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면서 점차 짜증이 났던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을 해 봤다. 무수한 폭력과 강간을 소재로 해서? 기득권을 가진 백인남성의 우는 소리? 그렇다면 기득권을 가진 백인남성은 이런 걸 소재로 글을 쓰면 안된다는건가? 내가 그만큼 꼰대화되었나? 계속해서 이유도 알 수 없이 짜증난 상태로 독서를 마치며 왜 이 독서가 내게 행복감을 주지 않았는지 마지막 부분에서 깨달았다. 1. 악의 평범성: 누군가 banality를 평범성으로 잘못 번역했다고 하던데 뭐라고 하면 좋을까 생각해보다가 잘 생각이 안나서 포기했다. 여기엔 이성적으로 사유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합리화를 하며 저지르는 악행들이 많이 서술된다. 그들에게 만연해 있는 악은 사유의 게으름에서 비롯된다. 이것을 계속해서 현란한 문체로 읽다보니 지치고 말았다. 2. 주인공의 무해한 이기주의: 사실 이건 다음 책인 <영혼의 집>을 읽으면서 알게된 것인데 주인공의 이기심이 못된사람이라서, 더 많이 얻기 위해 욕심이 커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냥 그렇게 자라왔기 때문에..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가족과 본인의 아버지가 대척점에 서 있었다는 걸 애써 부인하며 아버지와 자기 사이에 선을 긋는다. 본인이 누리고 사는 부와 지성이 다 거기에서 비롯됨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영혼의 집>의 클라라가 자식들 크는 거 신경도 안쓰고 자신을 그렇게 사랑해준 페룰라이모가 쫓겨나든 말든 심령술에 매달리며 반은 넋이 나간 상태로 사는데 이 클라라를 보면서 나는 아드리아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아 나는 책임감 없는 사람을 정말 싫어하는구나 깨달았다. 부잣집에서 부러울 것 없이 자라서 자기가 하고 싶은거 다 하고 뭐 하나 포기하려 하지 않고 주변사람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주고 나몰라라 하는 유해하지만 나쁜 의도는 없는 이기적인 사람. 본인이 이기적인 것도 모름. 마지막에 큰 깨달음 얻지만 이미 늦었다. 자기가 하는 행동의 악의성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 나쁘냐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더 나쁘냐 굳이 선택하자면나는 후자에 한표. 책 자체는 잘 연주된 한 곡의 바이올린연주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