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자끄 엘륄 총서 1
쟈크 엘룰 지음, 이문장 옮김 / 대장간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세상 속에 있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에 예속되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다른 주인에게 속하여 있으므로 생각과 삶과 마음이 세상의 지배를 받아도 안된고 세상을 의지하여서도 안된다. 즉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성경은 이야기 한다. 소금, 빛,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가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준거가 되는 것이다. * 소금은 정확히 레 2장 13절에 나오는 것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맺은 언약을 말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이 세상과 맺으신 언약의 가시적 징표인 것이다. 그의 말과 삶안에서 이 언약이 세상사람들에게 보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역할을 감담당하지 못한다면 이 세상은 하나님의 어떤 언약도 갖지 못하고 말 것이며, 세상은 좌표를 상실하여 더 이상 자신에 관한 참지식을 갖지 못하고 자기 보존의 확신조차 잃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에도 불구하고 항상 죄인일 뿐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다양한 종류의 삶을 통하여 인류의 죄에 동참하며, 내 가족이나 이웃이 범한 죄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책임이 있다. 이 진리는 결코 단순한 말의 나열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이런 세상에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이율배반적인 두 숙명 가운데 묶여 있는 듯하다. 한편으로는 이 세상의 죄를 감소시킬 수 없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죄된 현실을 묵인할 수도 없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다.  영적 실재를 직시할 능력이 있는 그리스도인만이 가능하다. 이런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불신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파악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정치, 경제적 상황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 해결책은 합리적인 것일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생명과 관계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기독교 윤리의 핵심은 믿음의 전투이다. 다시 말해 세상 속의 긴장 속에서 성도가 복음이 세상에 전달되는 통로가 되어야 함을 뜻한다. 이 윤리의 핵심은 삶의 전투적 방식에 근거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언제나 전투다. 종말론적 투쟁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윤리란, 심판과 은혜의 두 요소가 우리 마음 속에 항상 실재함을 의미한다. 엘륄이 말하는 기독교 윤리의 특성은 임시적이며, 변증적이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처해 있는 변화되는 상황과 관계를 기독교 윤리가 맺고 있음을 이얃기 한다.

   세상속의 그리스도인!  그가 세상의 보존에 진정으로 참여하려면, 두 흐름 즉 주님의 뜻과 세상의 뜻 사이의 접촉점에 서야 한다. 세상은 자신을 보존할 수도, 영적 상황을 치료하여 다른 분야를 통제할 능력도 없다. 세상은 육중한 죄를 짊어진 사탄의 영역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죽음으로 향하고 있다. 이를 엘룰은 자살적 경향이라 부르고 있다. 현시대에  있어서 '죽음을 향한 의지'의 표현들과 이에 대처하는 그리스도인의 태도를 기독교의 혁명성에서 다루고 있다.

   엘룰은 기독교의 혁명성의 장에서 세계 문명을 결정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들을 분석하고 이러한 세상 속에서 종말론적 삶을 살 것을 기독교인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 가치는 생산의 우선성, 국가권력의 지속적 성장, 민족국가의 성립, 기술의 자율적 발달 등이다. 이것들은 생산수단의 소유나 그 어떤 전체주의적 교리보다 훨씬 더 중요한 현대 세계의 구성요소들이다. 이것이 현시대의 재난으로 이것은 우리 문명의 근본 구조상의 불가피한 산물이다. 우리는 이 틀을 바꾸지 않고서는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동기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향하여 움직인다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시각을 완전히 바꾸어놓으며,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른 이들의 삶과 전적으로 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 가장 적극적인 혁명 중의 하나는 삶의 양식을 변혁시키는 것이라고 할 때 우리는 항상 목적과 수단의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목적과 수단을 다룸으로서 현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행동의 양식을 다루게 된다. 지금 우리 문명에서 일어나는  

첫번째 큰 문제는 모든 것이 수단화되고 목적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예로 "철학자들과 정치가들의 '인간'은 실재하지 않는 개념으로서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어놓은 어마어마한 작업의 산물일 따름이다. 추상적 인간은 실제적 인간을 도구로 전락시켰다."  또한 모든 것의 판단을 유용성에 의해 가치가 평가받고 있다.   

다음은 수단이 자신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성공하는 것, 효과적인 것, 능률적인 것이 정당화된다. 기술적 목표는 극히 완벽한 기술적 수단에 의하여 반드시 성취한다. 이런 자기 정당화의 과정은 인간이 수단을 전혀 통제하지 못하게 하고, 기술이 삶의 전영역으로 확장하게 되어 목적이 상실되고 수단을 선택할 권한 조차 잃게 된다. 또한 기술이 제공하는 수단에 대하여 인간이 부과하는 모든 목적은 명백히 가치없고 부적당하게 된다.   

세번째 특성은 총체성이다. 이것의 예는 수단이 배타성을 띠어 수단 자신의 진보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모든 것은 배제시킨다. 즉 자신의 발전을 위협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술은 도덕적 판단 및 윤리 전반을 공격하고 황폐화시킨다. 또 한 단면은 모든 영역을 수단이 지배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더 이상 주인이 되고자 하지 않고 사용되고자 애쓸 뿐이다. 인간은 더 이상 자신의 진정한 '형상'을 발견하려고 하지 않고, '복사'에 급급하게 되었다. 이 수단의 지배력을 파괴시키지 않는 한 더 이상 기독교가 사회 속에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현대 세계를 인식하려는 노력은 현대 기독 지성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또한 지속적으로 새로운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드. 즉 이러한 인식은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게 만드는 성령을 통해 가능하게 된다는 점이다. 현대 세계에 대한 인식의 결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잇다.  

1. 현대 사회 안에서 이웃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것(이것은 앞에서 수단이 목적을 지배한 현실 속에서 이웃과의 의사소통이 상실한 사회 속에서 반드시 행해야 할 것)과 '그 사건[즉 그리스도의 사건]'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것, 거룩한 영역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엘룰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누구인가?  우리 전투의 성격이 어떤 것인가?  또한 어떠한 무기들을 사용해야 할 것인가? 를 보여주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이 싸움에 동참할 것을 요청하는 것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기독교인들은 수없이 난무하는 문자의 홍수와 사상의 범람과 매체의 혼란의 이면에 감추어진 죄악의 송곳들을 발견하고 궤도 없이 무한대로 질주하는 인류의 열차를 온몸으로 맞아 싸우고, 본래 세상을 회복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임을 깨달아야함을 이 책을 알려주고 있다. 이것을 감당하는 일은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되지 않으며 성령의 조명을 받아 지혜로운 판단을 하여 그 실상을 드러내고 모든 이가 아니라 할지라도 예라고 부르짖고 헌신하려는 순교자적 정신을 요구한다.

엘룰의 또 다른 책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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