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어딘지도 모르는 터널처럼 기다란 회색빛 기차괴물이었다. 지능이 없는 괴물이라 연료가 없을 때는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아무 걱정할 것이 없었지만, 일단 연료가 공급되기만 하면 사람을 먹어치우고 다니는 아주 무서운 괴물이었다. 

바닷가에 있는 폐쇄된 철로에 모두 모여 기차괴물을 파괴하기로 했다. 이 일만큼은 기계들도 인간에게 협조해주었다. 나는 기차괴물의 수뇌부로 이어진 석탄 줄 끝에 횃불을 던지는 역할을 맡았다. 동료의 손을 꼭 붙잡고 횃불을 던지고 힘껏 멀리멀리 뛰었다. 충분히 멀리왔다고 생각하고, 눈밭에 얼굴을 묻고 기차괴물이 폭발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기차괴물이 칙칙폭폭 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석탄줄과 횃불이 그의 연료가 되었던 것이다. 기차괴물은 나를 지나쳐서 한참이나 철로를 따라 내달려갔다. 애초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인적없는 장소를 골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윗사람들은 이 사건을 외부에 알리지 않기 위해서 점화장소로 폐쇄된 곳을 택했을 뿐, 기차가 어디에서 폭발할 지는 상관 없었던 것이다. 기차는 굽다란 산길을 지나쳐 어느 마을에 이르러서야 폭발했다. 아파트 스무개 정도가 무너지고, 마치 히로시마 폭발이 그러했던 것처럼 연기가 파도치듯이 내 쪽을 향해 굽이쳐왔다. 

엄청난 양의 먼지와 연기가 산골마을과 바닷가 마을을 뒤덮었다. 얼빠진 나와 동료가 있는 곳은 폭발지점에 비한다면야 소량의 먼지만이 날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터덜터덜 걷다가 작은 어촌에 들렀다. 그들은 새삼스럽지도 않다는 듯이 말린 생선 위의 시꺼먼 재를 털고 있었다. 있는 돈은 다 꺼내어주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냥 주면 왠지 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것 같아서 빈민가의 슈퍼에 들러 물을 하나 사고, 지갑을 여니 오천원 뿐이었다. 오천원을 주며 잔돈은 가지라고 했다. 아주머니가 '고맙다'를 '가맙다'라고 했다. 너무 좋은 나머지 말이 샌걸까?

연기와 재를 마시고 싶지 않아 침을 삼키지 않고 있단 걸 깨달았다. 침을 듬뿍 흘리며 잠에서 깨서 티슈로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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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9-11-01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님, 최근에 들은 꿈 얘기 중 제일 재미있는 얘기였어요. ㅎㅎ

Forgettable. 2009-11-02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실제로 꾸면 무섭고 슬퍼요. 어찌나 생생했던지, 기억하는 것좀 봐요 ㅎㅎㅎ

다락방 2009-11-02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게러블님. 이거 말이죠, 소설 같아요. 이야기 보다는 문체쪽이 말예요. 국내작가 말고 외국작가. 꿈을 바탕으로 해서 호흡을 좀 더 길게 해서 소설 한편 써봐요, 뽀게러블님. 소설에 굉장히 맞는 문체라고 저는 생각해요.

Forgettable. 2009-11-02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문체따위는 이야기에 파묻혀 상관도 하지 않을만큼 멋진 이야기가 만들어지면 쓰려구요. ^^ (그 이야기의 발목잡을 문체가 되어서도 안되겠죠 물론)
번역문체.. 같나요;; 단어의 느낌도 깊지 않죠 사실... 아 칭찬듣고 자괴감에 빠지는 절 좀 건져주세요 ㅋㅋㅋ

여튼 최고의 칭찬과 조언을 동시에 해주셨네요. 능력자 다락방님 '-')♡

2009-11-02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목이 무슨 뜻인지 잠시 생각했네요. 암튼 신기한 꿈이네요. 전 요새 매번 개인적인 컴플렉스들이 꿈을 통해 회복되곤 해서, 깨고 나면 괴롭기만 해요-_- 악몽이라도 좋으니, 모험을 떠나보고 싶다능;;;
암튼 통역사 다 봤어요. 말씀대로 중간 넘어가니 금방 금방 읽히더라구요. 무척 우울했음. 인종적 내지 민족적인 서글픔이 이유없이 들었고, 읽고 학관을 내려오면서, 내가 있는 곳이 한국이라는게 무척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했고;; 아무튼 생산적인 사색으로 넘어가야 할 터인데, 그레이스는 아무리 수영을 잘 하게 되었다지만 과연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고, 살아돌아온다 하더래도 실종자로서 사건과 관계된 심문들을 어떻게 극복할까 궁금하고-_- 이런 생각이나 하고 앉아 있네요.

Forgettable. 2009-11-02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개인적인 컴플렉스가 꿈에 나타나면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요. 전 아직도 알몸으로 돌아 다니며 부끄러워하는 꿈을 꿔요;;;; 물론 모험도 진탕 하고요. 모험한번 하고 나면 온몸이 뻐근;;;;

[통역사]다 보셨군요. 그래도 끝까지 읽어 다행이에요. ㅠㅠ 지루하다고 불평불만할까봐 약간 걱정했는데 ㅎㅎ 이 책을 보고는 저역시 진이 빠져서 생산적은 사색은 커녕 한없이 비난과 비참의 구렁텅이를 넘나들었네요. 그래도 때론 그런 책 좋잖아요. 뭐 고시생 코님께는;;; 약간 부적절했을까요? ^^;
그레이스는 그냥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제 수지도 마음을 잡은 것처럼 보이니 ㅎㅎ 결말이 약간 아쉽긴 했어요.. 여튼 다음 작품이 무지 기대되는 작가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