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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피그 - 로마의 명탐정 팔코 1 ㅣ 밀리언셀러 클럽 22
린지 데이비스 지음, 정회성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팔코는 정말 귀엽다. 스물 아홉, 나랑 동갑인 이 남자의 삽질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찌릿 아파온다. 팔코가 하는 일은 주로 쫓기기, 맞기, 무시당하기-다. 돈이 없고, 신분도 보잘것없지만, 열정은 가득하다. 팔코는 기본적으로 선량한 인간이다. 그는 시니컬한 인간형과는 거리가 멀다. 영웅이었지만 허무하게 일찍 죽어버린 형의 약혼녀와 조카를 부양하고, 엄마와 누나에게 상습적으로 혼난다. 시장통에서 추격적을 한 때도 팔코는 멜론 노점은 피해간다. "과일이 뭉개지면 농부의 생계에 막대한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도 팔코는 말한다. "난 돈만 내면 무슨 일이든 다 해 줘!"(나와 같은 직업관을 가진 남자로세) 하지만 그의 직업, 정보원이라는 직업을 살펴보면 내막은 이렇다. "나는 부정한 아내가 전차 몰이꾼과 바람이 났다는 의심을 떨치지 못하거나 아내가 자기 조카와 잔다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슬픈 중년 남자들을 위해 일해. 가끔은 여자들을 위해 일하기도 하지" 이 남자와 나의 공통점은 또 있다. "나는 결혼은 해 보지 않았지만 이혼에는 전문가였다" 이 남자가 은 돼지 사건을 맡게 되는 계기는 그가 "전혀 바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표현하는 바에 따르면 "나는 그렇게 뛰어난 정보원이 아니었다" 딜레마라면 그는 정치적인 일에 손을 대지 않는다는 것. 왜냐고? "어머니는 아들 하나를 갈릴리에서 베스파시아누스에게 바쳤습니다. 어머니에게 저는 살아있는 하나뿐인 아들이고, 비굴하게 살아남는 것이 제겐 더 어울립니다" 그런데 결국 왜 그 사건에 뛰어들었냐고? 열 여섯 살의 순결하고 정의감 넘치는 소녀 소시아가 결국 악당들에 의해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팔코는 은 돼지가 반역을 위한 정치자금으로 로마에 불법 유입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수사하기 위해 브리타니아로 간다. 그 곳에서 그는 소시아의 사촌 언니 헬레나를 만나는데, 이혼녀인 헬레나는 더없이 콧대높고 당찬 여자다. 팔코는 자진해서 은 광산에 노예로 들어가는데, 그 곳에서 죽도록 학대를 당하고 일을 하는 것은 물론이요, 강간까지 당한다(한국 남자들이 호모포빅한 경향이 유독 강한데, 이런 걸 그냥 웃어넘길 수 있을까). 반쯤 죽은 상태이던 그는 헬레나에 의해 구조받고, 점점 음모의 배후를 파헤쳐간다. 그리고 그는 서른 살이 되고, 또, 원로원 의원의 외동딸인 헬레나와 사랑에 빠진다.
팔코가 사랑에 빠져 헤롱거리는 것은 대단히 재미있었다. 카스테라마냥 달콤하고 말랑말랑해진다. 바보같이 웃고 있다는 팔코 자신의 설명을 들을 때마다 따라 웃게 된다. 팔코의 매력은 인간미다. 사람마다(그리고 탐정마다) 인간미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구현된다. 팔코의 경우는, "후회할 짓을 한다". 소시아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은 그가 집세를 제때 내지 못해 집주인에게 고용된 전투사들에게 두들겨 맞았기 때문이다. 황제가 상당한 양의 포상을 해 주고 계급을 올려주겠다는데, 싫다고 했다가 나중에 후회하면서 "다시 그렇게 해 주세요"라고 세 번인가 애원했다가 다 거절당하는 불운을 자초하기도 한다.
황제의 뒤를 이을, 세력이 강한 두 아들 중 연장자인 티투스에 대해 린지 데이비스가 글을 쓰는 태도는 시오노 나나미가 카이사르에 대해 글을 쓰던 방식을 연상시킨다. (나는 당시, 카이사르에 홀딱 반해서 <갈리아 전쟁기>를 라틴어로 읽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라틴어 수업을 듣기도 했다. 수업을 잘 안 들어가기는 했지만 그의 단정한 문장은 정말 교재에 예문으로 자주 등장하더라) 티투스는 역사적으로도 70년의 예루살렘 정복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실버 피그>를 보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대의 여왕을 데려와 자기 여자로 삼은 인물이다. 티투스는 대단히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단호하고, 영리하며, 판단이 빠르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구두쇠인 자기 아버지(황제)에 비해 그는 포상의 관념이 철저하며, 인재를 알아보는 눈 또한 가지고 있다. 나도, 이 책을 보다가 홀딱 반했다, 티투스한데;;;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그는 "즉위 후에는 선정으로 국민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치세 중의 대사건으로는 79년 베수비오화산의 대폭발, 폼페이시(市)의 땅 속 매몰 등이 있었고, 또 80년에는 로마의 대화재, 페스트의 만연이라는 불행한 사건 등이 잇달았다. 대화재 후 로마의 재건, 구제사업에 진력하여 ‘인류의 총아’로 경모되기도 하였다. 전 황제가 착공한 콜로세움을 완성시킨 황제이기도 하다."
팔코도, 티투스도, 헬레나도 매력적이라- 시리즈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다. 하지만 다음 책인 <청동 조각상의 그림자>는 두꺼운 책으로 두권이라;;; 바로 읽게 될지 잘은 모르겠다. 흑.
밑줄긋기-
그는 헬레나를 좋아하지만, 솔직히 그녀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비록 당시에 나는 아버지의 입장에 놓이기 전이었지만, 어떤 남자든 딸을 둔 아버지는 약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파가 눈을 흘기며 갓 태어난 쭈글쭈글한 붉은 핏덩이를 품에 안기며 이름을 지어 주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딸은 평생 아버지에게 어두운 그림자 같은 공포를 안겨 주는 것이다. -p.124
노예의 일상에는 한가하게 회고나 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우리는 미래에의 희망이 없고 과거의 추억이 없음을 낙으로 삼았다. -p.161
나는 결혼을 발표하는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라고 귀띔해 주고 싶지만(결혼을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으므로), 애써 모른 척 외면한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로마의 모든 연인들이 친구의 진심 어린 충고에 따라 결혼을 포기해 버린다면, 정녕 이 미개한 세상을 구원할 새로운 세대의 탄생은 오지 않을 것이다.
"행복한 신랑은 누구지?"
"스마라크투스"(참고로, 이 인물은, 소설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팔코를 죽도록 두들겨댄 인물이다)
신랑의 이름을 듣는 순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나는 레니아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p.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