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일을 하루 쉬었다. 그 김에 수요일에는 신촌까지 멀리멀리 가서 친구와 후배와 함께 치쏘를 곁들여 놀았는데, 예기치않게 논쟁을 하게 되었다.
이 논쟁이라는 것이 정말로 참 이상한게, 왜 정색을 하게 되는지.. 이게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그제가 처음이었는데, 난 정색하고 논쟁을 하는 것에 대해서 단 한번도 거리낌을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좀 그러는 내 자신에게 불편함을 느껴서 괜히 집에가는 길에 후배에게 문자로 사과까지 했다.
그 논쟁의 발단은 자살을 찬미하는 후배와 자살은 어쨌든 이해할 수 없다는 나의 갈등이었는데,
'역사상 가장 합리적인 시대였던 로마에서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자살은 인정했다.'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로마가 합리적인 시대라는 근거가 어디에 있냐고 물었고, 후배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자살은 인정했기에 로마가 합리적인 시대라고 말했다. 이게 왠 '박대박'식 유머인지. ㅎㅎ
이런 논쟁을 하는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서 마구 이야기하다가도, 어느 정도는 상대방의 의견에 수긍을 하(는 척이라도 하)고, 뒤돌면 까먹고 또 딴얘기를 하며 장난치며 웃는 것이 버릇이었지만,
최근에 일련의 사건을 겪고 내 자신을 반추하며 더더욱 소심하게 되었다.
토론을 좋아하는 나는 점차적으로 소심해져서 내 의견을 얘기하고서도 미안해하는 애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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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뜻하지 않았던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나 '근대그림 속을 거닐다'가 우울한 오늘 아침의 신선함이 절대 될 수 없었다고는 말 못하겠다.
하지만, 그래서 더 심란해졌달까.
정선생님은 항상 '바람둥이가 되어라.'라고 말씀하셨었다. 한 곳에 너무 오래 얽매여있으면 안된다며 일생을 사는 동안 할수 있는 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각각의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그들과의 관계를 항상 배우라고 하셨었다. 그에 따라 사람에게 안주하는 마음을 경멸하여왔지만, 선생님은 가장 어려운 것을 가르쳐주려고 시도하셨던 것 같다. 아직도 관계를 맺을 때 휘청휘청 대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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