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 음주문화의 시작은 ‘통금’


서울의 밤문화|김명환·김중식 지음|생각의 나무|260쪽|1만7000원

 
자식이 신용카드를 흥청망청 쓰는 바람에 속 상한 부모가 신세를 한탄하고, 빈 속에 안주 먹을 겨를도 없이 술을 들이키다가 어딘지도 모르고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쓰러진다. 무척이나 낯 익은 풍경이지만, 정작 이런 세태가 언제 어디서 비롯됐는지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현직 언론인인 두 저자는 속칭 ‘밤 문화’로 불리는 우리네 풍습의 시공간적 배경을 미시적으로 고찰해간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문화에 대한 ‘일고찰(一考察)’이라고 불러도 좋다.

서울의 명월관은 1930년대 후반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길이 막혀버린 양반집 자손과 부잣집 자제들의 놀이터가 됐다. 일부 젊은이는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꾸거나 부모의 도장을 위조했으며, 어느 부모는 “내 아들놈이 내 도장을 위조해 돈을 빌리고 다니는 모양인데 절대 이 녀석에게 돈 빌려주자 말라”는 신문광고까지 냈다.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하는 한국인의 ‘속주(速酒)’ 문화는 1982년까지 37년 동안 대한민국 영토를 지배해왔던 야간통행금지(통금)와도 연관이 깊다. 술집에 들른 손님들은 밤 11시가 가까워질수록 더욱 초조해하며 거듭 술을 들이켰다. 이처럼 술집과 나이트클럽, 극장과 노래방 등 우리네 밤문화의 풍경들을 시간을 거슬러올라가며 살피는 재미가 무척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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