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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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 해,
월드컵 예선이 있을 때면 온 국민에게 '경우의 수'를 공부시키던 대표팀이 웬일로 차범근 감독의 지휘 아래 파죽지세로 4연승을 올리더니 일찌감치 본선 진출을 확정지어 버렸다. 이때 왜 차범근은 사단이고, (네덜란드)오렌지는 군단이냐? 따지는 우스개 소리도 나왔더랬다. 하여간에, 차범근사단이 '너무' 잘 하는 바람에 갑자기 심심해진 국민들, 이번엔 이웃나라 일본의 본선 진출을 두고 '경우의 수' 공부하기에 돌입했다.
이때 일본은 본선 진출이 거의 좌절 직전이었으나 우리나라에 2:0으로 극적으로 이기고 조 2위가 되어(이때 일부러 져줬다느니 엄청 시끄러웠다) 다른 조 2위인 이란과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었는데 이기면 사상 첫 본선 진출이고 지면, 오빠 말로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응원할 거라고 했다. 이유인즉 우리나라가 남은 경기에서 이기면 '경우의 수'에의해 일본의 본선 진출이 가능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나.
그리하여 일본과 이란의 경기가 있던 날 나는 TV가 있는 방에 출입금지 당했다. 오빠가 "니가 보면 일본이 이긴다"는 참으로 억울한 이유를 들어 나를 쫓아냈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이 이란에 1점 차로 승리,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의 쾌거를 이룩했다. 모두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지역 예선때 일이다.

여자가 싫어하는 남자는 '군대 얘기하는 남자', '축구 얘기하는 남자', '군대에서 축구했던 얘기하는 남자'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지만, 남자에게 축구는 군대와 더불어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축구라면, 그것도 프리메라 리그라면 사족을 못쓰는 남자가 역시 프리메라 리그라면 사족을 못 쓰는 여자를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게다가 이 여자, 못 하는 게 없다. 요리도, 연애도, 일도. 취미도 같고, 말도 잘 통하고 거기에 제대로(?) 성(性)을 즐길 줄도 안다. 결혼 적령기에 있는 남자가 이런 여자를 만났을 때 취하는 다음 행동은 한 가지 밖에 없다. 바로 그 여자와 결혼하는 것.
소설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아내가 결혼했다. 이게 모두다.
나는 그녀의 친구가 아니다. 친정 식구도 아니다. 전 남편도 아니다. 그녀의 엄연한 현재 남편이다.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녀 역시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내 인생은 엉망이 되었다. 

평소 의식하지 못하던, 관습에 의해 학습된 내 안의 보수성과 마주칠 때가 있다.
말하자면『아내가 결혼했다』는 이러한 내 안의 보수성을 자극하는, 한 여자가 두 남자와 '결혼'을 하는 시놉시스를 가지고 전개되는 소설이다. 그러니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구매를 할지 말지, 막상 읽기 시작한 뒤에도 읽다가 말다가 읽다가 말다가... 독서가 매우 험난했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문장이 가볍고 전개가 유쾌한 소설이다. 그렇다고 칙릿은 아니다. 소설이 제시하는 담론은 충분히 논쟁적이고 작가도 진지하다. 소설은 축구와 결혼이라는 두 얘기가 서로의 씨줄과 날줄을 얽으며 진행된다.
"골키퍼 있다고 골 못 넣냐"는 축구보다 연애를 얘기할 때 더 많이 등장하는 안주거리같은 얘기다. 이 소설에도 이러한 축구와 연애(혹은 인생) 간의 상호 비유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골키퍼 있는데 골 넣을 수 있을까? 있다. 그게 축구의 룰이다. 그럼 이 얘기를 결혼으로 가져 오면 어떨까. 배우자가 있는데도 그녀의 연인이 되는 게 가능할까? 역시 가능하다. 불륜이라는 주홍글씨를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리고 연인을 누군가(=골키퍼)와 나눠 가질 자신이 있다면.  

그런데 심지어 아내다. 심지어 아내는 불륜이 아니라 결혼이 하고 싶다고 선언한다. 골이 문제가 아니라 골대 앞에 골키퍼 하나를 더 세우겠다는 얘기다. 축구에서 골문을 골키퍼 두 명이 지키는 건 반칙이 아니라 경기의 룰 자체를 거스르는 것이다. 그건 이미 축구가 아니다.

소설은 있을 법 하지 않은 얘기를 있을 법하게 지어내는 거짓말이다. 있을 리 없는 얘기를 있을 수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은 작가의 능력이다. 그러니까 거짓말을 잘 하는 작가가 곧 능력 있는 작가다. 작가는 거짓말을 하고 독자는 알면서 속아준다. 그런데 이 소설은 알고도 속아주기엔 거짓말이 좀 많이 허술하다. 

-  아내(인아)가 나(덕훈)와 결혼한 상태로 그 놈(재경)과 결혼을 감행한다. 문제는 복혼의 주체가 '아내'라는 것이다.
인아는 직장 생활과 결혼 생활을 동시에 그것도 완벽하게 해낸다. 당연히 인아의 결혼 생활은 상상을 초월하는데 그녀는 두 남편을 위해 집안 일을 두 배로 하고, 아내 역할을 두 배로 하고, 며느리 역할을 두 배로 한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이유로 첫 번째 남편 덕훈은 그나마 가사에서 아예 손을 떼지만 인아는 불평하지 않는다. 인아가 두 배로 치러야 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덕훈은 인아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그놈이랑 하는 게 좋아? 나랑 하는 게 좋아?" "그놈이 오래 해? 내가 더 오래 해?" "그놈이 잘해? 내가 잘해?"
신년 연휴는 덕훈의 본가, 설 연휴는 재경의 본가를 오가며 완벽한 며느리 역할을 해내는 인아는 그냥 슈퍼우먼도 아니고 초싸이어인슈퍼울트라캡숑짱 우먼이다. 이런 인아가 과연 쿨한가? 글쎄.
남편을 하나 더 얻은 대가로 인아가 치러야 하는 현실은 실로 끔찍하다. 만약 인아가 정말 독립적이고 현명한 여성이라면 덕훈과 이혼을 하던가, 재경과 헤어지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했을 것이다.

- 아내의 결혼이 '한 번 더'에서 끝나고 마는 것은 소설이 보여준 가장 재미 없는 농담이다.
애초에 인아가 덕훈을 설득할 때 주장의 근거로 제시했던 '폴리안드리'(일처다부제)는 남편 둘을 얻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고작 남편 둘에서 멈추다니. 게다가 인아가 더 이상의 결혼은 그만 두겠다는 이유는 '두 집 살림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처음 덕훈과 인아가 모노가미(일처일부)냐 폴리안드리(일처다부)냐로 대립각을 세울 때 코빼기도 안 보이던 결혼 제도의 사회학적/관습적 굴레가 더 이상의 결혼은 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뒤늦게 등장한 것이다. 하긴 아무렴 어떤가. 처음부터 인아의 폴리안드리는 허술하고 일방적이고 오류 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일방적인 편들기에 힘입어 덕훈을 설득하는데 아무 문제 없었는데. 결국 인아와 덕훈의 논쟁은, 덕훈이 좋아하는 축구에 비유하자면, 처음부터 심판(=작가)을 매수한 경기였던 것이다.

- '복혼'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인아의 논리는 허점이 많다. 특히 '이슬람의 코란은 네 명의 처를 두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p.220)는 부분.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든, 인아가 덕훈을 설득하기 위해 인용한 코란의 이 구절은 '(감정적으로)공평하게 대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구절로 이어진다. 이슬람 개혁의 선구자였던 무하마드 압두는 이 구절을 신의 진정한 뜻은 일부일처라는 의미로 해석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소설에선 이러한 내용은 등장하지 않는다. 작가가 공평했다면 인아의 코란 인용에 덕훈은 압두의 해석으로 반박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작가 마음이라는 건데, 비빔밥을 시켜 놓고 좋아하는 나물만 골라 먹는 식이다. 

- '종교적이거나 경제적인 이유와 무관한 폴리기니(일부다처)가 가능하다면 폴리안드리(일처다부)도 가능하다'(p.139)는 인아의 주장은 일단 종교적, 경제적인 이유와 무관하게 오직 '애정'만으로 복혼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점에선 썩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복혼이 평화적으로 유지되는 것에는 글쎄... 개인적으론 코란이 경고했듯 모두를 다 공평하게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에 공감한다.

- 마지막으로 '기독교가 일부일처제와 무관하다'(p.191)는 인아의 논리. 인아에 의하면 그 이유가 '성경에 이혼은 금지했지만 복혼을 금지하는 내용이 없기 때문'(p.191)이라는 건데 이쯤 되면 아, 이거 웃으라고 하는 얘긴가 헷갈린다. 그야말로 '먹으라고는 안 했지만 먹지 말라고도 안 했다'와 뭐가 다른가.
소설 전반에 걸쳐 덕훈을 설득하는데 성공한 인아의 '폴리안드리' 논리의 전개는 대체로 이런 식이다. 인아가 영리한 걸까, 덕훈이 바보인 걸까.

어쨌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든 생각은 읽기를 잘 했다는 것이었다.
감상을 한 줄로 정리하면, '불편하지만 재미있는 소설'.
함께 읽어 보면 괜찮은 소설로 이만교의『결혼은 미친 짓이다』(민음사) 추천.

다음은 읽으면서 공감이 가는 한편 재미있었던 부분.

(…)그리하여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을 때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더 고통스러워한다.
남자들이 더 고통스러워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남자와 여자의 사회화 과정이 다르다는 데에 있다. 대개의 여자들은 10대 중반에 이르면서부터 사랑의 시뮬레이션을 수도 없이 경험한다. 순정 만화와 로맨스 소설이 그녀들의 텍스트이다. 또한 여자들은 연애할 때, 이별할 때, 그리고 남자 친구가 바람피울 때, 그 모든 일들을 친구들과 공유한다. 이랬어. 어머. 저랬어. 저런. 이래야 돼. 정말? 저래야 한다니까. 깔깔. 그리하여 여자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사랑에 관한 수십 개의 시나리오들이 완성되어 있으며, 또한 각각의 시나리오마다 배역과 연기의 색깔이 어느 정도 설정되어 있다. 즉 그녀들에게는 수십 가지의 대처 방안이 이미 정리되어 있는 셈이다.
남자들은? 10대 중반에 이르면서부터 스포츠 만화나 무협지를 보며 영웅에 대한 환상을 키운다. 가까운 친구들과의 대화는 욕설이 절반을 차지한다. 그 속에 연애 이야기가 들어갈 자리란 없다. 사랑에 대한 시뮬레이션? 없다. 애인이 바람을 피운다고 친구가 고민하면? "술이나 마셔"라고 말해 준다. (오쟁이를 지다니, 쪼다 같은 놈!) 자신의 배우자가 바람을 피운다면? 그럴 리가 있겠나. (생각한 적도 없다니까.) 막상 일이 닥치면? 왜 나야! - pp.1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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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만감일기 - 나, 너, 우리, 그리고 경계를 넘어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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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사회주의자 또는 좌파라고 선언하는 귀화 지식인이 바라보는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 어떤 색깔을 하고 있을까.
나는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북쪽에서 빨갱이가 내려온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결연한 얼굴로 투표하러 하는 것을 봤고, 더 어렸을 때는 우리나라 최고 대학 최고 학과 장학생인 삼촌이 카추사 복무 중에 의문사한 얘기를 들었고, 훨씬 더 어렸을 때는 일본과 북한이 축구를 하면 누구를 편들거냐는 참으로 난해한(!) 질문을 받으면서 자랐다. 세상을 보는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해 준 이런 일련의 경험들로 나 자신,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만감일기』를 읽으면서 일부 수긍을 하거나 신선하다고 생각되어졌던 부분은 개인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개인에게 국가는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라는 '국가' '민족주의'에 관한 저자의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맞아, 맞아" 편하게 읽히는 내용이 있는 반면 "어?" 하고 고개를 갸우뚱한 내용도 다수 있다. 

"코리안 호스티스가 필요하세요?" (2006年 10月 20日)
그런데 돈을 주는 고객과, '이차'를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즉 경제적인 강제를 받는 '호스티스'의 관계는 서로가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려는 관계에 있는가? 경제력을 독점한 남성이, 경제력이 결여된 여성에게 경제력을 무기로 폭력을 휘두르는 게 성매매의 본질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 구매는 '경제력에 의한 강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 pp.68-69  

저자는 돈을 주는 남성 고객과 이차를 가지 않으면 안 되는 호스티스의 성매매 관계의 본질을 경제력을 독점한 남성에 의한 폭력 그러니까 '경제력에 의한 강간'이라고 결론을 짓는데, 지불하는 이와 지불 받는 이 사이에 존재하는 '거래'의 다양한 범위를 생각할 때 이는 자칫 일방적이고 편협한 결론으로 보일 수 있다.
혹 대상이 인사권을 쥐고 있는 직장 상사와 부하 여직원이라면 '경제력에 의한 강간'은 아주 적확한 표현이다. 영화화된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폭로(Disclosure)>에선 직장 상사인 데미 무어(여성)가 부하 직원 마이클 더글라스(남성)에게 성적 유희를 강요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소설이 시사하는 바가 컸던 것은 지배권력을 누가 소유하는가에 따라 남녀 성의 역학 관계는 얼마든지 역전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 준다는데 있다.
즉 성매매가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굳이 가해자를 가려내고자 한다면 왜곡되고 기형적인 경제 수단을 선택하도록 여성을 음지로 몰아낸 사회구조적인 모순과 그러한 사회를 방임 내지는 조성한 국가, 정부, 다수의 위정자들에게 손가락을 돌려야 한다.

이 외에 지난 18대 총선에서 도봉구에서 김근태 의원을 밀어내고 당선된 뉴라이트 재단 이사 신지호 의원과 관련된 내용도 눈에 띈다.  

NL파 세력이 유지되는 이유 (2006年 11月 1日)
"NL파가 '최대주주'(내 표현이 아니라 신 씨의 표현이다)인 민노당을 진보정당이라 부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 좋다. 북한의 체제를 '사회주의'로 착각하는 사람들의 진보성에 대해서는 나만 해도 회의적이다. 그런데 혹시나 나중에 신씨를 만날 일이 있으면 꼭 하나 물어봐야겠다. 아직도 80년대 말에나 나올 법한, 순진하다 못해 우습게만 보이는 북환 관련 주장들이 계속 나오는 이유를 아시는가?" - p.158

저자인 박노자는 자칫 파시즘의 싹이 될 수 있는 '민족주의'를 혐오한다. 당연히 '민족해방파'인 NL계열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부정적이라는 것이지 '적'으로 간주한다는 것이 아니다. 저자를 비롯한 좌파 성향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사상적 기반과 지지층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을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비판적으로 지지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정치적 유연성,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야합이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얘기와 일견 상통한다. *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얘기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발생한 표현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촛불집회와 관련해서 어용언론을 중심으로 무수히 쏟아졌던 좌파/좌익 나아가 빨갱이 담론, 거기다 반미반정부적이라 하여 불온서적을 발표하는 국방부까지…. 이쯤되면 경제불황으로 허리가 휘는 국민을 웃겨주기 위한 쇼비즘인가 의심이 들 정도.
중국으로 단체 여행을 가고, 금강산으로 효도관광을 가고, 서울 한복판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남과 북이 축구경기를 하는 시대에 좌익, 빨갱이라니. 빨간색 안경을 끼고 보면 세상이 온통 빨갛다던가? 

결론은, 저자가 바라는 세상은 지금으로선 요원해보인다. 무엇보다 국가를 보는 국민의 인식이 변했다. 공산주의, 유사 사회주의 체제를 앞세운 동구권 국가들이 어떻게 쓰러지는지는 물론 가까이는 군사분계선 바로 위쪽에 있는 북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안방에서 모두 지켜봤던 국민들은 100년 전, 50년 전보다 훨씬 영리해지고 또 영악해졌다.

구소련,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 서구권 유럽과 좌파들의 투쟁사를 보는 저자의 시각이 눈여겨 볼만 하다.
전국민의 시선이 북경에서 열리고 있는 올림픽에 가 있던 당시, 지구의 다른 쪽에선 러시아가 그루지아를 공격하면서 하룻밤새 1500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그와 관련해서 읽어볼만 한 내용이『만감일기』에 있어서 옮긴다.

'주니어 제국주의자'들의 발흥 조짐?' (2006年 10月 7日)
요즘 국제 소식을 접할 때마다 솔직히 두려움부터 느낀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많이 보도되지 않은 최근의 러시아와 그루지아 사이의 사태를 생각해보자. 이 사태의 외피적인 윤곽은, 간첩 혐의로 몇 명의 러시아 장교를 며칠간 구속한 그루지아의 '적대행위'에 반응하여 러시아가 그루지아와의 교통과 무역, 재정거래 일체를 금지하는 등 일종의 보이콧을 한 것이다.(…)
지금의 수준은 경제전쟁이지만 바로 다음 순서는 진짜 전쟁이 될 수도 있는 현실이다. 물론 아직은 미-러 어느 쪽도 전쟁까지 가지않으려 할 것이다. 특히 이라크 재식민화에 실패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당장 그루지아 확보를 위해 대리전까지 치를 만한 여유가 없다. 북한에 대해서도 고사 작전을 벌이고 있긴 하지만 무기로 칠 여유 역시 이라크 독립군 덕분에 생기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해서 이 '주니어 제국주의자'들을 긍정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벌써 그루지아를 잡아먹기라도 할 듯한 태세의 러시아도 그렇지만, 티베트와 백두산 지구의 '개발'에 힘씀으로써 소수민족의 자치권을 대폭 축소시키고, 차후 북한 영토 인수인계의 이념적 기반인 '동북공정'을 진행하는 등 '제국적 발흥'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중국도 미국보다 약체라 해서 좋게 볼 세력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차후에는 세계질서의 재편을 노릴지도 모를 일이며, 그 과정에서 한반도의 안위가 심히 우려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내 언론들이 대체로 무시하고 넘어가고 있음에도, 그루지아 소식을 재음미해 보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 pp.336-338

놀랍게도 이 글은 지금으로부터(만으로) 4년 전에 씌어졌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의 창은 이렇듯 다르다. 내 집 안마당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니 상관없다고 생각하는가? 운이 나쁘면 다음 차례는 우리집이 될 수도 있다.

국가와 민족은 과연 개인에게 무엇인가. 쉽지 않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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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의 생활명품
윤광준 글 사진 / 을유문화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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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배송된 날, 박스에서 책을 꺼내 책 상태를 확인한 다음 그대로 거실 소파위에 놓아두었는데 마침 그날 오후에 우리 집에 들렀던 M군이 궁금했는지 책을 들쳐보았던 모양, "이런 책도 팔리느냐"고 신기한 듯이 물었다. 재미있는 것은 M군이 '이런 책'이라고 했을 때 그것이 함께 있던 여러 권의 책들 중『윤광준의 생활명품』을 말하는 것임을 단번에 알아들었다는 거다. 
구매를 부추기는 책. 그런가? 결국 소비에 관한 얘기니까 어떤 의미에선 그럴 수도 있겠다.
물론 좋아하는 일에 걸맞는 물건의 격을 갖추는 일은 흉이 되지 않는다'(p.28)는 저자의 목소리를 빌어 그냥 명품도 아닌 '생활명품'이라는 제목을 강조하고 '나에게' 특별한 물건을 소유하는 행위와 그 물건이 지닌 소박한 의미와 가치를 얘기하는 책이라고 구구절절 항변할 수는 있겠으나 나역시 팔랑귀라 M군의 질문에 '어, 내가 실수한건가' 흔들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흑...

게걸스러운 탐욕은 죄악이다. 사 모으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길 수 있어야 미덕이다. 가진 것이 넉넉지 않으므로 제대로 된 물건을 골라야 한다. 두 번의 선택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적지 않다. 좋은 것만 누리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다. 앞으로 맞게 될 봄날의 화창한 풍경은 내 차지가 아니다. - pp.7-8,「작가의 말」 

아마추어 오디오 평론가이며 또한 사진작가로 더 유명한 저자가 스스로 '나를 더 이상 명품주의자라고 부르지 말아다오' 항변하는 목소리로 시작하는 이 책은 우선 제목부터가 눈길을 끈다.
언젠가 강남의 한 초등학생 아이는 구* 지우개, 루이** 필통, 에**스 연필로 공부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것처럼 그리고 이젠 보통명사화되다시피한 된장녀 논란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명품은 유독 우리 사회에선 뜨거운 감자가 된듯 하다. 하지만 용어로만 보면 'Luxuary'의 사전적 의미는 어쨌든 '사치품'이다. 명품이라 하면 장인의 오랜 숨결이 묻은 귀한 것을 떠올리는 반면 사치품이라 하면 졸부의 금목걸이를 우선 떠올리게 되는니만큼 사치품과 명품은 엄연히 차이가 있을 것인데 오늘날의 명품은 사치품에 다름 아니다 . '명품'이라는 단어는 물질적 가치보다 정서적 가치를 강조하는 것인데, 그것을 가지려면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 자본주의 논리에 충실한 시장이 이것을 놓칠리가 없다.
결국 명품마케팅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럭셔리-펀드가 등장할 정도로 오늘날의 명품은 그것을 소유하면 소유하는 사람까지 덩달아 명품이 된 것 같은 환상을 대중에게 심는데 성공한 상업주의 마케팅의 대표적인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하면 명품은 경제적 능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전락, 안목이 없어도 돈만 있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값비싼 시장 상품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대목은 '명품(엄밀히 말하면 사치품)에서 과시의 목적을 제거하면 과연 무엇이 남는가' 하는 건데 그에 대한 대답이 실용성이라면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비록 그것에 들인 돈은 아까울 수도 있지만 최소한 물건이 본연의 역할은 해낸다는 거니까.

명품의 가치는 본질적으로 금전이 아니라 정신에 있다. 내게 너무나 소중한 무엇이 누군가에게는 거들떠도 안 보는 것일 수도 있고 반대로 누군가에게 너무나 소중한 물건이 내게 오면 하찮은 것이 될 수도 있다. 언젠가 백화점에서 지갑을 소매치기 당한 K가 울면서 전화했는데 K는 지갑에 든 돈은 아깝지 않지만 엄마한테 입학 선물로 받은 지갑을 잃어버린 것이 너무 속상하다고 했다.
이 책「7장, 최첨단 시대에도 아날로그가 좋다」는 K의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정말 귀한 것은 물건에 치른 가격이 아니라 긴 시간을 함께 하는 동안 그것에 깃든 유/무형의 나만의 흔적들이다. 저자 또한 이 사실을 놓치지 않고 있고 이런 이유로 저자의 명품 예찬은 보다 편안하고 담백하게 읽힌다.
제목으로는 언뜻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단어 선택에도 불구하고 사진작가 윤광준에 대한 신뢰로 선택한 책은 저자의 특기인 사진을 보는 즐거움은 물론 명품이 명품으로서 오랫동안 가치를 인정받는 가장 큰 이유인 히스토리(물론 전문적이지는 않다)를 읽는 부가적인 즐거움도 있다.

흔히 말하는 명품, 그러니까 면세점 매장에서 고급스러운 조명을 받으며 우아하게 진열되어 있는 다국적 기업의 물건을 나도 좀 가지고 있는데 선물 받은 것도 있고 직접 산 것도 있고, 관세의 적용을 받는 사치품답게 정말 비싼 것도 있고 의외로 싼 것도 있다.
그중 내가 감탄하고 또 감탄하는 물건은 바로 안경이다. TV를 볼 때나 특별히 거리 표지를 읽어야 할 필요가 있는 때가 아니면 안경을 잘 안 쓰는 나는 모두 네 개의 안경을 가지고 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10년 전에 구입했고 가장 최근 것도 2003년에 구입했으니 개인적인 만족도는 둘째치고 감가상각을 감안해도 그것에 치른 비용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게다가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마치 방금 산 것처럼 매끈하게 반짝이는 녀석들은 A/S가 불가능할 정도로 다리가 부러지거나 하는 등의 사고가 생기지 않는 이상 앞으로 최소 10년은 더 나와 함께 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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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 - 철학 논고 비트겐슈타인 선집 1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지음, 이영철 옮김 / 책세상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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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국내에도 번역된 데이비드 에드먼즈, 존 에이디노의『비트겐슈타인은 왜?』라는 책은 철학적 문제는 정말로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칼 포퍼와 존재하는 것은 오직 수수께끼 뿐이라고 주장하는 비트겐슈타인 사이에 벌어진 논쟁으로 시작한다. 이 논쟁은 급기야 비트겐슈타인이 포퍼를 향해 부지깽이를 휘두르는 '사태'로 번지면서 당시 지식인 사회에 논란을 불러일으키는데, 캠브리지 강의실에서 시작된 이때의 논란은 두 철학자의 사후까지 이어지게 된다. 비트겐슈타인이 부지깽이를 휘둘렀다고 일러바친 사람은 다름 아닌 포퍼다.
이것이 내가 제일 처음 만난 비트겐슈타인이었다. 그리고 다시, 정식으로 만난 비트겐슈타인은 예쁜 인디언핑크색 장정을 입고 나타났다.
『논리-철학 논고』의 지면은 고작 180여 페이지. 손가락 한 마디도 못 채우는 얇은 두께 속에 자리하고 있는 내용의 무게는 참으로 두껍고 무겁다. 한 줄, 한 줄은 어렵지 않다. 모르는 단어도 없다. 내가 배운 단어, 익히 알고 있는 의미이고 게다가 단문이다. 그런데도 어렵다. 문장의 확장을 인식의 확장이 좇아가지 못해 괴롭다. 롤랑 바르트의『텍스트의 즐거움』을 읽으면서 장정일이 그랬다는 것처럼 '아~ 아~' 황새를 쫓아가는 뱁새의 가랑이를 여실히 느낀다. 예전에 한 선배가 1년 동안 쓴 일기장을 넘겨 보는데 하루 하루는 별 차이가 없더니 1월1일과 12월 31일은 다르더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말하자면 양적인 변화가 질적인 변화를 가지고 왔다는 얘기다.
글 한 줄, 단어 하나가 가지는 무게는 그것을 다루는 사람에 따라 천양지차를 보인다. 대출하거나 빌려서 읽을 책이 아니다. 돈을 지불하고 책장에 꽂아놓고 인내심을 갖고 반복해서 거듭 읽어야 할 책.

철학은 어떤 점에선 종교보다도 더 관념적이다. 그러니 이런 종류의 철학 서적은 능력이 된다면 원서로 보는 것이 오히려 이해하기가 낫다. 해당 전공자가 참 부러워지는 부분이다. 

아직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별 세 개는 미완성 평점.  

 

- 이 세상에는 기이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걸 나는 안다. 그것은 내가 살아오면서 정말로 경험한 몇 안 되는 진실들 중의 하나이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 큰 인물들은 큰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칼 포퍼) 

출처.『비트겐슈타인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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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 제1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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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문학상을 받았다는 건 알았는데 1/3쯤 읽고서야 창비 '청소년'문학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장소설답게 기승전결이 단선적이고 교과서적이다.
성장소설인만큼 대상 연령대를 벗어나면 자칫 소설이 쉽고 만만해질 수 있겠는데 이런 부분은 청소년이라는 대상의 문제라기 보다는 성장소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 전개상)교조적 방식의 한계가 아닌가 싶다.
아쉬운 점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다고 해서 굳이 기승전결을 모두 설명하는 친절이 필요한가, 라는 것. 요즘 10대는 논술세대라 상당히 똑똑하고 이해도 빠르다. 꼭 그런 것이 아니라도 대상이 어릴수록 오히려 은유와 복선을 통해 스스로 체득하는 2차적 독서 혹은 사회적 독서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 생각.『이솝우화』나『어린왕자』등은 전 연령대가 읽지만 연령대마다 읽는 느낌이 제각각 다르다.

작가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완득이를 중심으로 사회적 약자들과 사회적 강자들로 이분한다. 우선 완득이는 동남아 계통의 특징이 또렷한 혼혈아이고, 신체적 장애를 가진 아버지, 베트남인 어머니,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말더듬 증세를 가진 혈연 관계는 없는 삼촌이 등장한다. 이들에 대비되는 인물군으로는 완득의 담임 동주, 같은 반 친구인 윤하가 등장하는데 담임 동주의 아버지는 비서를 대동하고 다니는 사장님이고, 윤하는 반에서 1,2등을 다투는 모범생이면서 역시 부잣집 딸이다.
문제는 이런 식의 단순하고 직설적인 나누기가 미국이 자국의 영화에서 제 3세계와 유색인종을 다루는 방식, 그러니까 미국에 의한 미국식 지배의 전형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사회적 약자인 완득이네는 사회적 강자의 세계에 속해 있으면서 동시에 진보적 사상을 가진 담임 동주의 도움으로 갈등을 해결해 나간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구도에선 전개상 '대결' 아니면 '화해'로 결론을 지어야 하는데 청소년 대상 소설답게 작가는 화해를 선택한다.

이 소설을 읽고 좋았다면 혹은 반대로 부족하다고 느꼈다면『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이성과 힘) 추천. 둘 다 주제의식이나 플롯에서 유사한 점을 보이지만 풀어나가는 작가의 방식과 힘의 차이만큼이나 독서 끝에 오는 감동의 무게가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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