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가끔씩 누군가 심장을 꽈아악 움켜쥐기 시작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여행하는 도중, (이루어질 수 없는)사랑에 빠졌을 때, 라면 그나마 견딜 수 있겠는데,
오래 전, 이젠 잊혀져가는 수행평가 보기 직전의 기분이나, 
요즘처럼, (잔소리 들을)일이 많을 때. 는 견디기가 힘이 든다. 
이따위 것들 때문에 내가 집떠나서나 생기는 불안감에 휩싸여있어야 하나 싶어서.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모니터와 일일업무보고서를 가득가득 채워놓고 있는데, 나는 이 기분에 사로잡혀 길 위에서의 나를 상상하며 저 멀리 캐나다로, 인도로, 콜롬비아로 날아가 있다. 몹쓸 회사원같으니라고- 

오후엔 제대로 일하자. 

**
[펭귄의 우울]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보드카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싸늘하고 쓴 열기를 내뿜는 것만 같은 그의 글을 여름 내내 그리워했다. 사폰이 여름의 작가라면, 쿠르코프는 겨울의 작가랄까. 다시 읽어도 좋다. 러시아의 추위와 뜨거운 술과 우울하고 무심한 주인공과 그의 펭귄이 요즘의 내 공상과 맞물려 들뜬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혀준다. (정말?)

매년 가을은 참 설레는 계절이다. 더불어 씁쓸하고 두려운 계절이기도. 이러한 계절이길 오히려 바랬던가.

***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을 힘겹게 마쳤다. 

꽤나 오래 전에 받은 선물이었는데, 띄엄띄엄 읽다가 이제서야... 
긍정행복컴플렉스책 같아서 잘 못넘기가다가 몽테뉴와 쇼펜하우어 부분에선 꽤나 재미있어져서 후르륵 읽어버리고 말았다.
장르소설의 유혹에서 좀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자신감 충만!! 

몽테뉴의 [수상록]이 많이 궁금하다. 작가 스스로 오류투성이라고 인정한 책.(ㅋㅋ 유쾌한 사람)
내가 그와 우정을 나눌 수 있었을지도 궁금했다. 표면적으론 매우 공감이 되던데, 여튼 읽어봐야지. 

쇼펜하우어는........ 말 할 것도 없다. 날 위로해주는 코믹한 단 한사람을 꼽으라면 난 그를 뽑을테다.(잘 알지도 못하면서)
적어도 키에르케고르 처럼 같이 우울의 수렁으로 빠져들어가진 않을 거 아닌가. 무튼 의외로 즐거웠던 독서.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해한모리군 2009-09-17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을 읽어볼까 했는데 '힘겹게 마쳤다'니 또 망설여지네요..
한때 고교때는 키에르키고르같은 순결한 정신세계를 동경했었는데 말이죠~

Forgettable. 2009-09-17 17:00   좋아요 0 | URL
고교때 키에르케고르의 책을 읽으셨다니...-ㅁ- 정말 대단해요! ㅎㅎ
이게 긍정행복컴플렉스같아서 그랬던건데, 읽다보니 나쁘지 않아요. 특히나 몽테뉴 같은 철학자의 발견은 득템이랄까요~

무해한모리군 2009-09-22 11:44   좋아요 0 | URL
펭귄의 실종 주문했는데 벌써 5일째 못오네요. 재고가 없나봐요.

Forgettable. 2009-09-23 10:18   좋아요 0 | URL
5일째?? 책이 안팔리긴 안팔리나 보군요, 안갖다 놓나보네..
실종은 우울에 비해 좀 별로였던 것 같아요. 그때 정신건강도 별로 좋지 않아서,,
암튼 우울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읽어볼려구요 저도.

2009-09-17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갑자기 이 글을 보니, 벅스 한 달 이용권 기한이 다 되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누군가 제 심장을 움켜쥐는 듯한 기분이 들었네요;
그런데 이런 기분이 사랑에 빠졌을 때 기분인가요?
사랑은 한 번도, 하물며 짝사랑마저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고 생각했고,
혹시 예쁜 외모에 순간 혹한게 사랑이었나 싶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건 아니었던 것 같네요;
그나저나 펭귄의 우울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밑에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은,
제가 전혀 기쁜 기분이 아니라서 그냥 패스하기로 하고;
요즘 난독증이라 글을 도저히 집중력있게 못 읽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도서관에서 공부 10 분 하고, 머리 식힐 겸 50 분 쉴 때 읽으니 잘 읽히더군요 ㅎㅎ
아 이건 좋아할 일이 아닌데 ㅡㅡ;

Forgettable. 2009-09-17 21:32   좋아요 0 | URL
으하하 맞아요, 바로 그 기분. 불안하고 초조하지만 이 기분만이 다인 건 아닌 그런 기분이요. 나도 멜론 기한 다되가는구나, 덜컥
사랑 한 번 못해보고 뭐해보셨수, 남자대학교 다니는 것도 아니면서 -_- 요즘은 남중-남고-공대-군대-제대-공대도 연애는 한번씩 다 해보던데요(도발) 얼른 분발하세요! 만일이 되어도 광명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혹시 말로만 듣던 초식남인가여?+_+)

펭귄의 우울은 제가 꽤나 추천해주고다니는 책인데요, 재미도 있고 분위기도 괜찮아요. 될대로 되란 주인공이지만 코믹하면서도 영리한 캐릭터인 것이 코님이랑 비슷한 면이 있을 수도 있겠어요.

머큐리 2009-09-18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심장을 움켜잡는 기분....

Forgettable. 2009-09-19 17:36   좋아요 0 | URL
아시나요?ㅎㅎ

2009-09-19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9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Demian 2009-09-20 0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흐음...뭔가 표현하긴 힘들지만 구구절절 와닿는 기분입니다.
저도 요즘 뭐랄까, 여행쪽 일을 하고 있지만 그것 역시 일이라, 일을 다 떠나놓고 한 며칠간 아무생각도 안하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곳에 휙 도망가버리는 상상을 하곤 하거든요. 옆에 좋아하는 책들 실컷 쌓아놓고, 맛있는거 잔뜩 늘어놓고 말이지요.
에휴, 여하튼, 나중에 콜롬비아 오시면 꼭 커피 한잔 대접할께요. 그때를 위해 거짓말같은 달콤한 꿈 같이 꾸고 있자구요. 화이팅!^^

Forgettable. 2009-09-20 21:53   좋아요 0 | URL
아, 데미안님 ㅠㅠㅠㅠㅠㅠ
오랜만에 뵙네요! 요즘 일때문에 많이 힘드신가봐요, 한국 떠나있은지 오래되서 그러실까요? 전 주말 내내 아무 생각 안하고 놀고 책보고 그랬네요. 맛있는 건 못먹었지만. ㅋㅋ

저 가면 커피 한잔만 말고 같이 주말에 놀러다니고 그래요~! ^^ 제가 가면 달콤한 꿈을 현실로 만들어드릴게요, 으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