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시는 직업이 아니라 시를 쓰는 상태"

지승호의 인터뷰집 <금지를 금지하라> 등과 함께 이달의 '사회적 독서' 목록에 내가 또 올려놓은 책은 김경주 시인의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중앙, 2006)이다. 시집을 읽고 소감을 적는 게 '사회적 소임'이겠으나 이런저런 글독촉과 글쓰기 장애에 시달리는 즈음이라 그럴 만한 여유는 없고, 대신에 참고할 만한 자료를 '사회적 의무감'에 올려놓는다. 몇 달 전에 스크랩해놓은 기사이다.  

첫 시집 펴낸 김경주 시인 

컬쳐뉴스(06. 10. 09) "시는 직업이 아니라 시를 쓰는 상태"

권혁웅 시인으로부터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라는 찬사를 받은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중앙)의 작가 김경주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났다. 시집 속 미모(?)의 시인을 보고 잠깐 ‘여성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정작 만나본 시인은 체구는 작지만 수염을 깍지 않은 까칠한 모습에 제대로 된 전라도 말을 쓰는 말 그대로 전라도 남자였다.  

그의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는 시인이 ‘시인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기형(畸形)’에 대한 이야기다. 시인은 인터뷰 중에도 ‘기형’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시를 쓰는 사람은 많은데 시를 읽는 사람이 없고, 시를 읽는 사람은 없는데 서점에 시집은 넘쳐나고 이 모든 것이 ‘기형’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시의 기형’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실은 이 세상의 모든 ‘기형’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畵家)였다 /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 그림이 되지 않으면 / 절벽으로 기어올라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찾기 위해(…)” - 「외계(外界)」 중에서

시인은 이번 시집이 첫 시집이지만 지난 2003년 등단 후 2년 동안 발표한 시들은 일부러 싣지 않았다. 시인에게 ‘현재 진행 중’인 고민들을 담아내고 싶었던 까닭이다. “어느 정도 제 깜냥 안에서 고민이 끝난 것들은 저한테 설렘을 주지 못하더라고요. 첫 시집이니까 지금 고민이 와 있는 자리, 지금 고민을 담은 시들을 묶고 싶었어요. 그래야 앞으로의 시간도 견뎌줄 것 같더라고요.” 

시인은 등단 후 서울로 올라왔다. 하지만 지방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시인에게 서울은 낯선 곳이었다. “서울은 정말 딴 세상 같았어요. 사투리가 굉장히 심해서 실어증을 1년 쯤 앓을 정도로 말을 하지 못했죠.” 그는 말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사람을 사귀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었다고 고백했다. 시인의 서울에 대한 이질감은 그의 시에 ‘외로움’과 ‘상실’이라는 감수성으로 드러난다.
 
“(…) 외롭다는 것은 바닥에 누워 두 눈의 음(音)을 듣는 일이다 제 몸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외로움이란 한 생을 이해하는데 걸리는 사랑이다 아버지는 병든 어머니를 평생 등 뒤에서만 안고 잤다 제 정신으로 듣는 음악이란 없다(…) 밤이면 방을 밀고 우주로 간다” - 「우주로 날아가는 방 1」 중에서

“외로운 날엔 살을 만진다 // 내 몸의 내륙을 다 돌아다녀본 음악이 피부 속에 아직 살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나는 붓다의 수행 중 방랑을 가장 사랑했다 방랑이란 그런 것이다 쭈그려 앉아서 한 생을 떠는 것 사랑으로 가슴으로 무너지는 날에도 나는 깨어서 골방 속에 떨곤 했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내 두 눈은 강물 냄새가 난다(…) ” - 「내 워크맨 속 갠지스」

그리고 시인은 이러한 낯섦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을 느낀다. “고향에서는 ‘한강’이라는 것이 매우 낯선 것이어서 소재로 들어오기 힘들거든요. 하지만 서울에 오면 ‘한강’은 아주 단순하게 존재하죠. 이 두 개의 낯섦 사이에는 새로 생겨난 것과 사라지는 것이 있는데, 연민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볼 때 생기는 감정입니다. 저에게는 이러한 ‘연민’의 정서가 시적 화두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시인이 서른 한 살을 먹는 동안 시인의 서른 한 살까지의 삶이 지나가버렸다. 시인은 그렇게 생겨나고 소멸하는 것 사이에 존재하며, 그 안에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그 경계에 머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벌써 학부만 네 번째 전전하고 있는 만학도(滿學徒)다. 법학과, 독문학과, 국문학과를 거쳐 지금은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다니고 있는 그가 문학에 입문하게 된 배경이 궁금했다.

“세 번째 학교에서 국문학과를 다닐 때 군대를 가게 됐는데요. 해군이다 보니 무인도에서 군 생활을 했어요. 딸랑 6명이서 무인도에 있다보니 어찌나 무료하고 심심한지, 휴가 나왔을 때 제대할 때까지 읽을 심산으로 선배들이 제일 어렵고 알레고리화 되어있다고 한 시집 다섯 권을 들고 갔어요. 처음에는 정말 어려웠는데 계속 읽다보니까 어렴풋하게 시에 대한 느낌이 오더라구요.”

그렇게 시에 좋은 느낌을 갖고 제대한 뒤 무작정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3~4년 쓰다 보니 등단에 이르게 됐고, 지난해에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이라는 말을 들으며 대산창작기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시인이 ‘직업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쓰는 지속의 순간 바로 그 상태만이 그 이름의 정체성으로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작가라는 호명은 그 지속의 상태에서만 불릴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인지 김경주 시인은 글 쓰는 것 외에도 하는 일이 많다. 등단 후 삼성생명에서 카피라이터를 2년간 했었고, EBS에서 사회과학 탐구 부문 구성작가를 했었다. 또 대학 친구들과 독립영화사 ‘청춘’을 설립해 단편영화 작업도 하고 있으며, 청소년 계간지 『풋』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시를 쓰는 순간에만 진실하면 되는 것 같아요. 다른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특별히 시 쓰는 일이 힘들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다양한 장르에서 일을 하면서 시의 다양한 형식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해준 것 같아요. 지금 철학을 공부하고 있듯이 앞으로도 저를 설레게 하는 것들을 쫓아서 할 겁니다.”

그는 자유를 찾아 끝없이 헤매는 방랑자 같았다. 방랑자는 자유롭지만 늘 불안하다. 하지만 불안이라는 감정은 어쩌면 주위의 것인지 모른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찾는 시인은 오히려 여유로워 보였다. 그가 자유의 하늘에서 펼쳐 보일 퍼덕거림을 오래도록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한다.(위지혜 기자)  

07. 01. 17.

P.S. 내친 김에 국민일보의 신춘기사도 같이 옮겨놓는다.

국민일보(07. 01. 04) 시인 ‘김경주’… 시·희곡 넘나드는 문단 괴물

시인 김경주(31). 그는 지금 폭발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그가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중앙)를 냈을 때 문단 안팎에서 ‘헉’ 소리가 들렸다. 그 중에서도 ‘미래파’라는 용어로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풍을 일별한 문학평론가 권혁웅씨가 붙인 시집 발문은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이 무시무시한 신인의 등장은 한국문학의 축복이자 저주다. 시인으로서의 믿음과 비평가로서의 안목 둘 다를 걸고 말하건대,시집은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 될 것이다.”

시인 김경주에게도 그런 격찬은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을 터다. “엄밀히 말하자면 저는 미래파는 아니에요. 미래파라는 용어는 규정되고 단정된 것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이론 자체가 낡은 것이죠. 모든 시인이 미래지향적이기는 하겠습니다만 새로운 패러다임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전남 광주 태생. 전남대 법대,조선대 독문과,원광대 국문과를 거듭 중퇴한 이력의 소유자. (요즘 젊은 시인들의 구심체라할 황병승을 비롯해 최승철 송승환 이현승 윤석정 시인이 모두 원광대 국문과 문턱을 거쳐간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등단 4년차에 지금은 서강대 철학과 4학년.



졸업 시험을 치르고 있던 지난 연말에 홍익대 앞에서 그를 만났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속초에서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40여일에 걸쳐 시베리아를 횡단할 계획입니다. (지금쯤 그는 이르쿠츠크에 도착해 얼어붙은 바이칼 위를 미끄러지고 있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시베리아에서 유배생활을 했는데,기회가 주어진다면 러시아의 옛 유배지들을 둘러보고 싶어요. 페테르부르크까지 갔다가 다시 이르쿠츠크를 경유해 고비 사막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고교 중퇴 이후 그의 생활은 자발적 유배의 연속이었다. 가출이 아니라 출가였다. 낮에는 학원 앞 분식집 서빙,새벽엔 신문배달,의대에 간 친구 소개로 시체 닦는 일도 해보았다. 부산 한 공원의 벤치에서 몇달간 노숙도 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남총련에 가입,화염병 만드는 법을 배우다가 입대한다.

“엄마 나 슈퍼 좀 다녀올라요”하고 입대한 해군에서 그는 바닷속 폭탄을 설치하는 심해잠수사였다. “처음 1년은 우리나라의 모든 섬을 군함타고 돌았고 나머지 1년은 무인도에서 경비를 섰지요. 모두 6명이었는데 그 중 한 놈은 자살,한 놈은 감전사했지요.” 죽을 사(死)자를 발음할 때 죽음에 저항이라도 하듯,그렇지 않아도 번뜩이는 그의 눈매가 더욱 매섭게 빛났다. 외로움의 극단에서 그의 시는 쏟아져 나왔다.

“인간의 수많은 움막을 싣고 지구는 우주속에 둥둥 날고 있다 그런 방에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편지를 쓰는 일은 자신의 분홍을 밀랍하는 일이다 불씨가 제 정신을 떠돌며 떨고 있듯 북극의 냄새를 풍기며 입술을 떠나는 휘파람,가슴에 몇천 평을 더 가꿀 수도 있다 이 세상 것이 아닌 것들이,이 세상을 희롱하는 방법은,외로워해 주는 것이다//외롭다는 것은 바닥에 누워 두 눈의 음(音)을 듣는 일이다.”(‘우주로 날아가는 방1’ 일부)

그가 살고 있는 움막을 보고 싶었다. 방이 어질러져 공개할 수 없다던 그가 천천히 앞장을 섰다. 아현동 산동네 초입에 그가 타고 다니는 ‘올드 바이크’가 서 있었다. 한참을 더 올라가 파란 쪽문을 열자 냉기 도는 옥탑방이 나왔다. 겨울엔 기름값 때문에 보일러 버튼에 가동금지 표시로 녹색 테이프를 붙여놓는다고 했다.

좁다란 2층 구조의 아래칸은 화장실과 간단한 조리시설,위칸은 침대와 책상이 놓인 침실이었고,그 옆으로 동서양 고금서책으로 꽉 들어찬 작은 서재가 있었다. 월세 20만원. 상경한 지 5년동안 흑석동 염리동을 전전하다 들어온 시인의 집은 부서진 난파선 같았다. 그 방에서 친구와 함께 ‘청춘’이라는 단편 영화도 찍었다. 그가 시집에 쓴 ‘시인의 말’에 “초대받은 적도 없고 초대할 생각도 없는 나의 창(窓). 사람들아,이것은 기형에 관한 이야기다”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시인은 차고 넘치는데 시집 읽는 이가 없으니 그게 기형이지요. 기형은 퇴화도 진화도 아니고 일그러진 그 자체가 아닙니까. 봉준호 감독이 영화 ‘괴물’에서 보여준 바로 그 괴물. 기형에 시적 언어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언어가 극단적인 것은 다양성의 폭력성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인데,상대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형식 파괴가 나오지요. 시가 형식 파괴에 앞장서야 하고요.”

시놉시스,희곡 등에서 시적인 느낌을 주는 텍스트를 생산해야될 의무가 시인에게 있다는 그는 올해엔 자신의 희곡을 대학로 연극무대에 올릴 계획이라고. 시보다 먼저 희곡을 써왔다는 그는 “시인으로서 희곡판,연극판을 부활시키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심해잠수사 출신답게 그는 인생의 결락 부분을 채우기 위한 발화의 욕망에 뇌관을 설치하고 있는 중이었다. 불도 들이지 않은 눅눅하고 차가운 방에서 이 젊은 몽상가는 그 폭발력으로 날아갈 우주의 바깥을 꿈꾸고 있었다. 시와 함께 그 자신도 폭발하고 있었다.

“예컨대 비평가 김현(1942∼1990)이 지금도 살아있는 건 이성복 시인을 찾아낸 것에 있지요. 비평가들도 10년안에 작가를 못찾으면 문을 닫아야 합니다. 요즘 비평가들에게는 미학이 없어요. 작가나 시인을 출판사에 연결시키는 중개 역할에 머물고 있지요. 결국 비평가는 보이고 작가는 안보이게 되는 것이죠. 문학은 좋은데 문학 풍토는 싫더군요. 그래서 문학 밖에서 찾게 되지요.”

일찌감치 “나는 내가 살지 못했던 시간속에서 순교할 것이다”(‘드라이아이스’)라고 선언해버린 시인. 그의 시베리아행은 문학 밖에서 문학의 과녁을 찾는 순교 여행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문학보다는 삶이 먼저인 것이니 그가 허무에 함몰되지 않는 심리적 버팀목을 이번 여행길에서 찾게되길….(정철훈 전문기자)

경향신문(06. 09. 13) 김경주씨 첫 시집 출간…세상을 희롱하는 ‘외로운 울음’

외로움은 꽤 귀족적인 감정이다. 외로움은 세상과 삶이 수준미달로 여겨질 때 찾아오기 때문이다. ‘진짜 시인’은 오만불손하게 외로운 자들이다. 도무지 세상과 사이좋게 지내기가 힘들다. 세상과 관계를 맺을수록 상처받는다. 결국 자기만의 성(城)을 쌓는다. 세속의 관점에서 보자면 시인이 예정된 패배를 자초하는 것이지만, 시인의 눈으로 보자면 세상을 비웃거나 반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난해 대산창작기금을 받으며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이란 말을 들었던 김경주씨(30)가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중앙)를 냈다. 제목부터 외로움을 표낸다. 세상이 그를 열외(列外)시킨 것과 그가 세상을 열외시킨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지구에서는 시인의 별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의 별에서는 지구가 보인다”(‘비정성시’ 중). 세상과 ‘맞장’을 뜨는 패기야말로 시적 재능의 대표적 증거일 테다. “낭만은 그런 것이다/이번 생은 내내 불편할 것”(‘드라이아이스’ 중).

젊은 문인 권혁웅씨는 시집 뒤표지 ‘주례사’에서 “이 무시무시한 신인의 등장은 한국문학의 축복이자 저주다. 시인으로서의 믿음과 비평가로서의 안목 둘 다를 걸고 말하건대, 이 시집은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 될 것”이라고 썼다.

‘기자의 감각을 걸고 말하건대’ 이 시집은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 때문에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중요한 시집’은 재능의 폭발이 아니라 한 시대의 영혼과 정신의 형식을 내장(內藏)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두번째 시집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가 이것이다.

수록작 ‘우주로 날아가는 방 1’에 따르면 ‘시인=세상 아닌 것’이다. 그것들이 “세상을 희롱하는 방법”은 “외로워해주는 것”이다. 이때 외로움이란 “제 몸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자 “한 생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사랑”이다. 몸의 음악과 생을 이해하는 데 시간과 사랑을 쏟는 일이 세상에서는 ‘불편한 삶’에 불과하다. 따라서 시인은 외롭다.

시인의 외로움은 방랑과 눈물로 육화된다. 둘의 공통점은 ‘떠는 일’이다. “방랑이란 (중략) 쭈그려 앉아서 한 생을 떠는 것”이고 “눈물은 눈 속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한 점 열”(이상 ‘내 워크맨 속 갠지스’ 중)이다. 쭈그려 울고 떨면서 한 점 열(熱)을 내보내는 게 그의 시(詩)인 셈이다.

그때 외로운 울음이란 자기를 넘어서는 행위이다. “사람은 울면서 비로소/자기가 기르는 짐승의 주인이 되는 것”(‘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 중). 사람을 짐승 상태로 냅두려는 미친 세상의 복수가 두렵지 않을까. “기껏해야 생은 자기 피를 어슬렁거리다 가는 것”(‘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중)이다. 그러므로 미친 세상은 시인을 얕보지 말아야 한다. “바람에게 함부로 반말하지 말라”(‘바람의 연대기는 누가 다 기록하나’ 중).

시인은 자신에게 반말하는 세상의 ‘외계(外界)’에 산다. 세상은 시인을 포용하지 못하지만, 시인은 세상 밖에서 그 세상을 슬퍼해주면서 운다. 세상의 ‘자궁’에 대한 도저한 연민 탓이다.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畵家)였다/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중략)/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외계’ 부분).(김중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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