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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뒤렌마트의 중편 <약속>의 부제는 '추리소설에 부치는 진혼곡'이다. 과연. 뒤렌마트가 쓴 마지막 추리소설이기도 한데, 이 책을 일반적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실망을 할 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해피엔딩이 없을 뿐 아니라, ㅅ실 이 책은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가 자신의 천재성과 신의 때문에 최악의 결과를 맞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추리소설 창작기술 강연회의 연사로 초대받는다. 그는 우연히 자신의 강연을 들은 H 박사의 차를 타고 취리히로 돌아가게 되는데, H박사는 '나'의 강의가 졸렬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추리소설이 실제 사건과 동떨어진 이야기들만 늘어놓고 있다고. 그리고 그는 9년 전에 있었던 어느 사건 이야기를 들려준다.
쉰 살, 더 이상 진급할 자리도 마땅치 않았던, 외톨이였으나 사건 해결에는 착실했던 수사관 마태는 요르단의 경찰 재조직 업무를 맡게 된다. 출발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날, 그는 한 소녀의 살인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용의자가 잡히지만 그는 미심쩍은 자백을 남기고 자살해버리고, 사건은 해결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마태는 요르단행 비행기에 오르지 않고 돌아온다. 백의종군을 해서라도 진짜 범인을 잡겠다는 것이다. 주위의 반대만이 그를 기다릴 뿐이다. 어느 날 마태가 주유소를 열었다는 어이없는 소식이 들려온다. H박사는 마태를 찾아간다. 그는 진짜 범인을 잡을 수 있다고, 방법을 알았다고 말한다. 주유소는 범인이 지나다니는 목에 잡은 거라고. 데려다 놓은 아이는 미끼라고. 곧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마지막에 사건은 해결된다. 그러나 전혀 시원하지 않다. 범인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으나, 나는 알고 있다. 추리소설의 해피엔딩은 탐정이 "모든 속임수를 밝혀냈다!"며 주절주절 썰을 풀고, 범인을 검거하는 극적인 순간에 있는 것임을. 그 아름다운 해피엔딩을 거세한다면 추리소설이라는 것은 존재 가능한 것일까.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그 갖가지 추리소설들 안에서 한술 더 뜨는 엉뚱한 사기극이 연출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당신네들이 만들어낸 범죄자들이 어김없이 처벌받게 되는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중략) 나를 화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니라 당신네들 소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진행 방식입니다. 이 대목에서의 사기극은 언어 도단에다 파렴치하기까지 합니다. 당신네들은 사건 진행을 논리적으로 설정하지요. 마치 장기를 두듯 진행시킵니다. 여기엔 범죄자, 저기엔 희생자, 또 이곳엔 공모자 저곳엔 부당 이득자,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수사관은 이 규칙을 알고 반복해서 판을 벌이는 것으로 족하지요. 수사관은 이 규칙을 알고 반복해서 판을 벌이는 것으로 족하지요. 그럼 어느 틈엔가 범죄자를 체포하게 되고, 정의는 승리를 도와주는 겁니다. 이런 식의 픽션이 나를 참을 수 없이 격분시킨단 말입니다. 현실이란 논리를 가지고서는 극히 일부밖에 파악되지 않는 것이니까요. -p.17
무릇 사건이란 수학 공식처럼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결코 필연적 인수를 알지 못하며, 실로 몇 안 되는, 대체로는 부차적인 인수밖에 모릅니다. 다만 이 이유만으로도 그렇습니다. 우연적인 것, 예측할 수 없는 것, 헤아릴 수 없는 것들 역시 엄청나게 큰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수사 법칙은 다만 확률과 통계에 토대를 둘 뿐, 인과율을 무시합니다. 그 법칙들은 보편적으로는 들어맞지만 특수한 경우에는 맞지를 않아요. 개개인은 저마다 계산 외곽에 서 있단 말입니다. -p.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