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장수와 막빈들을 자신의 군막으로 모이게 한 뒤 한왕이 말하였다.
"팽성에서는 아래위가 모두 방심하고 태만하였다가 큰 낭패를 당했소. 허나 여기 모인 군사가 15만이 넘고, 사방을 떠돌며 과인에게 돌아올 길을 찾고 있는 장졸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니, 이제 한 번 맞받아칠 때가 된 듯하오. - P81

패왕 항우는 한나라 진세 깊숙이 파고들수록 그 두터운 군세와 정교한 짜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한참 이름을 떨치던 때 장함에게서조차 느껴 보지 못한 진영이요, 배치였다.
‘한신 이놈이 허우대만 멀쑥하고 입만 번지르르한 책상물림은 아니었구나. 오늘 자칫하면 거록에서보다 더 힘든 싸움을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 P9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씨 부인은 외손자에게 폐비 윤씨가 사약을 마실 때 입었던 옷을 보여 주었고 그 옷에는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는 편지가 피로 적혀 있었어. 내 원한을 풀어 달라고." - P323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대현은 그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텅 빈 거리에서 율이 그의 옆으로 와서 섰다.
"내가 어떻게 이 일에 동의한 거야?"
"자가께서 허락하셨든 아니든 이슬이는 들어갔을 거예요." - P362

"황수연"
내가 속삭였다.
언니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이 텅 비어 있었다. - P367

구더기가 한 걸음 더 다가와 속삭였다.
"누구의 편을 들지 잘 선택하십시오. 아무런 연줄 따위 없는 계집의 편을 드시겠습니까? 아니면 곧 이 나라를 다스리게 될 저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 P379

제발 우리가 이기게 해 주세요. 나는 하늘에 빌었다. 제발.. - P381

"이번에는 범인이 뭐라고 썼대?"
기녀는 주위를 살피고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당신이 가장 증오하는 나 무명화를 머지않아 보게 될 것이다. 역사는 왕을 죽인 자로 영원히 나를 기억하리라." - P38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패왕이 마침 한자리에 앉았던 범증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나 정말 몰라서 묻는 것 같지는 않았다.
"대왕, 아무래도 군사를 물리셔야겠습니다. 팽성이 위태롭습니다."
범증이 펄쩍 놀라는 얼굴로 대답했다. - P13

모든 일에는 기세란 것이 있어 언덕을 구르는 바위 덩이처럼한 번 굴러 내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몰려가는 수가 있습니다. - P14

우리 대군이 더 이상 성양에 잡혀 있다가는 팽성이 영영 도둑 떼의 소굴이 되고 말 것이오. 과인이 먼저가서 빼앗긴 도읍부터 찾아 놓고 봐야겠소. - P22

"동북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립니다. 적지 않은 인마가 달려오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난 번쾌는 그게 바로 패왕이 이끄는 3만의 정병이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 P31

우 미인이 세차게 패왕의 품을 떨치고 나가더니 품안에서 날카로운 비수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늙은 도적의 호색을 입에 담으십니까? 신첩은 대왕을 다시 만나 섬길 수 없을 양이면 이 칼로 목을 찔러 세상을 버릴 작정이었습니다." - P36

"패왕이다. 패왕 항우가 돌아왔다!"
초군의 함성에 관영의 군사들이 놀라 허둥대며 소리쳤다. - P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처럼 자기 인생에 아무 관심 없는 여자는 처음 봤다. 죽음으로 돌진하는 건데도 두렵지 않아?"
"당연히 두렵죠. 하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건 후회예요." - P266

"우리는 모두 벗이지만 밤낮으로 우리를 괴롭혔던 가장 내밀한 생각들을 조심스러운 마음에 서로 표현하지 않았던 것 같소. 이제 이 위험한 통치를 끝내고 새로운 후계자를 옥좌에 올려야할 시간이 왔습니다. 자애로우신 진성대군 말이오." - P282

때때로 반란은 본능적인 판단으로 일어나기도 합니다. 모의 기간이 길어지면 살아서 계획이 실현되는 모습을 볼 수나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 P287

"당신이 죽어도 눈물 한 방울 흘리는 사람 하나 없었으면 좋겠네요. 애초에 울어 줄 사람도 없겠지만."
그런 다음 그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후회로 가슴이 따끔거렸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싸운 날 언니를 두고 떠났던 것처럼 대현을 두고 떠났다. - P3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날 장량과 한신이 함께 한왕을 찾아왔다.
"대왕, 이제 동쪽으로 밀고 나아갈 때가 온 것 같습니다. 항왕은 결국 쉽게 빠져나오기 힘든 수렁에 빠졌습니다." - P186

진평에게서는 전혀 서생티가 나지 않았다. 또 인간에 대한 지식도 세 사람 모두 남달랐지만, 진평은 특히 탐욕이나 허영 같은 인간의 약점에 밝아 이채로웠다. - P214

그런 생매장이 거지반 패왕의 손아귀에 들어온 천하를 다시 잃게 만든 원인 중의 하나라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 P224

열흘이 지나도 성양이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패왕도 그곳의 싸움을 길게 잡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처음 겪는 어려움이 패왕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초나라의 허술한 보급과 병참에서 비롯되는 어려움이었다. - P247

장량과 한신, 진평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장수들에게도 의제의 죽음을 크게 내세워 패왕을 치는 대의명분으로 삼는 것이 해볼 만한 일로 보였다. - P256

진평이 무엇 때문인지 잠깐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안됐지만 상산왕을 닮은 사람의 목을 빌려 진여에게 보내는것입니다. 그렇게 속여 진여를 한 번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 놓으면, 나중에 상산왕께서 살아 있음을 알게 되더라도 쉽게 항우에게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 P262

다시 팽월의 군사 3만이 붙자 한왕이 이끄는 제후군의 세력은 56만으로 늘어났다. 한군이 처음 관중에서 나올 때에 비하면 열 배나 부풀어 오른 숫자였다. 하지만 그 엄청난 제후군의 머릿수는 점차 허수가 되어 갔다. - P268

뒷날 돌이켜 보면, 사태를 꿰뚫어 보고 다가올 재난을 방비할 한신과 장량, 진평 모두가 그때 어떤 야릇한 패신에 홀려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누구보다 눈 밝은 그들이 몇 발자국 앞의 나락도 보지 못하고 바로 앞사람의 발꿈치만 보며 내달은 셈이었다. - P272

"대왕께서 진정으로 천하에 뜻을 두고 계시다면 모진 임금과 못된 법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일을 너무 허물해서는 아니 됩니다. 물이 너무 맑으면 사는 물고기가 없고사람이 너무 따져 살피면 따르는 무리가 없는 법입니다." - P288

그럴듯한 것은 그런 한왕 유방의 군명뿐이었다. 한신은 충실히 한왕의 뜻을 전했으나 팽성 안으로 들어간 여러 갈래의 제후군은 금세 물불 안 가리는 약탈자로 변해 버렸다. - P292

패왕의 도읍인 팽성을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거기 쌓여 있던 재물과 미인까지 마음대로 처분하게 되면서 한왕은 한층 더 자신의 승리를 실감했다. 그러잖아도 잇따른 자잘한 승리로 자랄대로 자라 있던 한왕의 호기는 거기서 갑자기 어이없는 착각과 환상으로 바뀌었다. 자신은 이미 항우를 온전히 쳐부수었으며 그리하여 천하에는 오직 자신만 있다는 착각과 환상이었다. - P29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