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국도 Revisited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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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 읽은 책은『7번 국도』, 처음 구입한 책은 같은 작가의『우리가 보낸 순간 시/소설(세트)』이다. 물론 다른 책도 함께 구입했지만 어쨌든, 작가를 향한 호불호과 상관없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소설을 읽은 감상을 간단하게 정리하면『네가 누구든...』『밤은 노래한다』의 '연장선, 혹은 출발선에 있는 소설' 이랄까. 시기적으로는 출간이 앞서지만 이번에 전면 개정했다고 하니 소설의 위치가 애매하다. '나'는 타자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세계는 나의 바깥에 존재하는가 아니면 내부에 존재하는가... 라는 이젠 꽤 익숙해진 작가의 내러티브가 펼쳐진다.
이번 소설이 낯설지 않은 건 위에 언급한 두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물 구도, 사건, 서사의 전개를 보여주기 때문인데, 익숙하다는 건 모든 현상이 그렇듯 일장일단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학 냄새가 살짝 풍기는 게 기억에 남는데, 좀 지루해진다 싶으면 어김없이 작가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가 등장하기 때문에 책장은 쉽게 넘어가는 편이다.
다만 현대 일본 사소설의 특징적인 1인칭 정서가 등장하는 게 좀 마음에 걸린다. 뭐, 하루키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오히려 취향일 수도 있겠다 싶다.  
궁금한 건, 이번 소설은 절판된 초판본을 전면 개정했다고 하는데 그럼 이러한 부분은 개정 전의 것인지 개정 후의 것인지 하는 거다.
혹 개정 후의 것이라면 아마 이후에 나오는 작가의 소설은 구입하기 전에 고민을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덧. 김연수 작가의 글을 읽고 나면 늘 그렇지만 '골이 난 일곱 살짜리 우등생'(?)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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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READ 시리즈 - 전16권 How To Read 시리즈
슬라보예 지젝.레이 몽크 외 지음, 김병화.안인희.고병권 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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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첫 관문으로 삼아도 좋은 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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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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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06년 광주인화학교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소설『도가니』는 인호가 기간제 교사로 발령 받아 무진市로 향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실화를 소설화할 때 즉 저널리즘식 글쓰기를 할 때 작가는 감상에 빠지거나 감정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인물들로부터 심리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이건 기본이다. 작가는 어디까지나 전달자여야지 소설속 인물들과 함께 어울려서 울고 불고 떠들어대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3자가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객관적인 사실을 정보로 전달해야 할 작가가 오히려 나서서 감정을 선동하고 있다. 저작이 사회소설일 때, 작가 공지영은 여전히 그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듯 보인다. 아니면 극복할 마음이 없던가.
"이 아이들에게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어요" 하는 것과 "가여운 아이들에게 그런 짓을 저지르다니 정말 짐승, 악마 같은 놈들 아닌가요?" 하는 것은 어조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다. 이 작가를 보면 주목 받고 산 사람의, 주목 받지 않으면 못 견디는 것 같은 정서가 느껴진달까.
무엇보다도『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선 '죄 없는' 아름다운 청년 사형수가 왜 죽어야 하느냐고 사형제도의 부당함을 주장하여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더니『도가니』는 절정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구성상의 몇 가지를 제외하더라도 그 결말에 이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은 결국 무죄 처리되어 자기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으로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반면, 무사히 제자리로 돌아가는 인호는 물론이고 피해 학생들 모두 예전의 악몽으로부터 구원받아 새로운 보금자리와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게 되어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감동적인 메시지로 매듭을 짓는 것으로 작가는 슬그머니 발을 빼버리는 것. 이런 동화같은 온화한 결말로 책 판매량은 늘었을지 모르나 독자 입장에선 사회적 독서를 할 기회가 제한된다는 점에서 작가 스스로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늘 감탄하지만 이 작가의 소재를 고르는 재주는 참 뛰어나다.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일 터. 하지만 아무리 좋은 재료도 그것을 다룰 줄 모르면 소용없는 법. 곪은 상처를 치료하려면 상처를 찢고 고름과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지켜보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적어도 사회고발소설을 쓰려고 작정했다면 그 정도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소설외적인 문제일 뿐, 몇 년 새 아동성범죄가 너무도 만연하고 있는 요즘, 다시 한번 광주인화학교 사건을 대중에게 환기시켰다는 의미에서 이 소설이 해낸 역할 - 잊혀진 사건에 대한 주의 환기 - 에 비하면 저런 부분들은 차라리 부수적이고 하찮은 것인지도 모른다. 

광주의 옛이름이 무진주(武珍州)이기도 하지만 소설 속 무진은 김승옥의『무진기행』에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 무진(霧津)이다. 문학 비평집을 읽다 우연히 마주친 짧은 문단에 반해서 그 날로 전집을 구입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김승옥의 무진市인 것이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찹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 pp.159-160,『무진기행』   

김승옥의 영향일까. 이번 공지영의 소설은 예전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담백하고 묵직한 문장들이 많이 등장한다.

강인호가 자신의 승용차에 간단한 이삿짐을 싣고 서울을 출발할 무렵 무진시(霧津市)에는 해무(海霧)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거대한 흰 짐승이 바다로부터 솟아올라 축축하고 미세한 털로 뒤덮인 발을 성큼성큼 내딛듯 안개는 그렇게 육지로 진군해왔다. 안개의 품에 빨려들어간 사물들은 이미 패색을 감지한 병사들처럼 미세한 수증기 알갱이에 윤곽을 내어주며 스스로를 흐리멍덩하게 만들어버렸다. 바닷가 절벽 위에 선 사층짜리 석조건물 자애(慈愛)학원도 그렇게 안개 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 p.7,『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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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세 달 전인가, 알라딘에서 중고샵 책 상태에 관한 설문을 할 때 선택 항목을 보고 불안한 기분이 들기는 했다. 

최상 항목에 책에 서명하고, 줄 긋고, 표지 찢어진 등의 내용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됐다. 혹시 이런 항목들을 보고 '아, 이 정도는 최상이라고 해도 될라나?' 생각하는 어설픈 판매자들이 등장하는 건 아닌가 노파심도 들었다.

내 경우, 책을 구입할 때 기본적으로 소장 목적이 포함된다. 일단 내 손에 들어온 책은 이유가 뭐든 사정이 어떻든 타인에게 주는 건 물론이고 되팔거나 버리지 않는다. 때문에 중고샵을 이용할 땐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 - 품절/절판으로 책을 구할 수 없을 때 고민고민 하다 구입한다. 상태가 좋은 책이 없으면 차라리 읽기를 포기하고 그게 언제가 되든 재출간을 기다린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말 그대로 새 책입니다' 

라는 설명이 부연되어 있으면, 구매자는 '말 그대로 새 책이려니'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그래도 중고책인데, 중고에 새 것을 바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배송비까지 물면서 적지 않은 가격을 치를 땐 판매자의 '최상'을 믿기 때문이다. '새 책에 가깝다' 하면 '새 책에 가까우려니' 기대하는 게 잘못인가?  

중고샵에 바라는 건 아주 소박하고 단순하다. 책 상태에 관해 판매자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라는 것.

읽지만 않으면 새 책인가? 정체불명의 오염 흔적에 알 수 없는 도장들이 잔뜩 찍히고 묵은 먼지로 책은 누렇게 변색되고. 이게 말 그대로 새 책인가? 분명한 건 상품 설명에, '새 책이지만 심한 노끈 자국이 있습니다', '먼지로 인한 오염 자국이 심합니다' 등의 솔직한 설명만 있었어도 구입하지 않았을 거다.

돈 버는 판매자가 아니라 돈 쓰는 구매자를 위해 알라딘은 보완책을 마련하길 바란다.

중고 상품을 등록할 땐, 하다 못해 상태를 '최상'으로 등록하는 상품엔 최소한 상품의 사진이라도 올리게 하던가. 상태가 설명과 다르면 간단하게 환불처리 할 수 있도록 해주던가.

이게 어려운가? 아주 간단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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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SF 작가라는 아서 C. 클라크의 단편집(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53-1960 / 황금가지)의 첫 번째 단편은「다른 호랑이」(The other tiger)인데 원래 제목은 '반박'이었으나 프랭크 스탁턴의「숙녀일까 호랑이일까」(The lady or the tiger)에 헌정하는 의미로 제목을 바꾸었다고 한다.
실제로 불과 4페이지 분량의 짧은 단편은 내용만 보면 프랭크 스탁턴의 단편과 그닥 연관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원래 제목 '반박'이 딱 제격인데, 또 한편 생각해 보면 '인생은 예측불허'라는 동일한 주제를 보여주니 바뀐 제목도 그다지 나쁘진 않다.
'무한한 우주'를 가정하는 데서 시작하는「다른 호랑이」의 결론은 이러하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는 태어날 수 없기 때문에 여기서 태어난 것이다. - p.16 「다른 호랑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매년 어마어마한 인세 수입을 올리는(비교하자면 '해리포터'보다 더 많이 벌어 들인)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밀레니엄』의 작가 스티크 라르손은 스웨덴 출신의 기자인데 이 사람의 삶이 참 드라마틱하다. 
모아 놓은 재산이 없었던 그는 은퇴 후 노후에 도움이 될까 해서 생애 첫 소설『밀레니엄』3부작을 쓰는데 출간 6개월 전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7층 사무실까지 걸어서 올라갔다가 심장마비로 급사하고 만 것. 이후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고 엄청난 수입을 벌어 들였지만 정작 장본인은 수입은커녕 자신의 원고가 책으로 만들어진 것도 못 보고 죽은 셈이다. 한 치 앞을 모르면서 백년대계하는 인간의 나약함이랄까 어리석음이랄까...
참고로 이 사람의 소설은 내 취향엔 조금 어긋나는데, 때문에 얼마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며 어마어마한 인세 수입을 올린 소설이라는 기사를 읽고 좀 많이 놀랐다.


스티그 라르손 외에도 자신의 소설이 가져다 준 행운을 누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비운의 작가 중에는 영화로 제작되어 많은 인기를 끈『마이너리티 리포트』『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페이첵』의 필립 K.딕도 있다.



다시「다른 호랑이」로 돌아와서...
인생이 예측불허라는 건 아마도 인간의 마음이 예측불허인 데서 기인하는 바가 크지 않을까.
같은 맥락에서, 프랭크 스탁턴의「미녀일까 호랑이일까」는 공주의 선택을 보여주지 않고 끝을 맺는데 사실 나는 공주가 연인을 위해 '미녀'(the lady)를 선택했을 거라는 데에 '매우' 회의적이다.

노예의 두 눈은 어느 쪽이냐고 묻는 듯 이글이글 타올랐다. 공주도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공주는 손을 들어 오른쪽을 가리켰다. 아무도 그녀의 행동을 보지 못했다. 그는 몸을 돌려 성큼성큼 문으로 다가갔다.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였고, 그는 자신 있는 손길로 오른쪽 문을 열었다.

자, 한번 생각해 보라. 공주는 지난 수주일 동안 호랑이가 소름 끼치는 이빨을 드러낸 채 뛰쳐나오는 광경을 상상해 왔다. 다른 쪽 문을 연 모습도 상상했다. 처녀를 보고 미소 짓는 그의 얼굴! 결혼식 종이 울리면 공주는 입술을 깨물며 머리칼을 쥐어뜯는 것이다. 차라리 그가 당장에 죽어 버리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하지만...무시무시한 호랑이와 사랑하는 이의 비명소리!

공주는 노예가 물어 올 줄 알고 있었고 무슨 대답을 할지도 생각해 두었다. 한 순간의 지체도 없이 공주는 오른쪽 문을 가리켰다. 나는 이 물음을 여러분에게 던지고자 한다. 과연 무엇이 나왔겠는가. 미녀일까, 호랑이일까?

-「미녀일까 호랑이일까」, 프랭크 스탁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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