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는 부자 이렇게 됐다


홍콩인들의 경제 교과서 '리자청'

그는 어떻게 아시아 최고의 부자가 되었을까
왕펑 지음|황보경 옮김|아인앤컴퍼니|351쪽
이광회기자 santafe@chosun.com
입력 : 2005.09.02 18:13 22' / 수정 : 2005.09.05 14:48 08'

‘청쿵과 리카싱’

길을 가다가 가판대 신문에서, 또는 서점에서 그의 사진이 박힌 책 표지를 볼 때마다 이 두 단어가 머리 속에 스치곤 했다. 3년여 간 홍콩특파원 시절은 어쩌면 그와의 정신적 동거(同居)기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청쿵’은 장강(長江)의 광동식 발음(캔토니즈·Cantonese)이다. 장강은 ‘양자강’이다. 표준어인 만다린으로는 ‘창장’(長江)이 옳다. 리카싱 또한 이가성(李嘉誠)의 광동식 발음이다. 만다린으로는 리자청. 자존심 강한 홍콩인들은 자신들 언어인 광동어로 ‘청쿵과 리카싱’을 읖조리며 하루를 생활하고, 또 그 하루를 매듭한다.

홍콩은 누가 뭐라해도 ‘아시아 자본주의 표본’이다. 쉽게 설명하자. 아시아 최대 갑부 리카싱의 존재만으로 이 칭송을 들을 자격이 있다. 서울의 1.8배 면적에 불과한 땅. 그것도 주룽(九龍)반도를 빼면 온통 섬이다. 인구는 700만 명이 채 안된다. 그런데도 경제력은 인구 4600만 명 한국의 절반, 1인당 소득은 2만4000달러로 우리와 격차가 이만저만 아니다.

그는 홍콩인들에게 어떤 사람인가. 우리나라라면 좌파(左派)나 일부 시민단체들에게 허구헌 날 손가락질 받을만한 ‘저질 자본주의 수괴’(首魁) 혹은 ‘문어발 그룹의 대장’ 쯤 됐을 것이다. 그는 창장그룹의 회장이고, 여기에 항만을 주력으로 하는 허치슨 왐포아 그룹의 이사회 의장이다. 거느린 기업 수만 460여 개다. 총 자산 규모는 600억 달러가 넘는다. 홍콩 증시의 26%가 리카싱 소유다.

시민단체들의 공격을 받을만한 팩트는 또 있다. 홍콩인들은 ‘1달러를 쓰면 5센트가 리카싱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만큼 ‘내 경제활동이 리카싱 좋은 일 시킨다’는 불만의 표시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 홍콩인들에게 ‘맘씨 좋은 경제인’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홍콩에 사스(SARS)가 왔을 때나, 자선단체가 기부금이 필요로 할 때 의례 리카싱을 찾아 가고, 그는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큰 손을 빌려주기 주저하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표본’ 격인 셈이다. ‘리카싱 기금회’는 홍콩인들의 자랑이다.

고향 사랑 역시 늘 상 화제다. 고향은 광둥(廣東)성 차오처우(潮州). 그는 1940년 일제 침략을 피해 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피난왔다. 12살 때다. 홍콩에는 차오처우(潮州)전문 음식점이 곳곳에 눈의 뜨일 정도로 고향 차오처우 사람들은 대가 센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고향 인근 산터우(汕頭)시에 산터우 대학을 설립, 중국 본토 교육사업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리카싱은 까만 뿔테 안경에 늘상 둥그런 눈을 뜨고 홍콩인들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자본주의 기업경영은 이런 것’ 하고 던지는 그의 말은 곧 교과서다. 2000년 어느 날 ‘홍콩의 부동산이 홍콩경제를 견인했던 시절은 끝났다’ 선언했을 때 홍콩인들은 자신의 아파트 팔기에 급급해야 했다. 그리고 그가 이듬 해 다시 땅을 사기 위해 ‘부동산 경매장’에 나왔을 때 홍콩인들은 다시 부동산을 사들이려고 앞다퉈 호들갑을 떨었다.

‘(리자청) 그는 어떻게 아시아 최고의 부자가 되었을까’는 우리와 닮은 꼴 홍콩에서 아시아 최대재벌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잘 설명해 준 좋은 정보 창고다. 우리 역시 어려운 때다. 그의 철학 한가지.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고 혼자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라.’ 중학 1년 중퇴 학력임에도 투지와 지혜로 아시아 최고기업인 자리에 오른 그의 삶을 짐작하고도 남을 만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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