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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ㅣ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16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인규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11월
평점 :
고정관념이란 것은 참으로 폭력적인 것이다. 나치는 무조건 나쁘고, 유태인은 불쌍하다. 조중동의 기사는 헛소리다. 과도한 신자는 나랑 안맞는다. 식민지 시절 때문이다. 유럽의 문화는 빈민층, 흑인노예의 비참한 희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등등의 수많은 고집스러운 편견으로 나는 견고하게 굳어져있고, 때론 이 단단함때문에 상처를 입는 희생자도 있었다.
이 중에서 유럽의 문화는 빈민층, 흑인노예의 비참한 희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라는 고정관념이 [두 도시 이야기]의 독서에 영향을 끼쳤다. 나는 디킨스가 다분히 낭만적인 시선으로 프랑스 혁명을 봤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포도주통이 깨져서 온 거리에 새빨간 포도주가 흐르니, 온갖 사람들이 달겨들어 포도주가 흐르는 바닥을 핥아먹는 장면이나 눈 앞에서 높으신 귀족나으리의 마차에 치어 소중한 자식이 죽는 장면을 봐야했던 아버지의 이야기가 그렇게 감상적으로 들렸다. 이것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레미제라블]의 배경과 흡사하였지만 조금 더 '보여주기'의 느낌이 강했다. 이를테면, '차알스- 당신도 어쩔 수 없는 부르주아야.' 라고 비아냥거리고 싶은 마음이 울컥울컥 거렸달까.
물론 내가 읽은 것은 완역판이 아니므로 섣불리 판단을 할 수는 없다. 디킨스의 또 다른 작품 [어려운 시절]을 읽으면서는 빈정거릴 수 없었으니까. 게다가 이 책은 나의 고정관념의 축에 치명타를 날렸다. 바로 착한 귀족이 있었다는 것이다. 온갖 명성과 부가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가문을 버리고 영국으로 망명한 찰스, 숭고한 사랑의 희생자 변호사 시드니, 은행가, 의사인 마르벵과 그의 딸 등,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모두가 빈민과는 거리가 멀지만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프랑스 혁명의 피해자들이었다.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읽으며 나는 혁명의 피해자는 주동자들 자신이면 자신이었지, 멍청한 귀족들은 당해도 싸다고 생각했고, 츠바이크의 [베르사유의 장미]를 읽으면서도 국왕과 왕비의 어리석음에 통탄하며 안타까워했을 뿐 추호도 빈민층을 비난했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디킨스는 반대로 생각해보자며 슬금슬금 고정관념에 톱질을 한다. 나는 흔들리지만 그래도 귀족이 피해자일 수는 없다며 버텨봤다. 그런데 책을 덮은지 2주가 지나도 자꾸 생각이 난다. 신파조의 러브스토리가 떠오르는게 아니라, 귀족층에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디킨스의 낭만적인 면모를 떨칠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블로그에서 본 [바스터즈]의 리뷰에 내가 남긴 댓글에 그 블로거가 글을 남겨두었다. 식민지기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다각도로 늘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 그렇다. 미사리가 내게 책을 많이 읽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싫어할 수 없단 말을 했을 때부터 나는 반성을 했어야 했다. 모두에게 그들 각자의 입장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 당시의 귀족들의 죽음은 처벌의 개념뿐만이 아니라 피해자의 개념도 있었을 것이었다. 나는 오만하고 멍청해서 나쁜 독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