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지 이야기 - 전10권
무라사키 시키부 지음, 김난주 옮김, 김유천 감수 / 한길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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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완역본이라는 한길사의 <겐지 이야기>는 너무너무 예쁘게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읽기 쉽게 번역되고 편집되었다. 10권을 나란히 세워놓고 그 책등의 그림이 완성된 모습을 보면서 잠시 기쁨에 젖기도 했다. ㅎㅎ 알려진 바와 같이 궁중 연애담인데, 워낙 이야기를 들려주는 말투로 옮겨놔서 술술 읽힌다. 처음에 갱의니 여어니 하는 호칭들이 잘 안 붙는달까, 익숙해지지 않아서 약간 고생하기도.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인데 해피엔딩이다. 흠... 여자가 써서 그럴지도 몰라(웃음).

아래는 줄거리인데, 책을 읽을 분들은 읽고 싶어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 흰 글씨로 가려두었다. 궁금하신 분들은 스크롤해 보시길. 솔직히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ㅅ- 책 읽다가 메모를 해야 할 정도였;;;

겐지는 천황의 아들이다. 엄마 기리쓰보 갱의는 천황이 가장 아끼는 여인이었는데, 기리쓰보는 다른 후궁들의 질시를 한 몸에 받다가 겐지를 낳은지 얼마 안 되어 죽었다. 천황은 기리쓰보 갱의를 잊지 못하고 있다가 그녀와 꼭 닮은 후지쓰보 여어를 들이는데, 겐지는 자라면서 자신의 계모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후지쓰보를 사랑하게 된다. (엄마와 닮았다는 이유에서 점점 좋아하다가 이성으로서의 사랑을 느낀다.) 그러다가 후지쓰보를 연상시키는 후지쓰보의 어린 조카인 무라사키를 발견하고, 그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키워서 잡아먹기로(?)하고 데려다가 키운다. 그리고 후지쓰보 여어와 관계를 가져 아들을 낳는데(천황은 자기 아이라고 안다), 천황이 죽은 뒤, 그리고 그 다음 대 천황이 죽은 뒤, 후지쓰보와 겐지의 그 아들이 천황이 된다. 겐지는 온갖 여인들을 정말이지 다 후리고 다니는데, 귀양을 가서도 여자랑 살다시피 하면서 아이를 임신시키는 등 엄청난 정력을 자랑한다. 무라사키를 다 키워서 원래 원하던 대로 갖는데, 그렇다고 정실로 삼지도 않는다. 아내와 첩들을 위해 집도 지은 뒤 거기에 여자들을 모아 한데 산다. 겐지는 무라사키를 가장 사랑하기는 하는데, 틈만 나면 다른 여자를 품고 애도 낳기 때문에 무라사키는 종종 힘들어하지만 덕성 높은 태도로 다른 여자의 자식도 자기 자식처럼 키우는 놀라운 인간성을 보인다. 무라사키가 죽고, 겐지는 슬퍼하며 출가를 준비한다. 겐지의 죽음은 명확하게 줄줄이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겐지의 자식들 이야기가 나온다.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70년의 세월을 관통하는 이야기이니만큼, 얘기가 복잡하다. 출생의 비밀이니 불륜이니 하는 얘기가 쉬지 않고 나오는 터라, 그야말로 헤이안 시대의 <하늘이시여>다. 옛 노래들을 다 번역해놓아서 리듬감도 있게 읽어갈 수 있는 점도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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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49호 - 2006.겨울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품절


당신에게 글을 쓰도록 강요할수록 당신은 행복해진다. 당신은 이런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작가는 규율이 필요한 직업이다. 군대에서 행하는 일련의 의식이나 규율은 외부에서 보면 난센스 같다. 하지만 사실은 의식 자체보다 그의식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난센스처럼 보일 수 있는 나의 의식, 습관들이 사실은 하루종일 나로 하여금 종이에 복종하게 하고 글에 존경을 표하게 한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규율이란 것에 채찍질당하고 억지로 떠밀리고 길들여지고 훈련되면서 작가가 된 셈이다. 작가는 이렇게 탄생한다.

나는 언제나 헤밍웨이의 조언을 따라 만년필을 쥐자마자 그 전날 쓴 글을 다시 읽는다. 이는 내가 소설의 분위기 속으로 다시 들어가도록 도와줄 뿐 아니라 자신이 쓴 글을 다시 평가할 기회를 준다. 나는 단숨에 내 글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을 내린다. 일진이 안 좋은 날은 즉시 쫙쫙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래서 나는 스프링노트에 글을 쓴다.

내 계산에 의하면 나는 하루에 0.75장을 쓴다. 하루에 한 장도 채 못 쓰지만, 나의 하루 전부가 이 한장도 안 되는 종이 앞에서 지나간다. 십오일 동안 안간힘을 다해 열 장을 쓰고도 나중에 전부 쓰레기통에 던지는 경우도 있다.

실상 작가는 자신이 불평하고 있기를 원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원하기도 하고 불평하기도 한다.

우리 작가는 어떤 의미에서는 수도승이다. 하지만 결국 사랑받길 원하는 존재이다.

인생의 매정함은, 영감이 존재하고 그것이 불공평하게 분배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모든 것은 내가 쓰기 위한 것이고 나는 계속 쓸 것이다.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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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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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소녀시대>는 프라하에서 60년대 초, 10대 초반을 보낸 요네하라 마리의 이야기다. 그녀의 아버지는 공산당원으로, 프라하에 있는 공산주의 이론지 편집국에 근무하고 있었다. 덕분에 프라하에서 생활하게 된 그녀는 각종 공산주의 국가에서 온 친구들과 지냈다. 이 책은, 공산주의가 나름 찬란히 빛나던 마지막 시기에 공산주의 국가에서, 공산주의의 이념을 받들어 온 소녀들의 이야기이고, 그들의 후일담이다. 논픽션이지만 자전적인 책이고, 가끔 어떻게 이 여자는 이렇게 세세한 대화를, 말을 다 기억할까 싶기는 하지만(난 초등학교 4학년 이전 친구들의 이름은 아예 기억도 하지 못한다. 사실은 대학 친구들 태반의 이름도.), 단지 소녀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공산주의자로서 산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흥미진진하다.

같은 공산주의 국가라 해도 나름의 차이가 있다. 소년 소녀들이지만 다들 그 안에서 파가 갈리고 서로 친해지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한다. 그리스에서 온 공부하기 싫어하는 리차, 무늬만 루마니아 출신인 거짓말쟁이 아냐, 그리고 유고슬라비아에서 온 천재적인 야스나. 개성이 뚜렷한 이 소녀들의 이야기는 오늘로 오면 사뭇 다른 울림을 남긴다. 이제 와 둘러보는 동구권의 몰락이 안기는 씁쓸함을, 이 책은 비겁하게 비난하지 않고 따뜻하게 응시한다. 변명하는 대신 솔직히 말한다. 그게 이 책의 장점이다. 공산주의가 옳다, 자본주의는 옳지 않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런 주장을 독자에게 심어줄 생각도 없다. 요네하라 마리는 다만, 자신이 겪였던 세계의 일부를 깎아, 토끼 모양을 낸 사과조각처럼 보기 좋게 놓아준다. 사소한 대화나 묘사가 낭비되지 않고 한 개인과 그 사회를 묘사하는 데 쓰인다는 경제적인 글쓰기도 나름 인상적이다. 40년만에 친구들을 하나씩 찾아가 만나는 대목에서는 시간의 변화와 동구의 몰락, 그리고 씁씁한 현실을 느낄 수 있다.

뭔가를 주장하는 대신, 설득하는 대신, 밤을 새워 화톳불 앞에 앉아 고구마를 까먹으며(사실 이런 거 해 본적도 없지만) 기나긴 이야기를 듣는 듯한 다정함이 좋다. 그리고 다시금 드는 생각은, 공산주의건 자본주의건을 떠나, 독재정권은 정말 나쁘다. 전쟁은 그보다 더 나쁘다. 야스나의 이야기를 읽다가는 몇 번이고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세상은 왜 이리 끔찍한 것일까. 보통만 되는 삶이라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이었던가.

왜 못돼 처먹은 아냐는 잘 사는데 야스나는! 이 망할 세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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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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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공부>는, 편집을 급하게 했는지 뭔지;; 약간 눈에 밟히는 대목들이 있다. 책 내용보다 이런 지적을 먼저 하고 싶지는 않지만, 저자가 각종 인문서를 읽으면서 공부한 내용을 적고 있기 때문에 편집의 오류는 사실관계를 오독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그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능력이 없는 학생을 사정없이 낙제시킨다면서 미국에서는 졸업하는 학생이 입학생의 20퍼센트 정도며, 독일에서는 약 30퍼센트, 이탈리아에서는 64퍼센트가 졸업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46쪽

다음의 문장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주술도 안 맞고.

기타무라 토코쿠가 실제 모델인 아오키의 궁핍과 자살은 물론이고, 아오키와 같은 문학 동인이면서 똑같은 궁핍과 자살에의 충동을 느꼈던 시마자키 도손의 작중인물인 기시모토의 삶은 새로운 문학이 소개되던 최초의 풍경이다. -108쪽

혹시 편집자가 장정일 안티일까? 어쨌건 문제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게다가 중제를 내용보다 훨씬 센세이셔널하게 뽑거나 아리송하게 뽑아놓은 이유도 잘 모르겠다. '소중화라는 슬픔'이라는 중제에는 마땅히 소중화에 한자가 붙어 있어야 하고(왜냐하면 이 이후의 단락에서야 소중화가 小中華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사람도 있을 게 마땅하므로), '문학 작품 읽지 마라!'에는 느낌표따위는 필요없다. 다치바나 다카시 자신이 문학서를 읽지 않는다고 했지, 남들이 문학작품을 읽는데까지 무용론을 펼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정적인 문젯점은, 이 책의 목차에는 각 장이 어떤 책에 대해 씌여진 것인지가 적혀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정확히 역사에 대한 글이 될런지 철학에 대한 글이 될런지 전쟁에 대한 글이 될런지를 예측하지 못한 채 읽단 각 장을 읽어봐야 한다. 정말 무심하기 짝이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시대의 문화 프로메테우스 장정일' 운운하는 광고 문구와 거창한 제목 <장정일의 공부>라는 데 이 책이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ㅅ- 그냥 <독서일기>가 어때서;;

동서양의 역사서를 비롯해, 다양한 인문서들을 장정일이 읽고 나름의 독후감을 덧붙인 이 책은, 장정일의 논리 전개나 깨달음의 과정에 그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어떤 인문서를 읽을만 하겠다, 내 관심사와 이 역사서가 맞을 것 같다-는 점을 알게 도와 준다. 이를테면, 나는 마르크 블로크의 <이상한 패배, 1940년의 증언>에 지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장정일은 이 책에 대해 이렇게 썼다.

승리의 원인에 대해서는 누구나 알고 싶어하지만 패배의 원인은 등한시한다. 곧잘 사람들은 승리에는 불변의 법칙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배우려고 하지만, 어떤 분야에서든 승리는 항상 상황을 운영하는 자의 것이다. 다시 말해 원칙을 고수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임기응변을 이용하고 나아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상황을 창조하는 자의 것이다. 반면 패배에는 승리가 갖고 있지 않은 불변의 법칙이 있다. 그러니 패배에 대해 더 잘 아는 것이 일단 '피박'을 면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내가 이 책을 들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63쪽

결론적으로 나는 '피박'을 면하려고 <이상한 패배, 1940년의 증언>을 읽고 싶어하고, 장정일은 무식하고 무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태하게 되는 태도인 '무지의 중용'을 피하기 위해 많은 책들을 읽고 이 책을 썼다. 

<이상한 패배, 1940년의 증언>은 1940년 7월부터 9월 사이에 쓰였으나 나치 점령 중에는 출판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해방된 이후인 1946년에 책이 출간되었을 때 저자는 지상에 없었다. 그는 여러 가지 가명으로 지하운동을 조직하고 반란 기구를 만들다가 1944년 3월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고문을 받은 뒤 6월에 총살됐다. 그는 죽기 전에 이 책의 제사(題詞)로 쓸 몇 개의 문구를 고전으로부터 발췌해 놓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얘야, 전장이나 사형대 위에서 또는 감옥에서 끝나지 않는 삶은 아름다운 삶이 되기에는 언제나 무엇인가가 모자란단다"라는 구정이었다. -75쪽  

사랑은 생활의 바다 속에서 파선한다 - 마야코프스키의 시 재인용

작가 쪽에서는 무의식 중에 그 단조로운 생활에 약동적인 것을 만들고 그 도피 의식 또는 고독감을 가장 선명하게 하는 실제 연기를 생활 속에서 하지 못하면, 작품의 상품 가치를 높일 수 없다고 느끼게 된다. 가정의 불행이나 연애의 위기, 병이나 어느 정도의 실의 등은 그 도피 생활에 악센트를 만든다. 그러므로 작가는 자연히 거의 의식하지 못한채 그 불행을 기쁘게 맞이하게 된다. 다음 단계에서 그는 스스로 불행을 만든다. 위험한 실험적 연애를 적극적으로 하게 된다. 그러면 그 위기감은 한층 독자들을 즐겁게 만든다. 이렇게 해서 도피라고 하는 실제 연기 생활은 패멸 행위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근대 일본인의 발상 형식>, 이토 세이의 글 재인용 (사소설 작가가 빠져 있는 악순환에 대해)

*위의 인용과 연계해 흥미로운 부분-

"새삼 알고 보면, 우리 나라 작가 중에 이광수만큼 자서전을 여러 번 쓴 작가는 없다. (중략) 그는 마치 늘 고향이 그리운 사람처럼 걸핏하면 자서전을 쓰고자 했는데, 자서전 집필은 사소설을 쓰려는 유혹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처럼 젊어서 읽고 배운 일본문학의 독소는 깊었으되, 그의 문학은 끝내 사소설의 유혹을 이겨냈다. (중략)애초부터 그가 창작의 관심사와 주제를 자신의 일상과 가족이라는 범위에 국한하는 사소설을 썼다면, 훗날 공소한 계몽과 친일이라는 변절에 빠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가 사소설에 몰두했다면, 민족의 현실에 눈감은 미학주의자였다는 비난을 받는 것으로 그쳤을 것이나, 사소설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민족 개조론의 함정에 빠질 여지도 생겼던 것이다. 이 점은 이광수 개인의 운명은 물론 그를 기점으로 하는 한국의 근대문학의 향후 전개와도 연관되는 중요한 문제다. 이광수는 일본의 사소설로부터 한국의 근대문학을 방어했다. -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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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수 이야기 - 2007년 제52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이승우 외 지음 / 현대문학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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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죽음의 그림자를 풍기는 노인의 몸을 해가지고도 그 시절의 상사가 자기를 다시 불러줄 거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이해할 수 있어? 인생이란 외롭지도 않고, 잡지의 표지처럼 그저 통속할 뿐인데 말이야. 하긴 나중에는 그 기다림이란 게 그다지 절실하지도 않고, 그저 습관에 지나지 않은 게 되었겠지만. 잡지의 표지가 인생을 닮아 통속하다는 걸 그가 왜 몰랐겠어. 잡지의 표지가 외로울 수 없는 것처럼 인생 역시 통속하지 않을 수 없는 거지. 그날, 늘 이어폰을 귀에 꽂고 듣던 라디오에서 그 상사가 죽었다는 뉴스가 나왔다는군. 그래서 충격을 받고 외마디소리를 지르고 쓰러진 거래. 인생이 얼마나 통속인지 보라고. 아무리 외로운 척해도 통속을 넘어갈 수 없는 게 인생이라니까. -이승우, <전기수 이야기>

수상작 <전기수 이야기>를 읽고 김경욱의 <천년여왕>을 약간 읽다가 이도 저도 다 글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잖아 하는 순간 계속 읽을까 말까를 한동안 고민했었다. 나름의 글쓰기가 직업인 동시에 글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글을 둘러싼 이야기가 흥미롭지 못하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떨까를 생각하는 중이다. 나는 아무래도 계속 망설여져서, 다른 책을 읽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전기수 이야기>가 조금 더 재미있었다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고독을 느끼는 것은 당신의 마음이 그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김경욱 <천년여왕>

그래도 한 편만 읽고 마는 건 너무한 것 같아서 김경욱의 <천년여왕>과 김애란의 <성탄특선>으로 부지런히 책장을 넘겼다.
불행히도, <전기수 이야기>와 <천년여왕>은 책과 관련된 사람(전자는 책 읽어주는 남자였다가 이야기 들려주는 남자가 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후자는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이야기고, <천년여왕>과 <성탄특선>에는 동남아 사람(전자는 동남아에서 시집온 색시들과 동남아 노동자, 후자는 동남아 노동자)들이 등장한다. 세 편 읽었는데 어쩐지 중복. 다른 작가의 이야기인걸까, 혹은 이런 화제가 인기있는 걸까를 궁금해하게 되었다.

김애란은, <달려라 아비>를 읽었을 때 생각은 발랄하구나- 정도였는데, <성탄특선>은 뭐랄까, 그래도 나이가 어리다고 그냥 허투루 볼 수는 없는 게 세상일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활자를 더듬어가면서, 초라한 성탄절에 대한 쓸쓸한 자각을 다시금;; "말하자면 역병처럼 크리스마스가 돌아온 것이었다"라는 말에 혼자 낄낄거리고 웃었다. 마음에 들건, 그렇지 않건 간에 오늘날의 문단 분위기를 약간은 알 수 있게 해 주는 책인 듯 하다.

여자의 옷차림은 스카프를 둘러맨 오리처럼 항상 어정쩡한 구석이 있었다. 여자는 그 사실을 모르고, 한동안 새로 산 치마 한 벌에도 기분이 좋아, 온종일 혼자만의 자신감에 휩싸여 캠퍼스를 날아다니곤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여자는 알게 되었다. 세련됨이란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오랜 소비 경험과 안목, 소품의 자연스러운 조화에서 나온다는 것을. 옷을 '잘'입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잘' 입기 위해 감각만큼 필요한 것은 생활의 여유라는 것을. 스물한 살 여자는 남자에게 예뻐보이고 싶었다. 그것은 허영심이기 이전에 소박한 순정이었다. -김애란, <성탄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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