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제주에서 사온 천혜향이란 귤은 꼭지에 손톱을 박을 때부터 이미 귤 냄새를 환하게 풍기기 시작한다. 크고 예쁜 귤에는 이름도 예쁘게 지어서 비싸게 판다고 투덜거렸지만 가히 '이상형이에요.' 고백해버릴만큼 새콤달콤 맛있기까지 하다. 비싼데는 다 이유가 있다.

 

아침부터 귤 얘기를 한 건 내가 만약 귤이라면 천혜향이냐, 아니냐 혹은 남들이 볼 땐 천혜향이 아니지만 내가 생각할 땐 천혜향이다 뭐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조금 전에 귤을 까먹고 그 냄새에 행복했기 때문이다. 술 안마신지 5일째. 술을 안마셔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뿌듯한 요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물론 내일, 과음할 것이다. 토요일이잖아.

 

내게 평일 저녁을 포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르타냥이 콩스탕스를 포기한 건 삶과 죽음이라는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고 쳐도, 내가 평일 저녁의 술자리, 나아가 매일 만나야 했던 친구들을 놓아버린다는 건 나의 선택이어야 했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하지만 난 그 길을 선택했고, 지금은 평안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돌이켜보면 일을 끝내고, 스트레스를 핑계로 매일같이 술을 마셔댔던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편치 않았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시 읽기 힘든 책도 조금씩 읽기 시작했고, 출퇴근길에 조용한 지하철 안에서 볼 수 있는 논밭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길 수 있고, 아침시간을 좀 더 알차게 쓸 수 있게 되었고, 친구들은 꿈에서 만나기 시작했다. -_-; 매일같이 돌아가며 다른 이들을 만나서 놀아도 시간이 부족했는데, 이제 그러지 못하니 사실 여간 아쉬운게 아니다. 하지만 한동안은 조금 쉬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유흥비로 돈은 돈대로 탕진하고, 한국에 돌아와 하고자했던 걸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근 1년을 보내버리고 말았다. 

 

아침부터 귤을 먹었더니 온 몸에서 귤 향이 난다. 하지만 머릿 속에는 온통 '가정법'과 남자 6명이 밀레디를 처형하는 장면만 맴돈다. 그러고보면 뒤마는 좀 복수에 집착하는 듯. 몽테크리스토백작 때도 그러더니..

 

 

제주도엔 벌써 봄이!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락방 2012-02-17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다!

Forgettable. 2012-02-17 15:23   좋아요 0 | URL
좋죠!

ㅋㅋ 또 가고싶네용ㅎㅎ

신지 2012-02-18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총사를 읽으신 듯 해 순간 반가웠지만 ... 수십년 전 소년소녀세계명작동화로만 읽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깊은 얘기를 하기는 어렵;;; (어쨌든 오늘은 뽀님과 문학 얘기를 나눠서 기쁘네요.)


Forgettable. 2012-02-17 15:46   좋아요 0 | URL
푸하하하하 뭔가 수십년전에서 빵터짐 ㅋㅋㅋㅋㅋ
우린 언제쯤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지점에 대해 같은 의견을 갖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책을 많이 읽다 보면 그런 날도 오지 않을까 싶네요. ㅎㅎㅎㅎ

신지님 유머가 점점 느시는듯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