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미스의 검 와타세 경부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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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에는 검을, 왼손에는 천칭을 든 법의 여신 테미스. 검은 힘을 뜻하고 천칭은 선악을 판단하는 정의를 뜻한다.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라는 뜻일까(107).

언젠가 "나는 살인자입니다 - 진범의 고백"이라는 제목의 방송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의 진범은 따로 있는데 3명의 청년이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문제는, 강압적인 수사와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이라는 이유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했다는 데서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범행 사실을 자백하며 진범이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나타났는데도 사법당국은 문제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는 데 있습니다. 더구나, 사건 피해자의 유족들까지 나서 진상 규명을 해달라고 호소했지만, 당시 수사 관계자들은 침묵을 지킨 채 재심 청구까지 무려 17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공권력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쓴 무고한 피해자들과 사건을 조용히 묻으려 하는 수사 당국! 한순간의 오판? 수사를 빨리 종결짓고 실적을 올리려는 욕심에서 나온 악의? 근본적인 허점을 가진 사법 시스템? 그럼에도 오심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법부의 오만?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요? 


나는 원죄를 만들고 만 걸까.
나는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만 걸까.
생각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이야기다(180).


<테미스의 검>은 바로 이 '원죄'(억울하게 뒤집어쓴 죄)의 문제를 다루는 소설입니다. 와타세 형사는 강도 살인 사건을 수사하며 불길한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사건의 현장에서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5년 전 부동산 살인 사건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범인이 붙잡히고 형이 확정돼 이미 종결된 사건인데다, 사형수 구스노키 아키히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재심 청구도 불가능한 사건인데, 죄 없는 사람을 범인으로 오인해 체포하고 잘못된 판결을 내렸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자꾸만 그의 양심을 파고들었습니다. 더구나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쓴 무고한 청년은 그 때문에 이미 이 세상을 등졌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체포로 원죄 사건을 만들었다는 자책보다 더 무거운 현실이 와타세 형사를 짓눌러 옵니다. 원죄 사건의 폭로는 곧 동료들에 대한 배신을 의미했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 스스로 돌을 던지는 행위라는 것이었습니다.
 

권력을 쥔 사람이 진지하지 않으면 정의는 언젠가 파탄 나기 마련이지(126).


<테미스의 검>은 중반부까지 조금 지루하게 읽힐 수 있습니다. 미스터리라고 하지만 '원죄'가 주제라는 것을 알고 보면 다소 뻔하게 내용이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수사와 체포, 재판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법부의 생리가 리얼하게 묘사되는데, 그 리얼함이 오히려 지루함의 요소가 될 수 있을 만큼 정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의 재미는 중반부 이후부터입니다. 방심하고 있다가 뒤통수를 세게 한대 얻어맞은 기분입니다. 경악할 진실, 그러나 반드시 밝혀져야 할 진실과의 싸움, 그 진실과 마주하기 전까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되는 소설입니다. 단순한 재미만이 아니라, 통렬한 사회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정의를 향한 작가의 투혼을 생각해서라도 이 작가의 시리즈를 계속 읽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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