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1인용 식탁>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1인용 식탁
윤고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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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게 로 

흐르는 물처럼
네게로 가리.
물에 풀리는 알콜처럼
알콜에 엉기는 니코틴처럼
니코틴에 달라붙는 카페인처럼
네게로 가리.
(중략)

 
   

좋아하는 지인의 추천으로 읽게된 최승자 시인의 시집에 실려있는 시 중 하나. 이 책의 리뷰에 무려 최승자 시인의 시를 인용하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이것이다. 

   
 

 네 게 로 

흐르는 물처럼
네게로 가리.
삼다수에 풀리는 참이슬처럼
참이슬에 엉기는 말보로레드처럼
말보로레드에 달라붙는 예가체프처럼
네게로 가리.

 
   

시인과 작가에겐 미안하지만 난 이 슬픈 시를 읽자마자 [일인용 식탁]을 이렇게 패러디하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일인용 식탁]은 정말로 미안하지만 두번째로 내가 패러디한 느낌의 책이다. 그래서 씁쓸하다.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악평을 다느니 리뷰를 쓰지 않는다는 의견과 그래도 다른 독자를 위해서 쓰는 것이 더 낫다는 의견이 충돌했었던 적이 있었다.또 다른 지인은 시간 낭비를 하지 않기 위해서 모든 책에서 좋은 점을 찾아야 한다고도 했었다. 나는 작가와,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독자를 위해 악평을 다느니 리뷰를 쓰지 않겠다는 의견에 공감을 표시했고, 싫은 책은 싫은거라고 혼자 꿍얼거렸는데, 어쩐지 이 책은 서평단 도서여서인지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에 비해서는 호평이 많은 것 같아 나같은 애가 하나쯤 있어도 되겠다 싶어서 남겨둔다.  

이야기가 다루는 사실도 좋고, 환상도 좋다. 두개 섞은 것이라면 두 손 들고 환영한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이야기를 지어내게 된다면 나 역시 내 이야기에 환상을 가미해야 하기 때문에 아마 동화 쪽으로 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공상은 나의 로망이며 나의 일상이다. 이렇게 공상에 열린 마음을 가진 나마저 선택하지 않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소재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의외로 흥미로웠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소재, 누구나 쓸 수 있는 문체, 누구나 할 수 있는 상상력으로 책 한권이 출판되었는데, 거기에서 남는 것이 씁쓸함 뿐이라, 내게 이 책은 실패작이었다. 

만약 작가가 의도한 것이 안그래도 쓸쓸한 독자들을 더욱 더 쓸쓸하게 만들 작정이었다면 작가에게 이 글쓰기는 시간낭비가 아니었을게다. 하지만 작가라면, 글쓰기의 의도를 조금 틀어야 하지 않을까. 젊고 미모로운 작가에게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걸까? 하지만 그나마 나았던 단편인 '피어싱'에서도 일본냄새가 난다. 이를테면 츠츠이 야스타카의 냄새 비슷한 것. 내겐 아직 읽지 않은 수많은 대가들의 작품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도 어정쩡해서 씁쓸한 소설집에 낭비할 시간은 없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엔 나무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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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 2010-06-16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우 패러디보고 빵터졌어요ㅋㅋㅋ
예가체프가 맥심커피믹스로 바뀐다면 제 취향ㅋㅋㅋ(저는 저급문화과라)


Forgettable. 2010-06-17 03:00   좋아요 0 | URL
책의 느낌이 완전 상상되지 않나요. ㅋㅋㅋㅋㅋㅋ
저 맥심커피믹스에 ABC초코렛 녹여서 까페모카라고 하면서 마시곤 했는데.... 왜 이생각이;

pb 2010-06-22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잘 그런다는;;지금은 어차피 커피숍 알바라 그렇지는 않는데
괜히 처음에 어려운 커피숍용어들
지금은 그냥 오천원이면 살 수 있는 자리들에 대해
동경+무지함 ㅠㅠㅠ
지금도그래요ㅠㅠ
지금이야
커피숍알바라
커피분야는 그나마 낫지만
다른것엔 여전히 ㅎㄷㄷ;;

Forgettable. 2010-06-22 12:01   좋아요 0 | URL
커피숍 알바 엄청 부러워요 ㄷㄷㄷ
나도 여기 오기전에 하긴 했지만 여기선 커피숍 알바자리 하나 구하는데도 인터뷰 30분 ㅎㄷㄷ
동문서답 ㅈㅅ

ㅋㅋㅋㅋㅋㅋㅋ

뭐 어차피 저는 오천원이면 살 수 있는 자리에 특권의식을 갖고 있는 문화를 저급문화라 생각하기 때문에.. 품위는 거기에 앉아있는다고 생기는게 아니죠.

Demian 2010-07-04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ㅋㅋㅋ퐝 터지는 패러디네요.ㅋㅋ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새 근황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요.ㅎㅎㅎ

Forgettable. 2010-07-06 03:17   좋아요 0 | URL
ㅋㅋㅋ 요새 조금 바빠졌어요! 새 근황 곧 올릴게요, 데미안님!! +_+
책 자체도 좀 퐝 터지는 경향이..;;;;

김엄지 2011-12-10 0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구아구 댓글이 재미있네요ㅋ 히히 재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