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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 지다 - 상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2월
평점 :
이 책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는 말은 너무 진부한가.
재미있는 이야기는 읽어보고 느껴야 하는 것이므로 스토리에 관한 것은 여기서 잠시 접어두도록 하겠다. 이사람은 정말 이야기꾼이다. 대부분의 일본 소설에서는 찾을 수 없는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의 느끼한 면모도 없지 않으나 이야기에 흠뻑빠지게 만드는 작가로서의 역량은 정말 대단하다. 옛날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쓰잘데기 없는 책이 출판되는 속도만큼이나 빨리 없어지는 시대이니만큼 작가가 정말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이 리뷰에서는 책을 읽으며 눈은 텍스트를 따라가나 딴생각으로 빠지게 되었던 부분을 집중적으로 써보겠다. 얘기했듯이 스토리 자체는 흠을 잡을 수가 없고, 칭찬을 해봐도 그저 무색할 뿐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방대한 자료와 여러 시점에서의 반복적인 서술은 지루하기 보다는 낯선 사건을 바라보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일본문화의 이해' 과목을 듣고 수많은 매체들을 접해도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던 일본을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라고 하는 이유를 이제서야 아주 조금 알 듯하다.
내게는 일본인 친구들이 꽤나 많은 편인데, 언제라도 도쿄에 가면 반갑게 나를 맞아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친한 친구도 몇 있다. 그렇지만 그 친구들의 공통적인 일본적인 캐릭터를 이 책을 읽으면서야 이해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그 친구들에 대해서 본질적으로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테다.
어찌보면 굉장히 쿨한데 속으로는 너무나도 연약하고, 감정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부모님보다는 애인이 중요하고, 그런데 또 어찌보면 부모님에게 너무 의존적이고, 사랑에 빠진다는 걸 쉬쉬하고, 뭐든 가볍게만 생각하려 하고, 가끔 보이는 진지한 모습들은 바람처럼 사라지고, 정말 알 수 없는 면모들이 이 책을 보면서 이해가 간다.
사무라이 정신. 우리는 절대 알 수 없는 이 정신이 그들의 뿌리였던 것이다.
미루야마 겐지가 그려내는 마초적인 사무라이 정신일 수도 있겠고, 미야모토 무사시의 영웅적인 면모를 존경해 마지 않으며,
아, 칼이든, 가족이든, 천왕이든, 가문이든 간에 믿는 바를 초지일관으로 따르며 자기 일신의 안위는 포기해버리는 이 정신이 그들의 뇌 구석구석 어디엔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존경해 마지 않았으며 우리의 마음 속 어디엔가 꼭 존재하고 있는 선비정신이랑은 아예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 이게 웬만한 로맨스보다 더 마음을 친다.
낯선 것에 대한 로망이랄까- 일본인마저 낯설다는 이 새롭게 바라본 사무라이 정신은 이 책 속에서 지극한 아름다움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런말을 하면 좀 이상할 수도 있었겠지만,
전쟁이 일상화된 시절을 보낸 군인들, 자신의 목숨을 이미 내어 놓았기 때문에 적의 목숨, 심지어 동료의 목숨이라도 명령이라면 언제든지 끊어버릴 수 있었던 시절을 보낸 일본인들이 한국을 침략해서 강탈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테다.
우리는 피해자로써 그들의 잔악한 면만을 보고 듣고 배웠지만, 연이은 흉년과 전쟁으로 황폐화된 토지에서 어떻게든 자기 휘하의 백성들을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조선 침략을 강행한 쇼군들의 심정은 아마 의를 저버리면서까지 자기 가정을 지키고배불리 먹이고자 했던 요시무라 간이치로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이게 애국심을 위협하는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현 일본 정부의 오만함은 나도 싫지만,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지금 한국인의 왜곡된 반일감정에서 약간의 타협점을 찾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