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시는 직업이 아니라 시를 쓰는 상태"

지승호의 인터뷰집 <금지를 금지하라> 등과 함께 이달의 '사회적 독서' 목록에 내가 또 올려놓은 책은 김경주 시인의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중앙, 2006)이다. 시집을 읽고 소감을 적는 게 '사회적 소임'이겠으나 이런저런 글독촉과 글쓰기 장애에 시달리는 즈음이라 그럴 만한 여유는 없고, 대신에 참고할 만한 자료를 '사회적 의무감'에 올려놓는다. 몇 달 전에 스크랩해놓은 기사이다.  

첫 시집 펴낸 김경주 시인 

컬쳐뉴스(06. 10. 09) "시는 직업이 아니라 시를 쓰는 상태"

권혁웅 시인으로부터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라는 찬사를 받은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중앙)의 작가 김경주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났다. 시집 속 미모(?)의 시인을 보고 잠깐 ‘여성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정작 만나본 시인은 체구는 작지만 수염을 깍지 않은 까칠한 모습에 제대로 된 전라도 말을 쓰는 말 그대로 전라도 남자였다.  

그의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는 시인이 ‘시인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기형(畸形)’에 대한 이야기다. 시인은 인터뷰 중에도 ‘기형’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시를 쓰는 사람은 많은데 시를 읽는 사람이 없고, 시를 읽는 사람은 없는데 서점에 시집은 넘쳐나고 이 모든 것이 ‘기형’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시의 기형’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실은 이 세상의 모든 ‘기형’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畵家)였다 /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 그림이 되지 않으면 / 절벽으로 기어올라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찾기 위해(…)” - 「외계(外界)」 중에서

시인은 이번 시집이 첫 시집이지만 지난 2003년 등단 후 2년 동안 발표한 시들은 일부러 싣지 않았다. 시인에게 ‘현재 진행 중’인 고민들을 담아내고 싶었던 까닭이다. “어느 정도 제 깜냥 안에서 고민이 끝난 것들은 저한테 설렘을 주지 못하더라고요. 첫 시집이니까 지금 고민이 와 있는 자리, 지금 고민을 담은 시들을 묶고 싶었어요. 그래야 앞으로의 시간도 견뎌줄 것 같더라고요.” 

시인은 등단 후 서울로 올라왔다. 하지만 지방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시인에게 서울은 낯선 곳이었다. “서울은 정말 딴 세상 같았어요. 사투리가 굉장히 심해서 실어증을 1년 쯤 앓을 정도로 말을 하지 못했죠.” 그는 말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사람을 사귀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었다고 고백했다. 시인의 서울에 대한 이질감은 그의 시에 ‘외로움’과 ‘상실’이라는 감수성으로 드러난다.
 
“(…) 외롭다는 것은 바닥에 누워 두 눈의 음(音)을 듣는 일이다 제 몸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외로움이란 한 생을 이해하는데 걸리는 사랑이다 아버지는 병든 어머니를 평생 등 뒤에서만 안고 잤다 제 정신으로 듣는 음악이란 없다(…) 밤이면 방을 밀고 우주로 간다” - 「우주로 날아가는 방 1」 중에서

“외로운 날엔 살을 만진다 // 내 몸의 내륙을 다 돌아다녀본 음악이 피부 속에 아직 살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나는 붓다의 수행 중 방랑을 가장 사랑했다 방랑이란 그런 것이다 쭈그려 앉아서 한 생을 떠는 것 사랑으로 가슴으로 무너지는 날에도 나는 깨어서 골방 속에 떨곤 했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내 두 눈은 강물 냄새가 난다(…) ” - 「내 워크맨 속 갠지스」

그리고 시인은 이러한 낯섦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을 느낀다. “고향에서는 ‘한강’이라는 것이 매우 낯선 것이어서 소재로 들어오기 힘들거든요. 하지만 서울에 오면 ‘한강’은 아주 단순하게 존재하죠. 이 두 개의 낯섦 사이에는 새로 생겨난 것과 사라지는 것이 있는데, 연민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볼 때 생기는 감정입니다. 저에게는 이러한 ‘연민’의 정서가 시적 화두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시인이 서른 한 살을 먹는 동안 시인의 서른 한 살까지의 삶이 지나가버렸다. 시인은 그렇게 생겨나고 소멸하는 것 사이에 존재하며, 그 안에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그 경계에 머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벌써 학부만 네 번째 전전하고 있는 만학도(滿學徒)다. 법학과, 독문학과, 국문학과를 거쳐 지금은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다니고 있는 그가 문학에 입문하게 된 배경이 궁금했다.

“세 번째 학교에서 국문학과를 다닐 때 군대를 가게 됐는데요. 해군이다 보니 무인도에서 군 생활을 했어요. 딸랑 6명이서 무인도에 있다보니 어찌나 무료하고 심심한지, 휴가 나왔을 때 제대할 때까지 읽을 심산으로 선배들이 제일 어렵고 알레고리화 되어있다고 한 시집 다섯 권을 들고 갔어요. 처음에는 정말 어려웠는데 계속 읽다보니까 어렴풋하게 시에 대한 느낌이 오더라구요.”

그렇게 시에 좋은 느낌을 갖고 제대한 뒤 무작정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3~4년 쓰다 보니 등단에 이르게 됐고, 지난해에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이라는 말을 들으며 대산창작기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시인이 ‘직업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쓰는 지속의 순간 바로 그 상태만이 그 이름의 정체성으로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작가라는 호명은 그 지속의 상태에서만 불릴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인지 김경주 시인은 글 쓰는 것 외에도 하는 일이 많다. 등단 후 삼성생명에서 카피라이터를 2년간 했었고, EBS에서 사회과학 탐구 부문 구성작가를 했었다. 또 대학 친구들과 독립영화사 ‘청춘’을 설립해 단편영화 작업도 하고 있으며, 청소년 계간지 『풋』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시를 쓰는 순간에만 진실하면 되는 것 같아요. 다른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특별히 시 쓰는 일이 힘들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다양한 장르에서 일을 하면서 시의 다양한 형식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해준 것 같아요. 지금 철학을 공부하고 있듯이 앞으로도 저를 설레게 하는 것들을 쫓아서 할 겁니다.”

그는 자유를 찾아 끝없이 헤매는 방랑자 같았다. 방랑자는 자유롭지만 늘 불안하다. 하지만 불안이라는 감정은 어쩌면 주위의 것인지 모른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찾는 시인은 오히려 여유로워 보였다. 그가 자유의 하늘에서 펼쳐 보일 퍼덕거림을 오래도록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한다.(위지혜 기자)  

07. 01. 17.

P.S. 내친 김에 국민일보의 신춘기사도 같이 옮겨놓는다.

국민일보(07. 01. 04) 시인 ‘김경주’… 시·희곡 넘나드는 문단 괴물

시인 김경주(31). 그는 지금 폭발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그가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중앙)를 냈을 때 문단 안팎에서 ‘헉’ 소리가 들렸다. 그 중에서도 ‘미래파’라는 용어로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풍을 일별한 문학평론가 권혁웅씨가 붙인 시집 발문은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이 무시무시한 신인의 등장은 한국문학의 축복이자 저주다. 시인으로서의 믿음과 비평가로서의 안목 둘 다를 걸고 말하건대,시집은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 될 것이다.”

시인 김경주에게도 그런 격찬은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을 터다. “엄밀히 말하자면 저는 미래파는 아니에요. 미래파라는 용어는 규정되고 단정된 것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이론 자체가 낡은 것이죠. 모든 시인이 미래지향적이기는 하겠습니다만 새로운 패러다임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전남 광주 태생. 전남대 법대,조선대 독문과,원광대 국문과를 거듭 중퇴한 이력의 소유자. (요즘 젊은 시인들의 구심체라할 황병승을 비롯해 최승철 송승환 이현승 윤석정 시인이 모두 원광대 국문과 문턱을 거쳐간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등단 4년차에 지금은 서강대 철학과 4학년.



졸업 시험을 치르고 있던 지난 연말에 홍익대 앞에서 그를 만났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속초에서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40여일에 걸쳐 시베리아를 횡단할 계획입니다. (지금쯤 그는 이르쿠츠크에 도착해 얼어붙은 바이칼 위를 미끄러지고 있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시베리아에서 유배생활을 했는데,기회가 주어진다면 러시아의 옛 유배지들을 둘러보고 싶어요. 페테르부르크까지 갔다가 다시 이르쿠츠크를 경유해 고비 사막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고교 중퇴 이후 그의 생활은 자발적 유배의 연속이었다. 가출이 아니라 출가였다. 낮에는 학원 앞 분식집 서빙,새벽엔 신문배달,의대에 간 친구 소개로 시체 닦는 일도 해보았다. 부산 한 공원의 벤치에서 몇달간 노숙도 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남총련에 가입,화염병 만드는 법을 배우다가 입대한다.

“엄마 나 슈퍼 좀 다녀올라요”하고 입대한 해군에서 그는 바닷속 폭탄을 설치하는 심해잠수사였다. “처음 1년은 우리나라의 모든 섬을 군함타고 돌았고 나머지 1년은 무인도에서 경비를 섰지요. 모두 6명이었는데 그 중 한 놈은 자살,한 놈은 감전사했지요.” 죽을 사(死)자를 발음할 때 죽음에 저항이라도 하듯,그렇지 않아도 번뜩이는 그의 눈매가 더욱 매섭게 빛났다. 외로움의 극단에서 그의 시는 쏟아져 나왔다.

“인간의 수많은 움막을 싣고 지구는 우주속에 둥둥 날고 있다 그런 방에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편지를 쓰는 일은 자신의 분홍을 밀랍하는 일이다 불씨가 제 정신을 떠돌며 떨고 있듯 북극의 냄새를 풍기며 입술을 떠나는 휘파람,가슴에 몇천 평을 더 가꿀 수도 있다 이 세상 것이 아닌 것들이,이 세상을 희롱하는 방법은,외로워해 주는 것이다//외롭다는 것은 바닥에 누워 두 눈의 음(音)을 듣는 일이다.”(‘우주로 날아가는 방1’ 일부)

그가 살고 있는 움막을 보고 싶었다. 방이 어질러져 공개할 수 없다던 그가 천천히 앞장을 섰다. 아현동 산동네 초입에 그가 타고 다니는 ‘올드 바이크’가 서 있었다. 한참을 더 올라가 파란 쪽문을 열자 냉기 도는 옥탑방이 나왔다. 겨울엔 기름값 때문에 보일러 버튼에 가동금지 표시로 녹색 테이프를 붙여놓는다고 했다.

좁다란 2층 구조의 아래칸은 화장실과 간단한 조리시설,위칸은 침대와 책상이 놓인 침실이었고,그 옆으로 동서양 고금서책으로 꽉 들어찬 작은 서재가 있었다. 월세 20만원. 상경한 지 5년동안 흑석동 염리동을 전전하다 들어온 시인의 집은 부서진 난파선 같았다. 그 방에서 친구와 함께 ‘청춘’이라는 단편 영화도 찍었다. 그가 시집에 쓴 ‘시인의 말’에 “초대받은 적도 없고 초대할 생각도 없는 나의 창(窓). 사람들아,이것은 기형에 관한 이야기다”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시인은 차고 넘치는데 시집 읽는 이가 없으니 그게 기형이지요. 기형은 퇴화도 진화도 아니고 일그러진 그 자체가 아닙니까. 봉준호 감독이 영화 ‘괴물’에서 보여준 바로 그 괴물. 기형에 시적 언어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언어가 극단적인 것은 다양성의 폭력성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인데,상대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형식 파괴가 나오지요. 시가 형식 파괴에 앞장서야 하고요.”

시놉시스,희곡 등에서 시적인 느낌을 주는 텍스트를 생산해야될 의무가 시인에게 있다는 그는 올해엔 자신의 희곡을 대학로 연극무대에 올릴 계획이라고. 시보다 먼저 희곡을 써왔다는 그는 “시인으로서 희곡판,연극판을 부활시키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심해잠수사 출신답게 그는 인생의 결락 부분을 채우기 위한 발화의 욕망에 뇌관을 설치하고 있는 중이었다. 불도 들이지 않은 눅눅하고 차가운 방에서 이 젊은 몽상가는 그 폭발력으로 날아갈 우주의 바깥을 꿈꾸고 있었다. 시와 함께 그 자신도 폭발하고 있었다.

“예컨대 비평가 김현(1942∼1990)이 지금도 살아있는 건 이성복 시인을 찾아낸 것에 있지요. 비평가들도 10년안에 작가를 못찾으면 문을 닫아야 합니다. 요즘 비평가들에게는 미학이 없어요. 작가나 시인을 출판사에 연결시키는 중개 역할에 머물고 있지요. 결국 비평가는 보이고 작가는 안보이게 되는 것이죠. 문학은 좋은데 문학 풍토는 싫더군요. 그래서 문학 밖에서 찾게 되지요.”

일찌감치 “나는 내가 살지 못했던 시간속에서 순교할 것이다”(‘드라이아이스’)라고 선언해버린 시인. 그의 시베리아행은 문학 밖에서 문학의 과녁을 찾는 순교 여행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문학보다는 삶이 먼저인 것이니 그가 허무에 함몰되지 않는 심리적 버팀목을 이번 여행길에서 찾게되길….(정철훈 전문기자)

경향신문(06. 09. 13) 김경주씨 첫 시집 출간…세상을 희롱하는 ‘외로운 울음’

외로움은 꽤 귀족적인 감정이다. 외로움은 세상과 삶이 수준미달로 여겨질 때 찾아오기 때문이다. ‘진짜 시인’은 오만불손하게 외로운 자들이다. 도무지 세상과 사이좋게 지내기가 힘들다. 세상과 관계를 맺을수록 상처받는다. 결국 자기만의 성(城)을 쌓는다. 세속의 관점에서 보자면 시인이 예정된 패배를 자초하는 것이지만, 시인의 눈으로 보자면 세상을 비웃거나 반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난해 대산창작기금을 받으며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이란 말을 들었던 김경주씨(30)가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중앙)를 냈다. 제목부터 외로움을 표낸다. 세상이 그를 열외(列外)시킨 것과 그가 세상을 열외시킨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지구에서는 시인의 별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의 별에서는 지구가 보인다”(‘비정성시’ 중). 세상과 ‘맞장’을 뜨는 패기야말로 시적 재능의 대표적 증거일 테다. “낭만은 그런 것이다/이번 생은 내내 불편할 것”(‘드라이아이스’ 중).

젊은 문인 권혁웅씨는 시집 뒤표지 ‘주례사’에서 “이 무시무시한 신인의 등장은 한국문학의 축복이자 저주다. 시인으로서의 믿음과 비평가로서의 안목 둘 다를 걸고 말하건대, 이 시집은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 될 것”이라고 썼다.

‘기자의 감각을 걸고 말하건대’ 이 시집은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 때문에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중요한 시집’은 재능의 폭발이 아니라 한 시대의 영혼과 정신의 형식을 내장(內藏)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두번째 시집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가 이것이다.

수록작 ‘우주로 날아가는 방 1’에 따르면 ‘시인=세상 아닌 것’이다. 그것들이 “세상을 희롱하는 방법”은 “외로워해주는 것”이다. 이때 외로움이란 “제 몸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자 “한 생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사랑”이다. 몸의 음악과 생을 이해하는 데 시간과 사랑을 쏟는 일이 세상에서는 ‘불편한 삶’에 불과하다. 따라서 시인은 외롭다.

시인의 외로움은 방랑과 눈물로 육화된다. 둘의 공통점은 ‘떠는 일’이다. “방랑이란 (중략) 쭈그려 앉아서 한 생을 떠는 것”이고 “눈물은 눈 속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한 점 열”(이상 ‘내 워크맨 속 갠지스’ 중)이다. 쭈그려 울고 떨면서 한 점 열(熱)을 내보내는 게 그의 시(詩)인 셈이다.

그때 외로운 울음이란 자기를 넘어서는 행위이다. “사람은 울면서 비로소/자기가 기르는 짐승의 주인이 되는 것”(‘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 중). 사람을 짐승 상태로 냅두려는 미친 세상의 복수가 두렵지 않을까. “기껏해야 생은 자기 피를 어슬렁거리다 가는 것”(‘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중)이다. 그러므로 미친 세상은 시인을 얕보지 말아야 한다. “바람에게 함부로 반말하지 말라”(‘바람의 연대기는 누가 다 기록하나’ 중).

시인은 자신에게 반말하는 세상의 ‘외계(外界)’에 산다. 세상은 시인을 포용하지 못하지만, 시인은 세상 밖에서 그 세상을 슬퍼해주면서 운다. 세상의 ‘자궁’에 대한 도저한 연민 탓이다.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畵家)였다/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중략)/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외계’ 부분).(김중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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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님에게 자극 받아 이 참에 철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를 가지고 글쓰기를 한 철학자들의 철학관을 한번 정리할 요량으로 내 딴엔 아주 빠른 속도로 서론격의 몇 줄을 쓰고 책 이미지를 붙이려고 애쓰다가 날아가버렸다. 나는 왜 누구처럼 폼 나게 안 되는거지?ㅠㅠ

그래서 다시 쓴다.

철학자들의 철학관은 단지 그들의 철학하기의 입장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곧 철학은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현실 인식과 진단의 물음으로 이행하고, 나아가 철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철학적 욕망과 생성의 가능성에 대한 물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철학작들의 철학관이란 단지 그들의 철학적 입장에 머물지 않고 그들의 현실 인식과 정치적 입장과 태도의 차원을 드러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이런 입장에서는 철학과 정치, 진리와 정치를 구분하는 아렌트의 정치철학적 태도가 우선 의심스럽게 보인다. 그의 의도와 목적이 무엇인가도 문제겠지만, 그 의도와 목적의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방식이 낳는 결과의 철학적 현실적 효과가 더 더욱 문제가 될 것이다. 아렌트의 방식으로는 하이데거는 정치적 선택과 태도는 문제가 있지만, 하이데거의 철학은 오롯이 살아 남는다. 물론 이런 방식은 목욕물은 버리고 아기는 남기려는 오랜 서구적 합리성의 일반적인 태도와 일치한다.  여기서 아렌트의 차이는 무엇인가? 오히려 아렌트에 대한 나의 의문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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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Under the Sky of My Africa

날짜로는 어제가 되겠지만 '오늘' 오전엔 강의가 있었고 오후엔 전시회 관람이 있었다. 그리고는 성적처리하는 데 나머지 시간을 꼬박 쏟아부었다. 별다른 개성이나 성의가 없는 답안지/리포트들을 읽는 일은 나름대로 고역이다. 그나마 잠시 마음을 달래준 것은 한꺼번에 들이닥친 책들인데, 학교에 가보니 얼마전 미국과 러시아의 인터넷서점에 주문한 책들과 해외도서관에 주문한 자료, 그리고 복사를 맡긴 책들과 알라딘에 주문한 책들까지 모두 합해 15권의 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이번달 북매거진 '텍스트'까지 포함하면 16권이다). 책을 많이 구해보는 편이긴 하나 이 15권은 올해의 '기록'이라 할 만하다(해마다 나의 장서는 4-500권씩 불어난다).

그 '기록'을 기록해두기 위해서 집에 들고 온 몇 권의 책들 가운데 한권을 집어든다. 푸슈킨 연구논문집인 <나의 아프리카 하늘 아래서(Under the Sky of My Africa)>가 그것인데, 노스웨스턴대학출판부에서 올해 나온 책이다(이 대학에선 '러시아 문학과 이론 연구 총서'가 출간된다). 제목에 걸맞게 표지는 까만색이고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푸슈킨(1799-1837)의 초상화가 박혀 있다. 그런데, 어인 아프리카?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푸슈킨의 외증조부가 표트르 대제의 총신이었던 아브람 페트로비치 한니발(1696-1781) 장군이었고 그가 아프리카 노예 출신의 흑인이었다. 족보를 따지자면 러시아 최고 시인에겐 아프리카의 피가 흐르고 있는 셈. 푸슈킨의 그의 조상을 모델로 <표트르 대제의 흑인>이란 소설을 쓰기도 했다.

그런 사정을 감안하여 던질 수 있는 질문. "푸슈킨은 흑인이었고 그게 정말 중요한가?" 이 연구논문집은 러시아와 미국의 정상급 학자들이 그러한 물음에 답한 글들을 모아놓고 있다. 이 주제에 관한 앤솔로지로서는 최고의 책이다. 분류하자면, 이런 게 나의 '전공서적'이며 이런 류의 책이나 논문들을 읽고 그와 유사한 성격의 논문들을 쓰는 게 나의 '전공공부'이다(아직도 간혹 당신의 전공이 뭐냐고 물어오시는 분들이 있다).   

 

이미 지난 1999년에 푸슈킨 탄생 200주년을 맞아 한국어로 된 푸슈킨 선집이 2종 출간된 바 있다. 그것만으로도 러시아문학 연구자들의 체면은 얼마간 유지된다. 단, 아쉽게 생각하는 건 푸슈킨에 관한 국내 출간 단행본 연구서나 논문모음집이 단 한권도 없다는 것(놀라운 일이지만 이건 톨스토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미국과 러시아 등지에서 출간되는 탐나는 연구서들을 구해볼 때마다 마음 한켠에서는 매번 그런 비교를 하게 된다. 2009년에는 사정이 좀 달라지기를 기대하며 나 자신에게도 분발의 채찍질을 가한다. '아프리카의 하늘 아래서'.(점차 인문학은 '니그로의 학문'이 되어 가는 게 아닐까?)

06.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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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파리 - 황성혜의 파리, 파리지앵 리포트
황성혜 지음 / 예담 / 200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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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 없이 이야기하면 나는 조선일보는 덩종이보다 못하다 생각한다는 말부터 해 두고 보자. 하지만 편견의 시선이 항상 트집만을 잡진 않는다. 나는 좋은 것을 좋다고 이야기하고 문제를 문제로 이야기하는 세계시민으로 살고 싶으니까. 그리고 내 간략한 리뷰는 정말 인상비평에 가깝다고 미리 말해둔다. 책 전체를 보지 않았고, 별점도 내가 본 것에 기초해 단 것이다. (물론 전체를 다 봐야 전체를 안다고 생각지 않는다.)

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 다시 서경식 씨의 책을 구입하려고 학교 앞 서점에 들렀다. 갑자기 생각이 나 내가 아는 그 분이 쓴 책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마침 여행 코너에 진열되어 있어서 펼쳐드니 내가 이름을 알고 있는 분은 60년 대 생이라 동명이인임을 확인했다.  국내 명문 사립대에 그 악명 높은 신문사의 기자 출신에 파리대학에서 과정을 밟았다고 약력은 전한다.

우선 책의 제목은 올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야외상영작이었던 <Paris, Je t'aime사랑해, 빠리>를 그대로 가져와 쓰고 있었다. 나는 물론 영화를 관람했었고, 이런 저런 비평을 할 수 있겠지만, 10여 명의 작가들이 지닌 시선의 다양한 맥락과 차이들이 좋았다. 저자의 빠리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 지 확인해 볼 길 없는 간단 독서를 했기에 뭐라 말할 수 없겠지만 다양한 시선을 지니지 못했다는 것은 절대적 조건이니 그 영화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제목이라 생각된다.

책을 펼치니 화려한 사진들이 눈이 들어왔다. 아트지가 아니니 그것 자체로 나름 파리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는 것 같았다. 별로 읽어볼 생각은 없었지만, 넘기다 보니 스타벅스의 파리 입성 소식이 있었다. 우리사회에서도 여러 문젯거릴 낳았고 지금도 그러니 약간 흥미로운 생각이 들어 몇 군데 읽어보았다.

스타벅스가 문을 연 첫 날 2000명이 몰려왔다고 말하는데서 이 책은 흥분한 리포트의 어조다. 파리지앵 너희들이라고 어찌 환대하지 않겠느냐? 는 듯이.. 그리고 이어지는 말, 하지만 대부분 에스프레소를 마치고 '우리 스타벅스'처럼 다양한 메뉴가 구비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등등.. 그리고 대학가로 들어가 대학생들을 공략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는  전형적인 스타벅스의 상술에 대한 소식까지 전한다. 응원으로 들린 것은 정말 나의 편견일까? 그리고 마지막 문장들, 압권이었다. 대충 기억나는 내용을 옮기면 이랬다. 파리에서는 우리 스타벅스가 그렇게 환영받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파리에 스타벅스가 들어간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나. 라는 문장으로 그 꼭지는 끝났던 것이다. 전형적인 조선의 어조가 거기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저자의 약력을 확인했다. 명문대와 조선일보. 그들의 관계에 대해 누군가 한번 책을 쓰면 우리사회의 계급질서와 그에 대한 이데올로기 생산처를 분명히 해부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나는 평소 조선의 어조에 대해 어떤 문제에 대해 대충, 황급히 결론 짓고, 본질에 대해 천착하지 않는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이런 여행 안내서에서 무겁고 심각한 이야기는 배제되어 마땅하기 때문에 저자는 자신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 가능성을 열어두자.

암튼 나는 마지막 대목을 읽고 실소하며 책을 제자리에 두고 서점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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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
조이담.박태원 지음 / 바람구두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11월 중순, 근 한 달 이상 몸과 특히 마음이 매우 힘들었다. 생산적인 일은 결국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꼬인 상황과 다운된 기분 끝에 억지로 긁어낸 글 한편 끝내고 약간의 휴식 중 선택된 책. <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 이미 작년, 새로운 서울 생활에 적응하고 계신 선생님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던 책이다. 읽어야지 마음 먹었지만, 전공책들 보는 것도 항상 허덕거리며 따라가야 하고, 쟁여둔 책들의 눈길을 반쯤 피하는 주제에 이런 류의 책을 볼 틈은 좀체로 나지 않았다. 인위적으로 마련한 틈을 타 이 책과 함께 촌놈(년?)분위기 팍팍 풍기며 KTX 타고 서울에 댕겨왔지..ㅎㅎ

뒷표지를 보라. 철학과 문학에서 모더니즘의 대표자들이 거론되며, 현대문화와 관련된 화려한 용어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이 책의 의미와 값어치를 치장하고 있다. 그런데 추천인들이 모두 건축가라는 것이 재밌지 않나?

그것은 물론 지은이의 이력 때문이다.

지은이 조이담은, 1967년 서울생으로 대학에서 건축, 도시계획을 공부했단다. 경력은 한국공간환경연구회(이런 데가 있단 걸 첨 알았다)에서 도시문화와 공간이론에 천착, 80년대 이후 도시의 포스트모던 문화현상에 관한 논문을 냈고,  국책 연구기관에서 주택, 도시, GIS 분야에서 일했으며,  독립 후 <서울 근대공간> 프로젝트에서 참여하는 진귀한(!) 일들을 한 사람이다.

 이런 전문 분야에다가 인문학적 소양을  발휘해서 박태원의 <구보씨의 일일>이라는 근대문학 속에서 현대적 관점을 지닌 근대사의 추출, 그리고 거기다 자신의 도시학적 식견을 버무려서 이접적인 제3의 영역을 창조했다 할까. 참신한 접근과 작가의 전문성이 탁월하게 결합해서 인문학적 글쓰기의 새로움과 가능성을 엿보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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