게 답을 찾아낸 순간에도 희열보다 씁쓸함이 터 컸던 것은, 진실 속에 감추어진 누군가의 비극이 곧 우리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도의 막이 내릴 때', 독자는 그 처절하고 지독하리만치 간절했던 누군가의 기도 앞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 책은 반전에 반전을 선사하는 추리 소설의 묘미와 함께, 문학작품에서 맛볼 수 있는 아름다운 슬픔, 우연을 통해 오는 필연적 숙명을 음미하며 읽어야 할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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