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우스》는 '~시즌4초반', 《24》는 '~시즌6'입니다

괴팍한 의사 하우스가 주인공인 미드《하우스 House》는 한 마디로 요약하면 편견이 없는 하우스와 편견이 가득한 그의 주변인들의 이야기다. 등장인물들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윌슨은 위선자
포어맨은 자신이 나쁜 걸 숨기지 않는 처세에 능한 자
체이스는 자신이 나쁜 걸 (다들 아는데) 안 그런 척 하는 어설픈 애송이
캐머런은 순진한 이상주의를 고수하는 답순이
커디는 적당히 계산적이고 적당히 인간적인 타협적인 상사 

쯤 되겠다. 그래서   

하우스는, 윌슨의 위선을 증명하는 것에 열심이고,
포어맨에겐 대놓고 비아냥대고,
체이스는 어린애 다루듯 하고,
캐머런을 포어맨처럼 만드려는 검은 야심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하우스가 커디를 좋아하는 건 당연해보인다.

미드《24》와《하우스 House》를 즐겨 보는 이유 중에는 잭 바우어와 그레고리 하우스 두 사람의 역할이 크다. 이 두 사람의 가장 눈에 띄는 공통점은 그들이 창의적인 중간 관리자라는 점이다.
조직의 명령 체계는 대개가 '상급 경영자 -> 중간 관리자 -> 하부 조직원' 으로 이루어진다.
성경에도 등장하는 이야기인데 주인이 출타를 하면서 하인 둘에게 각자 돈을 맡긴다. 주인이 없는 동안 하인A는 돈을 땅 속에 묻어 두고, 하인B는 돈을 굴려서 두 배로 불려 놓는다. 돌아온 주인은 하인A는 꾸짖고 하인B는 칭찬을 한다. 그러자 돈을 안전하게 잘 관리한 것이 왜 잘못이냐고 항의하는 하인A에게 주인은 쓸모 없이 땅에 묻어 두기만 한 것이 잘못이라고 한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이런 내용일 것)
상부의 명령을 받는 중간관리자는 명령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이를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하면,  

1번, 시키는 것만 잘 한다.
2번, 시키는 것도 제대로 못 한다.
3번, 시키는 것 이상을 해낸다.

가 되겠다. 잭 바우어와 닥터 하우스가 기존 규칙을 무시하고, 상부의 명령에 맞서고, 하부 조직원들에게 (하극상에 준하는)무리한 명령을 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는 것은 그들이 3번, 즉 하인B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3번에 해당하는 인물들의 강점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자기 의사 실현에 있다. 실제로 중간 관리자는 상부의 의사 결정 과정에 능동적인 참여가 가능한 위치에 있지만 이것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능력있는 인물에겐 기회로 작용하지만 반대로 능력이 없는 인물에겐 막중한 부담이 된다. 

《24》시즌 6에서 CTU 요원 나디아는 사고 직후 얼떨결에 팀장을 맡는데 불운하게도 나디아는 1번에 해당되는 인물이다. 왜 불운인고 하니 시키는 것은 잘 하지만 스스로 상황을 통제하는 창의성은 떨어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1번 유형은 부하일 때는 유능하지만 의사 결정권자로서의 능력은 함량 미달인 경우가 많다. 결국 매번 자신의 판단을 확신하지 못 하는 나디아의 자신감 부족 때문에 1분 1초가 급박한 상황에서 유기적이고 탄력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의사 결정이 자꾸만 미루어지고 삐걱거리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진다.
- 주. 물론 여기에는 중동권 국가 출신이라는 그녀의 개인적인 상황이 맞물려 있다. 911 사태 이후 등장한《24시》는 철저하게 미국인에 의한 애국주의에 집중하는 드라마다.
《하우스》의 포어맨의 경우, 포어맨은 우수한 자질을 지니고 있음에도 자신의 판단보다 하우스의 판단을 더 신뢰하는, 즉 책임으로부터 한 발 물러나 하우스의 뒤에 숨는 것으로 그가 아직 3번에 도달하지 못하고 1번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시즌 3의 말미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판단을 관철시켰지만 불행히도 그 판단이 나쁜 결과를 낳자 그 책임에 눌린 나머지, '하우스 같은 의사는 되기 싫다'는 핑계를 대고 하우스에게서 벗어나는 것으로 탈출구를 찾는 것은 당연한 전개로 보여진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잭과 하우스는 자신의 판단에 언제나 확신이 있고, 그 판단에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는 인물들로 이러한 자신감은 조직에 맞서 자신의 판단을 밀어붙이는 적극성과 능동성으로 이어진다. 즉 그들이 가진 가장 큰 능력은 자신의 능력을 믿는 자신감이다.
그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그들이 '목적 지향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즉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목적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희생을 끌어내고, 조직 구성원과 반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지만 목적지향적인 그들의 역할은 조직의 운영과 유지가 '성과'에 있다는 이른바 '결과론'과 맞물리면서, 과정은 비록 거칠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이 옳았음이 증명될 때마다 조직 내 그들의 역할이 더욱 견고해진다. 재미있는 점은, 잭은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그에게 보내는 신뢰를 이용하고(그래서 그는 툭하면 "give u my word" 한다), 하우스는 그의 불편한 다리(=장애)를 이용한다는 점이다. 어쨌든 그들은 목적지향적인 인간형인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잭이 최고 상급자인 대통령과, 하우스가 최고 상급자인 원장과 직접적인 직통 핫라인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잭이 국가를 위기에서 구해내고, 하우스가 원인 불명의 병을 앓는 응급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최종 의사 결정권자와 즉각적이고 유기적인 의견 교환이 이루어지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렇듯 비효율적이고 경직된 중간 과정을 생략함으로써 잭과 하우스는 보다 자유로운 조건에서 최상의 결과물을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시스템이 가능한 건 잭과 하우스가 주인공- 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능력 있는 중간관리자이기 때문이다.
비교하자면 상급자 복(福)은 하우스가 잭보다 훨씬 낫다. 잭은 시즌 5, 6에서 그나마 이상적인 상사 빌을 만나지만 그마저도 파란만장한 빌의 인생역전(!) 덕에 잭의 복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병원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는 좋아하지도 않고 그래서 거의 안 보는 편인데 《하우스 House》는 드물게 잘 보고 있는 의학드라마다. 

《24》는, (최근)극장용 액션 영화보다 재미있고 스케일 빵빵하고 긴장감 넘치는 대테러방지단의 액션 드라마로 그 중심에는 잭 바우어가 있다.
그런데 시즌이 거듭될수록 내가 정말 정말 궁금한 것은, 왜 클로이는 안 되냐는 거다. 잭은 왜 클로이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 그 정도면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틀 때도 됐는데. 혹, 클로이가 절세미녀가 아니라서?
잭 바우어야, 그러는 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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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4-06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삼밭에그아낙네님~ 글빨 멋지십니다..차근차근 둘러봐야겠네요^^

인삼밭에그아낙네 2010-04-11 10:20   좋아요 0 | URL
칭찬은 아낙을 춤추게 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