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1인용 식탁>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1인용 식탁
윤고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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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아홉 편의 단편으로 채워진『1인용 식탁』은 한 마디로 '강박'에 관해 이야기하는 소설집이다.

어느 날 무리로부터 소외되면서 혼자 먹는 밥에 익숙해지기 위해 학원을 끊는 여자(1인용 식탁), 빈대를 퇴치하기 빈대에 집착하는 남자(달콤한 휴가), 현실 곳곳에 숨겨져 있는 인베이더 그래픽을 찾아 나서는 남자(인베이더 그래픽), 꿈을 팔기 위해 꿈을 꾸는 남자(박현몽 꿈 철학관), 폭설 속 러브 모텔에 갇힌 남자(로드킬), 집을 떠나지 못하고 아이를 기다리는 여자(타임캡슐 1994), 아이슬란드에 가기 위해 서울을 떠나지 못하는 여자(아이슬란드), 몸 어딘가에 구멍을 뚫는 것에 집착하는 여자와 그 여자의 피어싱에 집착하는 남자(피어싱), 엄마의 유기농 집착에 맞서는 홍도의 인스턴트 반항(홍도야 울지 마라)까지.
아홉 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내는 한 목소리는 바로 '강박'이다.

손자병법 모공편에 등장하는 '지피지기백전불퇴(知彼知己百戰不殆)'는 말하자면 강박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한자 성어이다. 반면「달콤한 휴가」는 말하자면 이 한자 성어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예로, 빈대를 완벽하게 퇴치하고자 하면 할수록 빈대에 대해 잘아야 하는데 결국 적을 알고자 하는 열성이 지나치면서 빈대라는 곤충에게 의식이 갇혀 버리는 부작용이 발생해 버린다.
물론 모든 강박이 이렇듯 심각하고 병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흔한 예로 가방을 사려고 계획을 세우면 그날로부터 거리를 돌아다니는 가방만 온통 눈에 들어오는 경험 정도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터인데 이 역시 가벼운 강박에 해당한다. 이렇듯 살다 보면 누구나 일말의 강박을 지니게 되거나 경험하게 되는데 소설집『1인용 식탁』에는 이러한 일상과 밀접한 여러 강박이 등장한다. 또한 소설적 상상력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강박에 익숙해지는 순간부터 강박이 사라질까봐 오히려 두려워하게 되는 심리를 관찰하는데(「1인용 식탁」「아이슬란드」참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공포로 인하여 강박증을 얻게 되는 인물들이 나중에는 오히려 이 강박증에 의지하여 일상의 공포를 극복하려 하고 결국 그로 인해 일상이 파괴되는 비극적 결말까지 보여준다(「달콤한휴가」「피어싱」).
전개와 결말이 카프카 적이라고 할까, 일상이 공포로 돌변하는 순간의 경계가 매우 모호하고, 경계가 모호하고 비상식적일수록 그것에 대처하는 인물들의 반응 역시 비일상적이고 비상식적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로드킬」참고)
이에 비하면「홍도야 울지 마라」에 등장하는 강박은 가볍고 흥겹다. 유기농을 고집하는 엄마와 학교 앞 인스턴트 음식(달고나, 솜사탕 등)으로 엄마의 유기농 강박에 도전하는 홍도는 살풋 웃음 짓게 만든다.

읽고 나서 "응?" 하는 단편이 두어 편 있다. 영화든 소설이든 작가는 작품 안에서 모든 것을 다 얘기하고 보여주어야 한다. 나의 독해력이 떨어져서일 수도 있으나 얼핏 작가의 혼잣말이 읽히는 부분이 없지 않다.
하나 더. 이건 나한테만 해당하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국내 소설을 읽을 때 독서를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은유법'인데「피어싱」의 경우 유독 은유가 과다하여 읽으면서 요철을 많이 느낀 단편이다.

시험에 떨어지고 나서야 나는 왜 이 수료증을 한 번에 받는 사람들이 5퍼센트에 그치는지 알 것 같았다. 85퍼센트의 사람들이 두려워한 것은 시험이 아니었다. 시험 이후에 찾아올 진짜 현실이었다. (중략) 내가 배우고자 했던 것은 혼자 자유롭게 먹는 방법이었으나, 정작 내가 얻은 것은 수강 기간 동안 내가 혼자 먹는 유일한 사람이 아니라는 위안이었다. 1인으로 구성된 체인점 같은 것. - pp.42-43,「1인용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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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독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는 점에서 독서는 라이벌이 함께 뛰는 마라톤과 비슷하다. 작가가 너무 앞서 뛰면 뒤따라가는 독자가 지치고, 작가가 독자의 뒤에서 뛰면 앞에서 뛰는 독자가 흥미를 잃어 버린다. 그러니 가장 재미있는 독서는 작가와 독자가 비슷하게 뛰는 것인데 독자층에 또렷한 경계를 긋는 전문서적이 아닌 소설(문학)은 더욱 그러하다.
정치, 경제, 종교는 싸움과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 대표적인 화제다. 이 세 가지 화제를 문학에 적용시킨다면 그중 예민하고 민감한 주제는 단연 종교일텐데 그 이유는 작가의 종교가 대개 화자를 구도자의 위치에 서게 하기 때문.
그러니 종교적인 피드백을 가지고 글쓰기를 하는 작가의 소설은 아무래도 작가가 심어 놓은 상징과 은유를 올바르게 읽어내는 것에 한계가 있는데 이는 읽는 사람의 편견 때문일 수도 있고, 작가의 고집(=보수적 편향성) 때문일 수도 있다.
이승우의 소설은 개신교를 빼놓고는 얘기가 안 된다. 그의 소설 주제를 지배하는 것은 종교적 원죄 의식과 구도(求道)이다. 그렇다고 그의 많은 단편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니 미리 그의 소설 읽기에 금을 그을 필요는 없겠다.
이승우의 소설은 주제면에서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어느날 일상성이 깨어지고 비일상이 일상이 되어버리는 카프카式 부조리이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에게서 비극적 전형성을 집요하게 캐내는 종교적 원죄 의식이다.
그의 소설은 거의 이 두 가지 틀을 벗어나지 않는데 그러다 보니 인물과 사건은 대체로 다음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 정서적으로 어딘가 한군데 부서지고 부족한 Loser가 등장한다. 등장인물 대부분 이야기를 '털어 놓고' 싶은 사람들, 그 이야기를 기꺼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 카프카式  서사구조. 갑작스러운 소환과 그것에 따른 비극적인 결말이 예정되어 있는 개인의 소외 혹은 격리

단편집『심인광고』중 특히 좋았던 단편은 동명의「심인광고」「오토바이」「터널」이었다.
단편집『검은 나무』의 수록작 중「선고」와「사령」은 카프카 정서가 강한 단편. 특히 카프카 인용으로 시작하는 첫번째 수록 단편「사령」은 해설에서도 언급하고 있듯 카프카의『성』과 유사하다. 
「동굴」에 등장하는 화자의 독백(p.224, 아래 인용)은 일본 영화『기묘한 이야기』의 한 에피소드였던 '묶여있는 개'와 유사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배고픈 소크라테스와 배부른 돼지의 차이는 윤리가 아니라 삶의 문제가 되면 한층 난해해진다. 
작가의 소설 중 가장 좋았던 것은 아무래도 나를 처음 작가에게로 이끈「오래된 일기」다.(『오래된 일기』수록)  

-책에 밑줄긋기

(…)나의 추리는 거기까지 이르렀다. 추리의 과정에서 나 자신 다소 흥분하고 조급해하였던 사실을 눈치채고 나는 좀 머쓱해졌다. 사람이 어떤, 특정한 일에 흥분할 때 그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 p.108,「일식에 대하여」

나는 유리창을 통해 창밖 풍경을 바라보면서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집에 감금되어 있는 신분이 낮은 남자의 신세를 떠올렸다. 남자의 신분은 화려한 집의 규모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자기 신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크고 화려한 저택에서 턱없이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다. 먹을 것과 입을 것, 잠자리까지가 그러하다. 그 크고 화려한 집에서 그는 제왕처럼 지낸다. 아무도 그를 제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그 집으로부터 한 발짝도 나가지는 못한다. 그것은 금지되어 있다. 하긴 그가 밖으로 나간다고 해서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그는 그 집을 나가는 순간 이 집의 온갖 특혜를 등지고 자기 신분에 어울리는 비참한 신세로 돌아가야 한다. 자, 그러면 이 호화스러운 집에 갇혀서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는 이 신분 낮은 남자는 행복한가, 불행한가……. - p.224,「동굴」
* 이상『검은 나무』수록

 

저놈이 나를 버렸다, 저 나쁜 놈이…… 하고 어머니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쁜 놈이란 건 맞지만, 내가 어머니를 버렸다는 건 맞지 않다. 모든 나쁜 놈들이 어머니를 버리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를 버리지 않았다고 나쁜 놈이 아닌 것도 물론 아니다. '나쁜 놈'이라는 건 한 인물에 대한 개인의 주관적인 평가이다. 평가는 여러 가지 사실, 또는 특정한 사실에 기초해서, 심지어는 사실에 기초하지 않고도 내려진다. 어쨌든 그것은 누군가에 대한 '그의'평가이다. 그러니까 '나쁜 놈'은 그렇게 불린 사람보다 그렇게 부른 사람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제공한다. 예컨대 누군가가 나쁜 것이 아니라(나쁠 수도 있지만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가 누군가를 버렸다고 말하는 건 사뭇 다르다. 우리는 버렸다는 행위가 있을 때에만 버렸다는 말을 할 수 있다. 판단이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최소한 버리지는 않았으므로 어머니의 그런 비난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중략) - pp.179-180,「오토바이」
*『심인광고』수록

- 이승우 소설집
그 사이 신간『한낮의 시선』이 나왔다. 오랜만의 장편소설인데 아직 읽어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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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거리가 책읽기에 편중되었던,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발하게 보급되지 않았던 시기에 부족하지 않은 양서(良書)와 함께 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었던 것에 부모님께 늘 감사하다.
나는 아직까지도 최고의 연애 소설은, 레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라고 믿는다.
고백하자면 처음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전쟁과 평화』  『부활』을 읽었을 때, 내 가슴을 떨리게 하고 내 정서를 건드렸던 것은 제정러시아의 전후사를 관통하는 이념이나 휴머니즘, 시대적인 고찰 같은 심오한 것이 아니었다. 나를 미친듯이 사로잡았던 것은 바로 이국의 배경과 함께 펼쳐지는 불륜과 비극적인 사랑 그리고 삼각관계였다.
그러나 이들 소설이 그저 전쟁통에 귀족들이 연애하고, 불륜을 벌이고, 방탕한 귀족과 매춘부의 신분을 넘나드는 그렇고 그런 사랑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면 톨스토이 사후 1세기가 다 되어가는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은 그의 소설을 읽어 볼 기회조차 갖지 못 했을 것이다.
이것이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고전의 힘일까.
동시대를 살면서 자신의 시대를 통찰하고 관조하려고 노력했던 작가의 시선은 시대의 통속 안에 머무르지 않고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자생한다. 이러한 자생력이야말로 고전 문학의 힘이고 통속 소설과 고전 소설을 가르는 차이일 것이다. 그리하여 소설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문학은 누구나 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의 시선으로 사물을 조명하면서 기나긴 숨결의 장편소설을 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 나 자신의 모든 구상들을 결합시킬 수 있다. - 레프 톨스토이, 『부활』집필 중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저런 이유로 톨스토이의 러시아는 내게 냉전 체제 역사 속 소련이라는 이미지보다는, 소설이 가져다 준 상상속에서 존재했던 한 세기 전의 설원으로 뒤덮인 광활하고 거대한 시베리아 대륙으로 성큼 다가왔다는 점이다. 또한 그때의 정서적 울림은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를 통해서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영화 《Eyes wide shut》의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이(내겐 그랬다) 숨 쉴 틈도 없이 곧장 까만 화면으로 바뀌고 크레딧이 올라가는 위로 흐르던 『Second Waltz』는 이후 국내 영화, 드라마 등에 삽입되면서 이제 우리나라에선 완전히 대중적인 레퍼토리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국내에서 쇼스타코비치의 『Second Waltz』를 들을 수 있는 앨범중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앨범은 아마 Chailly와 Jansons가 지휘를 맡은 앨범이 아닐까 싶다.


Decca에서 발매된 Riccardo Chailly의 『Shostakovich The Jazz Album』은(개인적으로 중간 두 곡 정도 늘 스킵하는 곡이 있지만) Jazz suit 1, 2번 전곡이 들어있다. 전반적인 곡들이 모두 즐기기에 부담없고 무난한 레퍼토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Second Waltz는 이 앨범의 13번 트랙에 있다.

Chailly가 가볍다면 Jansons는 진지하다. Second Waltz를 좀 더 제대로 감상하고 싶다면 개인적으로 EMI에서 발매된 Mariss Jansons의 『Symphony No.11, ‘1905’』를 추천한다. 이 앨범에는 11번 심포니말고도 Jazz suit 1번 전곡과, suit 2번 중 6번이 수록되어 있는데 Second Waltz(6번)는 8번 트랙에 있다. Chailly와 비교해서 들어보면 지휘자의 해석이 같은 곡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하는지 알 수 있다.
조심스럽지만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상은 Chailly에 비해 Jansons의 지휘가 훨씬 응집력이 있고 웅장한 힘이 느껴진다. 톨스토이의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상상했던 그 차갑고 서늘한 대륙처럼.

전혜린은 유고 에세이『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심포니 5번을 즐겨듣는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 때 틀어 놓은 판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심포니 제5번이다. 왜 그런지 그걸 듣고 있으면 생각이 정돈되어오는 것 같다. 특히 무언지 웅장하고 엄숙한 시작과 도중의 수많은 군화의 행진 같은 장조가 몹시 마음에 든다. 개인적인 사소한 것, 일상적인 것을 넘어서서 더 큰길로 눈을 돌리라고 이 음악은 말해주는 것만 같다(…). - pp.169-170,『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대목을 읽고 언젠가 쇼스타코비치의 15개의 심포니를 꼭 다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앨리스와 빌리, 쇼스타코비치, 전혜린... 이들이 자신의 삶에서 공통적으로 원한 것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순간이 아니었을까...

전에는 완벽한 순간을 여러 번 맛보았다.
그 순간 때문에 우리가 긴 생을 견딜 수 있는 그런 순간들을…….
- p.140,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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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8 제너시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2058 제너시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7
버나드 베켓 지음, 김현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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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보다 더 인간다운'은 로봇SF 장르의 보편적인 주제인데, 이 말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여'를 강조하는 것처럼 들린다. 참고로 안드로이드라는 개념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270년이라고 한다.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는 SF물 중 (개인적으로)최고로 꼽는 것은 단연 리들리 스콧의《블레이드 러너》다.

"이 모든 순간들이 시간속에 묻혀버리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죽을 시간이 됐어...(All those momen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쏟아지는 빗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4년의 삶을 마무리하는 로이의 모습을 보며 로이에게 '인간성'이 없다고 과연 단언할 수 있을까. 한편 자신이 인간이라고 믿고 있는 레이첼은 데커드에게 왜 자신이 인간인가(인간일 수 밖에 없는가)를 계속해서 설명하는데, 인간이 자신의 인간성을 믿지 못하여 고민하는 동안 안드로이드 역시 자신이 왜 인간과 다르다는 것인가 의문을 제기하는 방식은 로봇SF의 고전적인 테제다. 물론 인간과 안드로이드 사이에 일어나는 이러한 문답은『2058제네시스』에서도 이어진다.

『2058제네시스』는 목차가 따로 없고 1교시, 2교시, 3교시, 4교시로 전개되는데, 1교시가 끝날 때마다 휴식 시간이 있다. 이는 수업이 아닌 시험 시간의 분류이며, 국가 최고 기관인 '학술원' 시험에 응시한 아낙시멘더(이후 '아낙스')의 시험 과정이 전체의 틀이고, 아담과 안드로이드 아트의 얘기가 내용의 줄기를 이루는 액자소설이다.
시험은 구술과 면접으로 이루어지는데 아낙스가 준비한 과제가 바로 '아담 포드'이다. 이 책의 원제 'Genesis'에 역자가 덧붙인 '2058'은 아담의 출생 년도를 뜻한다. 

지구에 불어닥친 대전쟁과 전염병 이후 플라톤은 섬에 새로운 국가를 세우고 섬 주위를 방벽으로 둘러싼 다음 외부로부터의 침입, 유입을 일체 거부하고 저지한다. 하지만 이제껏 없었던 완벽한 세상처럼 보였던 플라톤의 제국도 공포와 위기의 시대가 지나가자 불만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는 얼핏 오랜 전쟁을 끝낸 완벽한 영웅이 우주에서 가장 완벽한 세상을 만들지만 점차 이 '완벽함'조차 불만으로 느끼는 군상들을 보여준 프랭크 허버트의『듄』의 세계를 떠올리게 하는데, 물론 아트레이드의 세계와 플라톤의 세계는 전혀 다르다. 플라톤 제국의 문제점은 플라톤이 이상적인 사회를 모든 것이 통제되는 사회와 동일한 개념으로 정의해버림으로써 시민의 자유를 제한했다는 데에 있다. 자유란 인간이 누리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데, 인간을 위한 이상적인 사회를 위해 인간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역설이 생겨난 셈.
그리고 이러한 역설이 낳은 것이 바로 아담 포드이다. 아담은 제국이 가장 원하지 않는 인간형인 '반항하는 인간'이지만 급증하는 시민들의 불만에 직면하여 아담을 처형할 수도, 풀어줄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 정부는 가장 진보된 안드로이드 아트의 테스트 상대로 아담을 활용하기로 결정한다. 즉 살려는 두되, 자유를 빼앗는 것이다. 그리고 아담과 아트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과정은 부분으로 쪼개면 모두 우연에 의해 발생된 것 같지만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 어쩐지 필연성이 느껴진다.
아낙스는 시험관과의 문답 과정에서 점차 스스로 모순에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인과율의 신화'가 그것이다. 

인과율의 신화: 이 말은 모든 일은 원인에서 발생한 결과이며, 원인이 없이는 아무 것도 생기지 못한다는 인과율의 법칙을 맹신하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맨 첫 원인도 원인이 있어야 한다는 데에서 인과율의 허구가 발견된다. - p.27,『2058제네시스』 

아낙스는 인과율에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문답이 거듭될수록 아낙스의 주장은 오히려 인과의 필연성을 좇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로봇SF를 접할 때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픽션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로봇, 그러니까 안드로이드는 대부분 긍정적인 호감을 끌어낸다. 물론 이 호감의 배경은 안드로이드의 '인간성(비슷한 것)'에 있다. 인간의 상상물이니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으나 이유야 어떻든 아담과 설전을 벌이는 아트는 근래 내가 만난 안드로이드 중 가장 호감 가는 녀석이었다. 유머 감각이 넘치고, 때로는 신랄하며, (고집스러운 아담 때문에)때로 절망도 하는 아트의 모습은 '인간적'이라는 단어 외에는 표현이 안 된다. - 불만이 있다면 지극히 미국인스럽다는 것 정도. 

책 전반부에선 철학자, 기술자, 군인, 노동자로 나뉘는 시민의 계급이 출생과 동시에 유전자의 게놈 정보를 해독하여 분류된다는 점에서 영화《가타카》가 연상되었고, 책 중반의 아담의 생애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부분에선 감정마저도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이퀼리브리엄》이, 그리고 책이 끝나갈 무렵에는, 책 내용과 상관없이, 완벽한 세상을 꾸며주었더니 자꾸만 불만이 속출하여 불완전한 세상으로 시스템을 수정하였다는 영화《매트릭스》의 세계관이 떠오른다. 우울한 얘기지만 아무래도 SF가 상상하는 미래는 디스토피아(dystopia)에 근접해있는 듯 하다. 

아는 만큼 읽히는 책이다. 책을 얼마쯤 읽었을 때, 이 책은 재독하는 책이 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의 반전도 굉장히 인상적이다. - 중간 지점 쯤에서 마주친 어느 문장에, 어?, 하다가 마지막 장을 펼쳐보는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원래 나는 스포일링(당하는 것)을 즐기지만 이는 영화에 국한되는 것이지 책은 별개다. 마지막 장을 미리 펼쳐보는 짓을 하는 '책'은 만화책이 유일한데 이 역시도 해피엔딩이 아니면 안 읽기 때문에 생겨난 버릇이다.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부처는 무엇입니까" 묻는 제자에게 "똥막대기다"했다는 스승의 선문답을 떠올리게 한다. 원래 이런 문제는 정답이 없는 법이다.
책을 읽고 여운이 길게 남는다는 의미는 독서 중에 자극받은 지적 호기심이 독서가 끝난 후에도 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 역시 그러하다. SF에 거부감이 없는 이들에게 일독해 볼 것을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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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링크 - 첫 2초의 힘
말콤 글래드웰 지음, 이무열 옮김, 황상민 감수 / 21세기북스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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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글래드웰의『블링크』는 제목을 부연하는 '첫 2초의 힘'에서 보여지듯 '직관적 사고'를 얘기하는 책이다. 그런 만큼 책을 펼치면 직관적 사고의 힘을 보여주는 다양한 예들이 쏟아지는데 책읽기가 재미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책에서 제시되는 많은 예들이 실제 내 주변에서도 다양한 형태로(물론 본질은 같다) 일어나고 있어 익숙하다는 것에 있다.

3장「우리는 왜 키크고 잘생긴 남자에게 반하는가」는 말하자면 본질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하는 외부 요소들에 관한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장은 '지극히 대통령다운 외모여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워렌 하딩의 얘기로 시작한다.
이 장을 읽으면서 영화《퍼시픽 하이츠》를 떠올렸는데, 영화 내용은 대충 이렇다. 은행 대출을 받아 무리를 해서 집을 산 젊은 백인 부부는 아래층 방 두 개를 세를 놓아 대출을 갚을 계획이다. 그리고 일본인 부부와 여러모로 썩 괜찮아 보이는 백인 남자(카터)를 세입자로 들이는데 이 때부터 부부에게 재앙이 시작된다. 이 영화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세입자의 계획된 횡포로 영화적 갈등이 절정으로 치달을 무렵에 등장한다. 경찰서에 도움을 요청하러 간 부부가 그곳에서 흑인 경찰과 마주치자 낭패한 기색을 하는데 이유가 있다. 그 흑인 경찰은 애초에 부부의 집에 세들기로 하였으나 뒤에 나타난 카터에게 밀려 입주를 거절당했던 것. 물론 카터가 상당한 액수의 몇 개월 치 월세 선불을 약속한 것도 있지만 부부가 카터에게 마음이 기운 것은 두 사람의 피부색과 무관하지 않다.

4장「생각하기 위해 멈춰 서지 말라」는 정보의 과잉이 오히려 정확한 판단을 방해하는 것에 관해 얘기한다. 미 국방부의 전쟁 게임 시나리오 '밀레니엄 프로젝트'로 시작하는 이 장을 나는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나 역시 'C&C', 'War Craft' 등의 전략시뮬게임을 즐겼기 때문에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아무래도 오락적으로 읽혔음을 부인할 수 없다. - 사실 나는 Star Craft엔 별 재미를 못 느꼈다. (나한테) 이 장르의 최고는 뭐니뭐니 해도 '워 크래프트II'다.
정보과잉과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펀드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재작년 10월에 M군을 쫓아 나도 펀드를 매수했는데 매수 시점에 대해선 M군과 나의 의견이 일치했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편했으나, 매도 시점에 이르자 상황이 달라졌다. 두 사람의 의견이 전혀 달랐기 때문인데 결론부터 말하면 M군의 판단이 옳았고, M군의 의견을 쫓은 나는 머리 꼭대기는 아니나 귀 정도에서 매도하였으며, 덕분에 어디 가서 자랑할 정도는 되는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매도 시점에 관해 M군과 나의 의견이 거의 대립하다시피 달랐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정보의 양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여기저기서 끌어 모은 넘쳐나는 정보들로 인해 오히려 판단에 방해를 받았던 반면, M군이 판단에 활용한 정보는 겨우 두어 가지에 불과했다.
양적인 것과 질적인 것이 항상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도 예외는 아닌데 정보의 가치가 그것의 활용에 있다고 할 때, 정보의 양적 수집과 접근 용이성이 뛰어난 현대 사회에선 중요한 것은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거르는 것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장에선 '직관적인 사고'와 관련하여 통찰력 퀴즈가 등장한다. 

한 남자와 그 아들이 심각한 자동차 사고를 당한다. 아버지는 죽고 아들은 응급실로 급송된다. 도착하는 순간, 당직 의사가 아이를 보고 숨이 넘어갈 듯 소리친다. "이 아이는 내 아들입니다!" 의사는 과연 누굴까? - p.166

거대한 철제 삼각뿔이 뒤집어진 채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살짝만 움직여도 삼각뿔은 넘어진다. 삼각뿔 밑에는 100달러짜리 지폐가 한 장 있다. 피라미드를 건드리지 않고 지폐를 치울 방법이 있을까? - p.167

 첫 번째 문제는 내용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이미 너무 흔하고 익숙해진 문제라 아마 읽는 순간 답을 맞춘 사람이 많을 듯 하다.

보통 이런 종류의 문제를 접하면 나는 예외없이 M군에게 '맞춰 봐'를 하는데 물론 그때마다 M군은 예외없이 얄밉도록 잘 맞춘다. 이번에도 두 번째 문제를 읽어주기가 무섭게 바로 대답이 나왔다. 직관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 문제의 대답을 어렵지 않게 구할 것이다. 하지만 고백하건데 나는 분석적 사고를 선호하고 그것에 익숙한 인간인지라 답을 알기 전에도, 답을 알고 난 후에도 '그게 뭐야' 했다.
나의 '친한 사람'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들 중 머리가 가장 좋은 M군은 아이큐가 156이며 멘사회원이다. 회원은 아니지만 심심풀이 삼아 인터넷에 떠도는 멘사 시험을 풀어본 경험으로 나와 M군의 가장 큰 차이는 평면으로 펼쳐놓은 도형의 원래 모양을 이미지화하는 것에 있다. 다른 문제는 별 어려움 없이 푸는데 유독 펼쳐놓은 평면 도형만 나오면 머리 속이 뒤죽박죽 되면서 생각하기(이미지를 만들기)가 귀찮아지는 것이다. 한 번 접고, 두 번 접고... 한 네 번까지 그럭저럭 접는데 그러고선... 끝이다.

5장「원하는 것을 묻는 방법」은 록 음악을 하는 케나((Kenna Zemedkun)의 얘기로 시작한다. 이 장은 한 마디로 고정관념의 허와 실에 관한 얘기라고 할 수 있다.
M군과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은 M군은 직관적 사고에, 나는 분석적 사고에 익숙하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M군과 나의 사고 방식이 대립의 위치에 있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경험에 의한 것이든,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든 이는 어디까지나 각자의 기질이 선호하는 방식의 차이일 뿐, 직관적 사고의 반대는 분석적 사고가 아니라 오히려 고정관념이라고 봐야 한다.
케나의 예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서태지가 처음 공중파에 출연해서 '난 알아요'를 선보였을 때 알려진 바대로 심사위원들의 평은 굉장히 냉정했는데 그들이 그런 평을 내린 것은, 말콤 글래드웰에 의하면, 서태지의 음악이 나빠서가 아니라 낯설었기 때문이다. 낯선 것. 익숙하지 않은 것을 접했을 때 인간이 보이는 가장 보편적인 반응은 '당황'이다. 현역 가수이기도 했던 한 심사위원의 "시도는 좋았다고 본다"는 평이 당시 상황을 잘 나타낸다.

6장「빠르게, 그러나 여백을 두어라」

"우리 얼굴은 2개의 근육만으로도 300가지 조합이 생깁니다. 세번째 근육을 추가하면 4,000가지가 넘지요. 우리는 5개 근육까지 조합해 봤는데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얼굴 형상이 1만 가지가 넘더군요."
물론 1만 가지 표정 중 대다수는 별 의미가 없다. 아이들의 무표정한 얼굴과 같다.  그들은 각 작동단위들을 조합해 가면서 뭔가 의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약 3,000가지의 표정을 식별해 냈다. 동시에 사람 얼굴의 필수적인 감정 표현 목록까지 완성했다. - p.261

아마 미드를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을 읽는 순간 내가 그랬듯《Lie to me》를 떠올렸을 것 같다. 검색을 해 보니 역시 라이트만 박사는 폴 에크만을 모델로 한 인물이라고 한다.
억지처럼 들릴 수도 있겠으나, 얼마 전에 CSI(뉴욕이던가)를 보던 중에 "쟤가 범인이야!" 외치고 자신있게 덧붙였다. "왜인지는 '라이투미'를 보면 알아!". 실제로 내가 지목한 인물이 범인이었다. - 사실 드라마 속 범인은 '나 범인이오!' 티를 내기 마련이라 범인이 누구인지를 맞추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스쳐가듯 취하는 표정, 행동들이 실은 일정한 패턴을 가진다는 것이 중요하다.

『블링크』가 얘기하는 '직관적 사고의 힘'을 읽은 후 나의 결론은 이러하다. 정보를 다루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것. 다행인 건 직관적 사고도 경험이나 훈련에 의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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