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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가끔씩 누군가 심장을 꽈아악 움켜쥐기 시작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여행하는 도중, (이루어질 수 없는)사랑에 빠졌을 때, 라면 그나마 견딜 수 있겠는데,
오래 전, 이젠 잊혀져가는 수행평가 보기 직전의 기분이나,
요즘처럼, (잔소리 들을)일이 많을 때. 는 견디기가 힘이 든다.
이따위 것들 때문에 내가 집떠나서나 생기는 불안감에 휩싸여있어야 하나 싶어서.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모니터와 일일업무보고서를 가득가득 채워놓고 있는데, 나는 이 기분에 사로잡혀 길 위에서의 나를 상상하며 저 멀리 캐나다로, 인도로, 콜롬비아로 날아가 있다. 몹쓸 회사원같으니라고-
오후엔 제대로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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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의 우울]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보드카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싸늘하고 쓴 열기를 내뿜는 것만 같은 그의 글을 여름 내내 그리워했다. 사폰이 여름의 작가라면, 쿠르코프는 겨울의 작가랄까. 다시 읽어도 좋다. 러시아의 추위와 뜨거운 술과 우울하고 무심한 주인공과 그의 펭귄이 요즘의 내 공상과 맞물려 들뜬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혀준다. (정말?)
매년 가을은 참 설레는 계절이다. 더불어 씁쓸하고 두려운 계절이기도. 이러한 계절이길 오히려 바랬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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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을 힘겹게 마쳤다.
꽤나 오래 전에 받은 선물이었는데, 띄엄띄엄 읽다가 이제서야...
긍정행복컴플렉스책 같아서 잘 못넘기가다가 몽테뉴와 쇼펜하우어 부분에선 꽤나 재미있어져서 후르륵 읽어버리고 말았다.
장르소설의 유혹에서 좀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자신감 충만!!
몽테뉴의 [수상록]이 많이 궁금하다. 작가 스스로 오류투성이라고 인정한 책.(ㅋㅋ 유쾌한 사람)
내가 그와 우정을 나눌 수 있었을지도 궁금했다. 표면적으론 매우 공감이 되던데, 여튼 읽어봐야지.
쇼펜하우어는........ 말 할 것도 없다. 날 위로해주는 코믹한 단 한사람을 꼽으라면 난 그를 뽑을테다.(잘 알지도 못하면서)
적어도 키에르케고르 처럼 같이 우울의 수렁으로 빠져들어가진 않을 거 아닌가. 무튼 의외로 즐거웠던 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